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극 (1)
무대 인사를 마치고, 크리스 감독과 두 주연 배우들은 강남에 위치한 호텔로 향했다.
내일은 오전부터 코엑스에서 무대 인사가 있을 예정이라 그 근처로 영화사에서 호텔을 잡은 것.
하지만 나와 김성운, 그리고 현태 형은 스케줄이 끝나는 대로 곧장 차를 돌렸다.
목적지는 집.
중간중간 한국에 돌아왔던 김성운과 현태 형이 한 번씩 방문하긴 했지만, 나한텐 반년 만에 찾는 집이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절반은 비행기 좌석, 나머지 절반은 호텔방을 전전하며 잠을 잤던 터라 집이 너무 그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티비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기계는 안 사용하면 고장 난다고 그랬어.
현태 형이 먼지를 닦아줬을 리 없으니 더 위험할 거 아냐.
뭐, 그런 이유들로 인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철인 잘 놀고 있으려나?”
그렇다고 영화사에서 지원한 호텔 예약을 취소하진 않았다.
김주철이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 있도록 바꿨지.
그에 대해 생각하기 무섭게, 녀석이 단톡방에 사진을 보내왔다.
호텔방에서 웃고 있는 어머니 사진이었다.
이어서 감사 인사를 하는 녀석.
“잘 놀고 있나 보네.”
조수석에 앉은 현태 형이 사진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그러다 불쑥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호텔이 방값 아니더라도 죄다 비싸잖아? 주철이 지금 아무것도 못하고 방에만 갇혀 있는 거 아냐?”
“내 카드 줬···.”
“용돈 좀 줬···.”
김성운과 거의 동시에 답했다.
룸미러로 날 보는 김성운과 눈이 마주쳤다.
피식 웃는 사이, 현태 형은 잔뜩 서운한 표정으로 우릴 돌아보았다.
“와, 너무들 하네. 팀장님! 저도 동생인데요? 용돈 주세요.”
“넌 나랑 몇 살 차이 안 나잖아. 심지어 승결인 너보다 동생이고.”
김성운의 말에 현태 형이 날 보며 으쓱거린다.
“어떻게, 형 할래? 나 그런 거엔 욕심 없다?”
뻔뻔한 표정을 보며 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덩달아 웃던 김성운이 말했다.
“이제 주철이한테 질투까지 하겠어? 걔한테 좀 잘해줘. 어렵다고 거리 두지 말고.”
그러자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드는 현태 형.
“이제 안어렵거든요? 거리도 많이 가까워졌어요. 저도 나름대로 챙긴다고 내일 아는 형님 스튜디오까지 소개시켜줬거든요? 강남 나온 김에 어머니랑 사진 좀 찍으라고.”
“잘했네.”
내가 덧붙이자 현태 형이 반색하며 손을 뻗는다.
“그쵸 형? 그러니까 나도 카드.”
가볍게 무시하며 시선을 돌렸다.
유리창 너머로 오랜만에 보는 서울의 야경이 스친다.
영화 속 등장했던, 그래픽 카드를 닮은 빌딩은 아마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가 먼저 만들 게 될 것 같지. 네온 사인이 잔뜩이야, 아주.
그러다 문득 영화관 간판에 시선이 꽂혀 중얼거렸다.
“······영화나 볼까.”
김성운이 곧바로 반응한다.
“갈래? 같이 보자.”
얼른 핸들을 꺾을 기세의 김성운에게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저 혼자 봐도 돼요.”
“너 ‘범죄인도자’ 보려고 그러잖아.”
“어? 맞아요.”
“그러니까. 그거 볼 줄 알고 말한 거야.”
김성운이 씩 웃었다.
“우리한테 그따구로 하더니, 결국 망했다잖아. 영화가 너무 궁금한데? 흐.”
한때 매니저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던 그의 사악한 웃음 뒤로, 현태 형은 쩍 하고 하품을 한다.
“하아아암~. 그럼 난 네 집 앞에 내려줘.”
“왜 내 집 앞이지?”
“티비 잘 있는지 보려고.”
뻔뻔하게 말하는 현태 형에 김성운이 어처구니없어 했다.
“그걸 네가 왜······.”
“그렇구나.”
물론 나는 납득했다.
