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여긴 이기고 지는 게 없어 (7)
임현태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탁탁 털고서, 김주철에게 다가가 스윽 건넨다.
뭔가 하고 돌아본 그가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얼른 그렁그렁한 눈을 훔친다.
그 모습을 보며 임현태가 툭 물었다.
“‘악역’ 대본을 봤나 봐요?”
지금 백승결이 연기한 장면만으로 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뒤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벌써부터 슬플 수 있달까.
이에 김주철이 끄덕였다.
“어느 정도 내용만 들어 알고 있습니다.”
깡패 수업(?)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임현태가 주억거렸다.
“뭐, 슬프긴 하지. 저렇게 나쁜 짓 하는 깡패 새끼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 아침에··· 아니, 하룻밤에 엄마와 동생을 잃었으니.”
“그렇죠···.”
나름의 위로(?)에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는 김주철이었다.
예전이었으면 임현태의 말에 불같이 화가 났겠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백승결의 지인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밉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옛날 생각이 나서 갑자기 울컥했네요. 저도 업장 관리만 했던 게 아니라 완전 말단이었을 땐 저런 용역 일도 종종 했었거든요.”
“···?”
“그러다 엄마 전화를 안 받은 적이 있어요. 모르는 번호여서 안 받았는데, 그게 엄마 전화번호였던 거예요. 진짜 병신 같았죠. 엄마 번호도 몰라봤다는 게. 만약에 그게 저런 전화였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아···.”
구구절절한 사연에 안타까움보다 다른 감정이 먼저 임현태를 덮쳤다.
싸늘했다. 가슴에 비수도 꽂힌 거 같다.
“그 혹시, 원래 하시던 일이······.”
“어. 모르셨어요? 승결이 형이 얘기 안 하셨구나. 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런 일 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손 씻었지만요.”
설마 하던 의심이 굳어지고, 임현태가 멍하니 그를 보았다.
이어서 김주철이 돌려주는 손수건을 두 손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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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보조 출연자들의 인사를 받으며 세트장을 벗어난다.
오늘 내가 촬영해야 할 모든 씬들이 끝났다.
늘 그렇듯, 후련함보단 아쉬움이 더 컸다.
촬영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은 건 결코 아니었지만.
오태구 연기가 너무 즐거워서, 놀다가 중간에 억지로 집에 가는 기분이랄까.
“너무 고생했어요. 첫 촬영이라 신경 많이 쏟았을 텐데, 너무 성공적인 촬영이었으니 집에 가서 푹 쉬어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감독의 칭찬 세례까지 받고서 대기실로 향한다.
근데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오늘 연기 진짜 끝내줬어요. 대본 리딩 때도 느꼈지만 진짜···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몰입하게 만드네요.”
“그러니까. 우리 촬영 직전에 백 배우 연기 좀 녹화해서 봐야겠어. 그러면 연기가 훨씬 더 잘 될 거 같지 않아?”
“난 그것보다 얼른 같이 촬영하는 씬이 왔으면 좋겠어. 너무 기대되는데?”
다음 씬, 다다음 씬을 위해 촬영장에 온 배우들이 너도나도 인사를 건네왔다.
“여, 기승전결~.”
그 중엔 날 저런 이상한 별명으로 부르는 낯익은 배우도 있었다.
안기현. 룸6 악역 특집에서 힘캐로 섭외되어 만난 적 있는 그였다.
그 이후로 종종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지. 사석에서도 한두 번 만났고.
“빨리 끝내는 게 방탈출만이 아니네?”
그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말했다.
몇 개의 씬을 대부분 NG없이 끝낸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다른 분들이 잘해주셔서 그렇죠.”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만 잘하면 되는 거잖아. 사실 중간에 보조 출연자가 NG만 안 냈어도 한큐에 다 찍은 거나 마찬가지 아냐?”
“그래도 그 덕분에 더 좋은 씬이 나왔어요.”
시치미 뚝 떼고 말하자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 보조출연자가 곤욕스러울까 봐 어떻게든 더 좋은 씬으로 만들려고 한 건 아니고?”
