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할리우드 (5)
크리스 감독의 사무실이 미팅 준비로 소란스러웠다.
주인공 배역 오디션도 아니고, 심지어 파이널 오디션도 아니었기에 그리 큰 행사라 할 것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직원들은 평소와 달랐다.
조감독인 코리 황도 오늘 오디션만큼은 조금 다르다고 느끼고 있었다.
배우 때문이 아니었다. 크리스 감독이 이번 오디션에 거는 기대가 꽤 크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할리우드 톱스타들조차도 어려워할 정도로 늘 냉랑한 분위길 유지하는 그였지만, 유독 파코스 역의 오디션만 마치면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래봤자 그와 팀원들만 알 정도의 작은 변화였지만.
그것만으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동양에서 온 배우.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아니, 3년전까지만 해도 동양인인 자신조차도 그다지 관심 없었던 카테고리였다.
물론 한때는 이소룡이나 성룡같은 액션스타가 할리우드를 뒤흔든 적이 있지만.
그건 한 세대는 커녕 반 세대를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묘한 움직임이 영화 시장 밖에서부터 이뤄지고 있었다.
아마, 시작은 클래식부터였던 것 같다.
‘작은 거장’이라 불리우는 천재 음악가가 세상을 재패했다는 게, 더는 자국민을 상대로한 민족주의 마케팅이 아니게 되었지.
그 영향력이 파도처럼 클래식계를 넘어 영화 음악까지 흘러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런 선례 때문일까.
OTT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등에 업은 새로운 배우의 등장은 보다 물 흐르듯이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은 낯선 인물들의 연기에 환호했고, 생소한 감정선에 감동했다.
‘찾았다. 백···승결. 그래 이 이름이었지.’
오늘 오디션에 올 배우의 이름을 검색하며 흥미로워하던 코리 황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청소가 한창이던 직원들도, 아침 일정이 있는 크리스 감독도 아니었다.
그러기엔 그림자부터가 예뻐.
“세이디. 오늘도 지나가는 길이었나요?”
세이디 모튼. 며칠 전 사무실을 방문해 ‘파코스’ 역할에 대해 묻던 그녀가 또다시 얼굴을 비췄다.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아뇨, 오늘은 오디션 참관하려고 왔어요.”
“어, 아직 출연 기사도 안 떴는데 그래도 되는 건가?”
“감독님께 어제 말씀드렸는데. 못 들으셨어요?”
“그런 얘기 하시는 분이 아닌 거 잘 알잖아요.”
하하 웃으며 답하자 그녀도 이해한다는 듯 끄덕거렸다.
“알만 하네요. 아내 분은 어떻게 같이 사나 몰라.”
“따로 살 걸요.”
“아···?”
“모르셨어요?”
정적이 흘렀다.
놀란 눈으로 뻐끔거리던 세이디가 이내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난 할리우드에 10년째 있으면서도 할리우드를 잘 모르겠어요.”
“다들 그럴걸요. 그게 할리우드잖아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아무튼 잠시 기다려요. 감독님, 곧 오실 테니까.”
매콤한 이야기가 끝나고.
끄덕거리며 미팅룸으로 들어가는 세이디.
그 모습을 보다가 헛웃음을 흘리는 코리 황이었다.
무려 세이디 모튼이 주인공도 아닌 역할의 오디션에 오다니···.
“이것도 할리우드네.”
방금 만든 새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가 콧잔등을 긁었다.
스스로 미국인이라 자부하며 살았는데, 이제와 인종에 대한 애착이라도 생긴 걸까.
할리우드에서는 흑인보다도 더 관심 받지 못하던 게 동양인 배우인데.
그런 배우가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과 여배우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었다.
물론 역할 때문에 더욱 주목받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 영화에서 파코스는 그만큼 핵심적인 캐릭터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역할이 백승결. 그 배우에게 갔다는 게 중요했다.
‘그만큼 대단한 행보를 보이고 있긴 하지.’
가장 최근작 하나만 보고 꽂힌 크리스 감독과는 달리 자신은 그동안의 모든 레퍼런스를 쭉 훑었다.
그 결과 충분히 그럴만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이코패스 격투가라던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화가.
지난 삶을 후회하는 갱과 대중의 기대에 짓눌려 무너져가는 스타의 연기까지.
정말이지······ 감탄했다.
동양인이 액션 스타로는 성공해도, 연기로 성공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인종과 문화의 장벽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넘어설 수 있는 몰입력을 보여주는 배우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했다.
‘백인이나 흑인이었다면 할리우드에서 엄청난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할리우드는 OTT 플랫폼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하나의 벽은 넘었어도, 언젠가는······.
결국, 동양인으로서 한계에 부딪히는 지점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동양인으로서 그래왔고.
과거, 홍콩 배우들이 그랬던 것처럼.
#
높은 야자수와 화려한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작은 건물.
그곳에 크리스 감독의 사무실이 있었다.
오로지 그의 영화적 구상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지.
화면 너머로 본 그의 성격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그곳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직원 몇 명이 일어나 나를 반겼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안쪽으로 들어가 동양인 남자와 함께 나왔다.
“어서 와요. 코리 황입니다.”
“백승결입니다.”
자신을 조감독이라 소개한 코리 황이 사무실 안쪽으로 나를 안내하며 미국인(?)답게 이런저런 이야길 물어왔다.
“미국엔 언제 오셨어요?”
“오늘이 4일째 됩니다.”
“오, 굉장히 일찍 오셨네요?”
“관광도 하고 오디션 준비하며 푹 쉬었어요.”
“그렇군요.”
물론 깊은 이야길 나누기엔 사무실이 작았다.
