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67
67화 합의
가상현실 아르카디아의 출현은 너무나도 빠르게 세상에 그 뿌리를 내렸다.
[다음 뉴스입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 아르카디아의 동시 접속자 수가 1억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전체 가입자 수가 10억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이 수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급격한 성장. 전체적인 서비스를 시작한 지 채 1년도 안 된 회사였지만, 이미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다국적기업의 위상을 가지게 된 (주)아르카디아. 그렇기에 서울 광화문 광장 대로변에 자리한 이 회사는 취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예, 고객님. 캡슐을 구매하시고 나면 저희 측 엔지니어가 직접 방문해서 설치를…….”
“게임 내에서 버그가 있었다면 여기 전화가 아니라 온라인으로 접수를 하셔야…….”
“기획안이요……? 그거 분명 엎어졌을 텐데…… 예.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아이템 성능 재조정에 관한 보고서는 저번에 이 대리가 작성했을 텐데…….”
물론 취업하고 난 이후 매일같이 쏟아지는 방대한 업무를 소화하다 지쳐 탈진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어느 기업보다 성과에 대한 보상을 화끈하게 보장해 주는 곳이기도 했다.
“휴…… 이놈의 회사는 도대체 숨 쉴 틈을 안 주냐.”
아르카디아라는 회사가 설립되고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하기까지 정말 미친 듯이 달려온 직원들. 하지만 그런데도 매일같이 쏟아지는 일거리는 가상현실 서비스가 본궤도에 정착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한 프로젝트 끝나면 또 다른 프로젝트 생기고. 그거 열중하고 있으면 뭐 해? 기존에 기획했던 프로젝트가 삐끗하면 또 그거 수습도 따로 하고 향후 예방 대책까지 만들어야 하고…… 도무지 일이 끝나는 게 없다니까?”
퀘스트 시나리오의 기획과 개발을 책임지고 있던 이현수 대리. 그는 입사 동기였던 최민식 대리에게 가슴속에 담아 둔 불만을 토로했다.
“메인 시나리오 동선이랑 주요 NPC들 선정해서 이야기를 꾸려 나가는데, 무슨 퀘스트 라인이 유저 때문에 꼬였다고 전면 재검토하라니. 아니, 그게 그렇게 쉽게 말할 일이야?”
단순한 단발적인 퀘스트가 아닌 수백이 넘는 인물들과 퀘스트들이 정교하게 연결되어 진행되는 이야기들. 그런데 일부도 아니고 전부 재검토하라는 요구를 받은 그는 허탈함을 넘어 분노까지 느끼고 있었다.
“후…… 어쩌겠냐…….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아니, 밸런스 팀도 마찬가지잖아? 너네도 저번에 슬라임 사건 터졌을 때 얼마나 개고생을 했냐? 이거 회사가 돌아가는 방식이 진짜 이상하지 않냐? 어느 정도 적당히 선을 지켜야지, 너무 유저 중심적이잖아.”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
이 두 가지 모토를 내세우는 아르카디아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유저들의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얼마나 직원들이 갈아 넣어지며 준비한 것인지는 상관없다는 듯, 필요하면 모든 것을 엎어 버리는 이 회사의 과한 비효율성은 이현수 대리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야, 네가 아무리 그렇게 불평해 봐야 바뀌는 건 하나 없다. 솔직히 말해서 이 회사가 아무리 생각해도 엿 같다고 치자. 그래서 뭐? 그만두기라도 할 거야?”
“그건…….”
계속 투덜거리는 이현수 대리의 말을 잠자코 듣던 최민식 대리가 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는 쉽사리 답을 하지 못하는 이현석 대리. 그 모습을 보며 최민식 대리가 말했다.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있지? 이 회사가 아무리 엿 같아도 버티는 놈이 승자야. 너도 알잖아, 여기서 제공하는 복지 혜택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아진 전자. 실리코프. 아르고스.
이 세 대기업이 합작해서 만든 회사 (주)아르카디아.
억 단위를 가뿐히 넘어서는 이용객을 보유하고 있는 이 회사는 이용 요금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현금을 월 단위로 벌어들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 성장세가 멈추기는커녕 점점 가속도가 붙으며 그 세를 불리고 있는 괴물 같은 회사.
그런 엄청난 부를 과시하기라도 하는 듯, 회사 직원들에게 제공되는 기본 복지 혜택들은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엄청났다.
