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그린스크린 위의 괴물 (3)
크리스 감독과는 절친한 원수, 철천지 친구 정도라고 할 수 있는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의 CG 감독.
그는 컴퓨터 열기와 에어컨이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불과 얼음의 노래를 불러대는 사무실에서 아주 오랜만에 벗어났다.
그리고 크리스 감독의 지시로 세트장의 불을 밝혔다.
결코 즐겁지 않은 발걸음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올 자리도 아니었다.
직원들 몇 명만 보내도 동선 체크나 연기 연습을 하기엔 충분했겠지.
하지만 오늘만 연습을 직접 확인해달라는 크리스 감독의 부탁이 있었다.
‘이게 다 자네 허리 걱정해서 그러는 거야.’
농담 같은 건 할 줄도 모르는 녀석이 그런 시답잖은 소리까지 덧붙였지.
그게 더 화가 난다.
‘그 배우가 크로마키 앞에서도 제대로 연기할 수 있는지 그거 제대로 확인해서 네 걱정 해소시켜달라는 게 아니고?’
속이 뻔히 다 보여서.
‘······.’
뻔뻔해질 거면 끝까지 허리가 걱정돼서라는 헛소릴 하던가.
긍정의 침묵을 지껄이는 친구 놈의 얼굴을 떠올리니 이 회사를 때려치워야 하나 고민이 되는 CG 감독이었다.
요즘 멀티온에서도 자체제작을 위해서 인력 구하기에 혈안이라던데, 조건이 어떠려나······.
그런 미래 지향적인 생각을 이어가는 중에 세트장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휴일이라 세트장 앞에서 지키는 가드들도 없어 긴가민가했지만, 외모적 특징을 보곤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왔나 보네.”
물론 이 거리에서 이목구비는 안보인다.
근데 어떻게 알아봤냐고?
···색은 보이잖아.
“아, 그런가 보네요.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여기까지 노트북을 들고 와서 간단한 작업을 이어가던 직원이 안경까지 끼고서 방문객들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기다리던 배우가 맞았나 보다.
직원은 배우와 이런저런 얘길 나누더니 이내 테스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과연 크리스 감독이 얘기한 대로 초짜였다.
멀리서 봐도, 뭐라 하는지 들리지 않아도 뻔히 보인다.
이 공간이 어색한 티가 역력했다.
게다가 배우도 배우지만, 이 공간 자체도 아직 미완성이다. 컨셉이 확정되지 않은 부분도 군데군데 있어 소품들도 어설프다.
결국, 목업용으로 만들어둔 몇 가지 것들만 모래 위에 올려졌다.
심지어 옷은 몸에 제대로 두르지도 못했다.
맨투맨 위에 모래바람을 막아줄 망토라니!
소꿉장난 수준의 차림새를 바라보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고 그대로 흘리는데, 배우가 그린스크린 한가운데로 올라선다.
모든 준비를 마친 직원이 돌아왔다.
이에 CG 감독도 실없는 웃음을 멈추고 테스트용 카메라를 돌렸다.
“······잘할까요?”
“저 상태로는 CG 전문 배우들도 못 하겠다. 소품은 커녕 옷도 다 안 만들어져 있는데. 심지어 완전 초짜구만.”
“그죠. 힘들겠죠.”
직원이 미간을 좁혔다.
CG에 경험이 많이 없는 배우들을 그린스크린 위에 올려놓으면 백이면 백 처음엔 버벅거린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게 연극배우나 학생이었다.
그들은 배경 없이 연기하는 연습을 반강제적으로 해왔으니까.
하지만 영화판에서 수년을 있다가 이 녹색 도마 위에 올려진 이들은 정말 긴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게 준비된 상황에서만 연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괜히 베테랑 배우들이 컷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머리를 쥐어뜯거나 민망해하고, 심지어는 눈물을 보이는 게 아니지.
“잘했으면 좋겠는데······.”
이어지는 직원의 말에 CG 감독이 피식 웃었다.
