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48시간의 위로 (2)
올드타운의 외곽, 뉴타운에 인접한 거리.
성 마리아 성당이 멀찍이 보이는 위치의 작은 악기점에서 점원은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건너편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해온 커피와 쇼팽의 연주곡을 들으며 SNS 삼매경이었다.
“어딜 놀러 갈까~.”
지금 가장 큰 관심사는 휴가를 떠날 장소.
다음 주 화요일, 수요일 이틀간 가게에서 영화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왕 휴점하는 김에 일주일 통으로 휴가를 낸 그녀는 SNS를 통해 여행지를 검색하고 있었다.
‘스위스야 뭐 두말할 것도 없이 자연경관이 끝내주고, 바덴바덴은 온천이 끝내주고 고성(古城)엔 유명 음악가들의 헌정곡들이······.’
쉴 새 없이 엄지를 밀어 올리던 그녀가 인기척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업라이트 피아노들 너머로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남자 손님이 눈에 들어왔다.
‘또 안 울렸나 보네.’
문에 걸어둔 스위스산 카우벨이 또 안 울렸나 보다.
아무래도 사장님이 사기를 당하신 것 같지.
스위스 제품이 저렇게 형편없을 리가.
혀를 차며 손님을 살폈다.
모자를 푹 눌러써서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동양인인 것 같았는데, 우두커니 서서 그랜드피아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인사를 건네기 어려운 분위기다.
타이밍을 놓친 그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손님이 손을 뻗어 피아노 위에 손을 올렸다.
“쳐보셔도 돼요.”
그제야 자신을 향하는 고개.
여전히 모자를 푹 눌러써 캡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우수에 젖은 눈빛일 것 같달까.
“저희 가게는 자유롭게 연주가 가능하세요.”
빙그레 웃으며 덧붙이자 멈칫거리던 그가 살짝 고갤 숙이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피아노를 내려다보며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긴, 이런데 들어와서 연주하는 것도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지.
결심을 마쳤는지 손님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모자를 벗어 옆에 올려놓는다.
“오···.”
작은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뭐야, 잘생겼잖아?
심지어 보면대 위에 올려진 악보를 보며 실소를 짓는데, 과하지 않게 말려 올라가는 미소가 퍽 매력적이었다.
자연스레 건반 위에 손을 얹는 손님.
피아노를 치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그런 별거 아닌 행동이었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아우라라고 해야 하나?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다.
모든 과정에 약간의 어색함이 있어 전문 연주자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 고즈넉한 거리를 배경으로 피아노들 사이에서 연주를 준비하는 손님의 모습은 꼭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혹시···.”
“네?”
점원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찍어드릴까요?”
손님은 딱 봐도 관광객이었다.
그렇기에 영상으로 남겨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아, 네. 감사합니다.”
허락을 받고서 카메라 어플을 틀어 영상 촬영을 시작하자, 선율이 시작된다.
······오, 한서호의 위로?
평소에도 좋아하는 연주곡이었기에 점원도 자연스레 연주를 감상했다.
유려하진 않지만, 담백하면서도 감정이 담긴······.
꽤 괜찮은 연주였다.
‘그래도 몇 년은 꾸준히 친 아마추어같네.’
그렇게 평가하며 핸드폰을 내렸다.
물론 비주얼 적으로는 웬만한 프로보다도 나았다.
잘생긴 것도 잘생긴 거지만, 사람의 분위기가 남달랐다.
“영상 엄청 잘 찍혔어요.”
“그런가요?”
“보통 이렇게 옆에서 찍고 있으면 사람이 막 얼어버리는데, 그런 게 전혀 없으시던데요?”
“오히려 찍히고 있다 생각하니까 더 잘 되더라고요.”
“오, 완전 무대 체질~.”
신기해하던 점원이 다가가 핸드폰 화면을 켰다.
“영상 드릴게요. 에어드롭으로 드릴까요?”
“······.”
대답이 없었다.
점원의 광대가 슬슬 올라간다.
이 남자, 뭐야. 에어드롭이 싫은 거면, 뭐··· 연락처라도 달라는 거야?
헤실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손님의 표정과 마주했다.
그의 표정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에어드롭······.
그거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
우여곡절 끝에 영상을 보내주었다.
잠시 설렜던 마음도 같이 보내주었다.
“아,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 영상, 제 SNS에도 올려도 될까요? 분위기가 너무 좋았거든요.”
“그럼요. 괜찮습니다.”
의외로 흔쾌히 허락한 손님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악기점을 나갔다.
“쩝.”
입맛을 다시며 다시 가게 구석에 앉은 점원.