어느정도 사실이라 그냥 입꼬리만 끌어올렸다.
늘 최선을 다하기에 같은 장면을 더 좋게 만드는 건 쉽지 않았지만.
아예 다른 시도를 해봄으로써 전혀 다른 장면을 만드는 건 가능했다.
그게 오늘처럼 기존의 장면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고.
덕분에 NG를 낸 보조 출연자의 짐을 덜어줄 수도 있는 거고.
그나저나······.
“근데 선배님은 오늘 촬영 없으시지 않아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같이 출연하는 씬도 아닌데.”
영화건 드라마건 대본 순서대로 촬영을 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콘티가 있는 거고, 스케줄 보드가 있는 거지.
“지난번 대본 리딩때 스케줄보드를 살짝 봤거든요.”
아주 빽빽하게 씬 넘버가 적혀 있던 스케줄 보드를 떠올린 안기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씬 넘버와 대본을 연결지어 자신이 언제 촬영인지 알 수 있었던 거다,
“아니, 스크립터님이세요? 제2의 감독님이야? 설마 본인이 출연하는 장면 외에 다른 장면들까지 외우고 있는 건 아니지?”
“모레 촬영하시는 액션씬 기대할게요.”
“얼씨구? 진짜 다 외웠나 보네. 허, 이 정도면 좀 무서운데···. 제2의 감독님이 아까부터 부담을 팍팍 주시는구만.”
“에이, 제가 또 언제 부담을 드렸다고.”
“드라마 주인공이 첫 촬영부터 연기를 그렇게 잘해버리는데 어떻게 부담이 안 와. 욕 안 먹으려면 뭐 빠지게 열심히 해야지. 안 그래?”
뭐 그렇게 열심히 하겠다면야 내가 말릴 이유는 없다만.
씩 웃으며 답하지 않자, 안기현이 열심히 하란 거 맞네? 라며 킬킬거렸다.
“아무튼 드디어 같은 영화 찍어본다. 무지 기대했는데, 그 이상이 될 것 같네. 기깔나는 드라마 한 번 만들어보자.”
어깰 두들긴 안기현이 이제 쉴 수 있게 놔주겠다며 손을 휘적거렸다.
그와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대기실에 도착했다.
임현태와 김주철 두 사람은 나보다 먼저 대기실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 있었다.
그래도 촬영 시간이 2시간을 넘겼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서먹해 보이네······.
“어어, 왔어!?”
카메라 가방을 정리하고서 허릴 핀 임현태가 날 보더니 활짝 웃었다.
오늘따라 왜 저렇게 반가워하나 싶다. 알 것도 같지만.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뭐가? 전혀?”
“손수건은 왜 들고 있어?”
“아··· 이거? 하하, 땀이 나서.”
그러면서 화장품 찍어 바르듯 이마를 톡톡톡 두들긴다.
······이렇게 쌀쌀한데?
이상했지만, 원래 이상한 형이다 보니 생각이 이어지진 않았다.
이번엔 구석에서 짐 정리 중인 김주철에게 다가갔다.
“오늘 어땠어?”
궁금했다.
그가 오늘 내 연기를 어떻게 보았는지.
그리고 촬영장은 또 어떻게 느꼈는지.
“대단했습니다.”
“네 덕분이야. 네 도움 덕분에 더 단단한 연기를 할 수 있었어.”
옆에서 ‘도와줬다길래, 무슨 도움인가 했더니······.’라고 중얼거리는 임현태.
왜 저렇게 경직되어 있나 했더니 아무래도 김주철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나 보다.
본인이 직접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아무 말 안 했었는데 말이지.
아무튼, 내 고맙다는 인사에 김주철이 멋쩍게 웃으며 고갤 숙였다.
“형한테 도움이 됐다면 너무 다행입니다.”
“너무 도움 됐어. 너무.”
“그나저나, 깜짝 놀랐어요. 형 연기가 정말··· 촬영장에 오태구란 깡패가 실존하더라고요. 게다가 막 다른 배우들까지 다 나와서 구경하고······.”
