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칸 (3)
며칠 전부터 칸에 거점을 두고 현지 상황을 전하던 영화 전문 기자들.
그들이 하나둘 노천카페에 몰려들었다.
매년 여러 영화제에서 만나고, 밤이면 맥주 한 잔씩 걸치던 사이들이라, 딱히 약속을 잡지 않았어도 편하게 다가가 수다를 떨었다.
“후아···.”
그러던 중, 뒤늦게 한 기자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영국 잡지사에서 온 이안.
나머지 기자들이 그를 반겼다.
“이제 온 거야? 카메라 어디에 세팅했어?”
“저쪽. 그래도 다행히 자리가 있더라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슥 닦아낸 그가 의자에 앉아 맥주를 주문한다.
“아니, 근데 왜 이렇게 늦었어?”
“말도 마. 편집장이 기사 보내 달라고 하도 보채서 그거 마감하고 왔어.”
“초고를?”
“아니, 그냥 완성을 해달라더라고.”
이안의 대답에 다른 기자들이 일제히 분개했다.
“아니, 사진 찍어서 초고 작성해서 보내주면 됐지. 여기서 완성까지 해서 보내라고? 그 편집장 미친 거 아니야?”
“그러게. 확실히 정상이 아니군. 혹시 콧수염 있어?”
“지금 조나 제임슨 편집장(—스파이더맨을 괴롭히는 밉상 편집장) 생각했지?”
“꼭 거지 같은 편집장은 콧수염을 기르더라고.”
낄낄거리는 기자들 사이에서 옆에 앉은 미국인 기자가 잔을 들어 올렸다.
“아무튼, 고생했네.”
그와 맥주 잔을 맞부딪히고, 이안은 한숨 돌리며 뤼미에르 대극장을 바라보았다.
레드카펫 주변에 자신들이 세워둔 카메라들. 그보다 넓게 쳐진 펜스들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런 것 따위 관심 없다는 듯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녀들이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떻게든 레드카펫이 나오게 찍으려고 노력 중이었고, 심지어는 작은 레드카펫을 챙겨와 그 위에서 춤을 추는 괴인도 있었다.
“여긴 3일째 비슷한 광경이네.”
지루할 정도로 계속 같은 광경만 반복되고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그곳에 스타가 나타나고 플래시가 터지고, 영화엔 관심도 없는 모델과 인플루언서들이 밤마다 어슬렁 어슬렁 자신을 위로 끌어올려 줄 스폰서를 찾고.
“아주 스타 되고픈 놈들과 영화제가 아닌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 천지야.”
“하나 빼먹었잖아.”
“응?”
“거기에 그걸 찍는 우리들까지.”
미국인 기자의 말에 이안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맞네. 맞아. 저 SNS에 사진, 춤 영상 올리기 바쁜 사람들이 지금 경쟁작에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는 알까?”
그리고 씁쓸하게 크로아제트 거리를 바라보는 이안.
기자들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이번 칸 영화제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로 이어졌다.
“큰 화제작도 없고, 이변은 더더욱 없을 거고. 왠지 고여가는 느낌이랄까.”
“그게 보수적인 칸 영화제의 문제점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제대로된 신예 감독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해.”
“그래서 비경쟁 부문이 재밌었던 건데, 이젠 그쪽도 매번 보는 감독들이니······.”
“이번엔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기대를 해봐야지.”
“거기선 뭐가 좀 있으려나. 그나저나, 이제 ‘에프리띵 헤픈’ 프레스까지 얼마나 남았지?”
“한··· 30분 뒤면 레드카펫 밟겠네.”
그때였다. 대화에 동참하던 이안의 핸드폰이 울린 것은.
핸드폰을 집어 든 이안이 화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남은 맥주를 급하게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갈게.”
“어딜?”
“에스파스 미라마르.”
“비공식 섹션 상영하는 곳? 거긴 왜? 곧 프레스 스크리닝 시작하는데, 갑자기 운동이라도 하고 싶어진 거야?”
비공식 섹션 부문의 영화들은 크로아제트에서 멀리 떨어진 극장에서 상영한다.
