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75
75화 베타 테스터
자본주의의 괴물이 되어 버린 미하일 남작.
과거의 그 순박함과 영지의 번성을 위해 매일같이 고민하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그저 노예 계약을 통해 잡아들인 모험가들을 착취하는 그의 얼굴에는 탐욕만이 가득했다.
“자네 말대로 파곤산의 광산들에서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철광석들 덕분에 영지의 경제 사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윤택해졌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여러 상단에서 골드 보따리를 싸 들고 매일같이 우리 영지의 문을 두드리지.”
한쪽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철광석들. 대륙 곳곳에서 찾아온 것 같은 상단의 무리. 제각각 다른 문양으로 새겨져 있는 상단의 무리는 이곳저곳에서 철광석을 자신들의 짐마차에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규모를 보니 단순히 모험가 몇 명 꾀어낸 걸로는 안 될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산출량을 상징하는 듯 저장고에 잔뜩 쌓아 올려져 있는 철광석의 산. 그것을 보며 재영이 의구심 가득한 얼굴로 묻자 미하일 남작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 말에 영감을 받았지. 우리 영지를 지탱하는 건 어디까지나 대장장이를 하겠다고 달려드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라 마스터급의 진짜 장인들이 만드는 작품들이란 사실. 그들을 제외한 놈들은 결국 철광석이나 허비하며 쓰레기나 만드는 놈들에 불과하다는 말이지.”
“그 말씀은…….”
“자기 밥벌이도 못 하는 녀석들이 절대 낼 수 없는 액수의 세금을 물리고, 세금을 면제받고 싶으면 철광석을 캐는 데 일조하라고 하니 자기가 알아서 곡괭이를 들고 찾아오지 뭔가? 그놈들 덕분에 철광석 가격도 안정화되고, 장인들이 운영하는 공방들도 경쟁자가 사라져서 그런지 더더욱 좋아하더군.”
경쟁자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장인 공방을 위한 철광석 생산을 위해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미하일 남작의 수완은 놀랍게도 꽤 효과적이었다.
“안 그래도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마스터급 장인들의 공방이 우리 영지로 이주해 오는 것에 대해 의견을 타진해 오고 있네. 전부는 아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자들로 선별해서 모두 끌어올 생각이네.”
실력 있는 장인들에게 온갖 혜택을 몰아주고, 거대 상단들의 편의를 봐주며 경제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지고 있는 영지. 물론 엄청난 세금의 늪에 허덕이며 도망도 가지 못한 채 꼼짝없이 철광석을 캐는 노예로 전락한 이들의 피눈물 속에서 이루어진 풍요였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영주님,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었군요.”
이익만을 추구하며 피도 눈물도 없이 뽑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뽑아내겠다는 저 집념. 거기에 영주민들의 이주와 직업 선택의 자유마저 자신에게 있다며 마음대로 그들에 대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는 저 봉건적 사고가 합쳐지자, 무시무시한 괴물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뭐가 문제인가? 자네가 말하지 않았었나?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가치 없는 일을 하는 자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일하는 척하는 놈들을 조져야 한다’. 나는 자네가 나에게 해 준 조언대로 영지를 운영하는 중이네. ”
과거 노동자들의 봉기가 일어나게 된 것이 저 초기 자본주의 시대가 만들어 낸 참극 때문이 아닌가? 듣기만 해도 혁명이 마려워지는 그의 사상. 하지만 탄은 열심히 미하일 남작의 이야기를 어딘가에 받아 적으며 재영을 긁었다.
“크으. 이건 악마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주옥같은 소리들이구만? 그래, 착취라는 게 바로 저런 거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천천히 빠져들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 저렇게 해야 인간을 타락시킬 수 있지.”
뭘 그렇게 큰 감명을 받는지 혼자서 중얼거리며 연신 빠르게 무엇을 받아 적는 탄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진 재영은 연신 헛기침을 하며 대화의 주제를 빠르게 돌렸다.
“일단, 제가 여기에 온 목적부터 처리하고 싶군요.”
재영이 미하일 남작의 영지에 다시 돌아온 목적. 그것은 파곤 광산에 있다고 추정되는 의문의 예비 조력자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런 재영의 요청에 미하일 남작은 살짝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흔쾌히 그의 요청을 수락했다.
“이미 광산 측에는 사람을 보내 일러 두었네. 잠깐이지만 자네가 요청하면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을 하나하나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네.”
