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69
69화 루시드 드림 (2)
가상현실 통합 제작 시스템, 루시드 드림(Lucid Dream).
그것은 아르카디아의 접속기인 드리머(Dreamer)와 매우 흡사하게 생긴 외양의 기기였다.
“이건 정확히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기기인가요?”
신기하다는 눈으로 기기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재영과 재균. 흥미를 보이는 둘의 모습을 보며 부스의 담당자는 반색하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음…… 그러니까 뇌에서 보내는 신호를 인식하고 그걸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신호로 변환해 주는 번역기라고 보면 되는데, 쉽게 말하자면 인간의 상상력을 가상에 구현시켜 주는 기계예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듯한 직원. 그의 말을 듣고도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감이 안 잡히는지 재균과 재영은 얼굴에 물음표를 띤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부스 직원은 이 둘의 낌새를 눈치챘는지 잠깐 더 고민하더니 물어 왔다.
“음…… 학생들, 혹시 아르카디아를 플레이 해 본 적 있나요?”
“당연하죠.”
끄덕.
아르카디아를 해 봤다는 말에 직원은 그럼 이야기가 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기계가 바로 아르카디아를 구현해 주는 도구라고 보시면 돼요.”
“예……? 정말이요?”
깜짝 놀라는 재균의 표정을 보고는 자신이 기대하던 상황이라는 듯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이어 나가는 직원. 그는 몇 가지 이미지들을 보여 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는 사람들의 상상 속 이야기들을 표현하는 방식이 제한되었죠. 소설가는 글이라는 텍스트를 통해서 그 상상력을 풀어냈고, 화가는 그림을 통해, 또 영화감독들은 영상을 통해 자신이 상상하는 것들을 이 세상에 풀어냈죠.”
아무리 좋은 상상력을 가진 이들이더라도 이를 세상에 풀어낼 능력이 없으면 그저 허상 속에서 사라지고 마는 이야기들. 그렇기에 오직 극소수만이 자신의 상상 속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이 과거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 루시드 드림을 통해서 그 누구든 자신이 상상한 것들을 자유롭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게 되었죠. 그 어떤 것이든, 상상 속에서 구현해 낸 것을 가상 속 데이터로 변환해 저장할 수 있거든요. 한번 예시를 볼까요?”
그 말과 함께 실행되는 하나의 영상. 그것은 광활한 우주 속의 장면을 비추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아름다운 모습. 하지만 그 아무것도 없는 빈 우주에 갑자기 수많은 우주 함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면에 나타나는 상반되는 두 명의 인물. 이들은 제각각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모조리 처단하라! 제국의 반역자들을!] [죽음을 각오하고 항전하라! 우리의 자유를 위해!]그 말과 함께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두 진영. 우주 전함에서 쏟아져 나오는 주포와 광자포. 그리고 소형 전투선들의 난전과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들. 보기만 해도 손에 땀이 쥐일 정도로 흥미진진한 상황들이 연출되었다.
[콰콰쾅. 콰앙.]마지막에 모함으로 보이는 거대 함선이 빛나는 섬광으로 화해 폭파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영상. 단 한순간도 눈을 돌리지 않고 영상을 관람한 재균과 재영은 어느새 15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와…… 이거 뭐예요? 진짜 영상미가 장난이 아니네요.”
보기만 해도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었을 것 같은 치열한 우주 전쟁의 장면을 완벽하게 연출해 낸 영상. 거기에 처음 보는 배우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비장한 연기는, 그 누가 보더라도 푹 빠질 수밖에 없는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재균의 물음에 직원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놀라시겠지만, 이건 단 한 사람의 제작자가 만든 작품이에요.”
“뭐, 뭐라고요? 진짜요?”
직원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치는 재균. 하지만 그는 부스 앞에 전시되어 있는 기기를 탁탁 두드리며 이야기했다.
“아까 말씀드렸죠? 인간이 가진 무한한 상상력,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해 줄 수 있는 이 루시드 드림을 통해서 이제 우리는 현실적 제약에 부딪혀 좌절할 필요가 없게 되었어요. 그 어떤 인물도, 그 어떤 배경도, 그 어떤 이야기도 이 기계를 통해서 구현하고 만들 수 있게 되었죠. 방금 보여 드린 영상은…… 우리 아르카디아의 디자이너 팀 직원이 개인적인 프로젝트 삼아서 만든 작품이에요.”
