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54
54화 죽창대전 (2)
이벤트 맵, 판타스틱 아일랜드.
그야말로 놀거리의 천국이라고 해도 무방할 이 거대한 섬에서 사람들은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자, 여러분. 모두 즐겁게 먹고 마시고 놀았나요?]어느 순간 나타난 도깨비의 등장 전까지 말이다.
“뭐야, 저건……?”
“도깨비……?”
복슬복슬한 털이 가득한 난쟁이. 겉보기에는 귀여운 외모의 그의 머리에는 도깨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뿔이 두 개가 불쑥 솟아나 있었다.
[지금까지 기다려 줬으면…… 대충 이번 대전에 참여하고 싶은 이들은 전부 모인 거겠죠?]어딘가에서 꺼낸 것인지, 커다란 회중시계를 늘여 놓고 시간을 확인하는 도깨비. 그는 섬 한가운데 공중에 뜬 채로 모두에게 외쳤다.
[그럼 지금부터 죽창대전 제1회차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면, 관계없는 것들은 싹 다 치워 볼까요?]죽창대전을 시작하겠다며 손가락을 튕기는 도깨비. 그러자 순식간에 섬의 지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뭐, 뭐야!”
“으아아아……!”
먹고 마실 수 있었던 음식점들과 가판대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지각변동이 일어나 빠르게 자라나는 수풀과 나무들.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에 놀거리가 넘치던 환상의 섬은 순식간에 자연 그 자체의 야생으로 뒤바뀌었다.
위잉.
[이벤트 아이템, 죽창(竹槍)을 획득하셨습니다.]그리고 눈앞에 나타나는 상태 메시지.
재영은 인벤토리창에서 이전엔 없었던 초록빛 대나무의 창을 꺼내 들고는 세부 능력치를 확인했다.
[죽창]대나무를 깎아 만든 창이다. 만인의 평등함을 상징하는 기운이 서려 있다.
-정통으로 찔린 대상은 즉사.
-방어력, 마법 방어력을 완전히 무시함.
단순하고 깔끔하지만 어마어마한 부가 효과가 들어가 있는 무기. 재영 말고도 이곳저곳에서 초록빛 대나무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의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와, 진짜 개사기 아이템이네.”
“이거면 랭킹 1위도 한 방에 황천길로 보낼 수 있겠는데?”
“우아아아아아! 죽창! 죽창!”
“바로 이거지! 혁명의 순간이다! 이 망할 현질러 새끼들아!”
죽창의 정신을 소중히 지켜 온 급진파들의 울부짖음이 요란하게 들려오는 섬. 지금까지 평화롭게 놀거리를 즐기던 이들은 어디 가고, 죄다 죽창을 부르짖으며 만민 평등을 울부짖는 미친놈들이 재영의 주변에 가득 산재해 있었다.
“죽어라! 이놈!”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재영의 바로 옆에 있던 한 유저가 죽창을 기습적으로 찔러 오는 상황. 재영이 이에 반응해 대비하려는 그 순간, 갑자기 그가 절반으로 갈라져 쓰러졌다.
“뭐지……?”
회색빛으로 물들어 사라져 가는 의문의 유저. 재영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 주검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공중의 도깨비가 짜증 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 좀 진정들 하세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날뛰는 사람들이 많네요. 전부 반칙으로 실격 처리 합니다. 반으로 갈라져 죽기 싫으면 얌전히들 있으세요.]반으로 갈라져 죽은 유저들.
그게 도깨비의 소행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재영은 죽창을 든 채 얌전히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밀림 지형이라…….’
순식간에 울창하게 자라난 나무들. 얼마나 커다란 규모인지는 모르지만, 빽빽하게 솟아오른 나무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 광경을 확인하고는 탄에게 말했다.
“탄.”
“엉? 왜?”
멍청한 표정으로 급변한 지형을 이리저리 돌아보던 탄은 재영의 물음에 돌아봤다.
“강신 스킬 사용할게. 은신이랑 암살에 특화된 애들로 적당히 추려 줄 수 있어?”
“정말? 당연하지! 내가 물 좋은 녀석들로다가 대기시켜 놓을게!”
안 그래도 저번 마녀사냥 때 있는 개연성 없는 개연성 탈탈 털어 넣어 쪼들리는 생활을 하는 탄. 긴축재정에 들어간 상황이라 재영의 강신을 사용하겠다는 말은 탄에게 있어서는 마치 가뭄 속 단비만큼이나 반가웠다.
