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끌어내리지 못할 높이까지 (3)
10여 년 전.
엄마와 함께 도망치듯 집을 나와 살았다.
몸이 아픈 엄마와 이제 고등학생인 나.
아무 준비 없이, 어느 날의 폭력을 참지 못해 뛰쳐나온 우리는 자유와 막막함을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새장을 벗어난 것을 후회하는 새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부단히 움직였다.
나보다는 엄마가 더 그랬다.
학교는 꼭 가야 한다는 엄마의 부탁에 나는 고작 저녁에 아르바이트 하는 게 전부였다.
나머지 생활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아니, 오롯이 엄마의 몫이란 말은 틀렸을지도.
심지어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이 엄마의 것이 아니었다.
잠시 엄마에게 맡겨졌다가, 다른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엄마 이름으로도 빚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월급에서 상당 부분이 자동으로 피해자들에게 넘어갔다.
나는 어린 마음에 그게 속상했다.
피해자라고 해도, 우리보다 잘살고 있을 거 아냐.
우리는 지금 간신히 먹고 사는데······.
“그 사람들도 너무해.”
내 원망은 가지처럼 뻗어 나갔다.
“그렇지 않아.”
그리고 엄마는 단호히 그 가지를 쳐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저 피해자일 뿐이라고.
끊임없이 나를 설득했다.
“그래도 엄마는 좋아. 언젠가, 내 이름으로 진 빚을 내 힘으로 다 갚고 싶었거든. 그 사람들의 가정에 가해자로 남고 싶지 않아.”
그리고 2년 뒤.
엄마는 엄마 이름으로 진 빚을 모두 갚았다.
천 이백만 원.
엄마가 생명이 꺼져가기 직전까지 갚아야 했던 돈의 액수였다.
그렇게 엄마는 자유인으로서 눈을 감았다.
나는 보호시설로 옮겨져 생활했다.
피해자들이 몇 번 나를 찾아왔었지만, 아버지가 온 적 없냐는 것만 물어보곤 그냥 돌아갔다.
심지어 몇몇은 용돈을 쥐여주었다.
나는 그 돈을 쓰지 못했다.
다시 시간이 흘러 나는 성인이 되었다.
현태 형과 함께 택배 일을 시작했다.
돈을 벌기 시작했고, 다시 피해자들을 만났다.
내가 내 발로 그들을 찾아갔다.
“이제부터 제가 갚을게요.”
“······.”
그때 그들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부끄러운 듯 내 시선을 피했다.
입을 꾹 닫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긍정했고.
인연이 이어졌다.
시간이 담을 넘고 또 넘어 다섯 번.
5년이 지나도록······.
“승결아!”
현태 형이 기획한 뮤튜브에 출연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모인 옛 인연들.
그들은 날 보자마자 그 얘기부터 꺼냈다.
“근황마라톤? 뮤튜브 봤어! 사람들이 다들 반갑다고 난리더라.”
“나도 회사 직원들한테 엄청나게 자랑했잖아.”
“근데 화면에 실물이 다 안 담기더라니까. 다들 잘생겼다고 난리인데, 속으로 그랬잖아. 실제로 더 잘생겼는데~.”
한참을 떠들었다.
뮤튜브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말하다 보니 어느새.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고, 드라마 오디션까지 봤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모두가 제일인 것처럼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자리가 마무리되기 전에 내가 조심스레 속마음을 꺼내놓았다.
“저 상속 포기하려고요.”
잠깐의 정적.
내 대답에 사람들은 나를 그저 바라보았다.
두려워했던 것과는 반대로, 모두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잘 생각했다.”
“넌 네가 할 거 다 했어.”
“이미 절반 이상 갚았잖아. 그것만으로······.”
진수네 아저씨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가 미안했다. 네 책임이 아닌데. 그런 거 아는데······.”
그의 시선도 함께 떨어진다.