“고맙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왕 영지에 들렀으니 한동안 머물다 갔으면 좋겠군. 조만간 다시 보지.”
그러면서 무언가 다른 할 일이 있는지 시종의 시중을 받으며 어딘가로 떠나는 미하일 남작. 이전에도 조금은 후덕했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비대해진 그는 몸을 이끌고 뒤뚱거리며 어딘가로 떠나갔다. 그리고 탄은 미하일 남작이 떠나가자마자 다급한 목소리로 재영에게 연신 말을 걸었다.
“야, 주인. 혹시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그런 조언들을 한 거였어? 도대체 일하지 않는 새끼는 먹지도 말라는 이런 비인간적이고 악마적인 사악한 발상은 어떻게 하게 된 거야? 응? 야, 주인. 말 좀 해 봐.”
악마보다 더한 인간. 멀쩡한 인간을 밑바닥까지 타락시키는 악의 근원.
졸지에 그런 취급을 받게 된 재영은 보고야 말았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자신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엘의 눈초리를 말이다.
* * *
까앙. 까앙.
이곳저곳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곡괭이 소리. 재영은 파곤 광산에 들어오고 나서 이전과는 너무 달라진 모습에 충격을 받고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빨리빨리 움직이지 못해? 오늘 할당량 못 채우면 저녁은 없을 줄 알아!”
“아파? 아프면 뭐 어떻게 하라고? 약이라도 줄까? 채찍 치료 나가신다, 이 자식아!”
“어이, 거기 꼬맹이! 어리다고 내가 봐줄 것 같냐? 넌 내가 특별히 감시한다. 일 똑바로 해.”
발에 쇠고랑을 찬 채 거의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고 곡괭이질을 하는 수많은 광부. 그들은 하나같이 죽어 가는 표정을 한 채 묵묵히 곡괭이만 휘두르고 있었다.
“와…….”
재영이 이곳을 보며 느낀 것은 그저 범죄의 현장이었다. 중세의 봉건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처럼 용인되겠지만, 현대사회의 문물을 누리고 있는 일반적인 민주 시민의 관념으로는 현실에서 이랬다가는 당장 쇠고랑을 차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고, 그런 환경에서 벌어지는 가혹한 노동. 노예들의 생활상이 어떠냐며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재영은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을 보여 주고 싶을 정도였다.
“아동 노동에 병자 착취에 노예 운용까지…… 아주 영혼 끝까지 뽑아 먹는구먼…….”
이곳이 바로 지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혹한 노동 환경. 아직 10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끙끙거리며 자기 몸만 한 수레를 끌고 가는 것을 보면 절로 혁명이 마려워졌다. 그리고 그때, 어딘가에서 나타난 한 중년의 사내가 재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크헤헤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 광산의 책임자, 샤일록이라고 합니다.”
샤일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허리를 연신 굽신거리며 나타난 비교적 호화로운 의상의 사내. 그는 덱스를 보자마자 다가와 손을 비비며 주저리주저리 광산을 안내해 주었다.
“덱스 님께서 알려 주신 방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광산의 산출량을 그 어느 때보다도 극대화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양의 철광석을 캐내는 광산은 아마 대륙 역사상 우리의 광산이 최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마치 자랑스럽다는 듯이 이 노동 착취의 온상지를 그에게 내보이는 샤일록. 그의 말에 재영은 조금이라도 반박을 하고 싶어졌다.
“아니, 제 덕분이 아니라 이건 그저 니들이 너무 비인간적으로 부려 먹어서…….”
“저 역시 노동자들은 언제나 쥐어짜야 하는 존재들이라는 덱스 님의 말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이 정도로 쥐어짜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짜 보니까, 숨겨져 있던 물이 더 나오더군요! 역시 그 혜안은 대단하십니다!”
“아니, 도대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다음 달에 덱스 님의 이름과 주옥같은 명언들을 새겨 넣은 기념비를 광산 입구에 설치하는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덱스 님의 경영관과 인사 관리에 관한 모든 것을 앞으로도 후대의 모든 관리관이 가슴속 깊이 새겨 두고 그 뜻을 실천하도록 할 것입니다!”
“…….”
