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8
48화 마녀사냥 (9)
메인 시나리오의 연계 퀘스트, 마녀사냥.
게임사의 의도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던 이 퀘스트는 좋으나 싫으나 아르카디아 속의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냈다.
“흥, 저 구역질 나는 위선자 새끼들!”
“어디 더러운 도둑놈 주제에 여길 넘봐?”
“아, 성기사 있으면 같이 사냥 안 합니다.”
“누가 할 말인데? 저기 파장님, 둘 중 하나만 고르세요. 저도 싫어요.”
이전에는 인터넷상에서나 댓글로 아웅다웅하던 양측 진영의 유저들. 하지만 마녀사냥 이후로는 대놓고 적개심을 내보이며 으르렁댔다. 사냥이나 던전 공략을 위한 파티 결성 시마다 매번 갈등을 만들어 내는 현상이 생겨나며 사사건건 충돌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전처럼의 대규모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연계 퀘스트, 마녀사냥이 종료되었습니다.] [대륙법이 다시 활성화됩니다.] [양 진영 간의 무분별한 PK가 금지됩니다.]퀘스트가 끝나고 다시 활성화된 대륙법. 양 진영 모두가 마을 안에서만큼은 대륙법의 보호를 받게 되자 이전처럼 마을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던 세력전은 이제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 되었다. 그렇기에 (주)아르카디아 직원들 모두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휴…… 다행히 퀘스트는 완전히 종료되었네요.”
“으으으…… 드디어 퇴근할 수 있게 됐어…….”
“으아아! 진짜 집 가면 잠만 자야겠다.”
끝났다는 사실 하나에 환호하는 직원들. 이곳저곳에서 요란한 함성 소리가 들려왔지만, 기획&개발 팀을 이끄는 강태훈 부장과 권명한 전무만큼은 표정이 어두웠다.
“그래서…… 이 퀘스트로 인한 여파가 어떻게 되는 건가?”
퀘스트의 성공적인 클리어. 그 덕분에 지금껏 벌어졌던 대학살을 완전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이들로서는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
“일단…… 엘리스가 양측 무승부 판정을 내렸습니다. 비록 악 진영이 성공 조건을 먼저 완수하기는 했지만, 조건 만족률은 성 진영이 우세했기에 그걸 고려한 결과로 보입니다.”
[양 진영 모두 승리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성 진영과 악 진영의 무승부!] [각 진영에 대한 승리 보상을 균등하게 조정합니다.]서로 죽자고 달려들며 싸운 것치고는 너무나도 허무한 결말. 하지만 그렇다고 이에 불만을 품고 달려드는 유저들은 다행히도 없었다.
[‘어둠의흑염룡’이 마룬 왕국을 점령하였습니다.] [마룬 왕국에 ‘무조건적인 평화’가 발동됩니다.] [어느 국가도 마룬 왕국에 1년 동안 전쟁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마계의 존재들이 마룬 왕국을 주시합니다.] [마룬 왕국은 악(惡) 세력의 심장부로 더 강하게 성장할 것입니다.]“흑마법사 랭킹 1위의 어둠의흑염룡…… 아니, 이제는 죽음의 지휘자인 이 유저를 중심으로 악 진영이 모두 결집한다면 결국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엘리스 역시 그런 방향으로 마룬 왕국에 이점을 주려는 것 같고요.”
악 진영의 상위 스킬이나 전직에 필요한 NPC들이 마룬 왕국에 상주. 그리고 그런 NPC들이 관련 퀘스트를 부여하며, 이와 관련한 계열의 직업이 늘어나는 거대한 선순환 속에서 하나의 세력화를 꿈꾸는 계획. 그것을 들은 권명한 전무는 신중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했다.
“흠…… 뭐, 이번에 일어난 상황을 고려한다면 성과 악 진영의 밸런스를 어느 정도 맞춰 줄 필요는 있어 보이는데…… 어둠의흑염룡이라는 유저가 과연 그럴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을까?”
“뭐…… 흑마법사로 랭킹 1위까지 찍었으니 어지간히 잘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엘리스도 해당 유저에게 퀘스트를 통해 개혁을 직접적으로 유도하려는 것 같고요.”
