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rdener in a Hunt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6)
셋이 해변에 도착해서 처음 한 일은 텐트치기였다.
마르그레타는 텐트의 구조를 파악하곤 바로 익숙해졌지만 화연은 끝내 버벅대기만 했다.
그래서 지하는 그녀에게 삽을 안겨주며 배수로를 파라고 했다.
비가 오면 안 되니까.
“내가, 이런, 거나, 하고, 있어야, 겠어요?”
헌터였던 사람들은 힘이 사라진 뒤에도 몸이 꽤 튼튼했다.
화연만 해도 어지간한 성인 남성 두세 명 분의 일을 할 수 있어서 금방 작업을 끝냈다.
지하는 마르그레타와 함께 타프를 친 다음 화연을 불렀다.
“여기 경치가 되게 좋아요.”
“그래봐야 해변이잖아요. 이런 건 동남아에 가면 실컷 본다구요.”
화연은 투덜거리긴 했으나 냉큼 지하의 옆에 붙었다.
셋은 한동안 저녁노을을 구경했다.
꼬르륵―
마르그레타의 배에서 시계가 울렸다.
그녀는 하루 다섯 끼의 밥을 먹는다고 한다.
그러고도 살이 찌지 않으니 축복받은 체질이라 하겠다.
지하가 선언했다.
“자, 밥을 먹긴 해야 하는데 지금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무것도 안 가져왔으니 당연하죠.”
“그러면 잡아야겠군요.”
마르그레타가 눈을 빛내며 일어섰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창이 들려 있었다.
얼마 후, 숲에서 꽥꽥 소리가 나더니 화조 두 마리가 마르그레타의 손에 잡혀왔다.
화연이 기겁하곤 도망갔다.
“나, 나한테 저거 죽이라고 하지 말아요.”
“제가 하겠습니다. 지하님은 요리만 해주세요.”
“네.”
지하는 얌전히 마르그레타가 목을 치고 손질하는 걸 지켜봤다.
아무래도 게헨나에서 오래 고생해서 그런지 손길이 단호하다.
그녀는 피를 빼며 변명하듯 말했다.
“먹고 살려면 이런 것쯤은 당연하게 해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근데에, 요즘 그런 거 할 필요는 없잖아요? 돈만 내면 알아서 해준다고요.”
피 냄새가 맡기 싫어 텐트로 도망간 화연이 한 말이었다.
그녀의 말도 맞다.
요즘 세상에 도축업자가 아닌 이상 일부러 동물을 잡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하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기껏 해산물 정도나 잡았지, 포유류를 잡아먹은 적은 없었다.
마르그레타가 손질을 끝내고 가죽과 내장 등을 가지고 사라졌다.
화연은 고기 냄새를 맡아보곤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냄새는 나쁘지 않네.”
“두 마리면 우리 먹기에 괜찮을 거예요.”
그녀는 지하의 말에 안심했다가 표정이 확 변했다.
화조를 마르그레타가 잡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건 경쟁이다.
이 열악한 환경을 참는 자가, 그리고 지하에게 더 도움이 되는 자가 승리한다.
결심한 그녀는 일어섰다.
“난 통발 던질래요.”
지하가 통발 던져서 게와 새우를 많이 잡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모양이다.
그 때의 지하에겐 동물친화 스킬이 존재했다.
낚시를 하면 고기가 바로 물고, 모래게와 새우가 나 잡아 잡숴! 하면서 통발로 알아서 들어갔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하는 야자수에 딱 붙어 있는 집게를 잡아 왔다.
거의 사람 몸통만한 녀석이라 화연이 기겁하고 도망칠 정도였다.
“얘를 화조 뱃속에 넣을 거예요.”
“그거 안 들어가잖아요.”
“살과 내장을 섞어서, 뱃속에.”
“···”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보곤 자신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핥았다.
게 비슷한 녀석의 살을 익혀서 내장에 찍어먹는 건 티비에서 가끔 본 적이 있었다.
맛있겠다···
어느새 마르그레타가 다가왔고 지하가 게살을 발라내는 걸 구경했다.
꿀꺽.
두 아가씨가 군침을 삼켰다.
지하의 손 움직임에 따라 시선이 휙휙 돌아갔다.
게살과 내장을 비빈 것을 화조의 뱃속에 집어넣고, 조심스럽게 뾰족한 덩굴로 배를 꿰매는 부분에선 작게 감탄하기도 했다.
