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여긴 이기고 지는 게 없어 (6)
‘전국구··· 같은 느낌인가?’
백승결이 탄 세단 쪽을 돌아본 김주철의 생각이었다.
본인이 들었으면 뒷목을 잡을만한 생각이었지만, 김주철에겐 꽤나 적절한 비유였다.
그의 시선이 끊임없이 주변을 훑었다.
어느새 구경하는 배우들은 더 불어나 있었다.
‘다들 내심 견제하고 있겠지?’
마찬가지로 김주철은 지금 상황을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누군가를 지켜본다는 건, 가늠하는 것이었으니까. 저 사람보다 내가 더 나은가, 아닌가를 말이다.
저기 앉아서 다릴 떨고 있는 저 감독이 대빵이라고 했으니, 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경쟁하게 되는 건가?
······그렇게 난생 처음 보는 촬영장의 광경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김주철이었다.
그때 대빵(—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그에게로 다가가 얘길 듣는다.
세트장에서 기다리는 배우들은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바짝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이 모든 상황이 김주철에겐 퍽 치열하게 느껴졌다.
마치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인 것처럼.
#
“어, 선배님은 오늘 촬영도 없으시지 않아요?”
세트장이 그나마 잘 보이는 곳에 서 있던 여배우가 평소 안면이 있던 선배 배우에게 말을 걸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선배 배우가 끄덕거린다.
이런 장르에선 빠지면 섭섭한, 우람한 팔뚝의 배우. 안기현이 답했다.
“너무 궁금해서 말이지. 예능 촬영 같이하면서 봤던 모습만으론 오태구 연기가 도무지 상상이 안 가서.”
예능 촬영이란 말에 여배우가 눈을 빛냈다. 흥미로운 주제였다. 평소 궁금한 것도 있었고.
“룸6 얘기하시는 거죠?”
“맞아, 그거.”
그가 끄덕거리자, 여배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릴 낮추며 물었다.
“근데 그거 진짜로······.”
“조작 없었어.”
자동응답기처럼 곧바로 답하는 안기현.
그에겐 이미 수없이 들어본 질문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와 백승결이 함께 출연했던 룸6 방송은 한때 포털 사이트 메인을 완전히 점령했었다.
그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고, 거기서 보여준 백승결의 역할이 엄청났던 만큼 이런 질문이 따르는 건 당연했다.
뭐만 하면 조작일 거라 생각하냐고 나무라기도 뭐 했다.
이해가 가거든.
자신조차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 장면들 투성이었으니 말이다.
“정말요?”
여전히 못 믿는 반응마저도 익숙한 듯 주억인다.
“그렇다니까. 제작진이 조금도 관여 안 했어. 아, 편집에는 좀 관여한 것 같더라.”
“그쵸? 진짜 보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편집에는 손을 댄 게······.”
“말이 되게 하려고.”
“엥?”
갸우뚱하는 여배우를 보며 안기현이 말을 이어갔다.
“그냥 원본대로 풀었다간 조작이다 뭐다 말이 너무 많아질 게 뻔하니까. 그래서 수위조절을 좀 한 거지. 오히려 너무 튀지 않도록 축소한 게 그거야.”
“그 정도였다고요? 아니, 그게 말이 돼요?”
“안 되지. 그러니 천재인 거고. 요즘 여기저기서 천재 천재 거리니까 너무 흔하게 느껴지는데, 진짜 천재는 이런 거구나 싶었다니까? 촬영하면서도 다들 넋 놓고 백승결만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지.”
다부진 어깨를 으쓱거린 안기현이 덧붙여 말했다.
“아무튼, 그런 모습이랑 오태구가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단 말이지. 그날 내가 느낀 놀라움이 백승결의 전부는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어쨌거나 배우잖아. 저 친구.”
이에 연신 놀란 얼굴로 화답하던 여배우가 헛웃음을 머금으며 끄덕였다.
