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69
469화 엿 먹이기 (7)
아르키다의 모든 세상을 관조하는 엘리스.
단 1초 만에 수천, 수만 가지의 시나리오를 수립하는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뛰어난 알고리즘과 회로로 무장한 그녀의 능력은 방대한 아르카디아를 아무런 문제 없이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우월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인공지능보다도 완벽한 인공지능인 엘리스.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가끔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이기도 하며 또 완전히 틀릴 때도 있었다.
[중대한 변수 발생.] [집중 분석 모드로 전환.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분석…….]이 세상에 가득한 수많은 불확정성과 불확실성.
그 어떤 의도나 인과를 갖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나타나는 수많은 이야기. 예상도, 추측도 할 수 없는, 이 ‘변수’들 때문에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이 아르카디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이제는 아르카디아를 중세 판타지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어이가 없다는 듯이 자신이 만든 세상을 내려다보는 잭. 자신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너무 뒤틀려 이질적인 느낌까지 드는 그는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마치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이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이딴 식으로 끌고 가는 것도 참……. 둘 다 똑같은 놈들이야.]애초에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종말 시나리오. 게임성으로나, 상업성으로나 그 어떤 가치도 없는, 그야말로 게임 자체를 말아먹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정신 나간 시나리오였지만, 그것을 풀어 나가는 재영의 방법 역시 광기 그 자체였다.
[엘리스, 밸런스 조정은 완료했어?]영겁의 심장을 노틸러스에 박아 넣으려는 순간부터 긴급하게 구현되지 않는 밸런스의 조정을 시작한 엘리스. 그리고 그녀는 잭의 물음에 방대한 데이터를 그의 눈앞에 보여 주며 말했다.
[해당 데이터는 노틸러스를 구성하고 있는 동체의 재료, 각인된 마법 회로의 성능을 고려해 산정된 능력치들입니다. 확인 바랍니다.]아티팩트…… 아니, 이제는 그의 신성을 품은 신기가 되어 버린 노틸러스의 세부 제원을 확인한 잭.
그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무지막지한 수치를 보고 연신 헛웃음을 토해 내며 중얼거렸다.
[최대 항속거리는 무제한에…… 최고 속력이 마하 4.0……?]현대 첨단 과학 문물로도 구현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제원.
연료 공급도, 보급도 없이, 음속을 초월하는 속도로 아르카디아의 대륙 방방곡곡을 날아다닐 저 무지막지한 괴물을 보며 잭은 마치 한탄하듯이 말했다.
[이게…… 게임이냐……?]* * *
혼돈의 마왕 사탄.
그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현상을 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쿠쿠쿠쿠쿠쿵.
영겁의 심장에서 미친 듯이 퍼져 나오는 농밀한 마나와 그 마나를 게걸스럽게 받아들여 강렬한 빛을 반짝이며 가동되는 수많은 마법 회로들. 그리고 그 결과 노틸러스는 거대한 굉음을 내며 이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으으으……. 뭐야, 이 어마어마한 마력은…….”
영겁의 심장이 뿜어내는 강대한 마나의 힘을 느낀 검은 해적단.
이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로 함선 전체에 가득 차오른 마나의 기운에 안색이 파리하게 변해 갔지만,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신성을 가졌다고……? 이 거대한 구조물 자체가……?”
엄청나게 값비싸고 희귀한 금속과 재료들을 떡칠해서 만든 함선이고, 고룡급 드래곤이 모조리 달라붙어서 온갖 최고위 마법을 새겨 넣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함선이 기존의 격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 다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초-마도 공학의 산물이자 아티팩트.
그것이 탄이 생각하는 이 노틸러스라는 함선의 한계였다.
하지만, 재영이 영겁의 심장을 이 함선의 코어에 넣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쿠웅.
너무나도 강렬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느껴지는 신성. 하지만 그 어떤 자의식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도구에 불과한 함선인 노틸러스이기에 이러한 신성이 느껴진다는 것이 의미하는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
“도대체 어떤 자식이 이런 물건에 신성을 부여한 거지……?”
신기(神器).
일개 마법 병기에 불과한 노틸러스를 신성을 가진 신기로 탄생시킨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탄. 하지만 그는 함선의 코어에서 느껴지는 그 신성의 본질이 누구의 것인지를 파악하고는 이내 경악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파르르 떨며 신음했다.
“아…… 아버지……?”
탄의,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초월적 존재들의 아버지이자 이 아르카디아의 모든 만물을 만들어 낸 창조주, 잭.
그의 신성을 느낀 탄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옆에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있는 엘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야, 지금 내가 착각하는 거 아니지? 아버지가 지금 설마……?”
전대 마왕으로부터 계승된 기억을 포함해도, 마왕으로 통치하면서도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탄. 그가 가진 기억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아버지는 특정한 시기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이 아르카디아에 직접 개입한 적이 없었다.
잃어버린 신화의 시대.
아수라의 강림, 그로 인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대한 파괴와 혼돈의 세상을 그저 바라만 봐야 했던 아버지.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적 없던 그가 자신의 신기를 이 아르카디아에 구현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아르카디아 전체를 뒤집어엎을 대사건이었다.
“이 멍청아, 당연한 거잖아. 아수라가 세계 전체를 멸망시키려고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아버지께서도 가만히 보고 있으실 수는 없었겠지.”