“이제 이걸 묻어서 구울 거예요. 땅 좀 파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마르그레타가 삽을 들고 땅을 팠다.
지하는 야자잎으로 조심스럽게 화조를 둘렀다.
그리고 깊이 묻으면 화조구이 준비 끝.
“이대로 두 시간만 기다리면 돼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하는 지하.
화연은 울상이 되었다.
“아니 두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라고요.”
“직화가 아니라서 꽤 오래 걸려요. 대신 진짜 맛있을 거예요.”
그렇게 맛있다는데 좀 참는 수밖에.
화연은 포기하고 다리를 쪼그려 무릎에 턱을 올렸다.
사방이 어느새 어두워졌다.
타닥, 타닥.
모닥불이 타들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멍하니 불꽃을 바라보던 화연이 물었다.
“지하씨, 이런 거 재밌어요?”
“네. 저는 이런 거 좋아해요. 자연에서 사는 거.”
“···난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기서 할 일도 별로 없잖아요. 화장실 가는 것도 불편하고.”
제일 곤혹스러운 게 그거였다.
수세식 화장실이란 게 있을 리가 없으니 알아서 파묻고 야자잎으로 닦아야 한다.
화연은 뒤처리를 하는 자신을 상상하곤 진저리를 쳤다.
앞으로 이런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마르그레타는 좀 다른 모양이다.
“저는 이런 생활도 나름 만족합니다. 게마르크 주둔지에서도 비슷한 생활을 했었죠.”
“거긴 화장실이라도 제대로 돼 있었잖아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와 비슷했습니다.”
“으···”
화연은 울상이 되어 무릎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도저히 이런 환경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하는 즐거운 모양이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통발을 걷어와 몇 마리 있지도 않은 새우와 게를 꺼내 손질했다.
“예전에는 제가 통발을 던지면 한가득 잡혀왔었는데. 이젠 스킬도 없어서 안 들어오네요.”
“지하님. 내일 바다에 나가서 잡는 건 어떻습니까? 저녁에 보니까 물이 굉장히 맑던데···”
“네. 저 스노클링하는 거 좋아해요. 장비 가져왔으니까 같이 해요.”
지하가 배낭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꺼냈다.
분위기에 편승한 마르그레타가 웃옷을 벗고는 장비를 착용하더니 웃어보였다.
화연은 그녀의 몸매를 보곤 패배를 직감했다.
저 사이즈는 사기야.
둘이서 시시덕거리는 동안 화조가 다 익었다.
지하는 흙과 모래를 파내고 야자잎에 감싸인 화조덩어리를 꺼냈다.
김과 함께 엄청나게 맛있는 냄새가 났다.
“으와···”
마르그레타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야자잎이 걷히자 화조구이가 영롱한 자태를 뽐냈다.
“직화가 아니라서 살이 촉촉할 거예요. 화연씨 다리 하나. 마리 하나.”
지하가 화조 다리를 부욱 찢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거···먹어도 되는 거지?
눈치를 보던 화연은 포기하곤 한 입 베어 물었다.
“으음, 음···”
화조살이 원래 이렇게 부드러웠었나?
덩치가 큰 만큼 꽤 질겨서 못 먹을 것으로 여겼었는데···
그녀는 허겁지겁 화조 다리를 먹어치웠다.
마르그레타는 다리를 받아들자마자 흡입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드세요.”
지하는 덩굴을 빼내고 배를 갈라 속을 확인했다.
김이 확 피어오르며 게 내장에 버무려진 게살이 등장했다.
사실 지하는 화조보다는 이걸 더 좋아했다.
숟가락으로 한 입 떠서 맛을 보니 입안에서 짭조름한 감칠맛이 폭발했다.
사람은 이걸 먹기 위해서 사는 거구나.
셋은 즐거운 식사시간을 즐겼다.
화연이 내일 밝자마자 화조를 잡으러 가자고 떠들어댔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그날 밤은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각자 자리를 펴고 누웠지만 지하를 빼곤 잠을 자지 않았다.
설마 다리를 슬쩍 지하의 배에 올리진 않겠지? 그거 반칙이야.
화연은 스윽 상체를 일으켜 그윽한 눈으로 지하를 바라봤다가 건너편의 마르그레타를 발견했다.
