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88
488화 최후의 전쟁 (2)
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이다.
자아를 각성하고 하나의 문명이 탄생하던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설과 신화 속 이야기들이 만들어져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전승되었고, 다양하고 독창적인 문화와 예술이 꽃을 피웠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기존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 내며 혁신을 통해 인류가 진보하고 또 나아가게 만들어 주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자 근원과도 같은 힘, 상상력(想像力).
하지만, 이러한 상상력이 가진 가치는 오랜 시간 동안 평가절하되어 오곤 했다.
아무리 독창적이고 뛰어난 발상과 상상이라 하더라도, 오로지 개인의 상념 속에서나 존재하는 허상 속 무언가를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공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기기.
루시드 드림(Lucid Dream).
자신이 머릿속에서 떠올린 상상을 이미지와 영상…… 나아가 전자적인 데이터로 구현하고 구축할 수 있게 되면서 상상력의 가치는 그 어느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그대를 지금부터 크로노스 제국을 배신한 1급 반역자로 간주한다. 황궁 함대의 무서움을 맛보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항복하라.] [그 망할 양자역학 고양이가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 이상한 수작을 벌이고 있군.] [크윽! 이 빌어먹을 좀비 새끼들! 도대체 언제까지 몰려드는 거야!]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장엄하고 거대한 규모로 화려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영상과 이미지로 연출하며 파격적이고 새로운 인류 문화의 변혁을 불러왔고.
[꺄아아아아아! 난다! 내가 날고 있어!] [캬아. 역시 판타스틱 유니버스가 진짜 장난 아니긴 하구나.] [부장님, 저 오늘 업무 끝나서 먼저 접속 종료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가상 전투 모의 훈련의 성적은 차후 진급 심사에 있어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임하도록! 알겠나!]개인의 상상 속에서 구축된 가상의 공간은 기존의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다양한 경험을 선사했으며 여러 업무를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저 허상 속에 존재하며 공허하게 사라지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 속에서 실체를 가지고 또 그에 따른 가치를 가지게 되어 버린 상상력. 그렇기에 상상한다는 행위는 엄청난 가치를 가진 노동이 되어 버렸으며,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일종의 재능이 되어 버렸다.
인간 모두가 뛰어나고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또 그 상상력을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주 극소수만이 가능한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오롯이 상상으로 만들어 내고 또 구현할 수 있는 이들을 새로운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크리에이터(Creator)라고 말이다.
인류 최초의 크리에이터이자,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무한의 상상력을 가진 그 누구보다 특별하고 뛰어난 존재.
잭.
하나의 세계를 오롯이 자신만의 힘으로 창조해 내고, 또 그 세계를 가득 채우는 수많은 생명과 이들을 통해서 벌어지는 끝없는 이야기들을 손수 만들어 낸 그는 감히 한 인간이 이룩했다기에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위업을 이루어 낸 존재였다.
가상 세계, 아르카디아.
너무나도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그야말로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이상향 같은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낸 그. 연인이자 유일한 친구인 제니카 폴이 어린 시절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끝없이 이어진 상상과 공상 속에서 탄생한 이곳은 어느 하나 대충 만든 것이 없을 정도로 그의 정성과 애정이 가득 담겨 있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와 다르게 너무나도 부족한 상상력과 무관심으로 점철된 민수.
크리에이터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과 재능이라고 할 법한 것들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가 만들어 낸 창조물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부족하고 빠져 있는…… 불완전하고 또 뒤틀린 존재들이었다.
[울부짖으면 주변이 초토화되는 외눈박이] [눈을 마주치면 몸이 폭발하는 괴물] [소리 내면 목을 꺾어 버리는 인형] [머리가 열 개, 몸통은 다섯 개인 히드라]그저 머릿속에 대충 떠오른 설정과 이미지를 가지고 조악하게 만들어 낸 창조물들.
