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끌어내리지 못할 높이까지 (1)
간절한 표정으로 도움을 구하던 윤 감독이 팀장실을 나가고.
방에 혼자 남은 김성운이 그가 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머릴 긁적였다.
퍽 난감한 상황이었다.
배우의 위상이 높아지니 슬슬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승결이에겐 좋은 상황이었다.
백승결이라는 이름이 투자의 기준이 되고, 감독이 찾아와 읍소하는.
그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왔다는 거니까.
“······조심해야겠네.”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그동안 업계에 있으면서 지켜봐 온 경험이 경고를 울렸다.
배우가 이 정도의 티켓 파워가 생겼을 때, 가장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있을 정도였다.
‘구름을 걷는 기분으로 살얼음판을 걷는다.’
단순히 유명(유명)을 넘어선···.
정상급 연예인들의 상태를 가장 정확히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윤 감독에 대한 소문 좀 알아봐야겠네.”
평소 행실은 어떤지, 만약 작품을 거절하면 우리 탓이라 생각하며 분개할 위인인지.
그가 어떤 인물인지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저 이번 영화 꼭······ 꼭 성공시켜야 합니다.’
단순히 간절해 보인다고 해서 저울에 무언가를 더 얹을 필요는 없으니까.
어디까지나 김성운에게 중요한 건 승결이의 다음 루트에 할리우드가 나을지, 국내 영화가 나을지였다.
그 저울에 올리는 건 감성이 아닌, 승결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어야 했다.
김성운이 코를 만지작거리며 팀장실을 나섰다.
때마침 아까 통화했던 김주철이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가와 물었다.
“방금 누가 나가시던데.”
“아, 승결이가 고민 중인 작품들 중 ‘범죄인도자’라고 있는데, 그거 연출 맡으신 감독님.”
“아아. 들은 적 있어요.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저분이 오신 걸 보니 저희가 할리우드랑도 접촉하고 있는 걸 아셨나 보죠?”
이어지는 질문에 김성운이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슬쩍 입꼬릴 올린다.
“···?”
“기특하네.”
“네?”
“이제 매니저 모양새가 좀 나서. 궁금해하는 거나, 생각하는 것까지.”
김성운이 킬킬 웃었다.
처음엔 단순히 외적인 것들 때문에 마음에 들었다.
힘 좋아 보이고, 험상궂고···.
FHN 엔터와의 협약으로 그쪽 여자 아이돌을 케어하게 되면서 그에 맞는 보디가드 역할까지 해줄 매니저가 필요했는데, 딱이었지.
그래서 딱 그 정도였다.
유은하의 배우 일을 시범으로 위탁받은 1년.
그동안만 버텨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성실했다.
승결이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해서 승결이 쪽 일만 열심인 줄 알았는데, 유은하 쪽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점점 이 일에 대해 열정까지 보이니 어떻게 안 기특할까.
쑥스러워하는 김주철에게 그가 설명했다.
“할리우드는 계속 미팅을 하게 될 것 같은데, 저쪽은 급한가 봐. 투자자들이 발을 빼겠다고 으름장을 놓나 보던데. 그 상황에 네 말대로 찌라시까지 도니 다급해져서 찾아왔지.”
“아······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승결이랑 얘기해봐야지.”
그러자 김주철이 돌연 심각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큰일이네요.”
“왜?”
“승결이 형은 너무 착하잖아요.”
“뭐? 아니, 착하긴 하다만··· 갑자기 그게 왜?”
“마음 약한 형은 그 얘기 들으면 분명히 도와줄 것 같아서요. 근데 팀장님 말씀 들어보면 할리우드가 형한테 더 좋은 선택지 같기도 해서······.”
가만히 김주철의 말을 듣던 김성운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김주철이 눈을 깜빡거리며 묻는다.
“왜요?”
“너한테 승결이는 진짜 천사구나?”
“에······ 아닌가요?”
“맞아. 그래, 천사지. 천사긴 한데······.”
큭큭 거리던 김성운이 이마를 쓸며 말했다.
