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나도 스트리머 할래 (2)
영희와 브루스.
이 둘은 슬라임 사냥터로 가는 와중에도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만담을 주고받았다. 개인적인 인터뷰부터 시작해서 농담이나 개인적인 플레이 팁과 같은 공략들까지. 대화의 주제는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지만, 이야기의 목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하하. 제가 그렇게 해서 던전 클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 레어 아이템을 먹게 되었죠…….”
몬스터의 뼈로 만들어진 것 같은 커다란 방패. 성능이 꽤 좋은 녀석인지 방패를 손으로 두드리는 브루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한가득 드러났다.
“우와……. 역시 대단하셔! 랭커는 역시 달라달라!”
“에이, 아닙니다. 저보다도 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 정도면 그냥 이름만 조금 알려진 정도죠. 그리고 아마 제 인지도는 영희 님보다도 낮을걸요?”
“어머, 아니에요. 저도 시청자 수 얼마 안 되는걸요? 이제 한 4천 명 정도 보나?”
구독자 수 50만. 실시간 시청자 수도 5천을 향해 달려가는 영희의 채널.
“에이, 그 정도면 많은 거죠. 거기다 영희 님 외모면 이러다가 아예 CF까지 찍게 되는 거 아니에요?”
“에에, 그럴 리가요.”
“아뇨, 정말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마치 말이라도 맞춰 둔 것처럼 은근히 서로를 띄어 주며 겸양을 떨고 있는 두 사람. 서로를 치켜세워 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탄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오! 주인, 저 연놈들은 도대체 뭐야? 그냥 죽이면 안 돼?”
“뭐야? 또 왜 발작해?”
“넌 저 상황을 보면서도 안 빡치냐? 어디 밑바닥에 굴러다니는 마물 수준도 안 되는 것들이 서로 잘났네 말았네 하면서 물고 빨고 난리가 났는데?”
탄의 입장에서는 발톱의 때만도 못한 존재들. 그런데 저들이 희희낙락하며 서로 은근히 잘난 척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치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듯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주인! 저것들 그냥 죽이면 안 돼? 응? 전에 많이 했었잖아?”
하지만 재영은 탄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굳게 입을 다문 채 저 둘의 뒤를 따라가고 있을 뿐.
“아. 초코파이 님, 죄송해요, 저희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만 했네요.”
“아니요. 그냥 이야기 계속하셔도 돼요.”
재영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영희.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지만, 재영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철벽을 쳤다.
“어…… 혹시 초코파이 님은 슬라임 잡아 보셨나요? 레벨이…… 52네요?”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차가운 반응에 당황한 듯 영희는 재빨리 대화의 주제를 돌렸지만, 파티원의 상세 내용에서 재영의 레벨을 파악한 후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러시죠?”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으며 또다시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영희. 하지만 재영은 스쳐 지나간, 그녀의 표정에 순간 드러난 감정을 확실하게 보았다. 마치 모든 것이 계획대로라는 듯한 미소를 말이다.
* * *
‘레벨이 52 정도면 나쁘지 않겠네…….’
아르팬디아에 여러 가지 콘텐츠로 영상을 올리는 영희. 그녀는 최근 찍은 영상 콘텐츠 때문에 의도치 않은 논란에 휩싸여 여러모로 곤란한 처지였다.
[으아아아아! 살려 줘요.] [꺄아아악! 미안해요!]길을 가다가 만난 유저와 함께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콘텐츠. 그때 영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수룩한 초보 유저 하나를 데리고 거미 동굴에 사냥하러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각지도 않게 만난 보스 몬스터, 거대 여왕 거미. 그녀로서는 절대 상대가 불가능한 강적이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따라온 초보 유저를 희생양으로 삼고 도망쳐 버렸다.
-와……. 이건 좀.
-사실 사냥하다가 도망칠 시간 벌어 줄 미끼가 필요했던 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리고 바로 빤스런 하는 거 실화?
-사탄도 한 수 접어 갈 비매너 플레이 인정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한 행동. 하지만 그 모습이 모두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에게 공개되었기에 영희의 이미지에는 심각한 타격이 왔다. 자기와의 계약을 위해 물밑 접촉을 하던 매니지먼트가 우려를 표할 정도로 말이다.
