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기대 (3)
하람 홍보팀의 사내 이미지는 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일들은 정말 잘하는데··· 정상은 아니야.’
아마 하람에 소속되어 있다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끌시끌 소란이 끊이지 않는 팀이지만, 배우들을 ‘홍보’하는 본업에 있어서만큼은 업계 최고의 성과를 보여준 것도 사실이니까.
역시나, 오늘도 홍보팀이 시끄러웠다.
그 근처를 지나치는 다른 팀 직원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회사가 놀이터인 것마냥 야단법석을 떠는 그들에게 완벽히 적응한 거다.
유일하게 자산관리팀 직원들만 그곳을 못 지나치고 까치발을 들어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혹시나 지난번처럼 모니터가 커피 샤워를 하고 있을까 봐.
그러다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갈 길을 간다.
······그런 복도의 사정은 전혀 모르는.
아니, 사실 신경조차 안 쓰는 홍보팀.
“200만!”
한 여직원이 모니터를 보며 소리쳤다.
직원들이 관심을 보이며 시선을 던지자, 잔뜩 흥분해있던 직원이 그제야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승결씨 뮤튜브 구독자 수가 딱 200만이에요!”
어떤 영화가 200만을 찍었나 궁금해하던 눈길들이 꽃길처럼 화사해졌다.
“벌써? 100만 된 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미쳤다. 얼른 찍어! 캡쳐해!”
“이러다 진짜 구독자도 천만 가는 거 아니에요?”
“영상이 스무 개도 안 되는데 이럴 수 있는 건가?”
다가오며 들썩이는 직원들.
200만을 외친 여직원이 웃으며 설명했다.
“외국인 구독자 수가 진짜 효자네요. 외국어 댓글이 웬만한 아이돌만큼 달리는 것 같아요.”
신나서 떠드는 직원에게 홍보팀장도 다가와 물었다.
“이번에 올라간 영상은 반응 어때?”
“아, 반응이요? 반응이······.”
드르륵, 드르륵 화면을 내린다.
그리고 잠시 멈칫.
손가락이 느려지고, 슬금슬금 홍보팀장 눈치를 보더니, 시선이 내려간다.
홍보팀장의 손에 들린 커피로.
“그것 좀 놓고 얘기하실까요.”
“그럴 순 없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제 모니턴데요.”
“회사꺼지.”
“회사 것이 제 것이죠.”
“오, 대표님이세요?”
으쓱거린 홍보팀장이 뒤를 돌아보며 직원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언더커버 보스셔. 인사드려.”
“하하하··· 안녕하세요.”
“아니, 진짜 인사를 하고 있네! 얼른 팀장님 좀 말려봐요!”
이를 지켜보던 남직원 중 한 명이 고참 직원에게 물었다.
“···커피를 뺏을까요?”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두 사람이 신호를 주고받는 동안, 홍보팀장이 서늘하게 묻는다.
“그래서. 뭐라는데.”
꿀꺽 침을 삼킨 직원이 하는 수 없이 털어놓았다.
“승결씨가 대역 없이 하고 싶다는 얘길 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대부분의 반응은 좋거든요? 근데 일부 댓글들이······.”
홍보팀장이 허리를 굽혀 모니터 화면을 훑는다.
직원은 포기한 얼굴로 말없이 마우스를 움직여주었다.
—연주를 직접 하는 건 좀······.
—요즘 기술도 좋아져서 대역 쓰는 게 더 깔끔하더만. 근데도 녹음까지 본인이 한다고?
—피아노를 오래 쳐서 그런지, 배우가 직접 하겠답시고 띵똥거리는 거 도저히 못 봐주겠던데;;
—백승결 배우 너무 좋아하지만, 이번 영화는 건너뛸게요.
댓글들을 확인한 홍보팀장의 눈이 희번뜩해졌다.
삼백안이 된 그녀가 펄쩍 뛰었다.
“아니, 이건 억지 아냐? 본 적도 없으면서! ‘악의 링’을 보고도 저런 소리가 나오나? 그것도 격투기가 어쩌구 하더니 결국 세계챔피언이 인정했는데?”
“···중간에 연습하는 장면이 조금 나왔거든요. 그게 초반에 연습한 거라 실력이 부족하다보니 그런 소리가 나온 것 같아요.”