그녀도 똑같은 자세,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둘이서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지하는 쿨쿨 꿀잠을 잤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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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셋은 한참을 걸어서 초원으로 나왔다.
주위의 산에 안개가 깊게 걸려 신비한 분위기가 풍겼다.
지하는 배낭에서 작게 축소된 도도를 꺼냈다.
마르그레타는 그러려니 했지만 화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여기 동물이죠?”
아무리 봐도 지구의 동물 같지는 않아서 하는 말이었다.
통통한 몸매에 두껍고 짧은 다리, 그리고 튼튼한 부리···
그녀는 이런 동물을 본 적이 없었다.
“얘 도도예요.”
“도도요? 아···그 옛날에 멸종한 동물요?”
신문기사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모형을 왜 꺼낸 걸까?
하고 생각했던 화연은 지하가 모형을 던지자마자 뒤집어졌다.
도도가 커다랗게 변한 것이다!
꿔걱!
녀석은 영문을 모르겠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셋을 바라봤다.
이윽고 몇 마리의 도도가 더 나타났고 마르그레타가 감격해 했다.
“지구에서 멸종된 동물이 게헨나에서 살아가는 겁니까···”
“세계수가 잘 돌봐줄 거예요. 가, 가서 먹이 찾아먹어.”
지하가 훠이훠이 내쫓자 녀석들은 무리를 지은 채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갔다.
그 뒤로는 화연이 기겁할 만한 일들 천지였다.
얼어붙은 땅에서 매머드가 튀어나오질 않나, 바다에서 상어에게 추격당해 열심히 도망가기도 했다.
그 때마다 세계수가 신비한 힘을 발휘해 무사했지만, 아무튼 간담이 서늘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화연은 즐거워하는 지하와 마르그레타를 보며 결코 좁힐 수 없는 벽을 느꼈다.
‘···난 이런 곳에선 못 살아.’
그녀는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주목받는 삶을 살아왔다.
돈도 넘칠 만큼 많았고 앞으로 여러 사업을 할 예정이었다.
싱글 넘버에서 재계의 신성으로 거듭나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지하는 단지 옆에서 그녀를 지켜주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여기는 나와 어울리지 않아.’
그녀는 그걸 뼈저리게 느꼈다.
후덥지근한 공기부터, 화장실, 잠자리 뭐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지하가 요리해준 화조구이는 굉장했지만 그건 예외로 치자.
하여튼 화연은 게헨나의 자연에 영 적응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며칠은 견딜 수 있어. 근데 말을 들어보면 며칠이 아니야···’
둘이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최소 몇 달은 지낼 예정인 것 같다.
며칠도 힘들어 죽겠는데 몇 달을?
그녀는 마음속에서 지하와 성공한 자신을 저울질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둘 다 잡고 싶었다.
하지만 잡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아이고오.”
지금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며 이름 모를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이 산의 정상에 올라가서 보면 주위가 잘 보일 거란다.
아니 요즘 세상에 드론 놔뒀다 뭐해?
그녀는 투덜투덜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어쨌든 지하와 마르그레타도 같이 고생하고 있기 때문에.
마침내 정상에 올라와선 완전히 쓰러졌다.
“야―호―!”
“야―호―!”
둘이서 키득키득 웃고 난리도 아니다.
이쪽은 퍼져서 일어날 기력도 없는데 말이다.
화연은 울적했지만 지하가 챙겨준 덕분에 마음을 풀 수 있었다.
“화연씨, 여기 주위 둘러보세요. 굉장해요.”
“올라오면서 많이 봤는데.”
그녀는 투덜투덜하며 바위 위에 올랐다.
탁 트인 게헨나의 자연이 보였다.
정말 광활하다는 말밖엔 나오지 않았다.
지하가 바다를 둘러보다 뭔가를 발견했다.
“아, 저기 섬이 있어요.”
“여기가 트라움 왕국의 남부인 걸 생각하면 모아스 섬일 겁니다. 꽤 큰 섬이고 식생도 다양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기 가볼까요?”
이젠 아예 항해까지 할 생각인가보다.
점박이가 만들었다는 그 쪽배로 어딜 건너가려는 거야.
화연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이젠 다 포기하고 침대에 누워 쉬고 싶었다.
둘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희희낙락하며 섬으로 건너갈 계획을 짰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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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는 단순히 여기서 먹고 지내려고 온 게 아니었다.
