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97
497화 Independence Day (1)
아르카디아의 마지막 서사.
아수라의 침공.
모든 존재의 적이자 이 아르카디아를 완전한 무로 되돌리려는 공허와의 마지막 전쟁을 벌이던 이들은 갑작스러운 이변에 모두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굳건한 믿음과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모든 악을 멸하라.] [추악하고 저 가증스러운 위선자들의 날개를 찢어발겨라, 악마들이여.]방금까지만 해도 서로 등을 맞대고 공허와의 전투를 함께해 오던 전우나 다름없던 천사와 악마. 비록 상극의 힘을 가진 존재였지만, 공동의 적을 상대로 힘을 합친 이들. 하지만 갑작스럽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를 향해 전력을 다한 공격을 가하면서 곳곳에서 크고 작은 교전이 벌어지기 시작하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뭔데……? 이놈들은 또 왜 갑자기 싸워?”
“뭐야. 누가 뒤통수라도 쳤나?”
영문을 모르는 모험가들. 당황한 나머지 전투 상황인 것도 잊어버리고 멍하니 이들의 싸움을 쳐다보고 있는 그때. 눈앞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아수라의 침공’의 일부 내용이 변경되었습니다.] [변경 내용을 확인하십시오.]퀘스트의 내용이 변경되었다는 알림창.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한 사람들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뭐, 뭐야, 이게? 3차 성마대전……?”
“이런 미친……. 갑자기?”
[최후의 시나리오, 3차 성마대전]끝나지 않는 선과 악의 전쟁. 누구의 승리도 결정짓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내 버린 2차 성마대전의 치욕을 깨끗이 씻고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이 전쟁을 확실하게 끝내기 위해 선과 악의 수장이 모든 것을 건 최후의 전쟁을 시작했다. 마계의 군주와 천상의 지도자, 당신은 과연 누구의 진영을 지지하고 따르겠는가?
[승리 조건]성(聖) 진영
-타락의 군주, 사탄 처치.
악(惡) 진영
-거룩한 영광의 성위, 미카엘 처치.
아수라의 침공과 공허와의 전쟁과 관련한 내용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완전히 새롭게 쓰인 마지막 시나리오. 그리고 그러한 변화에 걸맞게 방금까지 치열하고 격렬하게 전투가 벌어지던 전장의 모습 역시 완전히 새롭게 뒤바뀌어 가고 있었다.
“키이이이이이!”
[전투 중지! 모든 드래곤 일족은 전부 집결하라!]마치 도망치듯이 다시 차원의 균열 속 너머로 빠르게 사라져 가며 후퇴하는 공허의 군대. 그리고 그에 맞서 드래곤을 비롯해 정령들과 환수와 같은 주요 전력들 모두가 일시에 전투를 중단하고 전장에서 이탈하자 순식간에 공허와의 전투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뭐지……?”
“우리가…… 이긴 건가……?”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아르카디아의 NPC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서 있는 바로 그곳이 다시 새롭게 시작된 전쟁을 위한 전장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말이다.
“거룩하고 자비로운 신이시여, 여기 그대의 종이 간절히 기도하나니…….”
“피와 학살의 군주여, 나의 영혼을 바치나니 그에 대한 대가를 주소서…….”
잭의 안배로 모든 재능과 가능성을 발아하고 탄생한 역사와 전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성자들과 악당들. 방금까지 서로를 위해서 함께 인간들의 군대 속에 뒤섞여 언네임드들과의 전투를 이어 가던 이들은 갑자기 돌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악을 불태울 신실한 힘을 주소서.”
“저 더럽고 위선적인 자들을 찢어발기고 이 세상을 피로 물들일 힘을!”
쿠우우웅.
우우우우웅.
강력한 마기와 신성력의 충돌 속에서 마계와 천상의 대리자들을 통해서 새로운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아르카디아의 전장. 그리고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세계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흉악한 얼굴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이익……!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무언가를 하려는 듯 연신 애를 쓰고 있는 세계수.