“그래서. 천사가 마음 약한 거 봤어?”
백승결과 어느새 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한 김성운이었다.
그동안 지켜보면서 느꼈던 바가 적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맡아온 어떤 배우보다도 다양한 감상을 늘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강렬한 감상은 바로 욕심.
적어도 작품에 관해서 만큼은, 녀석의 욕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지금까지 백승결이 선택했던 것들만 해도, 모두 작품에 꽂혀서였잖나.
만약 작품이 별로였다면?
아무리 안타까운 상황이더라도 승결이가 그런 식으로 움직였을 리가 없었다.
김주철의 경우처럼 다른 방식으로 도와줬으면 모를까.
녀석에게 연기는 그만큼이나 신성한 것이었다.
천사가 신의 명령이라면 가차 없어지듯이.
그러니 어쩌면 승결이가 우리 중 가장 칼 같은 녀석일 지도 몰랐다.
무슨 소리냐는 듯 멀뚱거리는 김주철.
김성운이 너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라며 웃었다.
그리고 아까 미뤄뒀던 이야길 다시 끄집어냈다.
“그나저나, 유은하 얘기 좀 해보자. 애 상태가 어떻다고?”
#
김성운의 연락을 받았다.
‘범죄인도자’의 윤 감독이 찾아왔다는 얘길 들었다. 그가 와서 어떤 이야길 했는지까지 함께.
“난감한 일이긴 하네요. 차라리 작품이 별로였다면 조금 단호할 수 있었을 텐데······.”
말끝을 늘리자 핸드폰 너머에서 김성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의아해져 물었다.
“왜 웃으세요?”
—네가 그렇게 생각할 거라 예상했거든. 내 생각이 맞았네.
“역시 팀장님.”
—아니, 글쎄. 주철이가 걱정하더라고. 네가 마음 약해져서 원치도 않는 작품 찍을까 봐. 이미지가 아주 좋아요, 백 배우.
“그러네요. 회사를 옮겨도 매니저들 사이에서 악명이 도는 팀장님하고는 다르네요.”
—에라이.
농담에 한참 동안 둘이서 낄낄거렸다.
그러다 내가 물었다.
“두 작품을 동시에 하는 건 불가능할까요?”
물으면서도 그의 대답이 무엇일지는 알고 있었다.
애초에 할리우드 크리스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집중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으니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네.
예상했던 대답이 들려오고.
고민이 깊어졌다.
두 작품 모두 끌리고, 하고 싶은 건 마찬가지.
하지만······.
“배우 가지고 그런 식으로 갑자기 딜을 하는 투자자들이, 과연 제 합류가 확정된다고 해서 모든 투자금을 내줄까요?”
그 부분은 조금 찜찜했다.
그런 일이 꽤나 비일비재하다는 것도 굿픽처스 박 대표의 얘기를 통해 알고 있었다.
원하는 금액을 다 맞춰줄 것처럼 으스대다가 갑자기 크랭크인 직전에 투자금을 반 토막으로 줄여버리는 회사들이 그렇게 많다지.
공수표를 남발해 상대가 자신에게 어느 정도까지 해줄 수 있는지 떠보려는 속셈이라고.
그런 투자자들을 만날 때마다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진다던 박 대표의 말을 떠올리며 묻자, 김성운도 확답하지 못했다.
—확실히 그것도 염두를 하는 게 좋겠다.
내가 작품 보는 눈이 아무리 좋더라도, 미래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감이 틀릴 수도 있고.
맞더라도 촬영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막말로 배우나 감독에게 문제가 터지면 아무리 좋은 작품이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커리어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부터는 시야가 조금 달라진 기분이다.
작품을 고르고, 연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문제에서.
도처에 리스크가 번뜩인다.
‘작품 하나쯤이야 좀 안 되도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기엔 회사에서 나에게 지원하는 규모가 예전과는 차원이 달라져 있었다.
매니저인 김성운과 김주철뿐만 아니라, 홍보팀을 비롯한 각 부서들.
그리고 하선경 대표까지도 함께 리스크를 지고 있는 거다.