화연은 밭일을 하며 그걸 뼈저리게 느꼈다.
‘아니 무슨 밭일이야. 요즘은 스마트팜이 다 알아서 해주는데.’
익숙하지도 않은 농기구를 다루느라 손이 다 아팠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건, 마르그레타가 의외로 잘 해냈기 때문이다.
쪼그려서 일하는 건 쉽지 않을 텐데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고 지하를 도왔다.
더 놀라운 건 지하였다.
분명 힘을 포기했다고 하는데 저 끈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그는 끊임없이 일을 했고 자신도 힘들 텐데 둘을 배려하기까지 했다.
숲에서 과일을 따와 주스를 만들어 대접하는 등 지극정성이었다.
그럼에도 화연은 만족하지 못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하아···’
그의 뜻은 안다.
자연 속에서 살며 정원사 노릇을 하고 싶다는 거겠지.
워낙 없이 산 사람이니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산다.
하지만 화연은 그럴 수 없었다.
그녀에겐 수천억 원의 재산이 있고 같이 사업할 길드원도 있었다.
점박이를 통해 편지 한 통 보낸 것 외에는 연락도 제대로 못했다.
요즘 세상에 편지는 무슨 편지람.
마음속의 저울추가 점차 기울었다.
지하는 정말 좋지만, 이런 생활을 앞으로도 지속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도 그녀는 호미를 내려놓고 땅바닥에 철퍼덕 앉아 있지 않은가.
“여기서 뭐하는 거야, 정말.”
화연은 결국 밭에 드러누워 버렸다.
축축한 흙냄새가 그녀를 반겼다.
앞서 밭을 일구던 마르그레타가 흘깃 그녀를 뒤돌아봤다.
“피곤하면 안에 들어가서 쉬어도 됩니다.”
“···쉬어도 쉰 게 아니잖아요. 에어컨도 시원한 빙수도 없다구요.”
“대신 그늘과 지하님이 만드신 주스가 있죠. 그거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안 충분하거든요.”
쏘아붙이듯 말한 화연은 우울하게 눈을 가렸다.
그냥, 다 포기할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저녁이 되어 배를 만들던 지하가 캠프로 돌아와 마르그레타와 의논했다.
“내일 오후쯤이면 배가 완성될 것 같아요. 옆에 보조판도 붙이고 하면 내일은 무리고 모레는 섬에 갈 수 있어요.”
“섬에 상륙한 다음에는 할 게 많습니다. 우선···”
화연은 멍하니 둘의 대화를 들었다.
뭔가 따로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아닌데.
며칠 버텨서 지하의 호감을 사려 했지만 정작 마음이 맞는 건 마르그레타 쪽이었다.
그녀는 지하의 수족처럼 행동했다.
강아지처럼 냄새를 맡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나는 저렇겐 못해.’
마음속의 저울추가 많이 기울어졌다.
화연은 물끄러미 지하를 바라봤다.
며칠 해변에서 고생한지라 얼굴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눈빛과 잘생긴 이목구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언젠가 저 입술에 찐하게 키스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한참 떠들며 웃던 마르그레타가 눈치를 보곤 텐트 밖으로 나갔다.
지하가 화연의 손을 슬쩍 잡아왔다.
“화연씨, 힘드시죠?”
“···솔직히 안 힘들다는 말은 못하겠네요. 근데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어떤 거예요?”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이유가 있어요? 게헨나의 자연도 이제 충분히 즐겼잖아요. 지하씨 한국 사람이잖아요. 티비하고 인터넷, 게임 같은 거 안 그리워요?”
사실 지하는 그런 걸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필요할 때에만 잠시 이용할 뿐, 남들처럼 스마트폰만 보고 걷는 일도 없었다.
그나저나 화연은 여기서 지내는 것에 울화통이 터진 모양이다.
그녀의 주장을 함축하면 이렇다.
여기서 이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지하는 고민 끝에 말했다.
“저에게는 의미가 있어요.”
“어떤 의미요?”
“즐겁거든요. 아무도 없는 자연에서 고생해서 터를 닦고, 식량을 구하고 밭을 일구는 이 모든 과정이요.”
“그런 거 서울에 와서 해도 되잖아요. 성역 얼마나 넓어요.”
“서울에는 많은 게 있거든요. 이젠 굳이 제가 없어도 되니까.”
지하의 말을 들으니 뭔가 어렴풋이 보였다.