강태훈 부장의 말에 권명한 전무는 잠자코 생각에 잠기다 이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악인이라는 이유로 천대받고 탄압받지 않는 국가, 오히려 힘과 악을 숭상하고 도덕과 위선을 경멸하는 악(惡)의 제국이라…… 뭐 나쁘지 않은 콘셉트긴 하네.”
악을 숭상하는 국가의 탄생. 아마 현실이라면 이런 국가의 탄생을 우려했겠지만, 이곳은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검과 마법 그리고 몬스터가 난무하는 판타지 세상.
그렇기에 권명한 전무는 엘리스가 설계한 시나리오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은 미약하지만 언젠가 저 정신 나간 광신도의 소굴인 세인트 제국에 대항할 수 있는 대항마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가지며 이에 동의했다.
“그래, 뭐 일단 ‘어둠의흑염룡’ 저 유저는 감시 대상에 리스트 올려놔. 왕이라는 직책에 오른 이상, 저 자식이 감당하지 못할 허튼짓을 해 버렸을 때 우리 쪽에서도 사전에 대응할 준비는 해야지.”
“이미 등록해 뒀습니다. 다행히 관리 등급이 낮은 유저인지, 개인 정보를 제외한 유저의 플레이 정보 일체에 대한 권한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하아…… 그놈의 관리 대상들…….”
어떤 기준으로 등급을 판정하는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엘리스가 지정해 놓은 설정에 따라 (주)아르카디아의 모니터링 부서에서는 감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들에 한정해서 집중적으로 플레이 자체를 실시간 감시하고 있었다.
“팀장님! 감시 대상 241번이 신규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팀장님! 감시 대상 4번은 에일 마을 촌장의 숨겨진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퀘스트 확인 결과 레어 아이템 획득에 관한 것입니다. 관련 내용 보고서로 올리겠습니다!”
감시 대상은 아르카디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플레이어들 집합이다.
레벨이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남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를 하며 독창적이고도 신기한 방법으로 히든 퀘스트를 건들고 주요 퀘스트 아이템과 NPC들을 건드려 의도치 않게 (주)아르카디아 한국 지부의 직원들이 정교하게 짜 놓고 설계해 둔 이야기를 완전히 어그러뜨리는 자들.
사실 강태훈 부장을 비롯한 개발&기획 팀 직원들에겐 이들의 리스트는 그야말로 영구 밴의 철퇴를 내리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 들게 만드는 살생부나 다름없었다.
“하여간 게임을 하면 좀 정상적으로 다른 사람들처럼 플레이 하면 안 되나? 자꾸 이상한 짓 하면서 게임을 죄다 정신 나간 방향으로 몰고 가니…… 게임사 약관에 이상한 플레이는 제재 먹인다는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니까?”
물건을 배달해 달라니까 도리어 그 물건을 훔쳐 달아나고, 중요 인물의 호송 임무에서 몬스터를 유인해 일부러 죽게 만들고, 중요한 첩보를 전달해 달라는데 도리어 적에게 그 첩보를 전달하는 등.
그야말로 퀘스트 자체를 해결하기보다 망치는 데에 도가 튼 자들. 이들 때문에 권명한 전무의 머리는 하루가 다르게 하얗게 변해 가고 있었다.
“저…… 그런데 전무님.”
“왜?”
“일단 저희가 기획해 두었던 이벤트 말입니다……. 퀘스트 내용이나 시기를 고려해서 조금 일정 늦추는 건 어떻습니까? 이게 생각보다 호응이 좋을 것 같긴 한데, 나쁜 의미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요.”
“이벤트? 무슨 이벤트……?”
기억이 안 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묻는 권명한 전무에게 강태훈 부장은 파일철을 뒤적여 종이 하나를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 저번 회의 때 추진하기로 한 이벤트 말입니다. 기획 자체는 꽤 참신하고 재밌어서 긍정적인 호응을 불러올 거라고 보고 있었는데, 이번 마녀사냥 때문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서…… 마케팅 팀에서는 이 이벤트 계속 추진하면 아르카디아 이미지가 지하실이 아니라 심해 속으로 처박힐 거라고 단언하고 다닌답니다.”