그렇다 보니 기자들 사이에선 영화 보러 가는 게 아닌 운동하러 간다는 표현이 밈처럼 사용될 정도.
그런데 갑자기 프레스 스크리닝 30분을 앞두고 거길 간다고 하니 기자들 모두가 의아해할 만했다.
“그럼 네 카메라는 어쩌고?”
“후배가 맡아서 할 거야.”
그러자 더 이상하다는 듯 갸우뚱하는 기자들.
“보통은 후배가 저기로 가고, 네가 여길 맡는 게 정상 아냐?”
“그렇긴 한데, 왠지 저쪽도 화제성이 있을 것 같아서.”
찰리 톰린슨이 레드카펫을 걷는 것보다 더 화제성이 있을 만한 일?
갑자기 비공식 섹션 극장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런 기자들을 보며 이안이 뻐끔거렸다.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마구 뿌릴 순 없었다.
그리고 설령 말한다 해도 이들은 결국 찰리 톰린슨을 선택할 테고.
“일단 나도 확실치가 않은 정보라서. 다들 이따 보자.”
#
에스파스 미라마르 극장에 도착해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사람이 크로아제트에 반에 반에 반도 안 되는 정도라 쉽게 아는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영화제에서 만나기엔 다소 뜻밖의 인물.
클래식 전문 잡지사 월간청중의 최성령 편집장이었다.
과거 영화 음악 포럼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온 두 사람.
이안이 그녀에게 다가가 웃음을 흘렸다.
“온다고 얘길 하지.”
“누가 보면 칸이 네 동네인 줄?”
“하하핫. 아무튼, 반갑네. 그나저나, 클래식 잡지사 편집장씩이나 되신 분이 여기까지 온 거야?”
“난 현장 체질이라.”
“기사까지 완성해서 보내라는 우리 편집장이 이 얘길 들어야 하는데.”
최성령 편집장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크로아제트에 있다 온 거야?”
“그렇지, 뭐. 대부분의 기자들이 다 거기에 있을 텐데.”
“재미없었겠네.”
“그런 면이 없진 않지. 그래서, 진짜야? 진짜 네가 말한 분들이 여길 온다고?”
“속고만 살았나.”
“응. 꽤. 기자들의 세계가 그렇잖아?”
진지하게 끄덕거리는 이안을 보며 최성령 편집장이 피식 거리며 고갤 흔들었다.
“기다려 봐. 광대들의 잔치인 저쪽과는 다르게, 여긴 음악인들의 잔치가 될 테니까. 아, 음악인들만은 아닌가?”
최성령 편집장이 어디론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안의 눈길이 그녀를 따랐다.
한 백발의 노인이 그 끝에 서 있었다.
“USA 투데이, 데이먼 셰리···?”
최성령 편집장처럼 칸에 있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당연히 있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자신이 있었던 뤼미에르 대극장 앞에.
“저 유명한 평론가가 여긴 왜······.”
의아함이 가시기도 전에, 이안의 시선이 극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사이로 쭈욱 끌려나갔다.
거진 할리우드 배우인 것처럼 무수한 사인 요청을 받으며 극장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남자.
“어? 저, 화가······.”
이안은 영화 전문 기자지만, 그래도 기자이기에 모를 리 없었다.
닐 하우저.
“미술계의 거장이 여길 왜···.”
“OST 작곡가와도 친분이 두텁고, 무엇보다 배우의 팬이래.”
“백승결?”
“아는구나?”
“여기 안 오는 기자는 많아도 요즘 그 이름을 모르는 기자는 극히 드물걸.”
“하긴, ‘악역’ 반응이 심상치 않긴 하더라. 이렇게까지 미국을 뒤흔든 아시아 작품이 과거 홍콩 영화나 버블 때의 일본 애니메이션 이후로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도 앞으로가 기대되긴 하더라고. 워낙에 ‘악역’을 인상 깊게 봤거든. 바로 전작들을 찾아볼 정도로.”
“나도 영화 쪽은 잘 모르지만······ 그런 내가 봐도 대단한 배우인 건 단언할 수 있겠더라고.”