아쉬움을 달래려 방금 찍은 영상부터 SNS에 올렸다.
[몹시 인상적이었던 손님···. 좋은 연주 잘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원래의 고민으로 돌아왔다.
어디로 휴가를 갈 것인가···.
“아, 온천도 땡기는데. 만하임이랑 바덴바덴 이렇게 빙 돌고 올까.”
다시 SNS를 뒤적거리며 여행지를 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띠링—!
붉은색 알림 배지가 떠올랐다.
“처음 보는 아이딘데?”
그리고 다음 순간.
띠링—! 띠링—! 띠링—!
갑자기 알람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그녀가 쉴새 없이 떠오르는 알람 배지를 바라보다가 얼른 자신의 피드를 확인했다.
방금 올린 게시물이 문제였다.
아니, 문제라기엔······.
“이, 이거 뭐야.”
좋아요와 댓글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
백승결의 연주 영상이 팬들 사이에 퍼져 SNS를 달군 다음 날.
이른 비행기로 천광윤이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다른 작품 촬영을 마치자마자 곧장 비행기에 올라타 날아온 그였다.
정작 촬영은 내일부터라 이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는 일부러 더욱 타이트하게 움직였다.
이에 매니저가 그를 걱정했다.
“피곤하지 않으세요?”
“어때 보이나.”
으쓱거리며 캐리어를 끄는 천광윤.
옆에서 나란히 카트를 밀던 매니저가 천광윤의 얼굴을 보며 솔직하게 답했다.
“······전혀 안 피곤해 보이세요.”
“맞아. 지금 전혀 피곤하지 않아. 오히려 컨디션이 좋네.”
천광윤 스스로가 보기에도 그랬다. 문득 거울 앞을 지나치다 본 자신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중년의 끝자락에 있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의태어였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토록 전율했던 한 아이가 연기마저 무르익어 돌아왔다.
‘해별이네’때의 충격을 다시 느낄 기회.
그러니 어떻게 피곤할 틈이 있겠나.
게다가 백승결에게 묻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지금은 오로지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 다른 얘길 나누지 않았지만, 작품이 영화관에 걸리면 그땐 물어볼 수 있겠지.
···그간의 의문을.
“촬영장으로 가시겠어요?”
“아니. 우선 자네 먼저 가 있게.”
가벼운 짐과 대본을 챙겨 배낭에 옮겨 넣는 천광윤.
그가 가방을 메며 매니저에게 말했다.
“난 다른 곳들을 미리 좀 둘러봐야겠어. 그래야 오늘 촬영을 더 제대로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영화를 촬영하러 온 게 아니라, 촬영을 구경하러 온 사람 마냥 말하는 천광윤에 매니저가 헛웃음을 머금고 끄덕였다.
“그럼 현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천광윤이 손을 휘적거리며 나아간다.
그가 바르샤바의 올드타운을 한 바퀴 돌고서 촬영장인 오케스트라 콘서트홀에 도착하자.
이제 막 촬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화려한 무대와 수많은 연주자들.
그 아래에 보이는 관객들까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무대 아래에서 진두지휘 중인 한이연 감독에게로 다가갔다.
“대단한 광경이군.”
“어, 선배님. 오셨어요?”
그를 반긴 한이연 감독이 새삼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굉장하죠?”
“그러네. 우리 감독님, 정말 바르샤바 필하모닉의 콘서트홀을 섭외하실 줄이야.”
“사실 저도 전혀 예상 못 했어요. 제안을 하면서도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죠. 실제로 이쪽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어떻게 가능하게 만든 거지?”
천광윤의 물음에 한이연 감독이 씩 웃었다.
“한서호가 이 영화에 참여한다는 걸 슬쩍 흘렸죠.”
허, 하고 웃음을 터트린 천광윤이 이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안되는 걸 되게 하는 거장이라니······. 역시 대단한 음악가네.”
이에 한이연 감독이 끄덕거리며 덧붙였다.
“한국의 배우들 중에서도 그런 거장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더라고요. 이 배우가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디든 프리패스가 되는.”
“아마··· 곧 나오지 않겠나.”
“그러려나요?”
한이연 감독의 말꼬리가 올라가기 무섭게, 무대 뒤쪽에서 백승결이 올라왔다.
“예를 들면 저렇게요?”
한이연 감독이 웃으며 묻자, 천광윤도 입꼬릴 올렸다.
두 사람이 웃는 사이, 백승결이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한이연 감독이 언제 실없이 웃었냐는 듯 감독 모먼트를 보이며 필드모니터 앞에 앉는다.
그녀는 무전기를 들어 올렸고.
