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파급력의 끝에서 (2)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투박한 손이 내려가고, 웅장한 협주가 잦아들었다.
음압에 꽉 차 있던 공간이 숨을 토해낸다.
“잠깐 쉬었다가 가지.”
지휘자의 말에 단원들이 일제히 각자의 악기를 내렸다.
단상 위에서 내려와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지휘자를 바라보던 단원들이.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긴장을 풀었다. 자연스레 밀렸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래서, 이번 휴가엔 어디 갈 생각이야?”
“고작 일주일밖에 안 되잖아. 횡단은 무리고······ 프랑스 칸이나 가볼까? 마침 칸 영화제도 열리니까.”
“그거 티켓 구하는 게 하늘에 별 따기라던데.”
“누가 영화 보러 가냐. 그냥 축제 분위기 즐기러 가는 거지. 운 좋으면 연예인도 보는 거고.”
“오, 좀 끌리는데? 이번에 나도 휴가 때 계획 없는데. 같이 갈까?”
“이럴 게 아니라 아예 다 같이 가는 거 어때?”
그러자 맞장구치던 단원이 정색하며 물었다.
“마에스트로까지···?”
“‘거의’ 다 같이로 하자.”
“그거 좋네.”
손가락을 튕기며 하하 웃는 그들.
이렇듯 여기저기서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중에.
한국인 연주자들의 귀에 유독 쏙 들어오는 주제가 있었다.
“요즘 ‘악역’이라는 드라마가 재밌다던데?”
“그래? 어디서 하는 건데?”
“멀티온.”
“아 OTT였어? 미드?”
“아니, 한국 드라마.”
특히 런던필(—런던 필하모닉)의 악장이자, 한국인 연주자들 중 가장 경력이 많은 윤지안에겐 퍽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한국인 유일 런던필 연주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수많은 후배들이 클래식계를 휘젓기 시작했고.
런던필에도 어느덧 한국인 연주자가 여섯 명이나 들어왔다.
클래식을 대표하는 나라들 중 하나로 완전히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물론 아직 ‘아는 사람들만 아는’ 느낌이 강했지만.
중요한 건 그 ‘아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
이제는 이곳 런던필에서까지 한국 드라마 얘길 듣게 될 줄은 상상 못 했던 윤지안이었다.
“신기하네.”
무심코 내뱉은 감탄사에 옆에서 바이올린을 관리하던 또 다른 한국인 연주자가 반응했다.
“그러니까요. 너무 신기하네요. 매스컴만 떠드는 한류가 아니라 진짜 한류가 시작된 것 같아요.”
주억거린 윤지안이 다시 단원들에게로 귀를 기울였다.
어느새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를 넘어 영화로 이어지고 있었다.
“클래식을 주제로 한 영화?”
“응. ‘48시간의 위로’라고 이번에 개봉 예정인 영화인데, 스토리 라인 보니까 나쁘지 않겠더라고. 조금 걸리는 점은 연주 장면을 대역 없이 한다는 건데···.”
“쇼팽 콩쿠르가 배경이라며?”
“피아니스트 출신인가?”
“그건 아닐걸.”
단원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괴이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의사들이 의학 드라마에 헛웃음을 짓고, 변호사들이 법정에서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승소하는 걸 보며 채널을 돌리듯.
연주자들에게도 다소 그런 부분이 있었으니까.
“근데 연주 꽤 괜찮더라고. 이거 봐봐.”
어디서 명예 한국인을 수여라도 받은 건지 단원 한 명이 아까부터 열심히 한국 컨텐츠를 홍보 중이다.
“이건 어디야?”
“바르샤바에 있는 악기점인데, 촬영 중간에 돌아다니다가 연주한 게 우연히 찍혔나 봐.”
“오, 나쁘지 않은데? 기본기가 확실히 있네. 그래도 꽤 오랫동안 취미로 쳐온 배우인가 보다.”
“그치? 캐스팅 잘한 거 같아.”
“어, 이 배우 ‘악의 링’ 배우 아닌가? 잠시만······ 맞네! 서귀호!”
“서··· 뭐? 유명한 사람이야?”
“이 사람이 ‘악의 링’이란 드라마에서 악역이었거든. 근데 격투기를 너무 잘해서 세계챔피언이 언급하고 그랬었어.”
다른 단원이 알아보자 신이 난 명예 한국인(?) 단원이 들썩거렸다.
“맞아. 그다음엔 또 미술 관련 영화였는데, 그때도 그림 실력이 장난 아니었나 봐. 엄청 연습했다던데.”
“연기에 완전 진심인가 보네.”
