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3)
사막의 풍경은 단조롭다.
그렇기에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비어있다.
바람에 따라 지평선의 모양이 바뀌는 배경.
그 사이에 오아시스처럼 듬성듬성 박혀있는 잿빛 도시.
핵전쟁으로 망가진 세상이라는 흔하면서도 일어날법한 개연성과.
그럼에도 살아남은 자들이 더는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압도적인 스케일까지.
비현실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이야기를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없다는 것을 커다란 아이맥스 화면이 증명한다.
그 압도적인 화면 속에서.
⌜랜시······!⌟
두 주인공은 치열하게 살아남았다.
랜시를 수차례 돕던 디터는 어느새 랜시를 마음에 두었고.
자신조차 죽을 위기가 더러 있었음에도 계속 옆에 머물렀다.
그때부턴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디터는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에 수없이 빛을 밝혔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졌고 영역을 넓혀갔다.
‘마치 랜시를 죽이기 위해 안달이라도 난듯······.’
디터가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이대로라면 랜시를 끝까지 구하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다.
치이이익——.
그가 입에 가져가던 힙플라스크를 기울였다.
반쯤 남은 술을 그대로 모닥불에 쏟아졌다.
불이 확 하고 커지는 것을 보며 정신차려야겠다고 다짐하던 그때.
⌜이상하지 않아?⌟
랜시가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족적 너머엔 폐허가 가득했다.
무너지고, 흔들리고, 삼켜졌다.
⌜도시에 있으면 싱크홀에 지진,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고, 허리케인이 와. 사막에 있으면 땅이 꺼지고 모래폭풍이 덮치고.⌟
디터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 끝에서 랜시가 말했다.
⌜꼭 내가 죽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그의 일축엔 힘이 없었다.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잠깐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런 자신의 생각이 들킬까, 디터는 시선을 피했다.
랜시는 조용했다. 생각을 들킨 걸까?
그녀의 침묵에 마른 침을 삼키던 디터가 다시 고갤 들어 랜시를 봤을 땐.
그녀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이 달싹거렸다.
⌜싱크홀, 지진, 붕괴, 허리케인, 유사, 모래폭풍······.⌟
⌜······.⌟
⌜그다음은 사람인 걸까?⌟
랜시의 시선 끝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달빛을 등진 그의 모습은 온통 어두웠고, 손에 들린 권총 한 자루가 주는 위압감에 온몸에 털이 빠짝 곤두선다.
⌜···누구시죠?⌟
멍청한 질문이었다.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데, 권총을 든 남자에게 한가롭게 누군지 묻는다는 게.
⌜누군지보단,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를 물어봐야지.⌟
남자가 디터의 질문을 꼬집으며 다가왔다.
디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랜시 앞에 섰다.
그렇게 그는 랜시를 죽이러 온 파코스를 마주했다.
파코스는 길을 잃고 모닥불을 따라 온 손님이 아니었다.
죽음을 몰고 온 사신이었다.
물론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파코스가 다짜고짜 총부터 갈기지 않았다는 것.
그는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
랜시가 ‘재앙’을 부르며, 그것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란 것과.
그렇기에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것까지.
그게 무슨 개소리냐며, 당신 미쳤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디터도, 랜시도 그저 침묵했다.
은연중에 자신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당신이 죽지 않으면, 계속 문제가 생겨. 그리고 당신 주변이 위험해지겠지.⌟
그는 하루를 주었다.
이곳에서 다음 재앙에 죽을지.
아니면 이곳을 떠나 자신에게 쫓기다 죽을지.
결말이 같은 선택지를 남겨두고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디터와 랜시는 바로 도망치지 않았다.
필시 어딘가에서 자신들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두 사람은 꺼져버린 모닥불 앞에 앉아 한참 동안 침묵했다.
두 쌍의 눈이 넓은 사막을 훑었다.
바람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모래 언덕과 그것에 맞춰 모양을 바꿔가는 하늘.
동이 트며 햇빛이 어제와는 다르게 솟아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심했다.
#
[······영화의 중반부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파코스. 여기서부터 영화의 장르가 또 한 번 바뀌기 시작합니다.]키보드를 두드리던 맥이 손을 뻗어 전자담배를 찾았다.
전원을 눌러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작업실에 오자마자 충전해놨어야 했는데.
시사회의 여운이 연기처럼 사라질까 허겁지겁 스크립트부터 작성한 탓이었다.
자신만 그랬던 게 아니다.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배우들은 저들끼리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기 바빴고.
기자들은 머리 위에 떠오른 생각이 금세 가라앉아버릴까 허겁지겁 짐을 챙겨 돌아갔지.
돌이켜보면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강렬한 영화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곱씹을수록 선명해지기도 하고······.
지금처럼.
“이럴 줄 알았으면 충전부터 할 걸.”
충전기를 꽂아놓고 기다리며 그가 중얼거렸다.
이윽고 전자담배를 입에 문 그가 연기를 뿜어내며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올렸다.
뮤튜브 영상에 쓸 스크립트.
개봉일까지 엠바고가 걸려 있어,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이 넘쳐났다.
‘족히 30분 분량은 나오겠어.’
그것도 최대한 줄이고 줄인 거라 생각하며 그가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기억 속에 있던 장면들이, 여전히 그가 시사회장인 것처럼 또렷이 영사되기 시작한다.
