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
-백승결 씨 되시죠? 여기 청주 경찰섭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만······.
아버지가 죽었다.
택배 박스를 차에 싣고, 송장을 조수석에 던져놓은 뒤.
출근길에 산 우유를 한입에 털어 넣자마자 받은 연락이었다.
입가에 묻은 우유를 소매로 슥 닦고서 핸드폰을 고쳐잡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게 오늘일 줄이야.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라 한참을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타살인가요?”
고심 끝에 건넨 질문이 이 모양이다.
잠자코 기다려주던 담당 경찰관이 네? 하고 되묻는다.
그래, 이상하겠지. 근데 따지고 보면 그럴 만도 하잖아. 여기저기 빌린 돈에 원한까지···.
쌓아온 업보가 많은 사람이니.
곧이어 경찰관이 밝힌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발견 당시 방 안엔 술병만이 가득했다고.
초라한 죽음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 목젖을 치고 내려간다. 잘 참았지.
“일단 다른 친인척분들과도 연락하셔서······.”
그 뒤로는 정신이 없었다.
마치 잘 닦인 도로 위를 달리는 것처럼, 모든 게 절차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상복을 입었다.
불쾌한 익숙함이 느껴진다.
덤덤하기만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슬펐던, 엄마의 장례가 떠오른 탓이었다. 젠장.
······나는 그렇게 내 인생 두 번째 상주가 되어 사람들을 맞이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두 번 반, 절을 하고 다가온 지인이 고개를 숙인다.
임현태. 어렸을 적부터 알던 동네 형이었다.
과거 연기와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뭘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던 내가 택배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그였지.
마주 인사하며 다가가 손을 맞잡았다.
‘안 와도 된다니까.’라고 작게 중얼거렸지만, 솔직히 마음은 또 그게 아니었다.
“그래도 와줘서 고마워.”
“당연히 와야지.”
현태 형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짧은 위로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 자연스레 그 뒤를 따라나선다.
“요즘 바쁘지?”
“뭐···조금. 근데, 상주가 이렇게 나와도 돼?”
“지금 사람 없으니까.”
보다시피, 라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현태 형이 씁쓸한 표정으로 끄덕인다.
“그래도 아깐 사람들 엄청나게 몰려왔었어.”
“다행이네.”
“전부 빚쟁이들.”
“아······.”
벙찐 표정을 보며 씩 웃었다.
‘짓궂은 놈.’이라며 머리를 휘휘 흔든 그가 건물 옆에 마련된 흡연 장소로 향한다.
가슴팍에서 꺼낸 담뱃갑에서 마지막 남은 담배를 꺼내어 물고, 빈 갑은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물었다.
“방송 일은 잘돼가?”
“그만뒀어. 얼마 전에 이직했고. 우리가 오랜만에 만나긴 했나 보다.”
“그러게, 몰랐네. 원래 다녔던 곳이 KNS였지?”
“응. 지금은 뮤튜브 영상 제작하는 작은 회사로 옮겼어.”
“어떤 영상 제작하는데?”
“그냥 20분 남짓 짧은 영상이야. 옛날에 유명했던 사람들 지금은 뭐하나, 다시 찾아가서 근황 인터뷰를 하는 컨셉.”
대강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주억거리며 현태 형을 보는데, 담배를 입에 문 그의 입술이 달싹거린다.
생각이 많은지 동공이 가만히 있질 못하고 덩달아 미간이 움찔거린다.
딱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눈치인데 말이지.
할 말 있냐고 물어보려는데, 때마침 현태 형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만. 여보세요. 어어, 그래서 촬영은 가능하다는 거······ 뭐? 하아, 미치겠네!”
전화를 받은 현태 형이 표정을 굳히며 피곤한 듯 눈을 끔뻑인다.
깊은 한숨 뒤로 금방 가겠단 얘길 덧붙이고 전화를 끊는 그.
“무슨 일인데?”
“아, 그게······.”