심드렁하게 그가 건네준 이벤트 세부안을 살펴보던 권명한 전무. 세부안을 훑어 내리던 권명한 전무의 눈이 커지며 고성이 터져 나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이 미친 새끼들이! 어떤 새끼가 이딴 이벤트를 만들었어!”
얼마나 화가 났는지 고함을 버럭 지르며 손에 든 종이를 거세게 내던지는 권명한 전무. 그의 반응에 강태훈 부장은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저, 전무님! 그거 서비스 오픈 전부터 논의된 이벤트입니다. 물론 그때가 전무님이 이 회사에 오시기 전이라 모르실 수는 있겠지만, 사장님 컨펌까지 다 받았습니다.”
사장님의 재가까지 받은 이벤트. 물론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기에 평가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 이벤트는 그야말로 (주)아르카디아를 엿 먹이겠다고 작정한 새끼가 아니면 감히 발상조차 하지 못할 이벤트임은 확실했다.
“누구야?”
“예……?”
“사장님 컨펌까지 받은 것도, 그때는 이게 재밌을 것 같은 이벤트라고 생각했던 것도 다 알겠어. 뭐 어쩌려는 게 아니라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어떤 발상이 뒤틀린 빌어먹을 머저리 같은 새끼가 이런 이벤트 내놨는지 빨리 말해.”
‘보복은 안 하겠지만, 아마 할 거다.’라는 그의 충만하고 확고한 의지가 돋보이는 질문. 하지만 그 질문에 강태훈 부장은 정말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연신 우물쭈물했다.
“저…… 그게…… 사장님이 직접 내신 아이디어라…….”
“……뭐?”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답변에 큰 충격을 받은 듯 권명한 전무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때 사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레벨에 상관없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로 괜찮지 않냐고…… 조금 트렌디 한 느낌으로 가자면서 제시했던 안건입니다.”
회사의 총책임자인 사장이 직접 낸 아이디어. 거기에 그 누가 No라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결국 모두의 입에 발린 찬사 속에서 신속하게 통과된 이벤트. 하지만 권명한 전무는 이 이벤트가 시작되면 벌어질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거세게 반대했다.
“절대 안 돼! 야! 넌 생각이 없냐? 지금 상황에 이런 이벤트 진행하면 사람들이 잘도 좋아하겠다! 이건 분명 뉴스에도 나와서 폭력성이 문제니, 가상현실이 이래서 안 된다느니 이딴 말 나온다고! 지금 안 그래도 언론사 분위기 흉흉한 거 몰라? 어?”
쾅.
“전부 올 스톱 하고 기다리고 있어! 내가 사장님하고 직접 담판 짓고 올 테니까!”
아무리 사장이라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아니라는 생각에 책상을 힘차게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권명한 전무. 그가 사장실로 떠나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던 강태훈 부장은 이내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날린 그 문제(?)의 이벤트 세부안을 내려다보았다.
[(주)아르카디아 1차 특별 이벤트, 죽창대전.]-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레벨에 상관없이, 직업에 상관없이 모두가 똑같이 한 방!
“하아…… 진짜 괜히 이직했나……?”
엄청나게 파격적인 고액 연봉을 제시한 스카우트 팀의 유혹에 못 이겨 회사를 옮긴 강태훈 부장. 분명 통장에 매달 꽂히는 금액은 이전 회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매일같이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
권한 부족이라며 매번 데이터 확인이 힘든 이상한 운영 방침. 거기에 매일같이 갈아엎어지는 퀘스트와 안에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 이 모든 것에 대응하고 수습하려고 하니 그로서는 한계점에 치달아 있는 상태였다.
“제발…… 지금이라도 이벤트 자체가 엎어졌으면 좋겠군…….”
그는 비어 있는 사무실 안에서 혼자 난잡하게 흩어져 있는 죽창대전의 세부안을 정리하면서 작게나마 자신의 소망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작디작은 소망과 달리, 처음 기획 때부터 철저하게 정신 나간 이 이벤트는 무조건 더 정신 나간 상황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씨앗으로 싹을 틔워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