“변명을 하자면······ 나 혼자 사는 거면 안 받아도 됐는데, 가정이 있다 보니 이기적으로 되더라. 그럼에도 계속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어. 고작 이제 성인인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건가. 그러니 이제 그만하자. 그리고······.”
술잔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말했다.
“이제 와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구나. ”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입꼬릴 올렸다.
진심으로 환하게 웃었다.
짐을 벗었다는 후련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너무··· 보기 좋았다.
“진수는 좋겠어요.”
“···?”
저 스스로 이기적이다 말하는 중년이···.
누군가의 아버지라서.
“그런 아버지라서.”
“······.”
“누구보다 자기 가족이 먼저인 아버지라서.”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진수네 아저씨.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상속 포기를 하더라도 돈은 마저 채울게요.”
“응? 그게 무슨···.”
“제가 연기를 다시 시작해서 얼마를 벌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죄송하지만 돈만 쫓고 싶진 않아서요. 그래서 예전과는 다르게 하고 싶은 작품을 해보려고요. 그러다 보면 좀 늦어질 수도 있어요. 또 실패할 수도 있고요. 그래도 꼭 끝까지 갚을게요.”
“아니, 승결아. 상속 포기한다면서?”
“상속 포기는 그저······.”
담담하게 말하려 노력 중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내가 아버지의 유산을 받지 않겠다는 제 결단이에요. 더는 그 사람의 아들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고요. 그러니 모두 갚을게요. 그렇게 하게 해주세요. 저도 엄마처럼······.”
‘그래도 엄마는 좋아. 언젠가, 내 이름으로 진 빚을 내 힘으로 다 갚고 싶었거든. 그 사람들의 가정에 가해자로 남고 싶지 않아.’
“자유롭고 싶어요.”
그런데 이대로 없던 일인 것처럼 돌아서면.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울음이 터져 나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피해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제가 가해를 먼저 벗어서 죄송합니다.”
#
······다시 현재.
과거의 기억이 육수처럼 보글보글 끓었다.
“그때 정말 우리 전부 부둥켜안고 울었지······하하.”
“말도 마요. 우느라 음식도 다 식어서 뻑뻑해졌었잖아요.”
“근데도 그날 음식 맛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속에서 우려지는 야채와 고기처럼, 녹진한 이야길 풀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혔고, 누군가는 시원하게 웃었다.
자리가 마무리될 때쯤 김주철이 음식점 앞으로 찾아왔다.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서, 녀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회사로 복귀했다.
“저 왔어요, 팀장님.”
팀장실에 들어가자 김성운이 나를 반겼다.
아니, 걱정했다.
“밖에 기자들은 없었어?”
“몇 명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잘 타일러서 돌려보냈습니다.”
김주철의 말에 김성운이 아, 하고 입을 벌린다.
“타이른 거 맞지? 구타가 아니라.”
“목소리로 때리긴 하더라고요. 저 여기 이렇게 서 계시면 차가 어떻게 들어갑니꽈~. 목소리 깔면서 얘기하니까 다들 주춤주춤 멀어지던데요.”
내가 웃으며 성대모사 비슷한 걸 하자 김주철이 상처받은 얼굴로 김성운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팀장님··· 승결이 형···.”
“미안, 미안.”
환기용 농담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김성운은 궁금한 게 많은 얼굴이었다.
“어땠어?”
“다들 아셨어요. 제가 논란 위에 오른 거.”
“그래서······ 뭐라셔?”
“다들 엄청 어처구니 없어하시죠. 빌린 사람은 돈 다 받고 심지어 친해져서 같이 샤브샤브 먹고 있는데, 누가 자기들 들먹이면서 걱정을 표하네 마네 하느냐고.”
“그런 반응이 당연하지. 나 같아도 어이가 없겠다. 같이 밥 먹고 있는데 내가 피해자고, 얘가 가해자래. 지들이 뭘 안다고?”
답답해하는 김성운에게 내가 이어서 말했다.
