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52
52화 덱스의 위명
고객 센터를 통해 아이템 증발에 관련한 문의를 하고 난 재영.
그는 관련 직원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서 몇 가지의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 없는 건 확실한데…….”
재영이 처음 고객 센터로 전화를 걸면서 예상했던 이들의 반응은 정중한 협박이었다.
‘히든 클래스 얻은 건 알고 있는데, 적당히 좀 하시죠?’
‘사기 템 만드는 건 그렇다 치겠는데, 그걸 파는 건 좀 선 넘었죠.’
자신의 플레이를 알고 있지만 문제 될 건 없기에 딱히 건들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렇기에 지금껏 재영은 게임사에서 자신의 만행을 다 알고 있지만 가만히 지켜본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어떻게든 자신을 통해 정보를 얻어내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은 재영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유저 정보에 게임사 직원들이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라…….”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르카디아의 운영진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더 제한적일 수도 있다는 추론을 할 수 있었다.
“하긴…… 그렇다면 조금 말이 되긴 하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직업을 만들고 방관할 수 있는지 말이야.”
난세의 방랑가(Bard of Anarchy).
대놓고 개발자가 깽판을 치라고 만들었다는 것을 밝힌,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막장인 직업. 이 직업을 가지고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아르카디아에 커다란 사건 사고를 불러일으켰던 재영의 이력을 알게 된다면, 아마 정상적인 운영사라면 영구 밴을 수십 번은 때려도 모자랐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밴을 때리기는커녕 더 많은 이득을 얻게 된단 말이지…….”
그런데 그러한 혼란들에도 불구하고 제재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개연성을 획득하면서 강해지게 되는 선순환의 구조가 만들어진 상황. 재영은 잠깐 여러 가지를 머릿속에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더욱 마음 놓고 활동해도 된다는 거네.”
아마 아르카디아의 개발진이 들었다면 분노에 차 멱살을 쥐고 흔들어도 모자랄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재영. 그는 오랜만에 아르팬디아를 뒤적이며 최신 이슈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치열하게 대립하는 선과 악의 세력. 과연 당신은 어느 진영을 선택할 것인가?
-랭킹 1위, 어둠의흑염룡. 유저 최초로 왕에 등극! 과연 그 실상은?
-길드 랭킹 3위, 붉은 마룡. 120레벨 필드 보스, 헬하운드 공략 성공!
“흐음…… 생각보다 유저들 성장 속도가 엄청 빠르구나.”
게임이 오픈한 지 얼마나 됐다고, 100을 넘은 유저가 속속 출현하기 시작한 아르카디아 2대륙. 최초로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 유저들도 100레벨을 돌파한 지 채 3달도 되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한국 유저들이 정말 무서운 속도로 그들을 추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나한테는 해당 없는 이야기지만.”
이미 레벨 시스템이 삭제된 재영의 캐릭터. 그 때문에 원래라면 당연히 획득했어야 할 레벨 업 보너스도 얻지 못했기에 스탯 격차는 점점 다른 유저들과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재영은 딱히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그가 획득한 강신 스킬은 그 격차를 우습게 찢어발길 수 있고, 천계와 마계의 강자들이 재영의 선택을 받기를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연성이 역시 답인가…….”
하지만 이러한 힘을 얻고 유지하는 데 필요로 하는 것은 개연성. 재영은 개연성만 충분히 받쳐 준다면 그 누가 와도 쉽게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다만 그 개연성이라는 것을 획득하기가 생각보다 무지막지하게 힘들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가 그렇게 머릿속으로 골똘히 생각하며 아르팬디아의 게시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을 때, 상단에 노출되고 있는 게시글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르카디아 한국 서버 출시 기념! 특별 이벤트 개최!
“음? 이벤트……?”
이벤트가 열린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없는 재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면 상단에서 반짝거리는 게시글을 클릭해 보았다. 그리고 화면에 휘황찬란하게 나타난 하나의 이미지. 그것을 본 재영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드러났다.
“이게 도대체 뭐야……?”