#
⌜오늘은 살고 싶어.⌟
두 사람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파코스에게서 도망쳤다.
그리고 허겁지겁 자신들이 머물던 장소에서 벗어나는 그들과는 달리.
파코스는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움직였다.
그의 얼굴엔 분노 같은 건 없었으나, 쫓는 발걸음은 점점 치열해졌다.
⌜내가 이걸 복수라 하지 않는 건,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토끼 모양 목각인형이 파코스의 손 안에서 맴돌았다.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건, 알았기 때문이고.⌟
그의 대사 뒤로 낮은 독백이 울렸다.
⌜앎이란 그렇다. 죽지 않고서야 알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지.⌟
그것은 뒤틀린 광기 같기도.
올곧은 신념 같기도 해서.
사막의 아지랑이 너머에서 바라보는 듯 보는 이들의 감정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는 악당일까, 영웅일까.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주인공들이 책임 없이 도망치는 이기적인 이들로 비춰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고뇌는 깊었으며 생존에 대한 욕심 또한 정당하게 그려진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나아가는 그들의 걸음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살리고자 하고, 살고자 하며, 죽이고자 하는 세 사람의 바람이 충돌한다.
그 과정에서 모두는 대가를 치른다.
파코스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고.
디터는 낭떠러지에서 굴러 크게 다친다.
그리고 랜시는 얼른 떠나라는 디터의 외침을 무시하고 그의 곁에 멈추어 선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았어.⌟
⌜······.⌟
⌜아무 이유 없이 죽는 게 싫었을 뿐.⌟
그 말이 그녀의 선택을 대변했다.
이제 충분한 이유가 생겼으니, 죽어도 된다는 결심.
파코스가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들은 싸늘한 주검이었다.
사인은 아마도 저체온증.
굉장히······.
평범한 죽음이었다.
사막의 일교차는 크다. 핵전쟁 이후 세상이 더욱 병들어서일까. 살인적인 더위와 추위가 반복되는 이 땅이었다.
그러니 이건.
그들이 선택한 죽음이었다.
파코스는 허망한 얼굴로 다가가 그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은 서글픈 눈으로 그들을 땅에 묻었다.
사명이라 여겼던 일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에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자신의 가족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듯.
이들도 이런 운명을 선택하지 않았음을 안다.
마지막 순간, 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빌어먹을 운명에 저항하고 싶었을까.
파코스는 무덤 앞에 털썩 주저앉아 계속 생각했다.
사막의 지형이 바뀌고, 지평선의 모양이 물결치는 것을 바라보며.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은 사람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곧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간 그는 목각인형을 손에 쥐고 천막을 열어젖혔다.
······노파.
예언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축하하네. 자넨 많은 이들을 살렸어.⌟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다.
파코스는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자신이 왜 여기에 돌아왔는지도 알고 있을지.
⌜······무엇이 더 보입니까?⌟
그의 질문에 노파는 느릿하게 답한다.
⌜운명엔 눈이 없다네. 그저 아는 거지. 자네가 지금 그런 것처럼.⌟
그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아시는군요.⌟
⌜그 또한 운명이니까.⌟
⌜궁금한 게 있습니다. 지금까지··· 같은 일이 또 있었습니까?⌟
⌜······.⌟
⌜랜시만이 아니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앙을 부르는 존재로 태어났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알고 그들을 죽이려 했습니까.⌟
⌜그게 중요한가?⌟
노파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중요한 건 앞으로지.⌟
⌜그렇죠······.⌟
그녀의 미소가 결심을 늦추진 않았다.
파코스가 노파에게 총을 겨누었다.
⌜당신의 예언이 또 맞았습니다. 운명엔······ 눈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발의 총성.
운명이 눈을 감았다.
#
[······영화가 끝나고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작업실로 돌아오는 내내 고민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특히나 결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해석하는 게 큰 즐거움이었죠. 저는 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았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보는 이들이 각자의 답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흥미롭습니다. 하루 빨리 영화가 개봉하여 우리가 각자의 답을 나눌 수 있길 기대하며 오늘 영상 마치겠습니다.]앉은 자리에서 30분 분량의 스크립트를 마무리 지은 맥이 곧장 영상을 제작해 뮤튜브에 업로드했다.
2천만 구독자인 채널답게 수많은 이들이 해당 영상을 시청했고, 댓글을 남겼다.
—열린 결말인 건가······.
—근데 다른 영상이나 기사들 보면 결말이 열려있다기보단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 같음.
—그것만으로 이미 괜찮은 영화인 건 확실한 듯.
—배우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네? 예고편 리뷰에서 백승결이 아주 중요한 역할일 것 같다고 했는데, 예상이 틀린 건가?
—비중이 생각보다 없을 수 있다는 얘길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나저나, 맥이 들뜬 게 영상을 뚫고 나오네. 대체 어떤 영화였길래 저러지.
—확실히 맥 텐션이 지난 영상들하고 완전히 판이해서 기대가 안 될 수가 없네······.
—개봉이 2주 뒤지?
그의 영상은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에 대해 어떤 스포일러도 포함하고 있지 않았지만.
이러쿵저러쿵해도, 잔뜩 흥분한 그의 말투와 목소리만으로 영화를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2주.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이 개봉했다.
그의 영상 조회수가 천만을 돌파했을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