“그런 배우들 있잖아. 본인이 직접 해야만 만족하는.”
“톰 크루즈 같이?”
“그거지.”
살짝 회의적인 뉘앙스를 풍기던 단원조차 다른 이들의 말에 조금씩 자세를 바꿨다.
“그 정도면 볼만하겠는데?”
“그렇다니까. 한국에서 엄청 유명한 배우라고.”
명예 한국인이 뿌듯해하며 귀를 쫑긋 세운 윤지안을 찾았다.
“악장님!”
“응?”
“백승결이라고 아시죠?”
반짝거리는 눈을 보며 윤지안이 끄덕였다.
“알지. 유명한 아역 출신이었거든.”
“해리포터의 다니엘 같은 느낌인가요?”
“음······ 비슷하지.”
물론 영화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지만.
이마에 흉터가 난 소년이 코 없는 남자를 두 번 죽이는 영화와.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소년이 자신의 마을을 지키려는 고군분투의 이야기는 내용부터가 많이 다르잖아.
그때, 지휘자가 돌아왔다.
단원들이 언제 떠들었냐는 듯 소리를 죽였다.
저벅저벅 단상에 오른 그가 흠흠 헛기침을 하며 악보를 넘긴다.
그러다 갑자기 단원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들 그 소식 들었나?”
일순 모두가 긴장했다.
진중한 성격을 넘어 과묵··· 아니, 그냥 평소 말이 없는 지휘자가 사설을 꺼내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으니까.
“이번에 영화가 하나 만들어졌다는데, 이름이······.”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낸 그가 무언가를 찾는다.
명예 한국인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슬그머니 물었다.
“‘48시간의 위로’요?”
“오, 아는군?”
“아까 쉬는 시간에 다들 그 얘기 중이었거든요.”
“그럼 내가 늦은 건가? 방금 나온 소식이라 전해주려 했는데, 아쉽게 됐군. 그나저나 정말 기대가 되는군.”
갑자기 영화 얘기라니.
오랫동안 그를 봐온 윤지안 조차도 의아해졌다.
나머지 단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마에스트로도 백승결 팬이셨어요?”
“음? 아, 혹시 그 영화의 주인공을 말하는 건가? 들어본 적은 있다만···.”
“에? 아닌가요?”
갸우뚱하는 명예 한국인을 보며 오히려 지휘자의 고개가 더욱 기운다.
그가 푸른 눈으로 좌중을 훑더니 금세 분위기를 파악하곤 옅은 미소를 짓는다.
“아무래도, 다들 모르는 것 같군. 그 영화의 OST를 맡은 이가 누군지.”
“···?”
이어서, 지휘자의 입이 달싹였다.
“······.”
그리고 그 이름을 들은 모두가 벙찐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농담은 아닌 것 같지. 마에스트로가 그럴 위인이 아니잖아.
“미친···.”
무려 지휘자 앞에서 누군가 욕을 툭 흘렸다.
그런데도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지휘자조차도.
그럴 만 하다는 표정으로 단원들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방금 전 볼만하겠다고 평했던 단원이 중얼거린다.
“볼만한 정도가 아니겠는데······.”
“당연하지! 이건 꼭 봐야지!”
“대체 얼마 만에 선보이는 곡이야?”
“그러게. 신곡이라니! 세기의 천재가 영화 음악으로 돌아온다니!”
순식간에 콘서트홀이 떠들썩해진다.
악기가 아닌 목소리로.
기대감으로.
이를 바라보며 윤지안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기시감이었다.
마치 한국의 클래식계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계도 서서히 장막을 걷어내고 있었다.
세계라는 무대에 올라서서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잘 해줬으면 좋겠네.’
그녀가 속으로 응원했다.
한 명의 거장의 탄생이 한국 클래식계를 바꿔놓았던 것처럼.
‘48시간의 위로’라는 영화가 무대 위에서 뜨거운 박수 받을 수 있길.
일단은······.
클래식계. 아니, 음악계만큼은 뜨거울 예정이었다.
위대한 음악가가 복귀했으니.
#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은 욕이 섞이는 것 말고는 없을 정도로.
특히나 국내외 음악계가 들썩거렸다.
그야말로 신곡(神曲)이라며, 유명한 비평가들 조차도 SNS에 기대 어린 감상을 보냈다.
한편, 한국의 대표 클래식 잡지사.
월간청중.
“나 기사를 못 쓰겠는데.”
“왜?”
“뭐라고 써. 한서호가 돌아온다니! 나 돌아버려! 뭐 이렇게 써?”
“흐흐흐. 그러면 조회수는 잘 나올 듯.”