정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멍하니 이미지를 쳐다보는 재영. 그는 자극적이고 정열적인 빨간색으로 커다랗게 박혀 있는 이벤트 제목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모두가 공평하게 한 방! 제1차 죽창대전 개최!]핏빛을 연상시키는 붉은색의 그 제목과 함께 잘생기고 예쁜 남자와 여자 캐릭터가 하나씩 있는 그림. 그렇지만 그 아름다운 외모와 대비되게 그들의 손에는 초록빛 대나무로 만들어진 죽창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뭐지……? 정말 미친 건가?”
누굴 이미 찌른 건지 피가 살짝 묻어 있는 죽창. 그것을 살인마의 미소를 지으며 할짝 핥고 있는 그 그림은 정말이지 그로테스크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런 소감은 재영만 그런 게 아니라 대다수가 비슷했는지 댓글창은 이미 박살이 나 있었다.
-죽창? ㅋㅋㅋㅋㅋㅋㅋㅋ. 뿜었다.
-이 이벤트 기획한 놈 누군지 몰라도 간첩임. 게임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망치는 중.
-이거 구라지? 진짜 이걸 한다고?
-죽창! 죽창!
-혁명이다!!!! 죽창을 들어라, 인민들이여!!!!!
-아니……. 진짜 이거 누구 대가리에서 만들어진 기획안임?
-왜 ㅋㅋㅋㅋㅋㅋ. 신박하고 재밌잖아.
이걸 진심으로 이벤트라고 내놨냐고 정색하며 게임사를 욕하는 사람들. 게임사가 결국 미쳐 버렸다며 고개를 젓는 사람들. 그리고 혁명을 외치고 죽창을 부르짖으며 열광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그야말로 개판이 되어 버린 댓글창. 하지만 재영은 찬찬히 이벤트 내용을 읽어 보고는 꽤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벤트의 참가지는 이벤트를 위해 준비된 특별한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죽창을 가지고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합니다.]아이템과 능력치 그리고 스킬은 허용되지만, 오직 죽창을 이용한 공격으로만 죽일 수 있는 무적 상태. 그야말로 여러 스킬을 보조적으로 사용하며 죽창을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생존 전투라는 점에서 레벨이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이벤트임은 확실했다.
-근데 보상이 개사기인데?
-그러게? 원하는 아이템 하나를 준다니…… 만약 운 좋게 고위 랭커라도 잡으면 대박 아님?
-노 리스크, 하이 리턴이네. 이건 꼭 참여해야겠다.
생각보다 꽤 빵빵한 보상.
그것은 다름 아닌 최종 생존자에게 원하는 아이템 하나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죽창대전의 마지막 생존자가 될 시, 자신이 죽인 유저들이 소지하고 있던 아이템 중 원하는 것 하나를 보상으로 지급합니다. 그렇다고 아이템을 강탈당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소지하고 있는 아이템은 안전합니다.]아이템을 드롭 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죽인 유저들의 소지 아이템 중 하나를 복사해서 보상으로 지급하겠다는 사실. 마치 일부러 좋은 아이템을 가진 랭커들을 목표로 삼으라 유도하고, 초보자들에게는 빠른 성장의 기회를 주려는 것 같은 냄새가 풀풀 나는 이벤트였다.
-다 뒤졌다. 죽창의 무서움을 보여 주지.
-안 그래도 요즘 커플들 때문에 죽창 마려웠는데, 잘됐다.
-죽창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 죽창! 죽창!
-이벤트 보상은 제가 가져갑니다. 모두 수고하세요.
벌써 활활 타오르며 참전의 의지를 열심히 드러내는 이들. 다들 죽창대전에서 승리할 생각에 신나게 김칫국을 들이마시고 있을 때, 재영은 이벤트의 상세 일정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3회차로 이벤트가 이루어지네…….”
1회차에서는 인원을 무제한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맵에서 1,000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진행.
2회차에서는 1,000명 중 100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진행.
마지막 3회차는 100명 중 단 1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진행되는 배틀로얄의 이벤트.
“이런 상황에서 이기려면…… 준비를 좀 해 놔야겠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재영은 추억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배틀로얄.
방대한 맵 한가운데에서 아군도 없이 사방이 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다대다 전투.