“그걸 왜 넣었대?”
“반전을 위해서···?”
직원이 조심스레 추측하자 홍보팀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해는 갔다.
자신들도 ‘악의 링’에서 반전을 극대화하기 위해 백승결의 영상들을 뜸을 들였다가 풀었잖나.
그때 덩달아 다가와 댓글을 확인한 남직원이 갸웃거렸다.
“근데 그런 걸 떠나서 조금 의심스럽긴 하네요.”
기다렸다는 듯이 고참 직원도 덧붙였다.
“확실히 그렇지? 비난하는 내용도 빈약하고, 저런 댓글이 달린 시간대가 비슷비슷하잖아.”
홍보팀장의 흉흉하던 눈이 가늘어졌다.
“어디서 의도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
팔짱을 낀 홍보팀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마우스를 쥔 여직원에게 말했다.
“일단 댓글 캡처 떠놓자.”
“넵.”
끄덕거리며 빠르게 손을 움직이는 여직원.
돌아선 홍보팀장이 사뭇 비장한 눈으로 말했다.
“두고 보자고. 영화가 나와도 저렇게 얘기할 수 있는지······ 어? 근데 내 커피 어디 갔지?”
누군가 그녀가 잠시 내려놓은 커피를 숨기면서 모니터의 안전이 확보되었다.
두리번거리는 그녀에게 또 다른 직원이 타이밍 좋게 물었다.
“그나저나, 한서호 지휘자님하고, 천광윤 배우님은 언제 터트릴까요? 캐스팅 관련해서 기자들이 은근 떠보던데.”
“모른 척해. 어차피 천광윤 선배님은 자연스럽게 터질 거고.”
곧 바르샤바 거리에서 촬영이 시작될 거다.
그러면 아무리 지구 반대편이더라도 요즘 세상에 숨길 수 있을 리 없을 터.
“그러니 한서호라도 끝까지 숨겨야지. 그래야 개봉할 때 화제성을 한 번 더 끌지 않겠어?”
의미심장하게 웃은 홍보팀장이 고갤 돌려 창밖을 보았다.
“지금쯤 바르샤바 도착했겠네.”
그러더니 돌연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아니, 그나저나 현태 씨 돌아오면 면담 한 번 해야겠다. 의도는 알겠지만, 댓글 모니터링하면서 속 터지는 우리 생각도 좀 해줘야 할 거 아냐.”
#
“···뭐지.”
임현태가 캐리어를 끼익 멈췄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갸웃거렸다.
“왜 이런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공항을 나서던 그가 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지. 너무 행복해서 그런가.”
그때 옆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사.
“와······.”
김주철이 아이 같은 얼굴로 공항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팔뚝의 굵기와는 반비례하는 천진난만함이었다.
“진짜 존나······ 엇, 죄송합니다. 너무 예쁘네요.”
순간 툭 튀어나온 말을 얼른 주워 담는 김주철.
옆에서 김성운이 껄껄거리며 주의시켰다.
“이해는 간다만, 앞으론 입조심하는 연습해. 특히 유은하 로드할 땐 더더욱. 아이돌 팬들 중엔 그런 것까지 다 찍어서 올리는 팬들이 있거든.”
“네, 주의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안 피곤해? 너 유은하 일정 끝내고 바로 여기로 온 거잖아.”
“전혀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 피곤한 줄도 모르겠어요.”
씩 웃는 김주철을 보며 김성운도 따라 웃었다.
“하긴, 첫 해외면 그럴 만도 하지.”
김주철이 주억거리며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물론 해외여행이 처음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그것 말고도 너무 궁금하고 기대돼서요.”
“어떤 게?”
김성운이 묻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 한이연 감독과 대화 중인 백승결이 들어왔다.
“승결이 형 촬영이요.”
덩달아 고갤 돌린 김성운이 입꼬릴 올린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더니 그가 으쓱거리며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아마 여기 있는 모두······아니, 내일 촬영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럴걸.”
#
······우리는 공항에서 대절한 버스에 올라탔다.
도심까지는 애초에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는데,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나같이 흥미롭다 보니 더욱 순식간에 도착했다.
우리가 앞으로 머물 곳은 올드타운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유럽은 뉴타운이라 불리우는 신도심보다, 올드타운.