말문을 떼기 무섭게 핸드폰이 다시 울려댄다.
난감해하는 그에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바쁜 거 같은데 얼른 가 봐.”
후우, 하고 마지막 연기를 내뱉은 현태 형이 짧뚱한 담배를 재떨이에 던져 넣는다. 손에 쥔 핸드폰은 야단법석이다.
“가보긴 해야겠다. 밀린 얘긴 장례 잘 마무리하고 따로 만나서 하자.”
“그래.”
“우리, 조만간 보자. 진짜로.”
전화를 받으며 급한 걸음으로 멀어져가는 그를 바라보았다.
문득 좀 전에 봤던 망설임 가득한 표정이 떠오른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진 대충 알 것 같지.
‘옛날에 유명했던 사람들을 다시 찾아가서 근황 인터뷰를 하는 컨셉.’
아마, 거기에 나를 섭외하고 싶었으리라.
백승결. 택배 일로 먹고사는 25세 청년.
지금에야 이렇듯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나지만, 그런 내 과거만큼 흥미로운 소재도 또 없을 테니.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첫 천만 영화, ‘해별이네’의 주인공이자.
한때 연기 천재라 불리며 전 국민이 환호했던 아역.
‘해별이’.
······깊게 숨을 들이켰다.
현태 형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만감에 휩싸이는 것도 잠시.
돌아서서 장례식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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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는 이보다 분노하는 이들이 더 많이 찾아왔던 장례가 끝나고.
나는 몇 남지 않은 친척들과 몇 안 되는 부조금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대신, 도망치듯 일상으로 복귀했다.
고된 택배 일이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중구 퇴계로41길······.”
박스들 위에 차곡차곡 모여있는 송장 뭉치를 집어 들어 거기에 적힌 주소를 소리 내어 읽는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이렇게 한 번 하면 잊는 일이 거의 없었다.
“승결 씨!”
그때 길 건너에서 달려 나오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아저씨.
건너편 건물 1층 인쇄 공장의 공장장이다.
오늘은 아무것도 내놓은 게 없던데. 갑자기 보낼 물건이 생겼나?
박스를 실으려고 굽혔던 허리를 쭉 폈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숨을 고르는 아저씨에게 묻는다.
“무슨 일 있으세요?”
“하하, 아니 별 건 아니고···.”
쭈뼛거리며 아저씨가 내민 것은 수첩과 펜이었다.
“집사람이 사인을 좀 받아달라네? 이런 거 쑥스러워서 그동안 뻐겼었는데, 계속 닦달하니 방법이 있나.”
“······.”
“실은 내가 자네 얘기했거든. 해별이가 매일 우리 회사 온다고.”
“······.”
“하핫. 너무 다짜고짜 부탁했지? 혹시 실례한 거라면······.”
멍하니 종이를 내려다보다가 민망해하는 아저씨에게로 시선을 올린다. 그리고 손을 휘적거렸다.
“아뇨, 아뇨. 실례는 무슨. 갑자기 하려니까 사인이 기억 안 나서 그래요.”
벌써 10년이 넘게 지난 일이다. 동사무소 같은 데서 정자로 쓴 이름 사인 말고, 제대로 된 사인을 그린 게.
당시 소속사에서 만들어 준 거라 고작 초등학생의 사인답지 않게 퍽 화려했었지.
“오랜만이라 멋지게 되려나 모르겠네. 공장장님 부탁이니 안 해드릴 수도 없고.”
능글맞게 웃으며 펜을 받아들었다.
대충, 이런 느낌이었나?
몸에 익은 대로 펜을 움직인다. 머리는 잊어도 몸이 기억한다고 하잖아. 나름 그럴듯한 사인이 그려졌다.
행복하세요··· 같은 건 안 붙여도 되겠지.
“이야, 정말 고마워. 집사람이 좋아하겠네.”
“민망하네요. 제가 뭐라고.”