부족함.
이 사람은 상대방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을 도와주고, 마침내 신이 되어 세상을 되돌린 것도 그런 의미였다.
지하에게 게헨나는 채울 것이 많은 부족한 땅이었다.
당장은 자연을 즐기고 있지만 머지않아 묘목을 심고 땅을 가꾸고 하겠지.
그는 헌터 세상의, 아니 헌터가 없는 세상의 정원사니까.
화연이 손을 뻗어 그의 입술을 매만졌다.
“당신하고 같이 살고 싶었는데.”
“여기서 같이 살아도 돼요.”
“당신은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난 아니에요. 욕심이 많거든요.”
모두 갖거나 포기하거나.
이번에는 아무래도 후자가 될 것 같았다.
화연은 스르륵 눈을 감았다.
이정도 했으면 많이 노력한 거지.
“마지막으로 부탁할게요. 입술에 키스해줘요. 당신의 의지로.”
“···괜찮으세요?”
지하가 거듭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들이댔지 지하씨는 한 번도 안 해줬잖아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상관없어요.”
둘의 얼굴이 맞닿았다.
성인답지 않은, 아주 가벼운 키스였다.
화연은 그를 덮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간신히 참았다.
“후우···”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지하의 가슴을 밀어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꽤 오랫동안 지하를 좋아했지만, 역시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잘 있어요. 내가 좋아했던 사람.”
그녀는 짐을 챙기고 차원문을 통해 서울로 이동했다.
창고에서 식재료를 챙겨 나오던 점박이는 웬 원시녀가 튀어나오자 깜짝 놀랐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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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나까지 게헨나에 들어왔다.
사실 그녀는 지하에게 선택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곁에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겼을 뿐.
독점욕을 보이던 화연이 떨어져 나가자 둘이 의논해서 그녀를 데려왔다.
“근데 셀레나는 성녀니까 이제 아크님을 모셔야 되는 것 아니에요?”
“제 마음속의 주신님은 지하님뿐이랍니다.”
하긴 그녀와 소통하며 도와준 존재는 아크가 아니라 지하였다.
셋은 함께 게헨나를 돌아다니며 여러 일을 했다.
화조를 데려왔고 양도 키우기 시작했다.
바닷물을 가두어 어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들만의 정원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들 주신과 기사, 성녀의 직위를 벗어던지고 자연에 녹아들었다.
지하는 그제야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그가 꿈꾸던 삶이었다.
그동안은 참 많은 일들을 해왔다.
정원사가 되어 헌터들을 도왔고 무한회로에서 10만 년의 세월을 버텼다.
그리고 신에 가까운 힘을 얻어 세상을 지켰다.
이제 조금쯤은 쉬어도 되지 않나 싶다.
캠프에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지하와 셀레나, 마르그레타 셋이 모여 도란도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눴다.
화조가 새끼를 낳은 것은 소소한 화젯거리였다.
셀레나는 화조새끼가 얼마나 귀여운지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하필 그 때 마르그레타가 군침을 삼키는 바람에 피도 눈물도 없다는 평을 들어야 했다.
그날 밤.
지하는 오랜만에 꿈을 꿨다.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긴 꿈이었다.
그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맺혔다.
헌터 세상의 정원사. 완.
2월 중순쯤 시작한 헌터 세상의 정원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글 하나를 끝내면 후련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이번에도 무사히 한 질을 끝냈구나 하는 후련함.
더 재미있게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그럼에도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글은 또 쓸 수 있는 것이고 저 또한 발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큰 펑크는 내지 않았다는 것도 나름 위안입니다.
정원사는 부족한 게 많은 글이었습니다.
주로 노블에서 글을 써왔던 저에겐 편당결제의 시험작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과분한 사랑을 받아 유료화와 결말이라는 허들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쓰면서 많이 깨달았습니다.
아, 이런 건 다들 싫어하는구나.
여기선 전개를 어떻게 해야되겠구나…
글을 쓴지는 꽤 되었지만 편당결제는 처음이라 다소 버벅거렸던 것도 있습니다.
정원사를 통해 많이 배웠습니다.
다음 글은…아마 아포칼립스가 될 것 같습니다.
정원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겁니다.
원래는 세틀러 리부트를 쓰려고 했었는데 자료를 더 모아야 할 것 같네요.
10월 초에 다시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정원사를 봐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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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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