아군이 없는 상황에 사방에 산개해 있는 적들 사이에서 살아남고 최후에 승리하기까지는 기본적인 피지컬도 받쳐 줘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략과 신속한 상황 판단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재영은 과거 이런 배틀로얄 게임에 빠져 학창 시절 꽤 많은 시간을 피시방에서 보냈었다.
“오랜만에 손이나 좀 풀어 볼까?”
뿌드득.
옛 향수가 느껴졌는지 재영은 손을 풀며 예전에 즐겨 했던 게임 하나를 실행했다.
무제한 생존 배틀로얄 게임, 워 그라운드(War-Ground).
한때 컴퓨터 시대의 한 세대를 풍미했던 이 게임은 한 명이 99명의 적을 상대로 살아남는 생존 게임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다. 가상현실이 출시된 이후 꽤 많은 유저가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며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
재영 역시 전설의 리그에 빠지기 전까지 여기서 꽤 명성을 크게 얻었기에 그가 게임에 접속했다는 알림이 뜨자 즉각적으로 엄청난 반응이 쏟아졌다.
-??? 덱스 님?
-헐? 지금 덱스 님 접속한 거 맞아요?
-와! 대박! 이게 얼마 만이야! 님! 저 기억하세요? 저 된장콩맛똥맛이에요!
-뭐예요? 다시 복귀하는 건가요?
-저랑 같이 한판 하실래요?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친한 척을 해 오는 사람부터, 같이 게임 좀 하자며 귓속말을 보내는 사람들. 수십, 수백 개의 귓속말이 빠르게 재영의 채팅창을 가득 메웠다.
“어우…… 여기는 아직도 여전하구나…….”
이전에도 자주 쏟아지곤 했던 귓속말의 융단폭격. 거기에 순식간에 쌓여 가는 메시지의 숫자만 봐도 재영이 질린다는 표정을 짓기 충분했고,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접은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이 인간들은 화력이 왜 이렇게 좋은 거야?”
무서울 정도로 광적인 사람들의 반응에 재영이 툴툴거렸지만, 사실 이 워 그라운드 게임 속 재영의 위상은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했다.
-덱스는 신이다. 1 대 99의 전투에서 진정으로 승리한 그는 그야말로 전쟁의 신이지.
-플레이 영상 봤냐? 수류탄 하나로 14명을 단번에 죽인 거?
-설계가 진짜 예술적이지. 독가스가 퍼져 나가는 루트 귀신같이 예측해서 거점 옮기는 놈들만 차근차근 끊어 먹는 기술은……. 햐…….
-덱멘~~! 오늘도 제가 1등을 하리라 믿숩니다!
그야말로 신성불가침의 존재인 덱스. 모두가 광적일 정도로 그를 찬양하는 유저들.
-저기요, 덱스가 도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하길래 그렇게들 빨아 줘요?
덱스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 유저의 경우 이런 모습들이 마음에 안 드는지 부정적인 이들도 있었지만, 덱스의 전설을 직접 목격한 이들은 그를 찬양할 수밖에 없었다.
-님, 워 그라운드가 100명의 유저가 서로 싸우는 게임인 거 알죠?
1 대 99라고는 하지만 나머지도 서로 적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정말 1대 99의 전투가 아닌 워 그라운드. 그러나 이 다대전 전투 게임에서 딱 한 번 모두가 동맹을 맺은 적이 있었다.
-덱스 하나 잡겠다고 99명이 합심해서 동맹을 체결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정말 덱스 한 명에 대항해서 99명의 반덱스 연합군이 결성된 적이 있었는데, 그 게임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덱스를 죽이겠다는 일념 아래에 하나로 뭉친 99명. 하지만 덱스는 압도적인 피지컬과 귀신같은 전략으로 연합군 모두를 한 명씩 처단하며 결국 최후의 생존자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플레이를 실시간으로 관람한 수천, 수만의 유저는 그에게 하나의 칭호를 붙여 주었다.
‘전쟁의 신, 덱스’.
그가 또다시 워 그라운드의 전장에 강림했다.
앞으로 진행될 아르카디아의 이벤트를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