즉, 성당과 광장이 모여있는 구도심이 더 사람이 많고, 그만큼 호텔도 더 좋은 곳이 많다고.
어쨌든, 짐을 풀고 나니 아직 날이 밝았다.
비행기에서 모두가 잠을 충분히 잔 터라 눈도 말똥말똥했고.
게다가 첫 촬영은 내일 오후부터.
“모두 편하게 관광도 하고, 쉬고 그래요. 내일부턴 정말 강행군일 테니까.”
한이연 감독의 말에 배우들은 그녀의 앞에 말만 기억하기로 했다.
강행군은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어차피 올 테니까 말이다.
“가자! 오늘을 즐겨!”
“여기 앞에 전통 음식점이 그렇게 맛있다던데요?”
“거기서 일단 배부터 채우고 시작할까?”
“잠시만요. 관광 책자가······.”
한국에서 온 기자 역할을 맡은 배우들과 이인호의 측근 역을 맡은 배우들이 물 빠지듯 사라졌다.
몇몇은 유럽 여행에 흥미가 없는 듯 호텔 안에 있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나갔다 올게요.”
“배우들이랑 같이?”
캐리어를 정리하던 김성운이 묻는다.
이에 고갤 젓자 이번엔 옆에서 현태 형이 물었다.
“촬영지 훑어보려고?”
“응. 간단하게 둘러보고 올게. 아무래도 마지막 장면이 첫 촬영이라 오늘 감정을 잡아놔야겠더라고.”
적어도 나에겐 그다지 여유가 없었다.
당장 내일이 첫 촬영.
그런데 현지의 사정상, 그 첫 촬영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콩쿠르 결승 장면 말이다.
영화 내내 쌓아 올린 감정이 모여 폭발해야하는 클라이맥스를 가장 먼저 찍어야 한다는 점에서.
한이연 감독도 퍽 아쉬워했었지.
자칫 감정의 연속성이 촬영 순서로 인해 흐트러질까 염려한 거다.
‘뭐, 콩쿠르 결승을 찍을 콘서트홀이 이날만 사용 가능하다는데 어떡하겠어. 방법이 없지.’
그러니 나는 지금이라도 얼른 감정선을 쌓아야 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나름대로 경험자긴 하다.
영화 ‘대원군’에서 고종역을 이렇게 소화했었지.
그땐 내가 촬영하지 않았던 어린 고종의 장면들을 복기한 것이지만, 어쨌든.
···작은 가방에 여권과 현금 등을 챙겼다.
그러자 김성운이 다가와 보따리장수처럼 자신의 파우치를 펼친다.
“혹시 모르니까 하나 가져가.”
선글라스. 마스크. 모자.
안에 든 세 가질 확인한 내가 물었다.
“여기서요?”
“모르는 거다? ‘악의 링’이 좀 터졌어야지. 유럽에서도 시청시간 꽤 높았던 거 알지?”
유럽인데 그럴 일이 있으려나 싶다가 그의 마지막 말에 끄덕거렸다.
김성운 말대로 혹시 모르니 모자만 선택했다.
푹 눌러 쓰자 얼굴이 반쯤 가려진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도 못 알아보겠어요.”
“완벽하네.”
흐뭇해하는 김성운을 보며 피식 웃었다.
“다들 이따 저녁에 봐요.”
손을 흔들며 호텔 방을 나섰다.
로비를 가로질러 곧장 밖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스승이 이인호에게 나타나 했던 말을 상기했다.
—더 이상 이 앞에서 내가 가르칠 건 없으니······ 우리 나가서 좀 걷자.
더불어 천광윤 배우의 낮은 목소리로 그 대사를 떠올리며 회전문을 지나쳤다.
비로소 내디딘 거리.
순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 스승이 거리로 나가자고 했는지 알겠네.”
버스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르다.
골목, 골목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진다.
활기가 넘치지만 복잡하진 않고, 화려함이 낡아 고즈넉함을 풍긴다.
확실히··· 호텔 방 안에서 숨 막혀 하는 이인호에게 이만한 처방이 없었을 것 같지.
“순서대로 움직여볼까.”
경로는 콘티에서 봤던대로 광장과 성당을 지나, 가벼운 연주를 하게되는 악기점까지.
첫 촬영을 하루 앞두고, 나는 이인호처럼 바르샤바의 거리를 누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