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악마 같은 천사 (1)
재영이 공개한 드워프들의 도시, 샌드 오브 포지(Sand of Forge).
역사서에나 등장하는 이 난쟁이 일족이 실존하고 또 그들만의 거대한 도시를 만들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 준 이후. 그곳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제가 봤을 때는요. 일단 파곤산맥이나 그와 비슷한 산지 부근이에요. 일단 영상에서 엄청난 철광석의 매장량 보이시죠?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방인데, 저들이 소비하는 철광석을 모두 공급할 수 있는 철광이 풍부한 매장지 인근이 분명해요.]재영의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고 의심 가는 지역을 헤집어 대기 시작한 탐험가와 모험가 클래스부터.
[제가 도서관에서 찾아본 역사 문헌인데요. 가장 최근의 기록이 엘프와 드워프 사이에서 벌어졌던 전쟁이에요. 그 기록을 살펴보면요…….]수많은 왕국과 도시에 퍼져 있는 도서관의 기록물들을 파헤치며 그들에 대한 단서들을 찾아 나선 마법사와 고고학 클래스까지. 각자 자기만의 방법을 가지고 샌드 오브 포지에 대한 정보를 파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찾아라. 우리 길드에서 먼저 드워프들의 도시를 선점한다.”
“드워프제 장비들을 거래할 가능성이 있다라…… 먼저 선점하는 상단이 무기 시장 자체를 장악해 버리겠군.”
“히든 퀘스트 많이 있겠지?”
“운 좋으면 히든 클래스를 먹을지도?”
“드워프들이 운영하는 공방에 들어가면 스킬 랭크도 금방 오르겠지.”
거대 길드나 대규모 상단 같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부터, 성공을 꿈꾸는 일개 견습 대장장이들까지. 모두가 드워프들의 숨겨진 도시를 찾아 나서기 시작하자 아르카디아 전역에 숨겨져 있던 실마리들이 하나하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드워프 말인가? 그 싹수없는 놈들은 왜?”
“드워프……? 음, 그 난쟁이 일족에 관한 서적이 아네르 영지의 기록물 보관소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흥. 드워프들에 대한 정보 말인가? 아는 바가 있기는 하지. 단, 공짜로는 안 돼.”
어느 이름 모를 작은 마을에 사는 술 취한 주정뱅이나 소규모 영지에 자리한 서점 주인, 험상궂게 생긴 도적까지. 드워프 종족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을 가지고 이곳저곳에 퍼져 있던 NPC들로부터 차츰차츰 정보가 유저들에게 흘러오기 시작했다.
[드워프에 대한 키워드 급증을 감지.] [해당 정보에 대한 노출도 42%.] [샌드 오브 포지의 노출 위험도 54%.]잘못된 정보나 소실되어 버린 정보들을 모조리 제하고도 실제 샌드 오브 포지의 위치를 특정하는 유저가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하는 상황. 그렇기에 엘리스는 (주)아르카디아의 개발진이 준비했던 퀘스트들을 모조리 저버리고 자체적인 생성 모드에 들어갔다.
[기존 퀘스트 전체 비활성화.] [실시간 퀘스트 생성 모드로 전환합니다.] [퀘스트 생성 요건을 만족한 유저 선정…… 관련 퀘스트 부여.]그렇게 엘리스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퀘스트를 받게 된 극소수의 유저들. 이들은 샌드 오브 포지를 향해 아무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르카디아의 5대 금역, 대사막 슈림을 향해서 말이다.
* * *
드워프들의 도시를 사람들이 찾아 나서며 온갖 지역을 돌아다니는 동안, 재영은 가면을 벗은 채 평화롭게 어느 한 작은 마을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흐음……. 역시 사람은 공기 좋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니까.”
미세 먼지로 뿌옇게 변해 버린 현실. 하지만 끝도 없이 우뚝 솟은 나무들이 울창한 이 아르카디아의 공기는 그야말로 청명 그 자체였다. 눈을 감은 채 연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는 재영.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다니던 중식을 떼어 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니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아…… 진짜 답답하게 하네. 야, 네가 그렇게 융통성 없이 구니까 네놈 밑의 천사들까지 전부 싹수없는 놈들이 되는 거야, 이 빌어먹을 치킨 새끼야!”