모든 질병과 부상을 커버하는 가족 단위의 의료보험. 동종 업계 평균의 3배를 넘어가는 연봉. 거기에 직급에 따른 관사의 평생 무료 지원에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까지 100% 책임지는 교육비 지원은, 한 번 회사에 들어오면 절대 나갈 생각을 못 하게 만드는 족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거기에…… 여기 밥도 진짜 장난 아니게 맛있잖아.”
특히 그 누구도 극찬할 수준의 호텔 뷔페 수준으로 제공되는 무료 점심과 저녁 식사. 그것만큼은 이현수 대리조차 부정할 수 없는 이 회사의 장점 중 하나였다.
“하…… 그건 그렇지…….”
최민식 대리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든 커피를 들이켜는 이현수 대리. 하지만 그 달콤한 커피 속에 숨겨진 씁쓸한 끝맛이 오늘따라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 * *
서민 대학교의 가상현실 공학과.
세계 최초로 가상현실 산업을 이끌어 갈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학과. 과거 컴퓨터 공학부를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며 간판부터 바꾼 이 과의 학생들은, 괴짜로 유명한 김태훈 교수로 인해 매 수업과 과제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으아아아! 아니, 도대체 이 수업은 첫 학기부터 왜 이렇게 빡세게 굴리냐?”
“야, 너 교수님이 내준 과제 했냐?”
“그 원어로 쓰인 논문 읽고 보고서 쓰는 거? 미쳤냐! 그걸 어떻게 다 해!”
매일같이 쏟아지는 가상현실 기술에 관한 논문들. 그것도 영어로 작성된 최신 논문들만 엄선해서 읽고 오라는 과제를 매일같이 내는 김태훈 교수의 강의는 무수히 많은 공돌이 지망생들을 좌절케 했다.
“하…… 이 학교가 원래 이런 곳이었나?”
“몰라…… 그만하고 싶어…….”
딱히 공부에 별 흥미가 없던 이들. 서민 대학교는 사실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는 학교는 아니었다. 그저 그런, 어딘가에서 이름 한 번 들어 봤을 정도의 인지도는 가졌지만, 그게 전부인 서울 소재의 잡대. 그렇기에 적당한 수준의 수능 성적과 학생부 기록을 가지고 들어온 이들이 돼먹지 않은 김태훈 교수의 커리큘럼을 따라가기에는 엄청난 무리가 있었다.
“재, 재영아, 혹시 과제 다 했어?”
슬쩍 눈치를 보며 재영에게 물어 오는 재균. 그의 물음에 재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못 했지. 요즘 이래저래 일이 많아서 할 시간이 없었거든.”
실제로 피곤한지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재영. 그의 얼굴에 피곤함이 팍팍 묻어나는 것을 보고 재균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자! 이거 받아.”
“……그게 뭔데?”
가방에서 그가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두꺼운 A4 뭉치였다. 그리고 재균은 사람 좋은 미소를 씩 지으며 말했다.
“혹시 몰라서 교수님이 보라고 한 논문 2개 정도 읽었거든. 어차피 하나만 제출하면 되니까 남은 거 하나는 필요하면 네가 써.”
“……?”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과제를 바치는 재균. 그런 그의 호의에 재영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재균을 바라보았다.
“그걸 왜 나한테 주냐?”
“으, 으응? 과제 안 했다며. 이거 필요하지 않아?”
학점에 목을 매는 재균과 다르게 별로 학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재영. 그렇기에 그는 굳이 재균이 쓴 과제를 가져다가 이름만 바꿔서 내는 등의 뻔뻔한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학점 챙기고 싶지 않다. 어차피 학점은 적당히만 맞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너나 몇몇 여학생 말고는 모조리 안 했거든.”
실제로 손에 꼽는 소수의 인원만이 완벽하게 과제를 해 오고 나머지는 거의 배 째라는 수준으로 과제를 안 해 온 상황. 그렇다고 그들을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사실이, 아무리 생각해도 매주 강의마다 쏟아 내는 김태훈 교수의 과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의 분량과 난이도를 자랑했다.
대학교 1학년 학부생이 아니라 거의 박사 학위를 노리는 대학원생이나 건드려 볼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논문들. 오히려 재영은 그런 과제를 실제로 해 오는 것을 모자라 자신을 위한 과제까지 준비해 온 재균이 더 이해가 안 될 지경이었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알겠어…….”
