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90
490화 최후의 전쟁 (4)
“이런 식으로 지사장 여러분 모두가 모인 총괄 회의는 오랜만이군요. 그동안 잘들 지내셨나요? 이전 시나리오로 인한 여파로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주)아르카디아의 지사장 총괄 회의를 소집한 이미연 사장. 그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싸늘한 회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환기해 보려고 반쯤 농담 섞인 물음을 던졌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하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겁니까…….]그나마 가장 이미연 사장의 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지사장인 에밀리. 그런 그녀조차도 한숨을 푹 내쉬며 현재 상황에 대한 한탄 섞인 푸념을 잔뜩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번에 종결한 승자 독식 시나리오는 사장님께서도 이미 아시겠지만, 일반적인 게임 속 유저와 길드 사이의 분쟁이 아니라 전 세계의 거대 자본들이 움직였던 우리 회사를 향한 공격이었습니다.](주)아르카디아의 지분 15%를 노린 전 세계의 거대 집단들의 공격.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자금과 인력이 투입되었었기에 이 시나리오의 실패에 따른 후폭풍은 비단 블루록 인베스트먼트에 국한되지 않았다.
[최근 월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집단적이고 또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고, 또한 민주당 쪽에 최근 고위급 인사들이 계속해서 물밑으로 접촉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희와 사이가 소원한 민주당 쪽에 힘을 실어 주려고 하는 모양새입니다.] [중국 세무 당국에서 (주)아르카디아 중국 지사에 대한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기습 세무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사 이전에 그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지도부 최고위층에서 직접 내려온 명령이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에서도 가상현실 서비스에 대한 강력한 규제 법안을 올해 중으로 마련할 것이라는 첩보가 곳곳에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직 들어온 정보가 확실한지는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지만, 영국과 독일, 프랑스 정부가 주도적으로 관련 법안을 추진하고 있어서 상황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호주와 오세아니아에서는 현재…….]에밀리를 시작으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기 시작한 전 세계 지사장들의 보고. 하나하나 그 내용은 비슷하거나 전혀 다른 것들이었지만 그 모든 움직임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했다.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가상현실 기술의 독점과 (주)아르카디아의 행태에 대해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한 정의의 철퇴를 내려 보복하겠다…… 뭐 그런 의미겠네요.”
이미 이러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예견하고 있었기에 태연한 기색으로 미연은 말했다. 그리고 이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 문제들에 대해서는 차후에 따로 논의하도록 하죠. 어차피 지금 당장 저희가 대응하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테니까요. 지금 제가 여러분을 소집한 이유는 그게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니까요.”
[하고 싶은…… 이야기 말입니까……?]할 말이 있다는 그녀의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어지는 이미연 사장의 행동에 지사장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먼저…… 지금까지 여러분을 비롯해 (주)아르카디아의 임직원 모두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독단적으로 이번 시나리오를 강행해 회사를 비롯해 각 지부에 막대한 피해를 준 점에 대해서 총괄 사장의 이름으로 진솔한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까지 숙여 가며 자신들에게 사과하는 총괄 사장의 모습.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독선적인 행태에 관해 진솔하게 사과한 적이 없었던 그녀였기에 지사장들이 받는 충격은 더욱 컸다.
“이미 몇 번의 설명을 통해서 다들 알고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저 역시도 이 최후의 시나리오와 관련해서는 그 어떤 발언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작될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역시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죠. 하지만 최소한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총괄 사장으로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은 이 자리에 모인 지사장 여러분과 (주)아르카디아의 임직원 여러분 모두를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이었죠.”
잔뜩 열받은 소비자들의 어마어마한 민원 폭격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주)아르카디아를 향한 대규모 시위. 게다가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가상현실과 (주)아르카디아에 관한 직접적인 제재 움직임은 그야말로 이미연 사장을 비롯해 임원진의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미연 사장은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며 본인 역시 피해자인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이들 모두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지금 제가 그러한 임무를 잘 수행했는지 돌이켜 본다면 자신 있게 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제 고작 3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인 자신이 맡기에는 너무나도 과분했던 회사. 그렇기에 더더욱 모두의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사장으로서의 위엄과 품위를 지키려고 했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미친 것처럼 더 당당하고 뻔뻔하게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 최종장 시나리오가 끝나고 난다면, 이것 하나는 약속드리죠. 앞으로는 지금처럼 바지 사장…… 아니다. 요즘에는 저를 세상에서 제일 미친X이라고 부르는 게 유행이라면서요? 아무튼, 세상에서 제일 미친X처럼 행동하지 않고 여러분과 조금 더 진솔하고 솔직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요.”
[크흐흠…….] [사…… 사장님……?]무언가 잔뜩 찔리는 표정을 지으며 당황해하는 지사장들. 하지만 이미연 사장은 괜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고 무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그런 표정들 짓지 마세요. 저 역시도 되돌아보면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알겠더라고요. 물론 그 대부분은 저의 뜻이 아니었던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묘하게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씰룩거리는 이미연 사장.
하지만 이들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정신 나간 미친놈이 누구인지 알려 줄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사장들 모두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 다 같이 지켜보자고요, 우리가 지금껏 가꾸어 간 이 세상에 닥쳐올 마지막 이야기를.”
* * *
검은 안개의 주인, 아수라.
본래 창조주인 잭과 동등한 힘과 신성을 가진 존재라는 설정을 가진 특수 NPC인 아수라는 어느 한 사람의 소유물이기도 했다.