가서 작동 잘 되는지 확인 좀 해달라고 하려는데, 김성운이 헛웃음을 흘린다.
“뭘 그렇구나야, 넌.”
그야, 티비는 인정이니까···?
“애착티비네, 아주.”
고개를 흔든 그가 현태 형을 집 앞에 내려주고 핸들을 돌렸다.
티켓을 끊고 자리에 앉아 화면에 영사되는 광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옆에서 김성운이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혀를 내두른다.
“이거 진짜 심각하게 망했네. 개봉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관객수가 100만도 못 넘겼어. 200억짜리 영화가······ 미친 거지.”
확실히, 꽤 큰 상영관인데 관객이 우리밖에 없었다.
“이번엔 네 감이 틀렸다. 것두 아주 기분 좋게 틀렸지.”
사이다를 맥주처럼 벌컥벌컥 들이킨 그가 ‘크으~’하고 추임새를 내며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 남아있던 응어리를 씻어냈다.
이윽고, 영화가 시작되었고.
요즘 영화치고 그리 길다고 할 수는 없는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엉금엉금 지나갔다.
중간에 인터미션이 없다는 사실이 곤욕스러울 정도로 영화는 지루함과 피로도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가 끝났을 때.
“휴, 끝났어?”
김성운이 잠에서 깼다.
내가 끄덕이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와, 심하긴 하다. 그치?”
그러게.
······이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다.
투자자들의 입맛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감독의 결과물은, 내가 본 대본 속 이야기와는 사뭇 다를 수도 있겠다 경계했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완전히 다른 영화인데요.”
#
한편, 푸른물 영화사와 손을 잡고 투자자들을 유치.
전작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원대한 꿈을 꾸었던 윤 감독은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찔했다. 전작의 실패는 실패도 아니었다는 걸, 그는 지금 몸소 느끼고 있었다.
“오늘은 몇 명이야···?”
직원에게 다가가 묻자 그가 조심스레 답한다.
“92만이요.”
“하하···하하하···.”
윤 감독이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200억을 가장 쓸모없게 쓰는 방법을 줄 세우면 자신의 영화가 순위권 안에 들 게 분명했다.
“와,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은 진짜 천만 노려볼만 하겠는데요? 성장세가 미쳤어요.”
속도 모르고 감탄하는 직원에 윤 감독이 휘청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원래 기획했던 대로만 영화가 뽑혔어도 이 꼴은 안 났을 텐데······.’
그가 자리에 앉아 이마를 짚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 고민을 시작하자마자 답이 튀어나왔다.
각본엔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끝내줬지. 연출이 머리속에 훤히 그려질 만큼 직관적이었고, 선명했다.
그러면 뭐하나.
‘영화는 완전히 다른 꼴로 태어났는데.’
배우들은 투자자들의 입맛에 따라 전격 교체되었고, 정작 그들이 공수표를 남발했던 투자금은 3분의 2밖에 못 받았다. 계획했던 것보다 100억이 모자라니 당연히 여러모로 문제가 터졌고, 테이프로 누수를 막는 것처럼 임시방편으로 허술하게 때우는 게 영화 제작 내내 이뤄진 과정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성난 투자자를 달래는데, 당신들이 잘못했잖아! 맞받아치는 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이 바닥에서 영화를 찍으며 살려면 말이지.
“으윽······.”
머리를 쥐어뜯으며 핸드폰이 몸서리치는 광경을 내려다본다.
며칠 전부터 투자자들에게 계속 전화가 쏟아지고 있었다.
투자자들부터 푸른물 영화사 대표까지.
돈을 잃은 아귀들은 분풀이할 곳이 필요했다.
심지어 이젠 푸른물 영화사 대표에게까지 문자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투자자들이 왜 전화 안 받냐고 난리다.] [윤 감독, 너 앞으로 영화 안 찍을 거야?] [야, 이 새끼야! 지금 내가 도게자를 박게 생겼어! 영화는 니가 망치고 왜 내가 이 지랄을···!]영화를 찍는 건 이미 텄을지도···.
#
아침부터 코엑스 무대인사를 마치고 다음 행사 장소로 이동했다.
세 번의 무대인사. 그리고 인터뷰까지.