그 말에 재영과 재균은 처음으로 부스 앞에 놓인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가상현실 통합 제작 시스템, 루시드 드림-
(아르카디아 디자인&제작 부서)
아르카디아에서 담당하고 있는 부스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재균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담당 직원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우와! 이렇게 아르카디아를 구현하는 거였군요. 진짜 대단하네요.”
“그렇죠?”
재균과 마찬가지로 재영 역시 놀란 눈으로 앞에 있는 기기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기기. 그것을 보며 재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영화배우나 연기자는 죄다 사라지게 생겼군.’
그야말로 영화 산업 자체를 완전히 잡아먹을 수도 있을 무지막지한 기술이었다.
연기자도, 촬영진이나 연출진도, 촬영 설비나 장비조차도, 그 어느 하나 필요 없이 그저 한 사람의 상상력을 통해 그 어떤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든 초월해 자신이 원하는 배경 속에서 상상 그대로의 인물들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야기.
그야말로 영화감독과 작가들에게는 꿈만 같은 상황이 아니겠는가?
“이거 혹시 판매하는 제품인가요? 들어 본 적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요.”
루시드 드림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가지는 재균. 하지만 직원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했다.
“아직 판매는 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게, 가상현실 관련 법안이 아직 없다 보니까 제품 출시에 관한 허가도 받지 못한 상태거든요. 현재는 아르카디아의 개발 관련 업무를 할 때만 일시적으로 사용하고는 있지만, 수년 내로 법안이 만들어지게 된다면 그때는 혹시 모르죠?”
“으음…… 그것참 아쉽네요.”
미국에서조차 공화당 측이 내놓았던 ‘가상현실법’이 무산됨에 따라 정식 출시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루시드 드림. 하지만 이 기기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벌써부터 눈치챈 이들은 물밑에서 법안 통과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에 생각보다 이 기기를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생각보다 인간의 상상력이 그렇게 깊지 않거든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음…… 이건 직접 보는 게 좋을 거예요. 거기 학생이 한번 기기 안에 들어가 보시겠어요?”
재영에게 루시드 드림을 체험해 보라고 권유하는 직원. 그 말에 재영은 잠깐 주저하다 천천히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아르카디아랑 비슷한 구조니까 긴장하지 마시고요. 안에서 안내음이 들리면 한번 하라는 대로 상상해 보세요.”
위이잉.
캡슐의 뚜껑이 닫히고 난 후, 재영의 귓가에 이상한 고주파의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청명한 안내음이 시작되었다.
[제작자님의 뇌파를 인식 중입니다.] [정확한 조율을 위해 언급되는 것들을 상상하십시오. 소…… 말…… 양…… 개…….]온갖 동물을 나열하는 안내음. 재영은 최대한 그것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또 상상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동물을 상상했을까? 갑자기 완료되었다는 안내음이 들려왔다.
[뇌파 조율 완료. 제작자님의 전자신호를 인식합니다.] [제작 공간을 구현합니다.]그 말과 함께 재영의 주변이 뒤바뀌었다.
“이건…….”
완전히 새하얀 공간.
어디가 끝인지도 분간이 안 되는 이 백색의 공간 속에서 또다시 안내음이 들려왔다.
[원하는 배경을 구현해 주십시오.]배경을 구현하라는 지시. 그러자 재영은 초록빛 들판을 상상했다.
쿠구구구궁.
그와 동시에 백색의 공간 이곳저곳에 돋아나는 풀잎들. 어느새 재영의 주변에는 초록빛의 생동감 넘치는 풀들이 곳곳에 피어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되는 거구나…….”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현실감 없는 풀들. 거기에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데다 풀들도 죄다 비슷한 형태로, 자연스러움보다는 이질감이 확연히 느껴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구나…….”
풀이 피어 있는 들판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오감.
시각, 후각, 촉각, 청각 그리고 미각까지.
단순히 보이는 것을 넘어서 들판이라는 배경 하나에 구현해야 하는 요소가 너무나도 많았기에 재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하…… 이게 아닌데…….”
