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기대 (2)
LA 멀티온 본사.
사뭇 비장한 표정의 댄이 복도로 나섰다.
마침 지나가던 직원이 꾸벅 인사를 하며 물었다.
“댄, 어디 가세요?”
“지하.”
짤막한 대답에 직원이 아, 하고 끄덕인다.
멀티온 직원들이라면 그가 지하에 간다는 것 말고도 뭘 하러 그곳에 가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
지하에 간다는 건 그곳에 있는 극장에 간다는 뜻이고, 극장은 내부 시사회 용으로 쓰이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요즘 디렉터 댄이 제작 중인 드라마는 멀티온 내에서도 꽤나 관심을 받고 있었다.
해외 제작 드라마의 역사를 쓴 ‘악의 링’.
그 주역인 댄과 백승결이 다시 뭉쳤잖나.
“그거죠? ‘악역’.”
“맞아.”
직원이 댄의 표정을 살핀다.
비장함이 넘쳤지만, 그렇다고 긴장하진 않은 듯한 얼굴.
‘대단하시네.’
그 사실에 직원이 놀랄 만큼, 내부 시사회는 중요한 자리였다.
단순히 ‘우리 이렇게나 잘 만들었답니다.’라고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다.
임원들이 보고 해당 작품을 얼마나 밀어줄지를 결정하는 자리.
아무리 ‘악의 링’ 이후로 차기작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물이 좋을 때 이야기였다.
만약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언제 그런 소릴 했냐는 듯 입을 다물 터.
“좋은 반응 있길 바랄게요.”
“그럴 거야.”
댄이 씩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지하로 내려가자 시사회에 함께할 디렉터급 인사들이 모여있는 게 보였다.
모두가 익숙한 얼굴들이었지만, 그중 유독 반가운 이들이 있었다.
악의 링에서 함께 만들었던 동료들.
하지만 ‘악의 링’의 성공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뿔뿔이 흩어진 멤버들이었다.
“냉정하게 평가해줘.”
댄이 다가가 툭 말했다.
그를 반긴 동료들이 각자의 리액션으로 그에게 답했다.
“그래야지.”
“당연하지.”
이에 댄이 장난스레 덧붙여 말했다.
“그래도 별수 없겠지만.”
“이야, 엄청난 자신감이네.”
“그러게. ‘악의 링’ 때보다도 더 자신만만한 것 같은데?”
의외라는 듯 돌아오는 반응들에 댄이 으쓱였다.
“‘악의 링’ 땐 이 좋은 걸 못 알아주면 어쩌지··· 그런 걱정을 했었지만. 이번엔 다르거든.”
“어떻게 다르다는······.”
동료가 호기심어린 얼굴로 질문을 하려는데, 다음 순간 주변 공기가 확 달라졌다.
디렉터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돌아갔다.
본사 곳곳에서 이곳으로 내려온, 멀티온의 임원급 인사들.
선택권을 쥐고 있는 그들이 사내 극장으로 들어선다.
그런 임원들을 바라보며 동료가 질문을 바꿨다.
“저분들 취향에 맞을 것 같아?”
“아니.”
“···응?”
빠르고, 의외인 대답.
“분명 아닐 텐데, 그래서 더 기대되네. 어떤 표정들을 지을지.”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임원들을 바라보며 댄이 씩 웃었고.
이윽고, 극장의 문이 닫혔다.
#
“오늘 내부 시사회 있었나 본데?”
“몰랐어? 오늘 ‘악역’ 시사회 있었잖아.”
“아, 그 ‘악의 링’ 서귀호가 주인공 맡았다는?”
“그거 우리 디렉터님이 엄청 기대하던데.”
“‘악의 링’이 워낙 잘 됐으니까. 한국에서 그런 드라마를 하나 더 만들어내겠다는 각오인 것 같은데······.”
각 부서 직원들의 관심도 ‘지하’로 향했다.
정확히는 댄과 백승결이 두 번째로 뭉친 ‘악역’이란 드라마로.
“그게 쉽겠어? ‘악의 링’ 같은 걸 또 만든다는 게?
여전히 ‘악의 링’은 멀티온 내에서도 특별한 드라마였다.
해외 제작으로서는 가장 큰 흥행을 거뒀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 멀티온이 다른 OTT 플랫폼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한참 부족했다.