“원리 원칙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마음대로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박쥐 새끼들보다는 낫거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들이받기만 하니까 매번 우리한테 털리는 거지.”
“뭐? 이 망할 닭 날개가…… 너 말 다 했어?”
“아니, 아직 덜 했는데? 애들 관리도 똑바로 못해서 뒤통수 언제 맞을까 전전긍긍하는 것도 한심한데, 하여간 애들 싸움을 어른들 싸움으로 만들려고…….”
언제나 그랬듯 탄과 엘이 싸우는 일상을 지켜보고 있던 재영은 갑자기 파닥거리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날아오는 탄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뭐 문제라도 있어?”
“아, 주인…… 나 미안한데, 잠깐만 밑에 내려갔다 와야 할 것 같아.”
“밑……? 아아, 집에?”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밑이라 말하는 탄의 말. 그 말에 재영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상관은 없는데, 무슨 일 있어? 표정이 별로 안 좋은데.”
“아…… 그게…… 좀 복잡한 일이 있어서.”
“복잡한 일……?”
자세히 말을 하기 꺼려진다는 듯 연신 우물거리며 주저하는 탄. 하지만 그 뒤에서 쪼르르 날아온 엘이 놀리는 듯한 어조로 그를 대신해서 말해 주었다.
“밑에 있던 놈 하나가 저게 자리 비운 사이에 자기가 마왕 하겠다고 들고일어났대요.”
“야, 그 주댕이 안 닥쳐? 안 그래도 화나는데 자꾸 건드네.”
험악하게 인상을 쓰면서 소리치는 탄. 그런 그의 반응을 즐기는 듯 엘은 여유로운 자태를 뽐내며 말했다.
“빨리 가서 수습하고 와. 안 그러면 우리 쪽 애들이 너희 다 밀어 버릴걸?”
“하…… 진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알 수 없는 엘의 말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투덜거리는 탄. 그런 그를 보며 재영은 정말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가 봐야지.”
“고마워, 주인. 내가 최대한 빨리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저 빌어먹을 닭 날개가 수작질해도 절대 넘어가지 마. 알겠지?”
“무슨 수작질?”
“알잖아, 무슨 말인지.”
눈을 찡긋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탄. 그의 반응에 재영은 대충 무슨 소리를 하는지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 그놈의 개연성 욕심.’
100만에 달했던 개연성.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이곳저곳에 쓰다 보니 이제 고작 남은 것이라고는 30만 남짓. 물론 가장 많은 양은 불카누스에게 흘러들어 갔지만, 그래도 무시 못 할 양이 탄과 엘에게 골고루 들어갔음에도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 듯 둘은 언제나 경쟁적으로 재영에게 달라붙고는 했다.
우우우웅.
탄의 손짓에 따라 열리는 자그마한 검은색 구멍. 탄은 쫓기기라도 하듯 황급하게 구멍 속으로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검은 구멍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휴…….”
24시간을 달라붙어 밀착 감시 하던 탄.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과 함께했던 탄이 사라지자 재영은 알 수 없는 후련함과 해방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불청객이 사라졌군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거는 엘. 수호천사라는 명목으로 그에게 달라붙은 엘. 그녀와 단둘이 있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재영은 묘한 어색함을 느끼며 말했다.
“혹시 엘도 오랜만에 위에 다녀오고 싶으면 다녀와도 돼. 난 진짜 괜찮으니까.”
“괜찮아요. 제가 일부러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꾸민 짓인데 왜 그러겠어요.”
“그래? 아니, 잠깐만…… 뭐라고?”
탄이 어쩔 수 없이 마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자신 때문이라고 밝히는 엘. 그녀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별것 아니라는 듯이 재영에게 말했다.
