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극 (4)
근 몇 년간.
영화계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OTT 플랫폼들이 몸집을 키워나갔다.
그 여파는 자연스레 전통적인 영화 플랫폼인 영화관까지 내려왔고, 출혈은 예정된 일이었다.
하지만 꽤 많은 이들이 이를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불법다운로드부터 DVD까지. 분명 싸게 보려면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통로가 있었음에도 영화관이 명맥을 유지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 믿은 것이다.
······그래, 이유는 분명 있었다.
다만 그 이유가 영화관 외의 다른 통로가 수고스럽고 불편하다는 게 문제였다. 거기에 양심의 가책은 덤.
그런데 OTT 플랫폼은 어떤가.
간단했고, 편했다. 얼마나 편하면 지갑에 있는 돈까지 알아서 빼 가 버리는 대범함까지 갖췄다.
강력한 대체재의 등장에 영화관은 직격탄을 맞았고, 그렇게 파코스가 말했듯 사람들은 그 편리함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급격하게 찾아온 것들이 그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OTT 플랫폼의 문제점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볼 게 없다.’
금고를 열어 돈은 꼬박꼬박 빼가는데, 막상 접속하면 볼만한 컨텐츠가 없었다. 본 걸 또 봐야 했다. 놀이기구 자유이용권처럼 말이다.
‘완벽한 대체재는 아니었던 건가.’
그런 의문이 오돌토돌하게 튀어나올 무렵.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이 개봉했다.
그리고 반응은······.
‘간만에 대작이 하나 나왔네.’
정도의 반응을 완전히 뛰어넘어버렸다.
사람들은 기다림보다 수고스러움을 선택했고, 그렇게 극장을 찾은 사람들은 더 큰불을 지폈다.
연기는 높이 피어올라 무료함에 채널을 돌리던 사람들까지 끌어들였다.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영화관의 의미를 되새기다>대 OTT 시대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나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현상에 일조한, 영화의 조감독.
코리 황이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빈 머그컵을 들고서 창가 쪽에 올려둔 드립커피머신을 작동시켰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며, 이어지는 생각을 입 밖에 냈다.
“감독님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었네.”
애초에 크리스 감독도 그것을 원했다.
거대한 화면에 어울리는 거대한 장면을 원했고.
그에 맞는 거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느껴 만들기 시작한 이야기가 바로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이었다.
‘보여주고 싶다 하셨지.’
영화란 이런 것이다.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진짜 여행이 아니듯, 영화를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의 의도는 이상적인 방법으로 영화에 녹아들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덕분에 크리스 감독이 없는 크리스 감독 작업실은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수많은 기자들이 인터뷰 번호표를 뽑기 위해 경쟁했고, 방송 섭외에 투자 문의까지.
사무실이 문을 연 이래 성공 가도만 달려온 크리스 감독이지만, 이번 영화는 시작부터가 달랐다.
그의 대표작이 바뀌게 될 것이란 건 굳이 예언가도 필요 없는 당연한 이야기.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 고요해진 사무실을 돌아보며 코리 황이 픽 웃었다.
“폭풍전야 같네, 꼭···.”
하지만 이 고요가 얼마나 갈까.
유통기한이 얼만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은 그들이 지금쯤 출발했을 테니까.
다름 아닌 이곳, 할리우드로.
그때였다. 직원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 왔습니···다.”
“어, 왔어? 커피?”
“아뇨, 아뇨. 물 좀······.”
그가 냉장고부터 뒤졌다.
생수를 똑 따 벌컥벌컥 들이킨 그가 벽에 기대어 잔숨을 헐떡인다.
“······괜찮아?”
“전혀요.”
“아직도 아래에 많아?”
“더 많아진 것 같은데요? 아니, 오늘 오는 거 아니래도 믿지를 않으니 원···.”
이마에 몽글몽글 맺힌 땀방울을 닦아낸 직원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지금 감독님하고 배우들 LA행 비행기 탔대요.”
“휴······슬슬 준비해야겠네 마음의 준비.”
“그쵸······.”
한숨과 함께 대답을 뱉어낸 직원이 덧붙였다.
“아, 들으셨어요? 한국에서 반응 엄청났다고 그러던데. 공항이 마비될 정도였대요.”
“들었어. 대단했다며. 근데······.”
코리 황이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그가 보글보글 끓는 드립커피머신을 머그컵에 따랐다. 그가 한국에서 호응이 대단했다는 얘긴 들었지만, 그는 콧방귀를 뀔 수밖에 없었다.
차르륵—.
커튼을 슬쩍 들춰보는 그.
창 너머 건물 앞. 수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내일 돌아온다는 오피셜이 떴음에도 그걸 믿지 못한 거다.
너무 많은 이들이 몰릴 것을 우려해 하루 먼저 들어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속고만 살았나. 아니, 속이고 살아서 그런가.
픽 웃는 코리 황이 다시 바글거리는 창밖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국에서 아무리 대단했어도······.
“여기만 할까.”
#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의 감독과 배우들이 전 세계 프로모션을 마치고 돌아왔다.