“빨리 가고 싶어서? 아서라. 그럴 리 없다는 거 네가 더 잘 알잖아.”
“그렇다기보단··· 사람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응원 중이에요.”
“잠깐 얘기 주고받더니 그새 친해진 거야?”
직원이 히죽 웃는다.
가뜩이나 살인적인 업무량에 이런 테스트까지 얹어졌는데 저렇게 웃을 수 있다니.
“붙임성 좋은 녀석.”
고개를 흔들며 질려 한 그가 직원에게서 시선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린스크린 위의 배우를 바라보았다.
그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들리시죠? 이제 테스트 시작해볼게요. 오늘은 정말 말 그대로 테스트 하는 거니까 장면도 원하는 걸 선택해서 자유롭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준비 끝나면 편하게 시작해요.”
시간이 지체될수록 복귀하면 그만큼의 일이 잔뜩 쌓일 것을 알기에 CG 감독도 최대한 빠르게 테스트를 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물론 대충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잠깐만 봐도 연습이 많이 필요할지, 아주 많이 필요할지 알 수 있으니까.
이윽고, 연기가 시작되었다.
모래 한 줌이 전부인 거대한 그린스크린 속에서···.
배우가 시작한 연기는 파코스였다.
CG 감독의 눈이 화면으로 옮겨간다.
액션 사인도 없이 자연스럽게 연기를 이어가는 배우.
그 모습을 어느새 멍하니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시선이··· 좋네.”
그건 이런 크로마키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시선.
허공을 보는 눈에 망설임이 없다.
마치 저 위치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응시’ 하고 있는 것처럼 조금도 방황하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시선이 그저 배경에 머물지 않고 누군가를 바라보았을 때였다.
배우가 허공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본다.
심지어 본 촬영 때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건너편에서 배우가 도와주거나 아무리 열약해도 더미라도 가져다 놓는데···.
그의 눈은 초점이 선명했다.
적어도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녹색으로 뒤덮인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었다.
앞에 누군가 있었다.
“감독님. 지금······ 엄청 잘하는 거 아녜요?”
“······.”
“감독님?”
······그러니까.
왜 잘하지? 이상하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이미 동선 체크를 모두 끝내고 수십 번 연습 끝에 비로소 액션! 소리와 함께 시작된 연기처럼 말이다.
저 정도면 CG로 샤워를 하는 블록버스터 시리즈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배우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건 분명 이상했다. 크리스 감독은 분명히······.
‘이런 거 처음 촬영해보는 배우라고 그랬는데?’
거짓말이었나? 왜 그딴 거짓말을···.
진짜 나 허리 펴라고?
‘그럴 리는 없고.’
CG 감독이 고갤 흔들었다.
크리스 감독. 그 스태프 골수까지 빼먹는 완벽주의자 놈이 그럴 위인이 아니란 건 아주 잘 알고 있을뿐더러, 그에게 묻어났던 촬영에 대한 걱정은 진짜였다.
그런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 정작 배우는 완벽히 적응하고 있었다.
어느새 피로에 찌든 얼굴로 외근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CG 감독의 얼굴에도 흥미가 마구 샘솟는다.
‘좋네요. 이제 테스트 끝!’ 하고 세트장을 닫아도 되지만, 이쯤 되니 그도 궁금한 게 생겼다.
CG 감독으로서 가장 공들이고 있는 씬 중에 하나가 떠오른 것이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완벽주의자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
무전기를 든 채로 옆에 앉은 직원을 바라보는 CG 감독.
눈치껏 직원이 얼른 배우의 이름을 말했다. 정확히는 좀 더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성으로.
—Mr. 백. 혹시 대본 가져왔나요?
“네.”
—그럼 후반부의 연기도 볼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를 챈 듯 끄덕거리는 배우.
직원이 얼른 다가가 또 다른 준비를 했다.
얼굴에 점을 찍는 등의 모션 캡처를 위한 준비를 마치고, 배우와 함께 온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가 대본을 가져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배우도, 남자도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
갸우뚱하자 직원이 얼른 묻는다.