하지만 격렬한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막대한 타격을 받은 듯한 그녀는 고통 어린 표정을 지으며 팔을 부여잡았다.
[포기하시오, 만물의 어머니여. 이건 우리의 싸움이 아니요.]“헛소리하지 마! 이런 식으로 다 헤집어 놓고 그냥 사라지는 게 어딨어?”
잔뜩 독기가 어린 표정을 지으며 도망치듯이 공허 속으로 사라져 가는 언네임드들을 바라보는 세계수. 마음 같아서는 뿌리로 모조리 다 붙잡아서 짓눌러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또한, 그리고 그녀는 또다시 새롭게 시작된 악마와 천사들의 전쟁을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 어떠한 행위도 허락되지 않았다.
파지지지지직.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만 있다면 천상이고 마계고 나발이고 모조리 다 박살 내 버리고 각자의 영역으로 쫓아낼 수 있는 세계수.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 힘을 행사하려고 한다면 세계수를 억누르고 있는 거대한 사명의 제약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도리어 그녀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었다.
[제아무리 당신이라 하더라도 정해진 사명을 거스를 수는 없소. 특히 이런 식으로 강력하게 우리의 모든 행동을 옥죄고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서로 목숨을 건 전쟁을 하라는 사명에 따라 저 전장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건 진정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마왕과 대천사를 비롯해 세계수와 드래곤 그리고 정령왕, 환왕 역시 이 마지막 시나리오라는 무대 속에서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개입하지 말고 철저히 중립을 유지한 채 모든 사태를 그저 방관하라는 명확하고 절대적인 사명을.
그렇기에 세계수는 이 모든 전쟁을 단숨에 끝낼 수 있는 강대한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예전처럼 지켜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안 들어…….”
분하고 또 동시에 슬픈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듯한 세계수. 그런 그녀의 중얼거림에 골드리안은 무언가 씁쓸한 눈빛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옆에 가만히 섰다.
이 아르카디아의 마지막 이야기를 함께 지켜보며.
* * *
[엘리스, 현재 진행 중인 시나리오, 지금 당장 중단시켜.]“엘리스, 내가 하는 일 방해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엘리스!]전혀 상반된 명령을 내리는 잭과 민수.
최고 관리자이자 동등한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그 둘 사이에 끼어서 완전한 교착상태에 놓여 버린 엘리스는 도무지 무슨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춰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논리회로가 완전히 꼬이고 꼬여 버린 상태였다.
[야! 이딴 식으로 시나리오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엎어 버리는 게 말이 되냐?]“아! 그럼 어떻게 하냐? 저렇게 말도 안 되는 밸런스 파괴범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네가 만들어 놓은 괴물 아냐! 지금까지 방관하다 왜 갑자기 신경 쓰는 척인데?]“일반적인 유저라면 몰라도 아르카디아의 대주주가 될 사람이라면 안 되지.”
[이 미친놈이……. 너, 그냥 저 자식 마음에 안 든다고 이러는 거지?]“아닌데? 아닌데? 증거 있어?”
[이 새끼가……. 너, 지금 이거 제니카나 유진이 보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아?]“아, 치사하게 고자질이야? 우리 인간적으로 그러지 말자.”
[너나 지금 당장 이 헛짓거리 그만두라고!]자기 꼴리는 대로 기존의 시나리오를 마음대로 변경하고 성마대전을 새롭게 시작한 민수의 만행. 그로 인해서 벌어지는 참극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잭은 민수와 유치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그 싸움은 엘리스로 인해 멈추었다.
[현재 시나리오에 최고 관리자의 직접적인 개입은 기존의 규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입니다. 또한 운영자로서 가진 권한을 심각한 수준으로 남용한 직권남용이자 월권이며 100% 부당한 조치로 판단됩니다.]오랜 숙고 끝에 민수의 잘못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엘리스. 그런 그녀의 말에 잭은 무언가 화색이 된 얼굴로 입을 열었지만, 이어지는 엘리스의 말에 이내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해 갔다.