어깰 으쓱거린 최성령 편집장이 빙그레 웃었다.
이안 너머에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를 느낀 이안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가 왜 이곳을 음악인의 잔치라고 했는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하핫··· 이게 뭐야. 칸이 맞는 거야?”
클래식에 조예가 깊진 않지만, 미술계와 마찬가지로 기자로서의 인문학적 소양은 어느 정도 있었다.
유명인들을 꿰뚫고 있는 정도는 되지.
그렇기에 이안의 입이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저분들······.”
그저 노인들이 줄줄이 등장할 뿐이었지만, 단순히 그렇게 표현하기엔 클래식계 전체가 움직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체코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각 나라와 도시의 상징적인 오케스트라.
그들의 수장인 지휘자들이 눈앞에 있었다.
그 옆에 비슷한 연령대의 노인들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어딘가의 지휘자거나 음악가겠지.
“이게 무슨······.”
“무슨 반지의 제왕보는 것 같지 않아?”
영화 말미에 연거푸 나타나는 여러 종족의 지원군을 떠올리며 이안이 웃었다.
“그러네. 크로아제트 쪽이 왜 광대판이라고 했는지 이제야 납득이 간다. 여긴 진짜 음악인들의 축제구나.”
연신 감탄하던 이안이 비로소 기자답게 상황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상영할 영화 입장에선 더 부담이겠어. 거장들 앞에서 재롱 피우는 셈이잖아.”
“분야가 다르니까, 뭐···.”
최성령 편집장이 극장으로 들어가는 지휘자들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렇다고 엄격하지 않을 양반들이 아니지만.”
“이거 영화를 만들었더니 음악으로 평가받게 생겼네.”
“그러니 저들마저 대단하다 말하면, 이 영화에겐 더할나위없는 찬사일 수도 있지.”
최성령 편집장의 엄호에도 이안이 삐딱하게 바라본다.
“그 정도 역량이 있는 감독일까? 배우의 연기력이야 확실하긴 하다만.”
“영화 쪽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첫 상업 영화를 역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흥행으로 만든 감독이야.”
“그래? 그냥 개봉한다는 것 정도만 알았지,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
그럼에도 이안의 기대가 크게 움직이진 않았다.
사실 전작의 성공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첫 작품이라면 더더욱.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니까.
하지만 잠시 저들만 찍고 돌아가려던 이안이 마음을 바꾸기엔 충분했다.
찰리 톰린슨 주연의 ‘에브리팅 헤픈’ 프레스 스크리닝이야 결국 비슷비슷한 기사가 나올 게 뻔했다.
그러니 그건 후배에게 맡겨도 충분하리라.
“충분히 궁금해졌어. 나도 봐야겠다.”
“정말?”
“돌아가기엔 너무 멀기도 하고, 사진을 얼마 못 찍기도 했고.”
으쓱거린 이안이 최성령 편집장을 따라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원래 칸 영화제에서 영화 시간이 임박해서 자리를 구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 극장들의 경우.
그 외의 극장엔 오히려 휑한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기에 입장은 수월했다.
‘······그래도, 사람이 꽤 있네.’
꽤 넓은 극장 안에 대략 60% 정도의 자리가 채워져 있었다.
남은 시간을 고려했을 때 80% 언저리까진 채워질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대성공이었다.
주 극장이 아닌 비공식 섹션 작품들의 경우 좌석을 절반도 못 채우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OST 덕분에 유명한 건 알겠지만······.’
이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영화가 아닌 음악으로 뭉친 것으로 보였다.
특히 유명인사들은 더더욱 그랬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로선 어떠려나.’
기대감보단 호기심이 점점 더 커진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극장이 암전되며 화면이 서서히 밝아졌다.
동시에.
째깍. 째깍. 째깍······.
검은 화면에서 시계 초침 소리가 흘러나왔다.
영화가 시작된 거다.
소리에 맞춰 커다랗게 확대된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화면.
카메라가 줌 아웃되며 터치 아웃으로 비스듬히 기울었다.
손목시계를 찬 남자가 묘비를 바라보며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승결.
지난달 공개된 멀티온의 드라마, ‘악역’으로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