인물 하나를 구현해 낸 재영. 하지만 원래 생각하던 외모가 아니었는지 계속해서 자신의 창조물(?)의 얼굴을 이리저리 바꿔 대고 있었지만, 점점 기괴해지는 것을 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 안 해. 포기다, 포기.”
딱히 구상하고 싶은 것도 없었기에 금방 질리게 된 재영은 이내 시스템을 종료했다.
[제작 시스템을 종료하시겠습니까?] [현재까지의 작업물을 저장합니다.]위이이잉.
시스템이 종료되고 캡슐 뚜껑이 열리자 재영은 엄청난 피로감을 느끼며 현기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으…… 머리야.”
마치 누군가 세게 한 대 친 것 같은 띵한 느낌이 몰려온 재영. 그런 그를 보며 직원은 다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게 생각보다 정신력을 많이 소모하는 작업이라서 장시간 사용하거나 무리한 경우에는 약간의 현기증이 동반될 수 있어요. 조금 쉬고 있으면 괜찮을 거예요.”
생수를 하나 건네는 직원. 그가 건네는 물을 받아 들고 단숨에 들이켜는 재영을 보며 재균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어 왔다.
“어땠어? 재밌어?”
“……생각보다 어려워.”
“진짜? 모니터에서 보고 있었는데, 들판에 사람 하나 만들고 있던데. 많이 어려워?”
캡슐 밖에 설치된 모니터로 그의 시연 영상을 모두 보고 있었던 재균. 그의 물음에 재영은 솔직한 감상을 말해 주었다.
“대충 구현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현실과 비슷한 수준으로 구현하려면 상상하고 설정해 두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아.”
그저 무생물 하나하나에도 쏟아부어야 할 상상력이 너무 많으니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의 모습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상상력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재영. 그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지 직원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이 맞아요. 이 기기가 생각한 것보다 다루기 어려워요. 아르카디아를 개발하는 디자인 팀에서도 이걸 전담해서 구현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을 정도로, 상상력은 철저히 재능의 영역이에요. 일반인들의 상상력으로는 효율성도 떨어질뿐더러 어디 보여 주기에는 너무 조잡한 수준의 작품만이 만들어지거든요.”
그 어떤 능력보다 상상력이 제일 중요시 되는 기계. 재영이 루시드 드림이 상용화되면 앞으로 상상력 역시 중요한 평가 지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재균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직원에게 물어봤다.
“저도 한번 해 봐도 돼요?”
꼭 한번 체험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재균. 그의 과한 눈빛에 직원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요.”
직원의 허락에 신이 난 듯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으며 루시드 드림 안으로 들어간 재균. 그는 재영과 비슷한 절차를 시작하고 난 후에 새하얀 백색의 공간에 들어섰다.
“자, 아까 저 친구가 봤던 것처럼 학생도 한번 잘 지켜보세요, 얼마나 많은 걸 상상력으로 구현해 낼 수 있는지.”
모니터에 비친 재균의 모습. 그는 연신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백색의 공간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보통 배경 정도만 만들고 나면 피곤하다는 사람이 많은데, 과연 이 친구는…… 어라?”
갑자기 모니터에서 급변하는 배경. 그것을 본 직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키에에에에엑.] [두두두두두. 당장 피해!] [젠장, 이 빌어먹을 놈들이 너무 많아!]순식간에 폐허가 된 도시 한복판으로 바뀐 배경. 그 안에서는 몇 명의 인원이 주변에 몰려드는 괴수들과 치열한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뭐, 뭐야, 이거?”
누군지 이름조차 모를 등장인물들. 그들이 절박한 표정을 지으며 험악한 괴수들과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치르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의 연속. 그것을 바라보던 직원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크아아아아아!] [젠장…… 우린 끝났군…….]마지막에 빌딩 크기의 최종 보스로 보이는 것 같은 거대 괴물이 등장하고 포효하고, 전의를 상실한 이들의 절망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까지. 그것을 보며 완전히 충격으로 얼어붙은 직원의 모습을 보며 재영은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홀로 지내며 학교에서 쓸쓸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가던 재균.
20년간 열심히 갈고닦았던 그의 재능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