정신없이 스케줄을 이어가면서도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면 빙그레 웃으며 인사를 했다.
“어, 왔어요? 그러니까. 오랜만에 오니 좋네요. 영화 재밌게 봐요.”
손을 흔들며 팬을 보내고 돌아오자 세이디가 갸우뚱한다.
“아는 사람이야?”
“아니, 팬이야.”
“엄청난 팬인가 봐. 그냥 스쳐 지나가다가 알아볼 정도면.”
“어제 처음 본 팬이야. 무대인사에 왔었거든.”
“······.”
세이디가 날 빤히 보다가 이내 헛웃음을 흘리며 데이브에게 말했다.
“진짜 나사에 연락해봐야 한다니까?”
“그러니까. 기억력이 저렇게 좋으면 연기라도 좀 못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자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크리스 감독이 끼어들었다.
“생각을 해봐. 기억력이 좋은데 연기를 못하는 게 더 어렵지 않겠어? 배우들에겐 경험이 자산인데, 그 자산을 잃을 일이 없잖아. 계속 쌓이기만 하고. 그리고 나사는 안돼.”
고개를 내젓는 크리스 감독에 우리가 눈을 끔뻑거리자, 그가 말을 이었다.
“내 다음 작품에도 출연해주기로 했어. 근데 나사에 납치라도 당하면 어떡해.”
“아···.”
굉장히 진지한 이유였다. 농담이라곤 모르는 양반이니 이상할 것도 없지만.
“그 경험을 토대로 뭔가 나오지 않을까요?”
이어지는 데이브의 붕뜬 소리에 세이디가 어처구니없어한다.
“그게 말이 되는···.”
“스페이스 오페라 능력자 물이라······.”
크리스 감독이 중얼거린다.
이번엔 나도 황당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툭 던지듯 말했다.
“아예 공룡도 섞으시죠?”
“······초미래에 대척점에 있는 원시적인 요소를 섞어서 균형을 잡자는 건가?”
이걸 또 진지하게 받네. 그런 깊은 뜻이 있을 리가······ 아니 애초에 저게 깊나?
크리스 감독, 이 양반 생각보다 웃긴 양반이었어.
화상 통화로 느껴지던 냉랭함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의외인 건 데이브도 마찬가지.
첫 대본 리딩에서의 자존심 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연기를 하지 않는 평소엔 그냥 실없는 농담을 좋아하는 사춘기 소녀였다.
세이디는 첫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고······.
촬영 현장과 평소가 극과 극인 그들을 보며 빙그레 미소짓고 있는데, 인터뷰 준비가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는 또 한바탕 영화 홍보를 하고서, 짬을 내어 거리로 나왔다.
어제야 다들 피곤에 쩔어 호텔방으로 직행했지만, 오늘은 그게 아쉬운가 보다.
마침 장소도 대학로.
늦은 시간이었지만, 불 켜진 술집이 즐비했다.
“그나저나 여기저기 포스터가 굉장히 많네? 영화는 아닌듯하고······ 연극인가?”
“네. 여기가 연극으로 유명해요.”
“서울의 브로드웨이 같은 곳이군?”
“비슷하죠. 여긴 유니버시티웨이 거든요.”
크리스 감독의 호기심에 답을 해주며 나도 포스터들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시간이 이래서 볼 수 있는 건 없겠네요.”
연극 포스터의 특성상 배우의 얼굴이 드러나는 건 거의 없었다.
보통 제목을 크게 박고, 그것을 꾸미는 용도의 이미지가 들어가지.
그렇게 잠시 어떤 연극들이 있나 훑어보다가 한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천추(千秋)]사극풍의 연극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독특해서 눈길을 끈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목에 비해 반의반도 안 되는 크기의 글자.
하단에 적힌 낯익은 이름 때문이었다.
‘아무튼, 너무 반갑네. 언젠가 만나면 작품 너무 잘 보고 있다 말해주고 싶었어. 역시, 작품만 잘 만나면 잘 될 것 같았다니까?’
‘바쁠 텐데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 갈게!’
‘크윽, 감격.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만나자마자 축하부터 건네던 사람.
되려 내가 미안하다 말하고 싶었던 사람.
언젠가 그럴 수 있길 바랐던.
양기전.
“연극 하고 계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