그러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그날 저녁.
나는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했고, 김성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그러면요······.”
#
“한 번 더 미팅을 하고 싶다고 하네요.”
—가, 감사합니다!
“아뇨. 아직 저희도 확정이 된 게 아니라. 우선 만나 뵙고 여러 이야기를······.”
—아, 그럼요. 제가 마음에 들 수 있도록 잘 준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윤 감독의 들뜬 목소리가 넘어왔다.
전화를 끊고서 1팀장과 홍보팀장이 있는 카페테리아 자리에 앉았다.
쪼르르 뒤따라온 김주철도 빈 자리에 앉는다.
김성운의 표정을 본 1팀장이 물었다.
“누구 연락이길래 그렇게 부담스러워해? 대표님?”
이에 김성운이 웃음을 흘렸다.
“아뇨. 윤 감독이라고, 이번에 승결이가 보고 있는 작품들 중 하나 연출 맡은 분이에요.”
“왜. 자꾸 도장 찍재?”
“지금 거의 그럴 기세에요.”
“그래도 기분은 꽤 좋겠네. 그만큼 백 배우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거니까.”
김성운이 그건 그렇다며 주억거리다 홍보팀장을 돌아보았다.
“그나저나, 지난번에 알아보신다고 한 건 어떻게 됐어요?”
“어떤 거요? 아, 악플들?”
“네.”
끄덕거리는 김성운이 홍보팀장이 팔짱을 끼며 침음성을 삼켰다.
“업체 고용한 건 확실한 것 같더라고요. 교묘하게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인데··· 그런 일 해주는 업체를 몇 개 추려놨어요. 댓글 계속 봐서 김 팀장님도 아시겠지만, 요즘도 꾸준히 달고 있더라고요. 더 파고들려면 우리도 의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그것이 알고 싶다 팀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녀의 말에 1팀장도 말을 얹었다.
“대체 어디서 움직인 걸까? 보통 이런 경우에 가장 먼저 의심해볼 만한 건, 내부인······.”
그의 말에 김성운은 가장 먼저 최영기를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람 안에선 그밖에 없었다.
“외부라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회사의 경쟁사나. 그것도 아니라면 배우가 몸담았던······.”
“전소속사.”
1팀장의 말에 덧붙이는 홍보팀장.
언뜻언뜻 들었던 백승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최영기 실장이 아니라면 전소속사. 이쪽이 가장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는 김성운이었다.
한편, 김주철은 그 모습을 굉장히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탐정 같았다.
동시에 이 업계도 음지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옛 생각이 나기도 했다.
‘아니, 근데 대체 댓글들이 어떻길래······.’
평소 백승결에 대한 기사를 빠지지 않고 보는 김주철이었지만, 댓글창까지는 잘 넘어가지 않았고.
보더라도 좋아요 순으로 정렬하다 보니 나쁜 글은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던 그였다.
그런데 앞에서 저런 이야기들을 하니 궁금할 수밖에.
밀물 썰물처럼 한꺼번에 들어왔다가 나간다는 댓글 부대(?)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로 들어갔다.
하지만.
“······어?”
이번에도 김주철은 댓글창까지 수월히 넘어갈 수 없었다.
과속방지턱을 넘은 사람처럼 덜컹거리는 눈으로 기사를 훑으며 서서히 경악했다.
“이게 뭐야.”
툭 튀어나온 목소리에 나머지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심각한 표정의 김주철을 보며 김성운이 물었다.
“왜?”
“이, 이것 좀 보세요.”
김주철이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윽고 세 사람의 시선이 핸드폰 화면을 따라갔다.
그들은 김주철이 왜 놀랐는지 곧 알 수 있었다.
[······익명의 제보자는 자신도 백승결 배우 가족에게 돈을 빌려줄 뻔했다며, 다행히 자신이 피해 본 것은 없다고 말했다.하지만 백승결 배우 가족에게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만 원을 빌려주었던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며, 아무리 상속 포기를 했다더라도 그들이 티비에 나와 승승장구하는 백승결 배우를 보며 어떤 심정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걱정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