[어디 보자…… 지금 참가 인원이 329만 2,891명인데…… 거기에 반칙으로 탈락한 사람이 891명이니까 딱 329만 2천 명이 참가했네요.]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의 인원들.
대한민국 인구가 6천만인 것을 고려하면 거의 5%의 인구가 참여한 이벤트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아르카디아가 가지는 영향력과 대중의 관심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 주는 수치였다.
[329만 2천 명에서 1,000명이 남을 때까지 벌어지는 무제한 서바이벌이라…… 경쟁률이 말도 안 되는 것 같긴 하지만, 뭐 규칙이 규칙인 걸 어쩌겠어요? 남은 숫자는 위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고, 그럼…… 시작합니다.]파앙 팡 팡.
도깨비가 손을 활짝 벌리며 대전의 시작을 선언했다. 그러자 뒤에서 터져 나오는 폭죽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요란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죽어라!”
“죽창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
“한 방! 한 방!”
“죽창을 들어라! 인민들이여!”
콰앙 퍼펑.
그 순간 이곳저곳에서 시작된 충돌들. 온갖 다양한 스킬과 기술들의 향연 속에서 죽창에 찔려 죽는 이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이 자식들이! 제발 좀 적당히 해!”
“미친놈들! 죽창이 뭐라고 이렇게 앞뒤 없이 달려드는 거야!”
“꺄아악! 살려 줘!”
[끼끼끼. 이것 참 흥미진진하군요. 시작하자마자 동시에 이렇게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니.]우승을 생각하며 수많은 전략과 대비를 해 둔 유저들. 하지만 그들은 우승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창을 들고 가미카제처럼 돌진하는 유저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분명 초반에는 섣부른 움직임을 자제하려고 했던 이들. 안전을 추구하던 이들은 죽창을 외쳐 대는 미친놈들의 저돌적인 돌진에 당황한 나머지 어처구니없게 한 방을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유저들 중에는 유명한 랭커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아아아아! 내가 랭킹 19위 레고밟았어를 죽였다!”
푸욱.
“끄으으윽…….”
죽창을 들고 환호하던 유저. 그는 환호하는 사이 기습적으로 뒤에서 찔러 온 죽창에 똑같이 회색빛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또 그 유저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죽창에 뒤따라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죽창 앞에 무릎을 꿇는 유저들.
그 혼돈의 개판을 보면서 재영은 탄에게 말했다.
“탄.”
“으응……? 왜, 주인?”
그야말로 대학살의 현장. 서로가 죽고 죽이는 이 아비규환의 현장을 넋 놓고 지켜보던 탄은 재영의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답했다.
“암살은 됐고…… 은신 스킬 빠방한 놈으로 골라 줘…….”
“그래…… 그래야겠다.”
재영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정말 넓고, 죽창에 환장한 미친놈들 역시 정말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죽창대전 1회차.
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벤트가 시작되자, (주)아르카디아의 이벤트 담당 팀은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 채 이벤트 진행 현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현재 탈락자 35만 명. 아직도 맵 곳곳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회차 진출 가능성이 큰 유저들의 상태는?”
“저희가 예상했던 이들 중 89%가 현재 생존 상태입니다. 대부분 이미 은신이나 특수한 생존 스킬을 통해 몸을 숨기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 정도 수치면 나쁘지 않군…….”
이번 죽창대전을 책임지게 된 장태영 팀장. 그는 부하 직원의 보고에 만족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2회차와 3회차는 꽤 볼만한 경기를 만들 수 있겠군…….’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장태영 부장은 이번 죽창대전에 두 가지의 그림을 그려 두었다.
1회차에서 엄청나게 많은 유저가 서로 치고받으며 개판 5분 전의 난전 상황을 연출.
그리고 살아남은 2~3회차의 유저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략과 전술을 통해 살아남는 치열한 생존 배틀로얄을 연출.
이렇게 해서 많은 이가 이번 이벤트에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계획했고, 지금 상황은 그가 기대한 것과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일부 랭커들이 저레벨 유저들의 앞뒤 안 가리는 공세에 탈락하긴 했지만, 대부분 거점을 잡고 농성에 들어간 이상 큰 이변은 없겠군…….”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유저들. 물론 직업 특성에 따라 이번 죽창대전이 유리한 이들도, 불리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랭커는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100% 활용해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있었다.
“어스 월! 어스 월! 어스 월!”
자신의 주변에 거대한 대지의 벽을 쌓아서 모두의 접근을 차단하는 마법사나.
“다크 사이드.”
어둠 속에 잠입한 채 몸을 숨기고 침묵하는 도적.