“대본 안 가져오세요?”
“네. 그냥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데요?’라는 표정으로 돌아보는 직원.
황당해하던 그가 일단 알겠다며 끄덕거렸다.
직원이 얼른 자리로 돌아와 트래킹을 준비했다.
이윽고, 배우를 잡고 있던 화면이 변했다.
배우의 얼굴 위로 CG가 덧입혀졌다.
물론 본 촬영에선 사전 분장이 필요하고, 후작업도 불가결하겠지만······.
이 작은 화면으로 보기엔 충분했다.
파코스 얼굴을 절반 가까이 뒤덮은 화상(火傷)은.
그 순간이었다. 배우의 눈빛과 표정이 변한 것은.
동시에 감정선이 확 꺾이며···.
“크아아아아아악——!”
소름 끼치도록 처절한 그의 비명이 세트장에 울려 퍼졌다.
#
“어우, 소름이···.”
“······.”
직원의 감탄 뒤로 CG 감독은 침묵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시끄럽게 놀라는 중이었다.
테스트가 끝나자마자 크리스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응답한 크리스 감독이 묻는다.
—어땠어?
그 모습이 퍽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아주 거짓말까지 했더구만. 정말 나 허리 펴라고 그런 거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어땠냐니까.
“정말 몰라?”
—현장에 없었는데 어떻게 알겠어.
“바로 영상 보내줄게. 확인해봐.”
뚝 전화를 끊는 크리스 감독.
그의 싸가지에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내심 기대가 되는 그였다.
영상을 본 놈의 반응은 어떨까.
이윽고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그가 묻는다.
—이거, 몇 번째 연기야?
“글쎄. 몇 번째였을 거 같아?”
CG 감독이 입꼬릴 들어 올렸다.
안달 난 목소리에 즐거워진 그였다.
“갑자기 꼬냑이 먹고 싶네. 헤네시로.”
—음주 모델링은 안 돼. 지난번처럼 리깅 하자마자 브레이크댄스 추게 하려고?
“집에 가져다 놓고 퇴근하면 마실게.”
—네가 퇴근을 언제 하는데?
“Fuck···.”
이내 되로 주고 말로 받았지만.
—넌 집에 못 보내줘도 헤네시는 보내줄게. 그러니 말해 봐. 몇 번짼데.
그래도 원하던 보상은 받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CG 감독이 답했다.
“첫 번째.”
—농담 아니고?
“헤네시가 걸렸는데 장난을 쳤을까.”
—······.
침묵이 당연했다.
자신도 저랬으니까.
그린스크린이 처음이나 마찬가지라는 배우가.
거기서 처음으로 연기를 하는데, 마치······.
“앤디 서키스(—골룸 배우) 같았어. 아니, 앤디도 처음부터 저렇겐 못 했을걸? 정말 네 말대로 그린스크린에서 연기하는 게 처음이라면 그 배우···.”
—······.
“괴물이야, 괴물.”
#
······테스트가 끝나고.
근처 세트장을 구경하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김성운과 배부터 채웠다.
그리고 호텔 방에 틀어박혀 내 생각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린스크린 테스트를 한 번 하고 나니 좀 더 감이 잡힌다.
본 촬영은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할지.
무엇을 해야 그땐 더 나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하루하루가 설렘의 연속이었다.
대부분의 액션 시퀀스를 도맡고 있는 만큼 스턴트 준비도 시작했고, 남자 주인공과 다른 조연 배우들까지 캐스팅이 확정되며 대본 리딩도 수차례 가졌다.
개인적인 스케줄도 있었다.
멀티온을 통해 현지 팬들을 만나기도 하고, 한인들이 주로 듣는 라디오에 나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다.
현지 언론사와 인터뷰도 여러번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달.
감독 / 크리스 디벗
디터 역 / 데이브 폴터
랜시 역 / 세이디 모튼
파코스 역 / 백승결
드디어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이 크랭크인을 앞두고 캐스팅 명단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