처음 온 촬영장에 대한 감회가 남다른 듯, 상기된 얼굴로 말하는 김주철.
“처음엔 그게 견제나 경쟁심··· 뭐 이런 건 줄 알았는데. 형이 연기를 잘하면 잘할수록 그 표정들이······.”
촬영 때를 회상하는 그의 두 눈이 반짝였다.
“점점 더 밝아지더라고요. 그걸 보고 싶었던 사람들처럼.”
“그랬어? 관찰력 좋다. 난 그거 알아차리는데 꽤 오래 걸렸거든. 15년 정도.”
“네?”
“복귀해서야 알았지. 촬영장에선 이기고 지는 게 없다는 거.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거. 예전엔 몰랐어. 그냥 연기만 좋았거든. 배우가 그거면 되는 줄 알았고. 근데, 배우에게 연기가 중요한 건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고.”
빙그레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배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감독님이나 스태프들··· 각 배우들이 최고의 컨디션을 뽑아낼 수 있도록 돕는 매니저들···.”
한 명 한 명 곱씹으며 말하다가, 시선 끝에 기대 어린 표정의 임현태가 걸렸다.
“···메이킹필름도.”
그제야 만족스러워하는 그.
이 와중 에도 자기 몫을 챙기는 현태 형에 사소한 존경심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결국,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더라고.”
“······.”
다시 김주철을 보았다.
그 모두에 오늘은 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듯, 입꼬릴 끌어당기며.
멍하니 바라보는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난 더 좋아졌어. 이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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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결에 이어 임현태까지 집에 내려주고서.
김주철이 핸들을 돌렸다.
밴은 내일 반납하기로 했기에 집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네.’
날이 밝아서 들어올 줄 알았는데, 아직 4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모두 바래다주고 나선, 조금 빠르게 달려오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땐 내색하지 않았지만, 걱정과 조급한 마음이 내내 공처럼 튀었다.
김주철이 천천히 집 앞 골목으로 들어서며 주변을 훑는다.
혹시나······.
혹여나 어머니가 나와 있을까 걱정돼서였다.
‘없네. 다행이다.’
진심으로 안도하는 김주철이었다.
불과 몇 달 전, 어머니가 실제로 밤새 밖에서 새벽이슬을 맞아가며 그를 기다린 적이 있었기 때문.
그날 일이 깡패를 그만두고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굳히는 계기가 되었지.
이렇게 생각해보니······.
‘오태구에 비하면 난 운이 좋았네.’
김주철이 작은 위안을 얻었다.
비록 허구의 캐릭터지만, 오늘 백승결이 보여준 모습이 너무 대단해서.
실제로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위안이 되었다.
‘······엄마가 이래서 드라마를 보나?’
짬이 날 때마다 티비를 즐겨보는 엄마가 그렇게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걸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오늘 돕기로 결정하길 잘했네.’
솔직히 결정했다기보단, 결정 당하긴 했지만.
그리고 여전히 핸들 공포증이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괜히 뿌듯해지네. 한 것도 없는데.’
즐거웠다.
어젯밤부터 이어졌던 설렘이 여전히 남아 있을 정도로.
그런 기분을 느끼며 차를 적당한 곳에 세웠다.
차에서 내려 휘적휘적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이이익···.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고요한 집 안.
당연히 거실에 있을 거라 생각한 어머니가 안 보였다.
갸웃거리며 살짝 열린 안방 문 틈을 벌려 머릴 집어넣었다.
곤히 자고 있는 어머니가 보인다.
“허···.”
이것만큼은 정말 의외라 김주철이 바람빠지는 소릴 냈다.
빛이 새어들어가 혹시라도 깰까봐 얼른 문을 닫았다.
자신의 방으로 향한 그가 자켓을 벗으며 중얼거렸다.
“진짜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
그리고 신기하다는 듯 헛웃음을 삼킨다.
“내가 안 들어왔는데도 저렇게 곤히 자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