천광윤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고, 백승결의 손이 건반 위로 떨어져 내리며···.
———!
마침내,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
“주말 동안 아주 난리가 났더라고요.”
하람의 팀장급 이상 회의에서 홍보팀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SNS에 올라온 백승결의 피아노 연주 영상이 여기저기 퍼지며 큰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대역 없이 연주하는 거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얘긴 쏙 들어갔겠네.”
1팀장의 물음에 홍보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어떡해서든 트집 잡으려는 사람들 있잖아요. 아, 근데······ 이번엔 그게 너무 과한 느낌이 있네요. 백 배우한테 안티 카페가 생겨서 좌표 찍고 몰려온 줄 알았다니까요.”
“꽤나 의도적인 느낌이다?”
“쎄~ 해요.”
눈을 좁히며 슬쩍 옆을 보는 홍보팀장.
김성운이 백승결을 따라 해외로 나가며 그 대신 참석하게 된 최영기 실장이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
살짝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데, 본부장이 말했다.
“그나저나 콩쿠르 결승 장면 촬영한 것도 대단했다면서.”
“그렇다더라고요. 현지에서 스태프들 다 뒤집어졌다나. 그 장면이 워낙 영화 속에서 중요하다 보니, 영화 촬영이 아예 끝난 분위기였대요.”
덧붙여 설명하는 홍보팀장도 대체 어땠는지 몹시 궁금한 얼굴이었다.
그때 방금 전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던 최영기 실장이 뾰족한 목소릴 냈다.
“아니, 배우가 연기로 화제가 되는 게 아니라 연주로······ 그 정도면 그냥 연기자가 아니라 연주자라고 불러도 되겠어요. 하하하.”
우스갯소리인 양 웃음을 덧붙이는 그.
홍보팀장이 건조한 말투로 툭 내뱉었다.
“그런 걸 올라운더라고 하죠.”
그러고서 최영기 실장을 바라보며 얼른 덧붙였다.
“아 이러면 또 홍보팀이 백 배우만 예뻐한다고 하시려나~.”
우스갯소리인 양.
“······.”
지은 죄가 명확해 합죽이가 된 최영기 실장이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다음 순간 회의실에 웃음소리가 흘렀다.
하람의 로고를 등지고 안자, 잠자코 회의를 지켜보던 하선경 대표였다.
“잘하는 배우에 대해 홍보팀이 할 말이 많은 건 당연한 거죠. 안 그래요, 최 실장님?”
“아, 예 뭐···.”
“물론 우리 신승찬 배우가 못하고 있단 얘긴 아녜요. 오히려 너무 잘하고 있죠. 그래서 홍보팀도 계속 노력하고 있고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되었다는 듯, 빙그레 웃어 보인 하선경 대표가 모두를 보며 말했다.
“하던 얘기 마저 해보죠. 이제 곧, ‘악역’이 공개돼요. 이쪽 반응은 좀 어때요?”
순식간에 회의 분위기를 휘어잡은 그녀의 물음에 홍보팀장이 말했다.
“멀티온 쪽에서 워낙 적극적으로 홍보 중이라 전 세계적으로 반응이 괜찮아요. 특히 우리나라에선 ‘48시간의 위로’ 덕분에 관심이 마를 날이 없어요. 이쪽에서 계속 무언가를 터트려주고 있으니 ‘악역’은 백승결이라는 키워드로 묶여서 계속 언급되는 거죠.”
“그럼 이제 반대로 ‘악역’ 차례겠네요.”
하선경 대표의 말대로였다.
지금까진 시간상 늦게 촬영에 들어간 ‘48시간의 위로’가 앞에서 끌어주는 입장이었다면.
이제 곧 ‘악역’이 개봉하게 되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48시간의 위로’의 홍보를 ‘악역’이 담당하게 될 터.
“맞아죠. ‘악역’이 성공할수록 ‘48시간의 기적’에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악역’은 성공할 거고요.”
하선경 대표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확언했다.
그리고 그녀와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대표가 저렇게 확신에 찬 얼굴을 할 때면 마치 신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틀리는 법이 없다는 것을.
그녀의 ‘감’.
스타 배우도 없이, 몇 안 되는 배우들로 시작한 하람이 단기간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물론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배우들이 많아지면서, 팀장들에겐 꽤나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팀장들의 얼굴에도 기대가 올라간다.
그들을 보며 하선경 대표가 이어서 말한다.
“그러니 보다 중요한 건······.”
이번엔 그녀의 얼굴에도 기대가 가득했다.
이것만큼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다는 듯이.
“과연, 얼마나 성공할 것이냐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