단호한 재영의 거절에 살짝 시무룩한 표정으로 과제물을 도로 가방 속에 집어넣는 재균. 그리고 그는 살짝 재영의 눈치를 보며 물어 왔다.
“저…… 재영아, 그 이번에 아르카디아에서 한 이벤트 있잖아.”
재영이 덱스라는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 그는 철저히 비밀로 하고 싶다는 재영의 요청에 평상시에도 일언반구 아르카디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호기심을 참지 못한 듯 연신 주변에 앉아 있는 이들을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 너 맞지?”
혹시 덱스의 사칭이나 다른 누군가가 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던 재균. 그의 물음에 재영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와…… 대박…….”
재영의 시인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작게 탄성을 터트리는 재균. 그의 눈에는 마치 선망의 대상을 바라보는 듯한 존경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좀 마. 부담스러워.”
“으응……! 미안. 그게, 엄청난 유명 인사가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게 너무 신기해서…….”
재영의 말에 호들갑을 떨며 시선을 황급히 돌리는 재균. 그는 그 이후에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재영에게 질문을 던져 댔다.
“그런데…… 너는 직업이 도대체 뭐길래 그런 엄청난 스킬들을 쓰는 거야?”
“카시야스랑은 서로 친해? 둘이 싸우는 중에도 뭐라 계속 이야기를 나누던데.”
“그 3회차 말고 1회차랑 2회차에서는 어떻게 살아남았어? 그때 영상들은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더라고.”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계속해서 질문을 쏟아 내는 재균. 그런 그의 질문에 재영은 귀찮아하면서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에게 짤막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아! 맞아. 너 그 최종 보상으로 죽창 가져갔잖아. 그거 설마 진짜로 받았어?”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에 도깨비에게서 죽창을 받아 간 재영. 그로 인해 커뮤니티는 한바탕 난리가 난 유저들로 어지러운 상태였다.
-저게 뭐여? 죽창 아니여?
-설마 저거 그 능력치 그대로 가져가는 건 아니겠지?
-ㅋㅋㅋㅋㅋㅋ. 그럼 개사기잖아.
-그 어떤 보스몹도 한 방! 그거시 죽창의 힘이지.
-그걸 게임사가 그냥 두고 볼 리가 있냐? 딱 봐도 능력치 조정 가겠지.
저 죽창이 게임 내 최강 아이템으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냐, 그저 기념품 같은 느낌의 아이템이 될 것이냐는 이야기로 분분한 상황. 그렇기에 재균 역시 엄청나게 긴장한 얼굴로 재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 그거?”
침까지 꿀꺽 삼키며 그 대답을 기다리는 재균. 그런 그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재영은 한참 동안 시간을 끌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안 알랴 줌.”
“뭐……? 야! 그런 게 어딨어!”
기대한 바가 아닌 싱거운 대답에 재균이 항의했지만, 재영은 대수롭지 않게 그의 반응을 무시했다.
‘어차피 사람들에게 알려 줘 봤자 좋은 건 아니니까…….’
아르카디아의 사장이 직접 나서서 요청한 사안. 그녀와의 협상에서 재영이 선택한 방법은 첫 번째 방법이었다.
“좋아요. 현재 아이템의 성능을 그대로 유지하되, 단 한 번, 그 어떤 대상이든 한 개체를 죽이게 되면 그 즉시 덱스 님께서 가지고 있는 그 죽창은 영구히 소멸합니다.”
[아이템 조정에 관한 양자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아이템, ‘죽창’이 일회성 아이템으로 변경됩니다.] [보상으로 1,000,000의 개연성을 획득합니다.] [플레이어님을 대상으로 한 악의적인 패치에 대한 완전한 면책권이 부여됩니다.] [10,000골드를 획득합니다.]현금으로 10억에 달하는 수준의 막대한 골드와 그를 대상으로 한 저격 패치의 면제. 거기에 엄청난 양의 개연성까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조건들이기에 수락했지만, 선뜻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미연 사장은 그에게 하나를 더 건네주었다.
“이게 뭐죠……?”
“뭐든 곤란한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최대한 도와주죠.”
현실의 연락처로 보이는 번호가 적혀 있는 종이를 건네며 싱긋 웃는 그녀.
이 순간 재영은 몰랐다. 재영의 앞에 앉아 있는 그녀는.
그가 상상하는 그 어떤 권력도 감히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