“스나이핑.”
나무가 울창한 밀림 속에서 조용히 접근하는 이들의 심장을 노리는 궁수.
그리고…….
“으아아아아악! 살려 줘!”
딱히 유용한 능력이 없어 이리저리 죽창을 들고 몰려다니는 유저들에게서 도망 다니며 비명 지르는 전사까지.
방법은 제각각 다르지만, 모두가 각자의 방식을 통해 살아남고 있었다. 그리고 재영은 이러한 혼란의 현장 안에서 역시 그만의 방법으로 살아남고 있었다.
“어이! 넌 뭐야?”
죽창을 손에 들고 얼굴에 피인지 물감인지 모를 붉은색으로 기괴한 문양을 칠한 무리. 우연히 밀림을 헤치고 지나가다 마주하게 된 이들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험악한 기세로 몰려들더니 재영의 주위를 포위했다.
“이 난전 속에서 혼자 다니다니…… 겁도 없군.”
십수 명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다른 이들을 사냥하고 다닌 듯, 이들의 죽창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네놈은 그 잘난 랭커 유저들 중 하나냐 아니면 우리와 같은 죽창의 혁명 동지냐?”
랭커에 대한 열등감과 반발심으로 들고 일어난 죽창 혁명단. 이들의 리더로 보이는 이가 마치 사상 검증이라도 하듯이 재영에게 물어 왔다.
“빨리 대답해라! 우리의 동지인가! 아니면 적인가!”
레벨이란 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에 절대 랭커의 범주 안에는 들 수 없는 재영. 그렇다고 이렇게 얼굴에 색칠 놀이를 한 채 혁명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빨간색 무리와 함께 어울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 일단 랭커는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너네랑 다니기는 좀 그런데…… 그냥 중립이라고 생각하고 보내 주면 안 될까?”
“뭐라고……? 동지들! 이 자식은 우리의 대업에 참여하지 않는 반동분자입니다!”
“우! 우! 우!”
“죽창! 죽창으로 치료하자!”
“혁명에 참여하지 않는 자! 이들이 바로 주적이다!”
“죽여라! 죽여!”
광기에 물든 채 죽창을 쿵쿵 땅에 내려찍는 이들. 인민재판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직접 몸으로 경험하게 된 재영은 새삼 이 세상에 얼마나 미친놈이 가득한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하아…… 진짜 왜 만나는 놈들마다 죄다 이 모양이냐.”
이미 여러 번 겪은 상황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죽창을 꺼내 든 재영. 그가 죽창을 꺼내 들자 죽창 혁명단의 리더가 소리쳤다.
“전원 공격!”
스아아악.
그의 외침과 함께 내질러지는 십 수 개의 죽창.
도무지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안 나오는 전방위적인 공격. 하지만 재영은 절대 방어할 수 없는 죽창의 공격에도 여유로운 자태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피잉.
[공격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허공을 가로지르는 파공성.
“헉! 뭐, 뭐야?”
“이, 이럴 수가?”
재영이 죽창에 찔려 쓰러지는 모습을 기대한 혁명단. 하지만 이들의 죽창은 마치 재영이 존재하지 않는 듯 그를 통과한 채 허공을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재영은 아무런 타격도 없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했냐? 그럼 이제 내 차례지?”
촤아악.
“크. 크아아악!”
“동지여…… 부디 혁명을…….”
반격으로 휘둘러진 재영의 죽창. 그의 죽창에 관통당한 두 명이 회색빛으로 쓰러지며 사라지자, 혁명단 모두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동요하기 시작했다.
“뭐, 뭐냐, 도대체 그 스킬은……!”
“아…… 이거?”
강신을 통해 불러낼 이를 찾아다닌 재영.
그는 마계의 존재 중에서 이번 이벤트에 아주 최적인 존재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패시브 스킬이야.”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놀랍게도 그가 강신으로 불러낼 수 있는 존재는 인간으로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마계 곳곳에 존재하는 검은 안개(Black Fog).
마력을 가득 함유한 이 검은 안개 속에서 아주 희귀한 확률로 탄생하는 개체들.
실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그런데도 실체가 존재하는 모순적인 존재.
황혼의 유령(Haunting Twilight).
물리 공격을 완전히 무시하는 특성을 가진 이 마족의 힘이 깃든 재영은 말 그대로 죽창의 공격에서 자유로운 무적이었다.
“으으으…… 이건 사기야.”
새하얗게 질린 죽창 혁명단.
죽창으로 시작된 그들의 혁명은 결국 죽창에 의해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