“뭐긴 뭐야, 우리나라 첫 천만 영화의 주인공이지!”
이 동네 아저씨들 특유의 오바스러운 외침에 ‘그쵸. 제가 한땐 그랬었죠.’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껄껄 웃던 아저씨가 수첩을 품에 소중히 챙긴다.
“실은 ‘해별이네’가 아내와 첫 데이트 때 본 영화였거든.”
“와, 정말요?”
“그러니 그날 내가 얼마나 잘 보이고 싶었겠어. 그때부터 얼마 없던 머리도 무스 발라 딱 세우고, 정장까지 쫙 빼입고서. 그런데 자네 연기를 본 거야. 나 참, 그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아역이 그렇게 연기 잘하는 거 생전 처음 봤다니까?”
“그럼 저 때문에 데이트 망치신 거잖아요?”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근데 집사람이 나중에 그러더라고. 그날 그 모습을 보고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생각했다고.”
껄껄 웃는 아저씨를 보며 나도 미소를 머금었다.
누군가에겐······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구나.
어쩌면 나에게도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을 테지.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도 연기를 하고 있을······.
픽 하고 웃으며 고갤 흔들었다. 그저 거기까지였다.
무슨 이유가 있었든, 나의 클라이맥스는 짧았고 끝은 허무했으니.
연신 고맙다는 아저씨에게 민망한 웃음으로 답하고 일을 이어 나갔다.
중간중간 잡념이 피어오를 때면 수시로 고갤 흔들어 쫓아냈다.
그렇게 해가 질 무렵.
나는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부엌에 딸린 작은 거실과 침대 하나 겨우 들어가는 방이 전부인 빌라.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참 동안 싱크대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얼른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죽은 듯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숙제가 남아 있었기에.
끼익—.
결심하고서 방으로 들어간다. 분리수거장에서 가져온 종이 박스를 들고서.
침대맡에 엎어져 있는 영정사진을 집어 들었다.
반대편으로 뒤집자, 그 안에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장하다, 내 아들!’
아직도 눈에, 귀에 선하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때 난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얼마 가지 않아 곤두박질쳤지.
첫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고, 내가 각종 CF를 섭렵하면서부터였다.
돈이 들어왔다.
그것도 평범한 직장인에겐 너무 큰 돈이.
그 뒤로 아버지가 변했다.
여전히 웃고 있지만, 그 휘어진 눈이 나와 엄마를 향하지 않았다.
더 큰 돈을 벌겠다며 사업을 시작했고,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며 여자는 물론 도박에까지 손을 댔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을 거다.
그 큰 허영을 채우기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에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었지.
바로, 나.
유명 감독의 새 영화에 투입되었다. 거기서 나는 어설픈 연기로 질타받았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위로해주었다.
‘다음엔 더 잘할 거야. 분명히. 그렇지?’
벌게진 눈으로.
하지만 다음에도 나는 좋지 않은 결과를 안겨줬지.
CF가 끊겼다. 출연료는 반 토막이 났다. 그리고 거기서 또 반 토막.
사업 부진으로 조급해진 아버지가 나의 목을 움켜잡는다.
대체 왜 첫 영화처럼 하지 못하냐고.
나는 울면서 말했다. 연기가 싫다고.
대답으로 우악스러운 손바닥이 날라왔다.
아버지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꽉 다문 입술을 천천히 떼어낸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많이 무뎌졌다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당신은 내 기억 속에서 난동을 부린다.
하지만 이제 작별이다.
“솔직히 나 연기가 좋았어. 재밌었어.”
서러운 마음이 울컥 올라왔지만 이내 참았다. 그런 것들엔 이골이 나 있었다.
“근데 당신 때문에 안 한 거야. 아무리 연기가 좋아도, 가족만큼은 아니었거든. 그래서······.”
싸늘한 눈으로 사진 속 아버지를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텅—.
액자째로 박스에 던져 넣으며 고백했다.
“그래서 연기 못하는 척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