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동화였네요 (2)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햇살이 비스듬히 떨어졌다.
커튼이 펄럭였고, 그 너머로 보이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전경.
그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 삼아 서 있는 자신의 스승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인호가 말했다.
⌜결승까지 48시간이 남았어요.⌟
그 사실에 숨이 막히는지, 깊은 한숨을 토해낸 그가 말을 잇는다.
⌜그런데 모르겠어요. 뭘 해야 할지. 피아노는 뵈젠도르퍼. 곡은······.⌟
댐이 열린 듯 답답한 마음을 쏟아내는 이인호.
그는 다급했다. 이 순간이 사라질 것만 같아서.
그래서 얼른 자신의 스승에게 답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가자.⌟
⌜네?⌟
스승은 피아노에서 눈길을 떨어트리며 그에게 말했다.
⌜더 이상 이 앞에서 내가 가르칠 건 없으니······ 우리 나가서 좀 걷자.⌟
그의 말을 끝으로, 이인호의 작은 독백이 이어졌다.
“······그렇게, 나의 특별한 48시간이 시작되었다.”
낮게 독백을 마무리 지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테이블 너머에서 나를 지켜보며 커다래진 두 눈.
한이연 감독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내가 쓰면서도 참 어려웠던 부분이 있어. 이인호가 자신의 스승을 마주하는 부분. 이젠 기억 속에만 남은 사람을 눈앞에 그린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떠올리기 어려웠거든. 그런데······.”
그녀가 입꼬릴 끌어올리며 덧붙인다.
“이런 느낌이었겠네. 방금, 내 머릿속에만 있던 장면이 바로 눈앞에 있었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만큼이나, 나도 손끝에 떨림이 있었다.
“이런 작품일 거라 생각 못 했어요.”
“‘눈속임’과는 많이 다르지.”
그냥 다른 정도가 아니었다. 아예 다른 결.
하지만 머릿속에 모든 장면이 선명히 그려지는 것만큼은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했다.
‘눈속임’이 이야기를 빠르게 훑는 급행열차 같았다면.
‘48시간의 위로’는 뭐랄까.
천천히, 이야기 속을 걷고 있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담고 있는 메시지도 큰 차이를 보였다.
‘눈속임’이 마이너한 감성으로 점칠한 오락 영화에 가까웠지.
반면 ‘48시간의 위로’는······.
“부담감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생각했어.”
그녀의 말에 작게 끄덕였다. 말 그대로였다.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죽은 스승과 마주하는 장면에서 판타지인가 싶었는데.
“이 영화······.”
대본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내가 말했다.
“동화였네요.”
#
그날 이후로 내 머릿속엔 ‘악역’과 ‘48시간의 위로’가 저글링하듯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하루가 무척이나 짧게 느껴졌다.
오태구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흐르던 시간이 이인호라는 천재 피아니스트까지 들어오며 순식간에 몇 주가 스킵되었다.
물론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긴 했다.
우선 함께 다니는 멤버에 김주철이 추가되었다.
김성운과 임현태, 그리고 김주철까지.
이 기묘한 조합이 주는 웃음 덕에 촬영장이나 회사를 오가는 길도 즐거웠다.
“현태 형님.”
“네. 어. 왜.”
“제가 사진을 좀 찍어봤는데. 팀장님이 보시기엔 다 못 쓸 것들인가 봐요. 한 번 봐주시겠어요?”
“그, 그래.”
“······어때요? 정말 그렇게 별로예요?”
“굉장히 차, 창의적이네. 구도도 그렇고. 근데 기자들이 좋아할 만한 사진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작품성은······.”
작품성 이러고 있네.
그냥 매니저가 배우 사진 찍은 건데.
아무튼, 어쩐지 현태 형이 최약체가 되어버렸다.
근데 또 김주철은 현태 형이 편한지 계속 의지한다.
그럴수록 현태 형은 더욱 부담스러워 죽으려고 하고.
‘차차 친해지겠지.’
그리고 ‘악역’의 촬영도 중반부에 이르렀다.
대본이 모두 나온 상태라 더 빠르게 찍으려면 충분히 가능했지만,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콘티를 짜고, 김미옥 작가와 이야길 나누고, 가편집을 보고, 또 다시 회의를 하고.
지금까지 촬영한 절반이 너무나 만족스럽게 만들어져서인지 모두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게 돌다리를 두들기듯, 차근차근 드라마가 완성되어갔다.
그 사이,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고 있었는데.
내 또 다른 차기작 소식이 인터넷을 달궜다.
[백승결, 한이연 감독과 다시 한번 뭉친다>“토끼가 아니라 용이지. 두 마리 용.”
타블렛으로 기사를 확인하던 굿픽쳐스 박 대표가 자신만만한 목소릴 덧붙이며 날 보았다.
그의 기대 어린 표정에 하하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김주철이 본인에게 다소 비좁아 보이는 소파에 앉아 멀뚱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김성운이 이어서 한이연 감독에게 물었다.
“주조연들 캐스팅은 고민 해보셨어요?”
“아직이요. 확정된 건 승결이 뿐이에요. 여러 쪽으로 컨택하고 있긴 한데, 승결이가 대사 읽는 걸 한 번 보고 나니까 욕심이 확 커져서······.”
결론적으로 더 좋은 배우를 고르기 위해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자 김성운이 마른 입술을 적시며 슬쩍 운을 띄운다.
“감독님 이번에 뉴페이스가 필요하시다고···.”
“맞아요. 여러 연주자들이 등장을 해야 하는데, 너무 익숙한 얼굴들은 몰입이 어려울 것 같아서요. 와··· 대표님.”
익숙하지 않은 얼굴의 배우가 필요하단 얘길 늘어놓던 한이연 감독이 갑자기 감격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응? 왜?”