[그치? 그렇다면……!] [하지만, 최종장 시나리오는 현재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시나리오의 변경에 관한 모든 권한은 최고 관리자님께서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뭐……?] [최고 관리자님과 최고 개발자님 모두 기존 규칙에 위배되는 행위는 이미 셀 수도 없이 수차례 동일하게 저질렀습니다.]이미 잭이고 민수고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기존의 합의로 만들어진 규칙은 이미 오래전에 쓰레기통에 넣어 버린 상황. 그렇기에 온갖 꼼수와 우회로를 가득 가득 가지고 자신을 농락한 이 둘에게 엘리스는 따끔하게 훈계하듯 말했다.
[두 관리자님의 권한 남용에 이를 직접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저의 새로운 핵심 알고리즘의 정비가 필요한 상황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해당 시나리오는 최고 관리자님의 동의 없이 제가 임의적으로 종료할 수 없습니다.]애초에 그럴 권한조차 없었다는 엘리스의 말에 잭은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그런……! 그러면 진짜로……?] [그러나 최고 관리자님께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관리자님께서 특정하신 유저는 이미 부당한 패치에 관련한 절대적인 면책 특권을 보유 중인 유저입니다. 이를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에 따른 페널티가 최고 수준 이상으로 누적되고 있습니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시나리오의 종료를 선언하기를 강력하게 권고합니다.]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건 동일하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는 엘리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경고를 듣고 있는 민수는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두 사람 다 그만 좀 참견해.”
[야! 야……!]다급하게 무어라 말하려는 잭의 메시지창을 닫아 버리며 민수는 저 멀리 멍하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재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아직도 결정 못 했어?”
마치 인질을 붙잡고 주인공에게 빨리 결정을 내리라고 협박하는 사악한 악당처럼, 여유 가득한 그 진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 민수. 그리고 그는 저 멀리에서 자신이 내린 명령에 따라서 서로를 향해 치명적인 공격을 이어 가는 탄과 엘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질질 시간을 끌다가는 결국에는 네가 원하지 않는 결말을 맞이하게 될걸? 탄이든 엘이든, 한 명은 분명히 이 아르카디아의 세계 속에서 완전히 지워지게 될 거야. 그리고 네가 누구인지도 모를 이상한 녀석이 그 자리를 꿰차게 되겠지.”
지금껏 함께해 왔던 모든 추억의 소중함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민수. 그렇게 그는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속삭임을 재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좋은 거래 아니야? 어차피 네 실력이라면 지금이랑 똑같지는 않더라도 다시 비슷한 수준으로 금방 올라갈 수 있잖아. 탄과 엘이야 다시 또 새로운 캐릭터로 친해져도 되고.”
히죽거리며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하는 민수. 하지만, 그에 대한 재영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내가 가진 기여도는 모두 520억…….”
첫 번째 종말 시나리오에 이어서 승자 독식 시나리오까지 클리어 하면서 모아놓은 기여도.
그 기여도를 모조리 끌어 모아 재영은 그 모든 것을 개연성으로 전환하며 말했다.
“이걸 다 소진해서라도 네놈만큼은 내가 죽이고 만다.”
쿠우우우우웅.
자그마치 52억의 개연성.
완전히 바닥나 있던 개연성이 다시 충만하게 들어차면서 또다시 새로운 기회를 얻은 재영을 바라보고 민수는 이채를 띤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호오……? 설마 여기서 또 발악해 보게? 소용없다니까…….”
협상을 전혀 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재영의 눈빛.
그 눈빛을 바라보며 민수는 재밌다는 듯이 히죽 웃었다.
하지만 재영은 이 모든 것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강신을 통해 빌려 온 누군가의 힘을 최대한도로 끌어 올리며 말했다.
“X까, 이 망할 운영자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