“원래 싹수가 노란 악마 새끼들은 음험해서 신의라는 것을 모르죠. 온갖 욕망에 충실해서 조금만 꼴받아도 자기가 왕 하겠다고 들고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거든요. 저희는 그냥 그런 욕망을 살짝만 자극해 준 것뿐이고요.”
“그 말은…….”
“아, 거기에 더해서 우리엘이랑 그 휘하 군단 조금 보내서 휘저어 주고 나면 진짜 볼만하죠. 아마 지금쯤 똥줄 타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걸요?”
생각만 해도 좋다는 듯 진심으로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는 미카엘.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재영은 경악한 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 잠깐만.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일부러 마계의 쿠데타를 사주하고 동시에 천사들을 보내서 깽판 치라고 했다 이 말이야?”
“네. 그 정도는 해야 그 빌어먹을 박쥐 새끼가 무거운 엉덩이 이끌고 직접 내려가 볼 게 분명하니까요.”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듯이 말하는 엘. 그런 그녀의 반응에 재영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도대체 왜……?”
왜 그렇게까지 해서 탄을 보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재영. 하지만 엘은 그런 그에게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 당연히 그 새끼한테 당한 만큼 되돌려주기 위해서지요.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뭐……?”
“잊으셨어요? 파곤산, 그곳 깊숙한 곳에 봉인되어 있던 우리의 신성한 성역.”
탄의 이끎에 발을 들이게 된 성역. 그곳을 언급한 미카엘의 말에 재영은 순간 스쳐 가는 과거의 기억들 때문에 움찔했다.
신성한 석관을 헤집으며 안식에 잠든 이름 모를 누군가의 시신까지 훼손한 재영.
[그러니까 증거인멸을 해야지.]그 이후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 참혹한 파괴 행각까지. 그리고 그런 재영의 반응을 알아챘는지 엘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그것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자신이 한 행동이 뭔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빌어먹을 악마 새끼의 혓바닥에 속아서 저지른 것이니까요. 무지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그 어떤 악행이든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 그래……?”
분명히 웃고 있음에도 살벌한 기운이 느껴지는 엘. 그런 그녀의 말에 재영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답했지만, 엘은 그렇게 간단히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그런 잔악한 일을 사주한 악마 새끼는 용서받으면 안 되겠죠?”
“…….”
살기가 풀풀 풍기는 엘. 그런 그녀의 말에 재영은 사상 처음으로 탄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탄은 자기한테 흘러넘치는 똥을 치우러 황급히 마계로 떠난 상황. 그렇기에 이 불편한 상황을 재영은 홀로 헤쳐 나갈 수밖에 없었다.
“도,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공정함을 원해요.”
“공정……?”
공정함을 말하는 엘. 그런 그녀의 말에 재영이 묘한 표정을 짓자 엘은 자신의 본래 목적을 재영에게 밝혔다.
“지금 엘프들의 숨겨진 마을로 가고 있죠? 거기에 가 보면 알게 되겠지만…… 탄과 같은 빌어먹을 악마들이 애지중지하는 물건이 하나 있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재영이 향하고 있는 엘프들의 마을. 자연과 평화 그리고 균형을 사랑하는 엘프들에게 탄과 같은 악마들이 환장하는 물건이 있다는 엘의 말은 재영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부분은 가 보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될 거예요. 아무튼…… 거기에 도착하고 나면 그 물건을 박살 내 주세요.”
“뭐……?”
“철저하게 가루로 만들어 박살 내서 다시는 복구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 주세요. 아, 그 잔해는 가능하면 저에게 주시고요. 제가 잘 수습해 두었다가 나중에 그 새끼한테 직접 전해 주고 싶거든요. 꼭 해 주고 싶은 말도 있고요.”
이미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해 두었다는 듯이 말하는 엘. 도대체 언제부터 준비했는지는 몰라도,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것 같은 그녀의 계획에 재영은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래 주시면 저희에게 미안한 마음도 조금은 덜하지 않으실까요?”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물어 오는 엘. 그날 재영은 확실하게 느꼈다.
천사라는 존재가 악마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