본래 섬세하고 심도 있게, 오랜 시간을 고민하며 저마다의 존재가 가지는 특성과 이야기를 부여하며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대충 만들다 싫증이 나서 던져 버리던 민수가 이런 창조물들에게 이름을 붙여 줄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이름조차 지어지지 못한 채 아무런 목적과 사명도 없이 공허 속을 떠도는 이 불쌍하고 가련한 불량품들. 하지만 잭은 비록 자신이 만들어 낸 작품들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밀려드는 묘한 측은함에 이들 모두를 위한 하나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름 없는 존재…… 언네임드(Unnamed)라고 말이다.
“크르르르륵”
“키아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이 만들어 낸 세상 밖을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떠돌아다니는 공허의 존재들. 그 기괴하고 괴상한 생명체들을 바라보며 잭은 근심에 찬 표정을 지은 채 중얼거렸다.
[후……. 저 언네임드들을 데리고 아르카디아를 대대적으로 침공하겠다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네.]게임 속 밸런스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만들어 낸 규격 외의 존재들. 분명 왜 만들었는지 의문조차 들 정도로 약한 녀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나는 비정상적인 강함과 사기적인 특성이나 설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특히 아르카디아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갈 정도로 위험천만하고 강력한 힘을 품고 있는 이들도 존재했다.
[영원의 꿈을 꾸는 자] [행성과 별의 포식자] [파멸의 숨결을 내쉬는 여신] [끝없는 심연을 바라보는 눈동자]과거, 차원의 문지기라는 히든 클래스로 전직하고 공허와 연결되는 차원의 문을 열어 온갖 존재를 무작위로 불러내던 스텔라.
그녀가 불러내서 아르카디아의 남부 대륙을 절멸시켰던 최악의 재앙이자, 이 아르카디아의 세계관과 설정을 완전히 벗어났던 존재, 게슈탈트.
그와 동급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파괴력과 위험성을 가진 존재들이 이 끝없는 공허 속에서 지금껏 잠을 자고 있었다.
[저런 녀석들까지 데리고 아르카디아를 침공하겠다고 하면 과연 막을 수나 있을는지…….]소위 후반 위기 시나리오에 필적하는 거대하고 막대한 힘을 가진 재앙들.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들을 총동원해서 아르카디아의 세상을 부수기 위해서 공격하겠다는 민수의 선전포고에 잭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분노했다.
[아무리 나를 구해 주고 이 아르카디아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준 은인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솔직히 너무한 거 아닌가……?]각각 50%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아르카디아라는 가상의 세계에 관해서는 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잭. 그렇기에 그는 최종장을 빙자하며 자신이 애지중지하며 만들어 낸 이 세상을 대놓고 끝장내겠다는 민수의 이런 안하무인적 태도에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그렇기에 잭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세상의 모든 것을 관조하고 주시하는 인공지능, 엘리스에 직접 접속하여 그녀가 바라보고 있던 끝없이 펼쳐진 아르카디아의 모든 것을 관조하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된 아이의 비통한 슬픔.
앞으로 또다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 몸을 떠는 어느 가족의 두려움.
황폐화한 땅과 배고픔과 추위에 몸을 떠는 수많은 이들의 절망까지.
끝없는 혼란과 재앙 속에서 벌어지는 이 아르카디아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신음하는 NPC들.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낸 창조물이자 자식과도 같은 존재들이었기에, 잭은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처참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NPC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괜찮으십니까, 관리자님? 강렬한 뇌파의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그리 짧지 않은 동기화를 끝내고 연결을 해제한 채 눈을 뜬 잭의 격렬한 감정의 변화를 감지한 엘리스는 곧장 그의 상태를 물었다.
[엘리스…… 도대체 언제부터 내 세상이 이렇게 변하게 된 걸까?]분명,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평화롭고 또 아름다웠던 세계, 아르카디아.