“계약 직전에 이런 식으로 이미지가 손상되는 건 곤란합니다. 만약 영희 님이 저희 소속사의 일원이 되면 영희 님의 이미지가 곧 저희 ‘지엠 엔터테인먼트’의 이미지입니다. 이번 일로 실추된 이미지를 다시 복구하지 못한다면 소속사 입장에서는 이 이상의 계약 진행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최근 아르카디아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관련 사업을 문어발처럼 확장하고 있는 지엠 그룹. 특히 영상의 편집과 저작권 문제 그리고 여러 잡다한 문제들을 대신 처리해 주면서 지엠 엔터테인먼트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유명한 랭커나 성장 잠재력이 뛰어난 유저들을 계약금을 제시하며 영입하고 있었다.
영희 역시 그런 지엠 그룹의 영입 리스트에 올라 있던 상태. 엄청난 액수의 계약금을 받기로 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이었지만, 빤스런 사건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게 될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하죠……?”
계약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울상이 된 영희. 그런 그에게 소속사 직원은 하나의 제안을 했다.
“저희가 생각해 놓은 이미지 복구 방안이 있기는 한데……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정말요? 어떻게요……?”
“일단…….”
소속사가 제안한 방법. 그것은 바로 그때와 흡사한 상황을 연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비슷하게 어수룩해 보이는 유저를 데리고 사냥하다가 죽을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만들라고요?”
“그렇죠. 그 대신 이전과는 다르게 끝까지 책임지고 그 유저를 보호하며 성공적으로 사냥을 마무리하는 식으로 영상을 만드는 겁니다. 시청자들은 이전과 달라진 영희 님의 모습을 보면서 불만이 꽤 가라앉을 것이고, 이미지 역시 다시 회복될 겁니다.”
그러면서 소속사 직원은 그녀에게 종이 하나를 꺼내 주었다.
“저희가 구상한 시나리오입니다. 최대한 숙지하시고 이와 비슷하게 움직여 주세요.”
철저하게 계획된 각본. 그 안에는 여러 가지 멘트와 상황이 적혀 있었는데, 영희는 사냥을 하러 갈 사냥터가 어디인지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슬라임 서식지요……? 여기는 저 혼자로는 무리예요!”
권장 레벨 80~110의 사냥터, 슬라임 서식지.
이곳은 사냥을 시작하면 주변의 모든 슬라임이 몰려들어 공격하기 때문에 절대 소수의 파티로는 공략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레벨 100을 이제 막 넘은 영희. 슬라임의 무리를 손쉽게 상대할 정도의 능력치는 아니었기에 난색을 보였지만, 소속사 직원은 괜찮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 찍을 영상에 저희 쪽 사람을 한 명 붙여 줄 테니까요. 그분이랑 같이 방송을 진행하시면 큰 문제 없이 계획대로 흘러갈 겁니다.”
지엠 엔터테인먼트에서 붙여 준 랭킹 34위의 브루스. 그와 함께 철저하게 기획된 각본대로 움직이면서, 영희는 묘한 눈빛으로 뒤에서 무심하게 따라오는 유저를 힐끗 바라보았다.
“…….”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유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단답으로 쳐 내며 철통 방어를 하고 있기에 영희로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방송 분량을 뽑아낼 수 없었다.
‘하아……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일말의 쇼맨십도 보여 주지 않는 초코파이조아. 친밀해지기 위한 시도를 여러 번 해 본 끝에 영희는 그와 이야기를 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볼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뀨우우웅.”
“뀨우우웅 뀨우!”
“뀨우 뀨우!”
어느새 과거 초보자 마을이었던 영역. 이제는 슬라임이 가득한 서식지가 되어 버린 그곳에 도착한 세 명은 그 방대한 벌판에 가득 차서 통통거리며 뛰놀고 있는 슬라임들을 보며 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다.
‘아, 진짜 슬라임 더럽게 많네. 후…… 귀찮다.’
‘이번 영상만 제대로 찍으면…… 나도 성공할 수 있어.’
‘그때나 지금이나 저놈들 귀여운 건 여전하네.’
각자만의 생각에 잠깐이나마 침묵에 빠진 파티. 그리고 그 잠깐의 침묵을 깬 것은 영희였다.
“흠흠…… 자!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랭킹 34위의 브루스 님과 레벨 52의 초코파이조아 님과 함께하는 슬라임 사냥! 바로 시작합니다!”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영희는 슬라임 서식지에 첫발을 내디뎠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 * *
슬라임.
미끌미끌한 젤리 같은 외형의 초록빛을 띠는 몬스터.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아르카디아에서 가장 사랑받고 또 인지도가 높은 녀석이었다.
“뀨우우우웅.”
초롱초롱한 눈에 통통 뛰어다니며 내는 귀여운 울음소리. 과거 초보자들의 동네북인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 슬라임들은 그 어떤 유저도 쉽사리 상대할 수 없는 강자로서 아르카디아의 최상급 몬스터로 군림하고 있었다.