복도 끝. 코리 황이 문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다들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럼, 좋은 결과 있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작게 목례하듯 고갤 끄덕이며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코리 황 조감독이 말하는 ‘다들’이 누구누굴 말하는지 알게 되었다.
오로지 크리스 감독과 독대를 했던 지난 화상 오디션 때와는 다르게 한 사람이 더 앉아 있었다.
나 배우요, 하는 아우라를 줄줄 뿜어내는 미모의 백인 여성.
“이쪽은 세이디 모튼. 이번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확정된 배우입니다.”
최근 들어선 칸 영화제 때를 제외하고 통 해외 영화를 보지 않았던 나지만, 그녀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
나이가 내 또래인 만큼 작품이 많진 않지만 하나하나가 한국에서까지 흥행을 거둔 할리우드 초대박 작품들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물론 영화를 보진 못했다.
그녀가 여주인공으로 확정되었다는 기사라도 떴더라면 호텔 방에서 쉬는 동안 몇 개 봤겠지만, 아직 그런 것조차 기사로 뜨지 않았으니···.
아는 건 이름하고 얼굴뿐.
그래서 팬심은 없었지만.
“그러면 대본 다 보셨겠네요?”
부러움은 있었다.
“네?”
세이디가 벙찐다. 크리스 감독도.
이윽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날 보던 세이디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 네. 전 대본 다 봤죠.”
“그거, 부럽네요.”
자연스레 그녀의 시선이 예의상 들고 온 내 대본에 닿았다.
“굉장히··· 얇네요.”
그리고 지저분하고···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세이디.
잠자코 나를 지켜보던 크리스 감독이 입을 열었다.
“반가운 인사는 이쯤하고. 이제 오디션을 시작하죠. 그 얇은 대본 말고 이걸로.”
그가 건네는 두툼한 책자.
풀버전 대본에 대놓고 감격하며 얼른 받아들었다.
그러자 세이디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고, 크리스 감독이 상황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원래는 이번 오디션도 당신에게 준 그 얇은 대본으로 해보려고 했는데······ 어차피 그거, 다 외웠잖아요? 당신이 외우지 못한, 지금 바로 받은 대본을 연기할 땐 어떤 느낌일지가 궁금해졌어요.”
“전 좋습니다. 어느 장면을 연기하면 되죠?”
자신있게 답하자, 그가 새로 받은 대본의 중반부를 짚는다.
“이전의 대본에서 예언자를 통해 재앙을 부르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파코스가 예언자가 말해준 곳으로 향하는 과정이 이어지고, 마침내 그 장소에 도착해 재앙을 부르는 존재를 기다리는 장면입니다. 꽤나··· 비장미 넘치게.”
마지막 말로 원하는 바를 코칭한 그가 펜을 내려놓으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기다리는 거다.
내가 연기를 시작하길.
······그의 바람대로 시선을 내렸다.
그가 말한 장면이 펼쳐져 있는 바로 그 씬으로.
[나무 냄새가 위스키에서 나는 건지, 아니면 오래된 테이블에서 올라오는 건지 모를 바. 파코스의 술잔 속 얼음이 녹아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낸다.]지문을 읽으며 상황을 그려내고.
나를 파코스로 바꾼다.
그 방법에 대해선 수도 없이 고민했고, 저 얇은 대본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아주 잠깐이면 됐다.
그리고 파코스가 된 나는.
[파코스의 시선이 올라갔다.]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낡은 티비. 그 속에선 어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저게 어떻게 사고일까.
저건 재앙이다.
그것도 아주···.
‘필연적인.’
잔을 들어 술을 들이켰다.
그때 크리스 감독이···.
아니, 옆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건다.
“참 안타까운 사고죠. 요즘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지.”
시선이 옮겨갔다.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옆테이블 남자를 보며 나는 되물었다.
“그럴까요?”
“예?”
“정말 우연일까요.”
“음······글쎄요. 이미 이렇게나 병든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상하지 않잖아요?”
“핵전쟁이 그랬던 것처럼?”
“······.”
모두가 꺼려하는 과거를 끄집어내자 남자의 표정이 변했다.
대뜸 말을 걸 땐 언제고, 어느새 내가 불편해진 모양이었다.
“당신 말에 동의한다니까요? 정말이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같지가 않아요. 그러니 내가 이곳에 왔겠죠. 그 미친 것 같은 노인네의 말을 믿고.”
옆테이블 남자는 께름칙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의 술잔에 집중했다.
더는 나와 대화가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바라던 바였기에, 나도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뒤이어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어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내어 펼쳤다.
그 안에 급하게 휘갈겨 쓴 글씨.
[술집.] [바테이블. 세 번째 자리.]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어있던 자리에 한 금발 여자가 앉은 것도 그 순간이었다.
다시 종이로 시선을 가져간다. 살짝 손끝이 떨려왔다.
[금발 여자. 이름은······]“랜시.”
“······.”
한 남자가(—감독이 1인 2역 중이다) 그녀를 부르며 다가간다.
이름마저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손목을 본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마저도 종이에 그대로 쓰여져 있음을 확인하고 거칠게 종이를 구겨버렸다.
예언자는 지난주의 재앙도.
어제의 재앙도.
그리고 이것까지 맞췄다.
그 미친 것 같은 노인네의 말대로.
나는 결국 그녀를 찾아냈다.
“젠장.”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옆 테이블 남자가 흠칫하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 나와 저 여자. 단 둘뿐인 것 같았다.
“당신이구나.”
예언은 증명되었다.
그 증명이.
“당신이었어.”
나에게 말한다.
이제 네 차례라고.
너를 증명해야할 것이라고.
“당신만 죽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