최고 관리자이자 이 가상현실의 기술을 개발한 천재 소년, 김민수.
그가 직접 만들어 낸 분신이자, 아르카디아를 플레이 하기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 둔 어느 한 개인의 캐릭터나 다름없는 존재.
그렇기에 아수라는 본래 이 가상 세계의 절대적인 관리자로서 이 아르카디아의 그 어떤 상위의 신성도 감히 상대할 수조차 없는 강력한 존재였다.
하지만…….
[…….]오로지 민수를 위한 전용 캐릭터이기에 그 어떠한 자아도 없이, 그저 공허 속을 부유하며 끝없는 영겁의 시간 동안 그저 눈을 감은 채 잠을 자고 있던 아수라.
민수가 아르카디아에 관심을 끄고 눈을 돌린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아수라는 그저 겉껍질에 불과한 상태로 기나긴 시간 동안 잊혀 왔다.
바로 지금까지는 말이다.
우우우웅.
[아르카디아의 최종장, 종말 프로젝트, No. 3 아수라의 침공.] [가상 인격체 설정. 권한 및 능력치 밸런스 조절…….]이 최종장 시나리오를 위해서 아수라에게 NPC로의 가상의 인격을 부여한 엘리스. 그리고 그녀는 그 누구도 막아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수준의 그 압도적인 신성과 신격을 격하하며 하나의 ‘재앙’으로서의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행동 목적성 설정. 사명(使命) 부여.]이 꼭두각시 같은 존재에게 단 하나의 목적이자 존재 이유를 부여했다.
가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허상의 세계. 하지만 그런데도 너무나도 아름답고 완벽한 이상향과도 같은 아르카디아를 직접 종말의 길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말이다.
[키이이이이이이!] [크아아아아아아아!]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괴성을 지르는 이름 없는 자들, 언네임드(Unnamed).
그 험악하고 흉악한 외모 때문에 마치 분노하고 또 폭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호하고 또 기뻐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만들어 낸 아버지이자 위대한 이 공허 세계의 군주, 검은 안개의 아수라가 드디어 눈을 떴다는 사실에 말이다.
[나의 아이들이여…….]방금 만들어진 인공적인 인격체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그는 자신을 가득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공허의 존재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드디어 우리에게 허락된 약속의 시간이 도래했다.]공허의 침입을 막아서고 있던 차원의 방벽.
그 누구도 뚫을 수 없었던 강력한 금제. 하지만 제한이 사라진 채 뻥 뚫려 있는 구멍과 그 안으로 비쳐 보이는 아르카디아의 세상을 바라보며 그는 서서히 허공을 걸어갔다.
우우우우웅.
[최종장 No. 3 아수라의 침공. 시작까지 남은 시간 03:00]이 세상의 모든 것을 관조하고 있는 엘리스. 이 최후의 시나리오의 모든 것을 연출하는 감독으로서, 그녀는 지금 이 아수라라는 최종 보스의 탄생을 모든 유저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며 마지막 무대를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해 나가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궁.
자신들의 군주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한 공허의 무리.
수백, 수천, 수만……. 아니, 감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까마득한 어둠 속의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영혼을 관통하는 공포를 느끼게 할 정도로 거대하고 또 삼엄했다.
[오랜만이구나, 나의 검, 종말(終末)이여.]보기만 해도 불길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며 하나의 검의 형태를 갖추자 마치 오랜만에 친우를 만난 것같이 반가운 미소를 짓는 아수라. 그리고 그는 미약하게나마 남아 공허의 침입을 차단하고 있던 유리창 같은 차원의 벽을 향해 손을 가져다 대었다.
투웅.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라도 되는 듯이 격렬한 반탄력을 뿜어내며 아수라의 손을 밀어낸 차원의 벽. 그리고 그 벽을 만졌던 아수라의 그 창백했던 손은 격렬한 연기를 내며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일반적인 인간이었다면 극한의 고통 속에서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큼 심각한 부상.
하지만 아수라는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한 내색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더니 이내 환희에 찬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푸욱.
그리고 거침없이 자신의 손을 밀어내던 차원의 방벽을 향해 그 회색의 검을 찔러 넣었다.
쿠우우우우웅.
검은 안개의 주인, 아수라의 신기, 종말(終末).
아르카디아의 창조주, 아버지의 신기, 방주(Ark).
그 두 개의 신기가 품고 있던 신성이 격렬하게 충돌하자 세계가 진동하며 비명을 질러 댔지만, 결국 아르카디아를 보호하고 있던 방주가 산산이 깨어져 나갔다.
챙그랑.
마치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차원의 벽.
그리고 그 사이로 빠르게 밀려 들어오는 아르카디아의 대기를 크게 들이마시며 아수라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짓밟고 부수고 으깨라. 산산이 조각내고 갈가리 찢어 버리고 모조리 먹어 치워라.]병약한 미청년의 모습을 한 아수라.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지어지는 그 작은 미소는 거대한 절망과 광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뒤에서 환희에 찬 괴성을 지르고 있는 모든 공허의 존재들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부여된 유일한 사명을 행하기 위한 명령을 내렸다.
[저 같잖은 세계를 부수고, 모든 것을 공허로 되돌려라.]그렇게 민수가 준비했던 아르카디아의 마지막 시련이자 재앙의 무대가 막을 올렸다.
[최종장 No. 3 아수라의 침공. 시나리오 개시.]초월적인 인공지능이자 이 아르카디아의 유일한 게임 마스터, 엘리스의 관조 아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