“초코파이 님, 위험해요! 파이어 버스터!”
콰아아앙.
“뀨우우우우웅.”
영희가 날린 화염 속성 마법. 4서클 마법의 위력을 정통으로 맞고 버틸 수 없었는지, 그 마법에 휩쓸린 여섯 마리의 슬라임이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회색빛으로 쓰러졌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아이템, 슬라임의 방울을 획득하였습니다.]“하아…… 하아…….”
마나 소진이 극심한지, 바닥에 주저앉아 연신 거친 숨을 내쉬며 마나 포션을 들이마시는 영희. 하지만 그런 그녀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주변을 통통 뛰어다니는 슬라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토옹 토옹.
“뀨우우! 뀨뀨!”
“뀨우우우웅!”
마치 ‘나의 소중한 동료를 죽인 악당들을 용서치 않겠다!’라는 듯한 느낌의 묘한 울음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슬라임들. 그것을 보며 영희는 질색한 얼굴로 브루스에게 소리쳤다.
“저 잠깐만 쉴게요……. 마나 회복이 덜 돼서…….”
“걱정하지 마세요. 이 정도는 저 혼자로도 충분해요.”
스걱.
“뀨우우우웅…….”
레벨 130대의 브루스. 비싼 레어 아이템들로 치장된 그의 능력치는 수십 마리의 슬라임이 떼거지로 몰려와도 부담 없이 처리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렇기에 그가 어그로를 끌고 있는 동안 영희는 부담 없이 마나 회복에 전념할 수 있었다.
“초코파이 님, 어디 가지 말고 제 뒤에 꼭 붙어 있으세요.”
마치 어떤 위험이 닥쳐도 당신만큼은 무조건 지켜 주겠다는 듯한 각오가 담긴 결연한 얼굴. 그녀의 말에 재영은 황당한 나머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간간이 한두 마리씩 둘에게 접근하는 슬라임들을 처치하며 재영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을 계속해서 연출했다.
-와, 역시 랭커는 랭커다 이건가?
-슬라임 20마리가 집단으로 공격하는데도 체력이 별로 안 떨어지네
-장비빨, 레벨빨도 있긴 한데, 컨트롤도 꽤 준수한걸?
-영희도 이번에는 도망 안 치고 잘 싸우네.
-그러게. 저번이랑은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ㅋㅋㅋㅋㅋㅋ. 욕을 그렇게 먹었으니까 반성을 하긴 했겠지.
긍정적인 반응을 쏟아 내는 시청자들. 그런 그들의 반응에 영희는 속으로 쾌재를 지르며 소리쳤다.
‘됐다! 성공이야! 성공!’
슬라임의 공격 타이밍마다 방패로 대미지를 상쇄하고 검으로 급소를 찔러 들어가 하나하나 침착하게 슬라임들을 제거해 나가는 브루스. 그리고 그가 놓친 슬라임들이 재영을 공격하기 위해 다가올 때마다 마법을 날리며 그를 보조하는 영희.
그 모습을 보며 탄이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딱 그거네.”
“뭐가……?”
“몰라서 물어? 자꾸 의도적으로 슬라임들 주인 쪽으로 몰아가면서 주인 지키는 척 연출하고 있잖아. 이거 자기보다 못난 놈 데려다가 자기들 잘난 거 유세 떨려고 그러는 거야.”
“그래……?”
살짝 그런 느낌이 슬슬 들고 있는 상황. 막상 데려와 놓고 자기에게 바라는 건 하나도 없이, 그냥 가만히 서 있어도 아무 소리 안 하며 병풍 취급을 하고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것은 재영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자기가 잘생기고 예쁘다는 걸 부각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못난 애들을 데리고 다니는 인간의 본성처럼. 자신을 호구로 취급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 재영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
“뭘?”
무슨 상황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이런 상황을 연출해 자신들의 방송에 어떻게든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 재영은 둘의 장단에 춤을 추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재영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저들을 엿 먹이기 위한 여러 가지의 방안.
“탄 그리고 엘.”
“왜 불러, 주인?”
“왜 그러시죠?”
재영은 호기심 어린 얼굴의 둘을 보며 말했다.
“앞으로 나 혼자 이상한 소리 해도 미쳤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시해.”
“그게 무슨 소리야……?”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듯 무언가를 연신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고 있는 영희. 그런 그녀를 보고 재영이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참에 나도 영상이나 제대로 찍어 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