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2)
그래, 저거였어. 저거 (4)
“방금 끝났답니다.”
조연출의 목소리에 다음 씬을 준비하다가 멈칫했다.
소리가 그리 크지도 않았고, 거리도 멀었는데 무슨 이어폰을 낀 것처럼 귀에 팍 꽂혔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갤 돌리니 조연출이 유종원 PD에게 말하고 있었다.
“반응 보실래요?”
잠시 머뭇거리던 유종원 PD가 못 참고 손을 뻗는다.
“줘봐.”
옆에서 초조해하던 서은영 작가는 이제 방송국가서 원고 집필해야겠다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발을 떼지 못한다.
유종원 PD의 표정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윽고, 태블릿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화면 이곳저곳으로 굴러다니던 그의 눈동자가 느려지고,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활처럼 휜 입을 보며 서은영 작가가 도로 자리에 앉았다.
“왜요? 반응이 괜찮은가 보죠?”
“어떨 거 같아.”
덩달아 스태프들의 시선도 하나둘 몰려든다.
나라고 신경이 안 쓰일 리 없었다.
처음으로 유종원 PD가 얄밉다. 대체 어떤데!
몇몇 제작진은 아예 못 참고 핸드폰을 뒤적거린다.
“와, 기사 엄청 올라오네요?”
“실시간 반응은 또 어떻고요. 오히려 드라마 방영 중일 때보다 글 올라오는 속도가 빠르다는데요?”
“입소문 제대로 퍼졌나 보네.”
“확실히 승결 배우님 얘기가 많네요.”
서은영 작가도 유종원 PD 손에 들린 태블릿을 뺏어 이에 동참한다. 어머, 어머 소릴 내며 반응들을 훑는다.
옆에서 홀가분한 표정으로 껄껄거리며 웃던 유종원 PD가 나를 찾았다.
“승결씨도 반응 볼래?”
“아뇨. 전 촬영 끝나고 보겠습니다.”
지금 봤다간 마구니가 낄 것 같거든.
찌개처럼 보글대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고, 촬영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CP님 전화가 왔다느니, 시청률이 9%에서 시작해 13%로 끝났다느니.
첫 방송의 결과가 틈틈이 들려왔지만 초인적인 힘으로 촬영에 집중했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자마자 대기실로 향해 옷도 갈아입지 않고 핸드폰부터 두드렸다.
그러다 반응을 목전에 두고 손끝이 멈칫한다.
[천재라 불렸던 아역, 해별이. 발연기의 원인은 부담감인가> [처참한 결과. 해별이만의 문제일까>과거의 나를 괴롭혔던 신문 기사들이 스크랩되어 있는 것마냥 머릿속에 떠올랐다.
‘봐도 될까?’
연기를 못했던 건 내 선택이었지만, 그에 대한 비난까지 감내하기엔 너무 어렸기에.
나는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어.’
돌아온 것 또한 내 선택이다.
그리고 이젠 어떤 비난도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
돌아보니, 연기를 하지 않고 지냈던 그 무료한 시간들이 내겐 더욱 지독했기에.
그러니 다시 돌아온 이상, 결과는 전혀 다를 거다.
제대로 해볼 생각이니까.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작은 화면에 수많은 반응들이 떠오른다.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 보급률도 낮았던. 종이 위에 찍힌 몇몇 기자들의 평가와는 느낌이 전혀 다른, 날 것 그대로의 반응들.
제작진들이 왜 그렇게 난리였는지 알겠다.
드라마에 대해선 대부분 재밌다는 반응이다. 온갖 막장 요소와 밥 말아 먹은 개연성이 주류였던 연속극 사이에서 단비 같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거기에 시청률까지 가파르게 상승했으니 더할 나위 없겠지.
물론 드라마 얘기만큼이나 많은 게, 내 얘기였다.
—와, 백승결은 상상도 못 했다. 배우 숨긴다는 얘긴 들었는데, 이래서였구나.
—갑자기 나와서 깜짝 놀랐네요. 해별이네 가장 좋아하는 영환데!
—근황 마라톤에서 보고 너무 잘 크셔서(?) 다시 돌아오시려나 했는데, 역시나! 계속 볼 수 있게 되어 좋네요 ㅎㅎ
—백승결이 누군데? 웬 듣보잡에 아줌마들 호들갑은.
—아가는 EBC 보러 가렴.
—요즘은 EBC도 수준 높아서 저런 애들은 두니버스로 가야 할 듯.
—백승결이 나왔다는 기사보고 엄마한테 말했더니 바로 KNS 트시더라. 나도 해별이네 한 번쯤 들어본 영화라 같이 앉아서 봤는데 재밌어서 계속 봄 ㅋㅋㅋ
—근데 해별이 백승결이면 예전에 연기 못해서 욕 존나 먹고 사라진 아역 아님?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가. 연기 괜찮은 거 같던데?
—등장하는 장면들이 짧긴 했는데, 그래도 저 정도면 연기 잘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대중의 반응에서 그치지 않았다.
기사가 어선의 그물마냥 줄줄이 딸려 올라온다. 눌러봄 직한 제목으로 꽃단장을 하고서.
[서은영 작가의 히든 캐릭터는 해별이었다> [대한민국 첫 천만 영화의 주인공 해별이가 일일드라마에. 시청자들 제대로 놀랐다> [해별이 백승결, ‘종갓집 막내딸’ 안주연으로 돌아왔다, 연기 어땠나?> [해별이’ 복귀작, 종갓집 막내딸’ 시청률 11%로 순조로운 스타트>첫 회 비중이 적은 탓에 평가를 보류하는 이들은 더러 있었지만, 그리 나쁜 얘긴 없다.