“저도 무지 흥미롭긴 해요. 웬만하면 남 칭찬 안 하는··· 아니, 애초에 남에 관심 없어 보이는 애가 엄청 칭찬을 하더라고요. 이번에 이 대본 들어왔다니까 꼭 해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를 하고. 뭐 걔가 아니더라도 백승결 배우 연기 잘하는 거야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
“그래? 누가?”
“고하윤이요. 신기하죠? 걔가 누굴 칭찬하는 거 처음 봤다니까요?”
“네가 고하윤이랑 친하다는 게 더 놀라운데? 나이 차이가 꽤······.”
“선배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자 여배우가 쌍심지를 켰고.
안기현이 얼른 세트장을 가리키며 얼버무렸다.
“어, 이제 진짜 시작하려나 본데?”
#
부아아앙——!
트럭 한 대가 굉음을 터트리며 건설현장으로 돌진한다.
온갖 자재를 쌓아 만들어진 바리케이드가 허무하게 박살 나며 철문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끼이이익—.
그 뒤로 거칠게 들어와 멈춰서는 여러 대의 봉고차.
현장을 점거하고 있던 시공사 직원들이 주춤주춤 물러서는 사이, 차에선 수십 명의 용역들이 흉흉한 분위기를 뽐내며 내렸다.
그리고 충돌.
“자, 밀자.”
“이 개새끼들이···!”
“다들 팔다리 병신 되기 싫으면 그냥 꺼지세요.”
“달려들면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니까?”
순식간에 여러 사람들이 뒤엉킨 현장.
그 뒤로 세단 한 대가 유유히 다가와 멈추어 선다.
이번 작업의 책임자인 오태구가 그곳에서 내려 졸음 가득한 눈으로 상황을 확인했다.
쩍 하고 하품을 하며 지나가는 덩치들에게 연신 발길질을 해댄다.
“새끼들아, 빨리 움직여. 빨리 빨리. 이 새끼들 한국인 맞아? 왜 이렇게 굼떠.”
뒤이어 함께 내린 부하 직원이 덧붙였다.
“장산 형님 쪽 식구들입니다.”
“이야, 거기 맛집이 많나 보다? 새끼들 얼마나 처먹은 거야? 다 한 덩어리씩 하네.”
그렇게 말하며 그가 콘크리트 가득한 현장을 가로질렀다.
“아차차.”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멈춰선 그가 바닥에 널브러진 안전모를 주워 머리에 썼다.
“야, 너도 써라. 이런 데선 뭐 하나 떨어지면 그대로 골로 가는 거야. 나 오래 살아야 돼.”
옆에 떨어진 안전모를 축구하듯 패스한 오태구가 마침 트럭에서 내리는 또 다른 부하 직원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디 아픈 덴 없냐? 지금 안 아프다고 괜찮다 하지 말고 내일 아침까지 봐야 돼. 이게 시차가 있거든. 어디 쑤시면 바로 병원 가라?”
“네, 형님.”
“그리고 이거 나도 예전에 자주 했었거든? 이게 브레이크를 밟는 타이밍이 중요해. 이게··· 아이씨. 너 다시 타 봐. 저 병신 새끼들이 너무 굼떠서 정리하려면 꽤 걸릴 것 같아. 내가 특별히 알려줄게. 브레이크를 너무 일찍 밟으면 문이 제대로 안 빠개지고, 늦게 밟으면 사람이 아야해. 그럼 넌 문만 열었는데 인생 좆되는 거야. 핸들을 이렇게, 이렇게 틀어야······.”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오태구.
그렇게 특별한 운전 연수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트럭 옆에서 잠자코 기다리던 부하 직원이 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자꾸 잃어버린다며 아예 맡겨버린 오태구의 핸드폰이었다.
그가 조수석에서 이래라저래라 떠들고 있는 오태구에게로 다가갔다.
“형님, 전화 왔습니다.”
“누군데?”
“모르겠습니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입니다.”
“근데 나 방해한 거야? 지금 후배 교육 하는 거 안 보여? 존나 선생님 같았는데 방금.”
“······죄송합니다.”
꾸벅 허릴 숙이는 부하 직원을 보며 오태구가 낄낄 거렸다.