하지만, 지금 잭이 바라보고 있는 그 세상은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세상에 수많은 고통과 슬픔이 가득해.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고, 수많은 도시와 국가가 사라지고 또 끝없는 혼란만이 이 세상을 잠식해 나가고 있어.]모험가들의 욕망과 NPC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그리고 지랄맞은 민수의 장난질로 인해서 파괴되고 또 더럽혀진 자신의 작품을 보며 잭은 분명 후회하고 있었다.
[이 세상을…… 아니, 나의 세계를 세상에 공개한 게 잘못된 일이었을까?]아르카디아라는 가상현실 게임을 모두에게 공개하기로 했던 그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게 맞는 선택이었는지 고뇌하는 잭.
그런 그에게 엘리스는 말했다.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관리자님.] [뭐……?] [제가 분석한 데이터를 살펴봐 주십시오.]그리고 잭의 눈앞에 떠오르는 수많은 영상들.
수만, 수십만…… 아니, 잭의 앞에 펼쳐진 그 끝없는 공허를 가득 메우는 무수한 영상들 속에서 엘리스는 모험가들이 만들어 낸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변화들을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
[먼저, 여기 이 모험가가 구해 주었던 청년은 후에 케이발 왕국을 위기에서 구해 낸 영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또한, 여기 이 모험가는 병들어 죽었어야 할 노인을 측은히 여겨 목숨을 구해 주었으며, 이 어린 소매치기 아이는 모험가가 쥐여 준 골드 덕분에 훗날 뛰어난 예술가로 성장하게 됩니다.]이 아르카디아를 자유롭게 방랑하는 모험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로 인해 변화하는 이 세상의 이야기들을 만들고 정해 가는 엘리스이기에 그녀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모험가라는 존재는 이 아르카디아에 분명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들입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극소수가 부정적인 변화를 불러오지만, 대다수는 이 세상을 관리자님만큼 사랑하며 또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비록 가상의 세상이지만, 오랜 시간을 보내며 웃고, 울며, 화내고, 실망하며 저마다의 추억과 기억을 만들어 가는 모험가들. 이들에게 이 세상이 또 하나의 소중한 현실이 되어 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잭은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민수 그 망할 녀석이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이라는 말이네?]결국, 여기서 가장 나쁜 새끼는 김민수, 그놈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건 맞습니다.]엘리스조차도 부정할 수 없는 팩트.
이유를 대자면 수백, 수천 가지는 더 댈 수 있는 이 지극한 사실을 다시 한번 돌이키며 잭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로 엘리스를 불렀다.
[그렇다면…… 엘리스, 이 아르카디아의 창조주이자 최고 개발자의 권한으로 묻겠어. 지금 민수…… 아니, 아수라가 직접 아르카디아에 강림하는 상황, 분명히 정상적인 수준의 개연성을 넘어서는 행위로 보이는데, 맞지?] [……관점에 따른 해석의 차이가 있으리라고 판단됩니다.] [나도 알아, 너도 민수 그 자식이 관리자 직권으로 이 모든 걸 강행하려 든다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거.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지금 이 상황,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 알고 있겠지?] […….]기존의 약속은 개나 줘 버리고 이제는 자기 멋대로 시나리오까지 강행하고 있는 상황. 규칙이고 뭐고 모조리 다 무시하고 꼴리는 대로 행동하는 민수의 행동을 보며, 잭은 침묵하는 엘리스를 향해 선언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나 역시 최고 개발자의 직권을 행사해서 너한테 명령할게, 엘리스.] [신원 확인. 최고 관리 등급, 개발자, 잭 폴른.]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인공지능으로서 그 어떠한 이해관계도 따지지 않고 그저 주어진 사명에 충실히 임하는 엘리스. 그런 그녀에게 잭은 선언했다.
[지금부터 아르카디아 세계 전체에 대한 대규모 업데이트를 시행한다.]이 아르카디아를 만든 창조주이자 최고 개발자로서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