안도보단 실감이 먼저였다.
중독될 수밖에 없는 강한 희열을 주기도 하고, 갑자기 돌변해 날카롭게 찌르기도 하는.
양날의 검. 대중의 관심 위에 내가 다시 한번 올라섰구나.
세 번째였다.
‘해별이네’가 개봉했을 때 한번.
이후로 발연기의 향연을 뽐내며 줄줄이 영화가 망했을 때 또 한 번.
그리고, 지금.
#
다음날.
평소처럼 준비하고서 촬영장으로 향한다.
그전에 우유를 사러 슈퍼에 들르는 건 이젠 익숙한 코스였다.
촬영이 많아지니 따로 장 볼 시간이 없어.
“안녕하세요.”
역시나. 시크한 할머니는 대답 같은 건 없다.
그저 낡은 티비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드라마 삼매경일 뿐.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티비에서 흘러나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계속할 거야? 미래가 보장되는 일은 아니더라도 남들 보기에 떳떳한 일을 해야······.⌟
자연스레 시선을 돌린다. 언젠가 내가 들었던 말이라서.
데자뷔··· 일리는 없고.
촬영 중에 내가 들은 말이었다. 정확히는 안주연이.
‘케이블에서 재방송 중인가 보네.’
화면 속에선 ‘종갓집 막내딸’이 방영 중이었고, 나는 그 안에서 엄마의 걱정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950워······.”
우유를 계산대에 내려놓는데, 무심하게 가격을 말하던 할머니가 멍하니 날 바라본다.
그 시선이 티비로 옮겨갔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몇 번의 왕복 끝에, 할머니가 툭 내뱉었다.
“워매, 닮았네.”
“······.”
돈을 지불하고 나왔다. 우유팩에 빨대를 꽂는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중의 관심 위는 무슨.
이 상황이 지금 난 너무 웃겼고.
“갈 길이 머네.”
더욱 욕심이 났다.
#
‘유 PD! 새로 들어간 거 조짐이 좋던데?’
‘일일연속극도 요즘 시청률이 예전 같지 않은데, 한번 일내는 건가?’
‘백승결은 진짜 의외였어. 그런 생각을 어떻게 했대?’
오늘 유종원 PD가 방송국에서 들은 말들이었다.
1화에 11%로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한 ‘종갓집 막내딸’이 2화에선 껑충 뛰어 14%를 찍더니 3화에서도 두 계단 상승한 16%에 안착했다.
최고 시청률은 20%에 육박한다.
백승결로 인한 화제성에 반짝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대로라면 20%대에 안착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란 전망이었다.
그걸 윗사람들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CP가 세트장까지 내려와 커피를 쏘고 돌아갔지. 국장님이 아침에 칭찬을 그렇게 했다면서.
그러니 제작진들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한껏 업되어 있는 것도 당연했다.
기분 좋게 오전 촬영을 마친 유종원 PD가 뒤를 돌아봤다.
눈을 끔뻑이다 오늘 처음으로 이맛살을 찌푸린다.
“강현아. 너 안가니?”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그러니까요. PD님, 저희 좀 쫓아내 주세요.”
이강현의 매니저가 울상을 지으며 간청한다. 이에 질세라 이강현이 다가와 호소했다.
“PD님, 저 해별이네 엄청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백번도 더 봤다구요. 저만 그 배우가 출연하는 거 몰랐던 것도 억울한데, 한씬만 보고 갈게요. 방해 절대 안 해요.”
유종원 PD가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두야. 신경 꺼야지. 내가 쟤 소속사 대표도 아니고.
근데······.
“최지연 넌 또 왜 안가?”
“저도 조금만 보려고요. 오늘 장면이 궁금해서 갈 수가 있어야죠. 작가님이 이 부분 리딩하는 거에 반했다면서요.”
“아니, 뭔 배우들이 촬영만 하면 집엘 안가. 다들 한가해? 나랑 서 작가가 나름 핫한 배우들로 캐스팅했던 거 같은데, 아니었어? 그새 식은 거야?”
그들의 옥신각신에도 촬영장은 계획대로 흘러간다.
이윽고, 모든 촬영 준비가 끝나고 옷을 갈아입은 백승결이 세트장에 섰다.
뒤이어 나온 중년 여배우가 그의 앞에 서서 흐뭇하게 웃다가, 슛 소리와 동시에 사납게 변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엄마가 자식 걱정하는 게, 그렇게 나쁜 거니? 이제 제대로 된 직장 구해서 결혼도 해야 된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자꾸 해준 게 뭐가 있냐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못 한 건 대체 뭔데. 아버지가 해외 건설 현장 전전하면서 너희들을 어떻게 가르쳤는데! 근데 네가 어떻게···!”
그리고 다음 순간.
“나,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어.”
중년 배우의 목소리가 뚝 끊기고.
백승결을 이곳에 서게 한 그 대사가 세트장에 울렸다.
내려앉은 침묵.
리딩이 아무리 인상적이었다고 한들, 지금과 비교할 순 없었다.
점차 서사를 쌓은 뒤에 터트리는 갈망은······.
절제되어 있지만 강렬했고, 담담했지만 서글펐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보다 멀어지는 속도가 빠를 때 느껴지는 좌절. 그리고 간절함.
언젠가 과거에 느꼈던 익숙한 감정들에, 최지연과 이강현은 마냥 감탄만 하진 못한다.
그들이 입을 벌린 채로 만감 속에 떠도는 사이.
필드 모니터로 연기를 지켜보던 유종원 PD가 희열에 가득 찬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저거였어.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