“내가 모르는데 니가 왜 죄송해.”
흣짜.
트럭에서 훌쩍 뛰어내린 오태구가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신호가 오고 있는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헛웃음을 풀풀 흘리며 그가 말꼬릴 올린다.
“이거 봐봐. 존나 느낌 오지 않냐?”
“예?”
“보이스피싱. 요즘 나 그거 엄청 오더라고. 어디서 정보가 팔린 건지···. 하여간 이 새끼들은 상도덕도 없어요. 쓰레기 새끼들이 같은 쓰레기한테도 돈을 뜯어먹을라고 하네. 안 그냐?”
지독한 놈들이야, 지독한 놈들.
고개를 내저은 오태구가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장난기가 가득한 목소리.
바람에 날리는 비닐처럼 하늘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멈칫했다.
당황해서일까. 오태구가 오히려 과장되게 웃었다.
“하핫! 지랄하고 있네. 어디? 병원? 이 시간에? 이야, 내가 엄마랑 동생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 와중에 눈동자는 파르르 떨렸다.
요동치는 감정의 갈피를 본인조차 잡지 못하던 그가.
“요즘은 직원을 연기력으로 뽑나. 존나 실감 나네······ 시발.”
점차 웃음을 지우며 야차와도 같은 얼굴로 변한다.
그가 섬뜩한 눈으로 보이지 않는 핸드폰 너머의 상대를 노려보았다.
“당신, 이거 지금 보이스피싱이면 실수하는 거야.”
공사장에 만연하던 비명 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상황이 대강 정리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이 지옥도를 만든 오태구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었다.
“너 새끼가 연변에 있든 염병을 떨든, 살가죽을 다 벗겨내서 죽여버릴 거거든. 그러니까 신중하게 대답해.”
착 내리깔린 목소리가, 핸드폰을 부실듯 꽉 움켜잡은 그의 손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누가······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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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다···.”
배우들의 감탄사가 여기까지 흘러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카메라에 매단 마이크에도 들어갔으리라. 좋구만.
임현태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팔뚝을 쓸어내렸다.
백승결이 연기하는 걸 현장에서 보는 건 그로서도 처음이었다.
배우들의 마음이 백분 이해가 간다.
‘소름 돋네.’
비록 예능 쪽이었지만 그도 PD였다.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뚝 떨어지는 백승결의 감정변화가 얼마나 독특한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연기는 또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동안 백승결은 아주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것으로 호평을 받아왔다.
그 중심에는 매끄러운 감정변화가 큰 역할을 했다.
그것만큼 관객들이 몰입하는데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평론가들이 최고의 강점을 꼽았던 부분이지.’
그런데 지금의 백승결은···.
백승결이 연기하는 오태구는, 너무나도 급격하다.
프레임(—장면)이 팍팍 튀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연기였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정말 롤러코스터 같네.’
급격하지만, 그 감정선에 탑승한 그 어떤 사람도 떨어지지 않는다.
캐릭터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견고한 안전바로서 작용했고.
그렇기에 급격한 감정선 마저도 모두가 따라갈 수 있었다.
백승결이 계획한 목적지까지.
그러니 시청자들은 오히려 열광하겠지.
이 놀이기구가 존나 쩐다고.
“이번 드라마가 공개되면 승결인··· 또 다른 배우가 되어 있겠네.”
임현태가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곧 의아해졌다.
모두가 여러 감정을 담아 백승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우들은 물론이고, 감독과 스태프들마저도.
백승결이 만든 롤러코스터에서 내리며 감탄하고 있다.
여기까진 예상한 반응들이었다. 당연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본 김주철만은 편치 않은 표정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뭐야, 우는 거야?’
임현태의 고개가 기운다.
저 곰 같은 덩치의 인상도 험악한 남자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훌쩍이고 있었다.
‘의외로 감수성이 풍부한 편인갑네. 그냥 덩치만 큰 애기였잖아?’
그 모습을 힐끗거리던 임현태가 머쓱하게 웃으며 안도했다.
‘난 또. 전직 깡패··· 뭐 이런 건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