“나도 이 회사에서 잘 나가게 될 듯.”
끅끅 대고 웃는 동료를 보며 지금 진지하다고 어필하던 기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나 편집장님 좀 뵙고 올게.”
“어차피 나갈 거 사표를 먼저 쓰게?”
“그건 아직. 편집장님이 한서호랑 친분이 있으니까 뭐라도 아시지 않을까 싶어서.”
그 길로 편집장실을 찾은 기자.
그가 문을 두드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편집장님! 소식 들으셨어요?”
이에 편집장 최성령이 ‘잠시만’이라며 통화를 이어간다.
기자가 입을 닫았다. 어쩐지 통화 상대가 지금 음악계를 들썩거리게 하고 있는 장본인일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까······.”
편집장이 흥미롭다는 듯 말꼬릴 늘리더니.
“네가 영화 음악에 다시 돌아온 게, 백승결 배우 때문이라고? 자세히 얘기해줄래?”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행복해하고 있다. 그건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의 음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음악으로 어떤 이야길 할 수 있을지, 그것에도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최근, 아주 오랜 친구가 가져온 어떤 이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글의 주인이 출연하는 영화의 OST를 맡게 되었다.
글을 보는 순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선 내가 할 이야기가 있겠구나.
한서호와 전화 인터뷰 中⌟
—그러니까 백승결이 글로 한서호를 꼬셨다?
—할리우드 감독들도 못 한걸? 섭외력 무엇···.
—대체 어떤 글이었길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백승결 배우가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관해 쓴 글이었다고 합니다. 아주 좋은 기사네요. 퍼가요~♡
⌎그런 소문은 어떻게 듣는 거죠? 혹시 관계자?
—천광윤도 백승결 때문에 스케줄 억지로 조정해서 촬영했다고 하지 않았음?
—주연 백승결, 홍보팀 백승결, 스카우터 백승결··· 그는 대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파급력이었다.
영화에 감사하다며 굿픽처스에 각국의 언어로 된 응원 편지가 도착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악역’의 흥행으로 날개를 달았다고 생각한 ‘48시간의 위로’가 이젠 로켓을 달았다.
그만큼 한이연 감독의 부담감도 커져갔다. 로켓은 불발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테니까.
그럼에도 영화 개봉 준비는 예정대로 착착 이어졌다.
아무래도 한이연 감독이 그 부담감을 일로써 푸는 중인 것 같았다.
그렇게 편집이 80%가량 완성되자, 박 대표가 아쉬운 목소릴 냈다.
“생각보다 빨리 완성되겠네. 이럴 때 딱 개봉했어야 하는데. 퀄리티에 신경 쓴다고 개봉날짜를 너무 늦게 잡았나.”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는 말도 있잖나.
그런데 오늘은 박 대표의 입장이 완전히 달라졌다.
“오히려 좋아. 그러니까 해보자.”
박 대표의 말에 한이연 감독이 미간을 찌푸린다. 퍽 난감한 표정이었다.
방금 대표실에 들어와 이야기의 전말을 모르는 나는 두 사람을 보며 멀뚱거렸다. 뭘 해봐?
“진심이세요?”
“그럼 뭐 농담이겠어? 충분히 가능성 있어. 해보자.”
“아니, 정말 가능하다고요? 나 이제 상업으론 두 번째 작품인데?”
혼란스러워하던 한이연 감독이 나를 보며 눈을 반짝인다. 이게 말이 되냐는 듯이.
나 방금 들어와서 무슨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전작이 천만인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한국에서나 천만이 먹히죠. 아니, 그리고 아직 편집이 안 끝났잖아요.”
“아직 2주나 남았어. 충분히 끝낼 수 있잖아. 게다가 우리 주연이 누구야.”
한이연 감독이 다시 날 바라본다. 그러더니 살짝 미간이 펴진다. 갑자기 용기를 얻은 표정이랄까.
“······승결이죠.”
“인지도도 해결됐네! 해보자. 내 평생소원이었다고.”
“이런 식으로 출품해도 되는 거였어요?”
“당연하지.”
그래서 대체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가만, 출품?
워낙 열띤 토론 중이라 끼어들 틈을 못 찾고 있었는데, 이젠 안 되겠다.
내가 설마 하는 게 맞는지 알아야겠어.
“잠시만요. 지금 두 분이 고민 중인 게 혹시······.”
두 사람이 날 보았고, 나도 그들을 보았다.
정확히는 그들의 표정을. 아무래도 맞는 것 같지.
평소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일이라 머릿속이 텅 빈 듯 멍해진다.
이어서,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