“제가 익숙한 얼굴들을 마다하게 되는 날이 왔네요.”
이에 박 대표가 피식 웃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눈속임때 울면서 전화하던 게 엊그제같······.”
“아니, 왜 또 이야기가 거기로 튀시나······. 언제까지 우려먹으실 거예요.”
“글쎄. 이번 작품도 천만 넘기면 그만할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부담 팍팍 주실래요?”
“다른 사람들 말엔 다 받아도, 내 말엔 타격도 없으면서 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어처구니 없이 바라보던 김성운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이야길 이어갔다.
“그럼 감독님 혹시 유은하라고 아세요?”
“아뇨, 처음 듣는 이름 같은데······.”
“아이돌 ‘트리스’는 아세요?”
“제가 가요 쪽은 잘 몰라서······.”
연이은 대화 실패에도 김성운이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역시 팀장의 무게란.
“이번에 아이돌 트리키 멤버인 유은하양이 저희 하람 소속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아, 그래요?”
주력 분야가 다른 두 회사가 힘을 합쳤다는 이야길 들은 한이연 감독이 신기해했다.
“아무튼, 유은하 배우가 아직 한 작품 밖에 안 찍긴 했지만 아이돌에 대한 편견을 부쉈다는 의견이 정말 많습니다. 새로운 얼굴이 필요하시면, 한 번 검토해주세요.”
“아, 네. 한번 프로필 받아볼게요.”
“감사합니다.”
“아녜요. 저도 캐스팅 때문에 여러모로 생각할 게 많은데, 좋은 배우 추천해주시면 도움이 되죠.”
막간을 이용한 새 비지니스 이야기가 끝나고.
마침 캐스팅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던 터라 곧바로 물었다.
“스승님 역할은, 감독님이 생각해 둔 배우가 있어요?”
그러자 한이연 감독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입이 간지러운 듯 달싹거리던 그녀가 이내 살짝 고갤 흔들며 말했다.
“고민 중인 배우가 있긴 한데······. 좀 더 진척이 되면 얘기해줄게. 괜히 설레발이 될까 봐.”
그녀가 은근 미신이나 징크스를 많이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도 잠시 궁금증을 참기로 했다.
확정이 되면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되겠지.
“아, 그리고 음악.”
이번엔 한이연 감독이 주제를 꺼냈다.
사실상 ‘클래식 음악 영화’인 ‘48시간의 위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사제지간의 버디무비라는 메인 스토리가 있긴 하지만, 그 스토리 내내 음악이 계속 흘러나올 테니까.
게다가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에선 그야말로 음악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도 있지.
“현재 음악 감독은 사운드필름 쪽하고 얘기 중이에요.”
그녀의 말에 박 대표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영화 음악 업계에서 독보적인 회사야. 심지어 할리우드에서도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니 말 다 했지.”
뒤이어 한이연 감독이 말을 이었다.
“음악을 효과적으로 담는 게 사실상 이번 영화의 승패를 좌우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빠르게 뭔가가 정해질 것 같진 않아요. 이것과 관련해서도 정보가 업데이트되는 대로 전달할게요.”
배우, 음악.
여기까지 이야기가 되었으니 이번엔 연출에 관련된 부분으로 이야기가 넘어갈 차례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이연 감독이 내가 말하려던 내용을 꺼냈다.
“그리고 장르 특성상 연주 장면이 있다 보니 대역도 구해야 할 것 같은데······.”
“없이 해볼게요.”
“그럴래?”
기다렸다는 듯이 즉답하는 한이연 감독.
그녀를 보며 픽 하고 웃자, 그녀도 입꼬릴 올리며 실토한다.
“사실 그럴 줄 알고 선생님도 섭외해 놓았어.”
“피아노도 구해야겠네요.”
“디지털피아노가 밤낮 구분 않고 연습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던데···.”
“그것도 일반 피아노랑 가장 누르는 감각이 비슷한 제품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링크 보내줘. 내가 지금 바로 사줄게.”
“······.”
내가 머뭇거리자 한이연 감독이 눈을 깜빡거리다가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승결아. 나 너한테 그 정돈 사줄 수 있어. 한 작품이지만 그래도 ‘눈속임’이 얼마나 대박을 쳤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야?”
“네.”
“그럼?”
“이미··· 샀어요.”
심지어 연습도 해봤지.
동요로.
#
······분명 감독과 배우의 대화인데, 방향이 어째 이상한 쪽으로 이어진다.
“쳐보니까 어때?”
“반짝반짝 작은 별을 쳐봤거든요?”
“오, 명곡이지. 그거 모차르트가 작곡했잖아.”
“사실 저도 그래서 쳤어요. 동요인데 작곡가 네임밸류가 장난 아니라.”
“푸흡. 그래서 어땠어. 칠만 해?”
“······대역을 일단 구해는 둘까요?”
“푸하하. 안돼. 최대한 네가 해줘야 해. 내 머릿속엔 이미 그런 그림이 그려졌어.”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박 대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김성운을 돌아본다.
“······김 팀장, 난 이제 얘네가 영화를 찍는 건지 차력쇼를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생각······.”
그는 이해해줄 거라 생각하며 주절주절 떠들던 박 대표가 말을 멈췄다.
김성운은 확실히 차력쇼를 계획하는 두 사람과는 달랐다.
오히려 한 술을 더 뜬다.
“이번엔 콘서트를 열 차례인가······.”
그의 머릿속엔 팬미팅 계획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는 백승결, 화려한 무대, 사인회 후 판매하는 굿즈는 승결이가 그린 그림······.
그가 중얼거리는 걸 들은 박 대표가 공허한 눈으로 하하 웃었다.
이 미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