“그래도 그렇지. 아버지의 신기라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틸러스의 이곳저곳을 바라보며 심각하게 둘이서 연신 대화를 나누고 있는 탄과 엘. 그리고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재영은 그 둘이 나누는 대화에 그 어느 때보다도 유심히 귀를 기울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갑자기 모든 시간을 동결시켜서 등장해서는 혼자 할 말만 하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의문의 소년. 마치 시간에 쫓기는 것같이 조급해하고 할 수 있는 말이 강제되는 듯한 눈치가 역력했지만, 그가 남기고 간 말을 통해서 재영은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수라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랑은 완전히 다른 놈이었어.’
자신도 이 상황이 싫다는 듯, 엄청나게 억울하다는 어조로 한탄하듯이 이야기하던 소년. 이 상황을 만들고 모두를 장난감 취급 하며 가지고 놀던 그놈의 반응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그런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탄과 엘.
이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엮어 가며 머릿속의 퍼즐을 맞추어 가던 재영. 그리고 그는 이내 묘한 눈빛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수라…… 그리고 아버지라……. 결국 다른 놈이었다는 건가?”
자신을 비롯해 이 세상 전체를 엿 먹이려 드는 망할 개발자. 하지만 그와 다르게 무언가 정상으로 보이는 다른 개발자가 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분명 자신에게 우호적인 것이 분명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이템 등급이 변경되었습니다.]이 노틸러스의 이런 말도 안 되는 변화를 용인할 리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극대재앙 마도 결전 병기, 노틸러스 – 신화]신화 등급으로 변해 버린 함선.
그리고 그 세부적인 제원 역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큭……. 푸하하하하하.”
눈앞에 뜬 아이템 상세창을 유심히 살펴보다 이내 웃음을 터트리는 재영. 그리고 그 웃음소리에 모두가 시선이 집중된 그 상황 속에서 카를로스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크흠……. 자네…… 갑자기 왜 그러는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이유 없이 웃고 있는 재영. 그런 그를 모두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재영은 도무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러니까…… 이걸 가지고 그 정신 나간 개발자를 대신 엿 먹여 달라는 말이지?”
도대체 둘이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개발자를 말려 달라는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상황.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재영은 자기들끼리의 알력 다툼을 자신에게 떠넘기는 것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무슨 대신맨도 아니고, 꼬우면 자기들끼리 맞다이나 한판 떠서 해결할 것이지 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일면식도 없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체스 말이자 심부름꾼이 된 것 같은 기분. 그렇기에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냉소적으로 중얼거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마음에 안 들어…….”
성질 같아서는 전부 던져 버리고 탈주하고 싶은 재영. 하지만, 지금 여기서 물러섰다가는 그 이후로 벌어질 후폭풍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차마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시나요?”
“뭐야? 주인, 뭐 잘못 먹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눈을 깜빡거리며 묻는 탄과 엘. 그런 그 둘을 지그시 바라보던 재영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에휴……. 딸린 놈들이 있어서 그럴 수도 없고, 진짜…….”
“뭐……?”
“아니다. 됐다.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탄과 엘에게 손을 휘저으며 재영은 옆에 있는 카를로스에게 말했다.
“카를로스, 이제 동력 걱정은 할 필요 없으니까 최대 출력으로 발진해.”
“최대 출력 말인가……?”
“어. 지금까지는 마나 효율 문제 때문에 일반 항속 모드로 가고 있었거든. 이제 그런 걱정 할 필요 없어졌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밟아.”
“……?”
재영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끔뻑거리며 가만히 서 있는 카를로스. 그런 그를 보고 재영은 무어라 설명을 해 주려다가도 이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콧김을 내쉬고는 함교에 있는 여러 스위치를 직접 조작하기 시작했다.
“아니다……. 그냥 직접 보여 줄 테니까 잘 봐, 어떤 식으로 하면 되는지.”
수백, 수천 가지의 마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노틸러스.
그리고 그중에서 재영은 이 함선을 위해서 만들어진 다양한 마법을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뒤틀린 시간] [중첩 가속] [창공의 질주] [절대 방어]함선 전체에 초월급 방어막을 두르고, 시공간 왜곡 마법을 비롯해 가속 마법, 무저항 마법 등 비행과 최대 가속에 필요한 수많은 마법이 중첩되어 가동하기 시작하자, 강대한 마나의 폭풍과 함께 노틸러스 함선 자체가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 뭐 이런…….”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술렁이는 검은 해적단. 하지만, 재영은 그런 그들과 다르게 너무나도 여유로운 얼굴로 오히려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슬슬 저 위에서 까불대고 있는 녀석들 전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게 좋을걸? 나도 최대 속도로 가동해 본 적은 없어서, 혹시 죽어도 책임 못 진다?”
마치 농담하듯 말했지만, 그가 하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한 카를로스. 그리고 그는 곧장 갑판으로 달려가 밖에서 영문도 모르는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는 부하들을 향해 고함치듯이 소리쳤다.
“어이! 네놈들 전부 함내로 들어와! 갑판에 있다 뒈지는 수가 있다고!”
평상시와 다르게 호들갑을 떠는 카를로스와 함선 전체에 퍼져 나가는 강력한 마나의 기운. 그 여러 심상치 않은 기현상에 모두가 허겁지겁 갑판을 벗어나 함선 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쯤, 재영은 출발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이내 눈앞에 있는 거대한 레버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최대 가속. 아스트랄 드라이브(Astral Drive) 가동.”
그리고 그 순간.
카를로스를 비롯해 검은 해적단 전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귀한 경험을 해 볼 수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동체가 소리를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대기를 찢어발기며 질주하는 사이에 해가 거꾸로 이동하는…… 마치 시간이 뒤로 움직이는 것만 같은 경험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