“다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시네요. 인터뷰든 뭐든 해주겠다고.”
“다행이네.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하지. 피해자가 괜찮다고 밝히는 거.”
김성운이 끄덕거렸다. 그리고 이내 턱을 문지르며 다른 고민에 발을 담갔다.
“흐음, 근데 이상하지. 익명의 제보자는 돈을 빌리지 않았다고 얘기했단 말이지······.”
“그래서 더 문제긴 해요. 아버지한테 원한이 있는 사람이 한둘이어야 말이죠.”
오죽하면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경찰에게 타살이냐고 대뜸 물었을까.
그리고 아무리 내가 떳떳하다고 해도, 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억측이 쏟아졌고, 비난의 여론이 똘똘 뭉치고 있었다.
어디서 무슨 억지 논란이 또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돈을 빌리지 않았으면서 아버지한테 원한이 있는 사람은 사실 저도 알 방법이 없으니······.”
“네 아버지에 대한 원한이 아닐 수도 있지.”
김성운의 말에 의아해져 고개를 기울였다.
아버지한테 원한이 없다? 그런데 왜······.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끄덕였다.
“저한테 원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군요.”
그러고 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그동안 내가 티비나 스크린에 얼굴을 비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왜 이제서야 빚 관련 논란이 터졌을까.
심지어 돈을 빌려주지도 않았단 사람이, 다른 피해가 있지도 않은 사람이 피해자들을 걱정하며 제보자로 나섰다?
어떤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아버지를 부관참시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아마도 나를 타켓으로한 의도일 것 같지.
그리고 나를 타켓으로 할만한 사람은······.
“일단 정정 기사 준비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야.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좋지만, 워낙 민감한 사항이니만큼 섣불리 대응하는 것보단 신중히 상황에 맞춰서 움직이는 게 좋을 듯 싶어.”
“네, 알겠어요.”
“그리고 ‘범죄인도자’ 쪽 하곤 미팅 잡았어. 내일 오전에.”
“그쪽에서도 당혹스러워하고 있겠네요.”
“가서 해명해야지. 아, 근데 윤 감독 말이야······.”
김성운이 눈썹을 긁적거리며 말끝을 늘린다.
뭐 안 닦은 사람처럼 굉장히 찜찜한 표정이었다.
“어떤 사람인가 싶어서 좀 알아봤는데, 소문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더라고.”
“어떤데요?”
“스태프들이나 배우들하고 분란이 많나 봐. 완전 투자자 꼭두각시라는 얘기도 있고. 그래서 배우도 자주 갈아치웠다더라고.”
“음··· 그래도 소문만으로 판단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소문으로는··· 저도 지금 뭐.”
난장판이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김성운이 피식 웃으며 고갤 저었다.
“넌 소문이 아니지. 대문짝만하게 실렸는데.”
“그건 그렇네요. 대문이네, 대문.”
자조적인 웃음을 덧붙이며 회의를 마쳤다.
밤새 나에 대한 이야기는 마른 장작처럼 활활 불탔다.
하람에서 곧 모든 이야길 풀겠다며 입장문을 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립 기어로 지켜보자는 식의 반응을 내비쳤지만.
일부 악플러(어쩌면 홍보팀장의 의심대로 댓글부대일지도 모를)들은 해명 따위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범죄인도자를 제작하는 푸른물 영화사에 도착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향한 미팅룸.
그곳에서 20여 분 정도 기다리자 윤 감독이 도착했다.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나 나타난 것엔 그러려니 했다.
영화 감독이 얼마나 바쁜지 지금까지 여러 편의 작품을 하면서 몸소 느꼈었으니까.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는 것에 김성운은 살짝 언짢아 보였지만, 난 그것까지도 괜찮았다.
“어······ 오셨어요?”
그런데 저 반응은 이상했다.
약속을 잡고 왔는데, 마치 왜 왔냐는 듯한 눈빛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