직원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내뱉으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후.
발빠른 직원 한 명이 꽤나 놀라운 소식 하나를 물고 올라왔다.
“임원들이 곧장 댄 디렉터님하고 같이 회의실로 올라갔다는군.”
“곧바로? 가만 내부 시사회면 보통 4화까지 보잖아. 4시간 동안 드라마를 내리 보고서 바로 회의를 시작한다고?”
“그만큼 급했다는 건데?”
“그러게. 결과물에 심각한 문제라도 있나?”
“결과물에는 문제가 없지.”
오전과 이어지는 이슈로 대화를 주고받는데, 뒤이어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악의 링’을 만든 멤버 중 하나였던, 지금은 이 팀의 팀장이 된 백인이었다.
“어, 팀장님.”
“어떠셨어요?”
“결과물엔 문제가 없다고요?”
“문제는 임원들한테 생겼을 거야.”
으쓱거린 팀장이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댄이 이를 갈았네. 아닌가. 백승결이 간 건가.”
“네?”
그때였다.
옆 부서 디렉터가 머릴 긁적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온 것은.
“아니, 그래서. 나머지 4화는 대체 언제 편집되는 건데? 이거 나 꿈에 나올 것 같은데···.”
“오셨어요?”
“어어, 다들 궁금해서 그러고 있었구나?”
그 모습이 익숙한듯 반기는 직원들.
그들이 내부 시사회를 관람하고 온 팀장과 디렉터에게 물었다.
“그래서, 대체 어땠는데요? 반응을 보니 임원들이 회의실로 향한 게 작품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닌 것 같고. 어때요? 로비에 작품 하나 더 걸릴 것 같아요?”
“글쎄. 그건 모르겠다. 조금 무거워서···.”
디렉터가 신중하게 대답했고.
“대신.”
팀장이 덧붙여 말했다.
“멀티온에서 이 정도의 울림을 줄 수 있는 드라마가 있나 싶어.”
“없었지.”
확신의 고갯짓을 하는 디렉터.
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윗분들도 고민이 많을 거야. 대중성을 잡고 있는 넷플리스, 다양한 원작들을 갖고서 무한한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디제니. 그 사이에서 멀티온이 잘 해내고는 있지만, 솔직히 점유율은 많이 차이가 나니까.”
이에 직원들은 의아해했다.
‘악역’이란 작품이 어땠는지 물었는데, 갑자기 회사에 대한 이야기라니.
“그런 시점에 ‘악역’같은 작품이라니. 취향이 아니라서 더 궁금하다는 댄의 말이 뭔지 알겠지 않아?”
끄덕거리던 두 사람이 벙찐 직원들을 돌아보았다.
그제야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악역’은 흔한 오락 드라마가 아니야. 오히려 조금 딥하고, 진중하지. ‘악의 링’처럼 매니악한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주인공의 서사가······. 멀티온만의 색깔을 잡아야 하는 지금, 가장 필요한 작품이더라고.”
댄의 자신만만한 웃음과 시사회가 끝난 이후에 볼 수 있었던 임원들의 표정.
두 가질 떠올린 그가 기대 어린 얼굴로 덧붙였다.
“그걸 오늘 댄이 제시한 거지. 임원들에게.”
그날 저녁.
멀티온 임원들은 시사회 시간 만큼의 긴 회의를 마쳤다.
그 결과에 대해 전달받은 각 부서 담당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해외에서 자체 제작한 작품뿐만 아니라, 멀티온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더 공격적인 홍보를 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온 것이다.
즉. 이 작품에 사활을 걸겠다는 소리였다.
#
이른 아침부터 홍보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젯밤, 멀티온 본사에서 전해온 좋은 소식 때문이었다.
내부 시사회 반응이 뜨거웠다며 운을 뗀 댄이 본사에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취할 거라며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메일을 보내왔지.
이제 정말 ‘악역’은 배우들의 손을 떠났다.
추가 촬영이 잡히지 않는 이상, 마무리 작업과 공개만 상황.
‘다음 주네, 벌써.’
그럼에도 쉴 새가 없었다.
곧 다가올 촬영을 위해 짐을 싸야 했다.
무려 13시간이 넘는 시간을 날아가 하게 되는 촬영이니까.