자신이 이런 악덕 범죄의 근원이라는 증거물을 영구 박제하겠다고 나서는 샤일록.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그때. 재영은 저 멀리에서 곡괭이질을 하는 이의 머리 위에 나타나 있는 표식을 발견했다. 안젤리나의 머리 위에서 보았던 그 적나라한 표시. 그것을 보며 재영은 샤일록에게 물었다.
“저기, 저 사람은 누구죠?”
쇠고랑을 찬 채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는 10대 중반의 소년. 그의 주변에는 유독 험악한 인상의 경비병 여럿이 모여 있었다.
“아, 우리의 공식 노예 1호를 말씀하시는군요.”
“공식 노예 1호요……?”
“우리 광산에서 일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고 감히 다른 영지로 도망을 쳤다가 다시 붙잡혀 온 최초의 모험가입니다. 본보기로 삼아서 그 어떤 모험가보다도 열심히 굴리는 중이죠.”
모험가라는 말에 유심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 재영. 그리고 그가 그 어떤 광부보다도 더 빠르게 철광석을 캐내는 모습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저 정도 속도면…… 최소 5랭크 이상인데…….’
채광을 직접 해 본 경험이 있는 재영. 그렇기에 그는 저 숙련된 움직임만 보고서도 평범한 광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곡괭이가 내려찍을 때마다 이곳저곳에 떨어지는 철광석의 양이 다른 광부들보다 배 이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저자와 이야기를 한번 해 볼 수 있을까요?”
“저 자식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부려 먹을…… 예? 왜 그러시는지…….”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는 재영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 샤일록. 하지만 흥미롭다는 눈으로 계속해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재영은 그의 물음에 답을 주지 않았다.
“어이, 노예 1호. 잠깐 휴식이다! 이리로 와!”
휴식.
그 말에 움찔하며 곡괭이를 멈추는 소년. 그는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된 얼굴을 돌려 자신을 부른 샤일록과 그 옆에 서 있는 재영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쇠고랑을 찬 발걸음을 옮기며 다가왔다.
“관리관님, 무슨 일이신지…….”
아르카디아를 플레이 하는 유저.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광산의 노예로 붙들린 채 매일같이 끝도 없는 채광에 매진하는 그. 아마 일반적인 유저라면 일찌감치 게임을 접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왜 그 안에서 매일같이 노예의 삶을 자처하는지 궁금했기에 재영은 이를 드러내며 환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나랑 이야기 좀 하지 않을래?”
“누구……?”
갑자기 자신과 대화를 원하는 유저의 등장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소년. 그런 그에게 재영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너에게 자유를 선사할 사람.”
* * *
헬븐 광산의 최초의 노예.
전속 계약이라는 이름의 노예 계약을 맺고 끝이 보이지 않는 채굴 노예로 전락해 버린 이는 바로 15살의 이중식이라는 소년이었다.
이제 막 중학교 2학년이 된 그. 우연한 계기로 전 세계에서 최초로 아르카디아에 접속해 플레이 하게 되어 베타 테스터라는 영광을 누리게 된 그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가상현실에 빠져들었다.
“나는 대장장이를 할 거야…….”
언제나 생산직에 로망을 가지고 있던 그.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미하일 남작의 영지에 정착해 학교 갔다 오면 거의 모든 시간을 아르카디아에 할애하는 일상을 반복하곤 했다.
“오늘부터 광산을 이용하려면 이용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싫으면 전속 계약을 맺어야 하지. 넌 어떻게 할 생각이냐?”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변화. 그리고 그때 어수룩한 중학생 이중식이 한 선택은 그의 가상현실 인생을 완전히 꼬이게 만들었다.
“네놈은 앞으로 우리 광산의 광부로서 오랜 시간 동안 일해야 할 것이다.”
그저 채광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한 중식. 하지만 그렇다고 그 게임을 접을 수는 없었다.
“야, 우냐? 울어? 이 새끼 우네?”
“크크…… 야, 누가 영상 찍어 봐.”
학교라는 지옥에서,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그래도 무언가를 성취하고 이룰 수 있는 세상. 가상현실은 그에게 안식을 가져다주는 도피처였기 때문에 중식은 언젠가는 자유를 되찾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만을 품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채굴에 매진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사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는 그의 말에 중식은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알 수 없는 열망을 느꼈다.
“너에게 자유를 선사할 사람.”
가상현실, 아르카디아의 첫 번째 유저이자 유일한 베타 테스터, 나는야똥손.
그의 파란만장한 가상현실 속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