심지어 나에게는 더욱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여러 장소 섭외와 스케줄, 그리고 연주자들의 상황상 첫 촬영이 ‘48시간의 위로’의 마지막 씬. 즉, 연주 장면으로 정해졌기 때문이었다.
‘음악 영화인 만큼, 가장 중요한 장면인데 말이지.’
······한참을 홍보팀 직원들과 이야기 하다가 그들이 일에 집중하는 것을 보며 위층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김성운과 김주철은 아직 회의 중인지 보이지 않았다.
차라도 하나 타 마시며 기다릴까 하는데, 테라스 쪽 흡연 구역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어? 승결아!”
손을 흔들며 알은체를 하는 쪽은 함께 대원군을 찍었던 김상억.
“오랜만이네. 요즘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그리고 그 옆에서 빙그레 웃으며 날 바라보는 남자는······.
“나만 할까. 난 15년? 그 정돈 된 거 같은데?”
그가 확신 없는 말투로 말꼬릴 올린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남자를 만난 건, 해별이네 다다음 영화. 그쯤이었으니까.
“잘 지냈어? 아, 나 기억 안 나나?”
“그럴 수도 있겠네. 15년 전이면 승결이가 초등학생 아니야. 일일이 기억 못 하지.”
“나요, 기억.”
얼른 답하고서,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양기전 배우.
내 세 번째 작품에서 만나 촬영 내내 꽤나 붙어 있었던 배우였다.
당시 내 역할은 고아원에 있는 아이였고, 양기전 배우는 원장의 오른팔 같은 느낌이었지.
굉장히 나쁜 역할이었지만, 현실에선 내게 엄청나게 잘해줬었다.
“···잘 지내셨어요?”
“그럼~. 승결이한테 선배님 소릴 들으니 되게 어색하다. 하하. 그나저나 요즘 엄청 대단하던데? 내가 다 뿌듯해하면서 보고 있어.”
환하게 웃으며 답하는 양기전 배우를 보며 많은 생각이 밀려든다.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선배님도 하람으로 오시는 거예요?”
“내가? 당연히 아니지. 내가 무슨. 그냥 놀러 왔어. 이태관 선배님이 초대해주셔서, 상억이도 볼 겸.”
“아···.”
“아무튼, 너무 반갑네. 언젠가 만나면 작품 너무 잘 보고 있다 말해주고 싶었어. 역시, 작품만 잘 만나면 잘 될 것 같았다니까?”
으쓱거린 그가 여전히 입꼬릴 올린 채로 묻는다.
“이번에 클래식 소재 영화도 촬영한다면서?”
이에 옆에서 김상억이 대신 자랑했다.
“그것 때문에 바르샤바로 촬영 간대.”
“바르샤바가 어디야?”
“폴란드, 임마. 폴란드.”
“아아, 그렇게 얘길 해줘야 알지. 그나저나, 해외 로케라니. 멋지다. 이왕 가는 거 아주 할리우드까지 가버려~!”
유쾌하게 웃는 그를 보며······.
‘승결아, 넌 나중에 할리우드 가도 되겠다.’
‘부담 갖지마. 더 잘 할 수 있어.’
‘속상해하지 마. 나도 그렇게 갑자기 잘 안 될 때가 있다? 그럴 땐······.’
‘나는 연기가 참 좋다? 너도 그렇지 않니?’
나는 화수분처럼 떠오르는 기억을 마주한다.
환하게 웃는 양기전 배우를 보며 나도 입꼬릴 올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바쁠 텐데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 갈게!”
관리 안되는 내 표정 때문일까.
손을 휘적거리며 얼른 돌아서려는 그를 짧은 말로 붙잡았다.
“그···.”
“응?”
“또 봬요.”
“크윽, 감격.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여전히 환한 웃음으로 화답하는 양기전 배우.
······그가 김상억과 함께 떠나고.
나는 한참 동안 카페테리아에 앉아 생각했다.
모두가 함께 더 좋은 작품을 위해 나아가는 촬영장.
그곳에서 수많은 노력을 배신했던 과거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그때의 나는 어렸지만.
그래서 그런 선택을 했던 거지만.
지금의 나는 꽤나 커버려서.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모두 온전히 갖고 있어서.
“죄송해요.”
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작게나마 중얼거렸다.
······언젠간 크게 말할 날도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