미국 전역이 떠들썩해졌다. 특히나 할리우드가 있는 LA는 그들의 행보에 눈과 귀를 철썩 붙였다.
고작 개봉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되었을 때였다.
이런 상황에 가장 바빠진 것은 당연하게도 기자들과 인터뷰어들.
인터뷰 경쟁이 피 튀기게 치열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의 인물은 크리스 감독과 백승결이었다.
세이디나 데이브도 화제성으론 다른 말이 필요 없는 배우들이었지만, 영화를 만든 크리스 감독과 영화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던 백승결에게 가장 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특히 백승결에 대한 인터뷰 경쟁은 크리스 감독을 능가했다.
이 정도로 중요한 인물일 거라 예상 못 했던 탓에 뒤늦게 번호표를 뽑는 이들이 태반이었기 때문.
그 상황을 유유히 바라보며 자신의 선택을 만족스러워하는 이가 있었다.
예고편만으로 백승결이 맡은 파코스란 역할에 주목했던 천만 뮤튜버 맥.
누구보다 먼저 백승결과의 인터뷰를 선점한 그였다.
그리고 백승결의 귀국과 함께 그 일이 성사되었다.
‘드디어··· 오늘이네.’
심지어 크리스 감독이 자진해서 함께 인터뷰를 하겠다고 요청해왔다.
평소 크리스 감독의 팬이었던 맥에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인터뷰 장소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며 맥은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아니, 구태여 끌어올리지 않아도 물 위에 부유하는 것처럼 떠올랐다.
‘어떤 사람일지 너무 궁금하네.’
크리스 감독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쳤다.
그가 다소 차가운 인상의 중년 남자이며, 인상보다 조금 더 냉랭한 성격의 감독이라는 것.
이와는 반대로 영화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며, 완벽주의자에 부인과 이혼······.
어쨌든.
그에 대한 정보는 많았지만, 백승결은 아니었다.
한국발 정보들을 뒤져보니 아역 배우였다던가, 최근엔 부모가 진 빚으로 잠시 홍역을 겪다가 상황이 뒤집히며 오히려 팬이 늘어났다는 것 정도의 ‘상황’만 있을 뿐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에 대한 이야긴 거의 없었다.
서귀호부터 오태구, 이인호에 이르기까지.
백승결의 얼굴을 보면 각기 다른 인물들이 강렬하고 선명히 떠오르지만······.
‘정작 배우 자신은 흐릿하다니.’
그렇기에 백승결은 인터뷰하기에 너무나 설레는 인물이었다.
단 한 작품만으로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베일에 싸인 배우.
그 베일을 벗길 기회가 자신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것이다.
#
“······영화를 보면 파코스의 등장 이후부턴 터미네이터1이 떠오르더라고요. 내용 혹시 아시나요?”
뮤튜버 맥의 질문에 내가 끄덕였다.
“네, 알아요. 회귀물이잖아요. 로봇 회귀물.”
그가 내 말에 잠시 벙쪄하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요. 로봇 입장에서 보면 정말 그렇네요. 미래에 자신들을 위협할 남자의 엄마를 죽여 미래를 바꾸려는 로봇의 고군분투기!”
킬킬거리던 맥이 덧붙여 말한다.
“아무튼,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에선 파코스가 그런 역할을 했단 말이죠. 물론 회귀는 아니지만, 미래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가 동의를 구하듯 크리스 감독 쪽을 돌아보았고, 크리스 감독이 끄덕였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또 마지막에선 파코스가 주인공들 편에 선 것 같기도 해요. 주인공들을 그토록 죽이려 했고, 그 죽음을 기어이 확인하고 나서였죠. 아마 저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지점일 텐데······ 파코스는 왜 마지막에 예언가를 죽였을까요?”
맥의 질문이 던져졌고.
크리스 감독은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저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그러자 맥이 예상했다는 듯 주억거렸다.
“감독님이 결말에 대해 ‘정답’을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한국에서의 인터뷰를 이미 봤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제가 궁금한 건 사실 감독님의 ‘정답’보다는 파코스의 ‘대답’이에요.”
그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파코스의 대답이 무엇일지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그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파코스였으니.
그의 생각이 모두 나에게 있으니.
하지만 그것을 밝혀도 되는지는 의문이었다.
결말에 마침표 대신 물음표를 두겠다는 크리스 감독의 뜻에 반대되는 것일까 봐.
슬쩍 고갤 돌려 크리스 감독을 보았다.
그가 나를 보며 끄덕인다.
어차피 나에게조차 결말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한 적이 없었으니 상관없다는 눈치였다.
그가 촬영장에서 원했던 건 자신의 파코스가 아닌, 나만의 파코스였으니까.
‘이러면 나도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지.’
내가 질문을 너무 어려워하고 있다 생각한 걸까.
맥이 생각을 도와주려는 듯 다시 말을 잇는다.
“자유의지라는 분도 있고, 어떤 상징적인 장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그리고 내가 입을 열었다.
“이건 감독님과도 얘기한 적이 없는 부분인데, 저는 그냥······ 파코스가 알았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을요?”
“예언가가 보는 미래조차, 편협하다는 걸. 그래서 결코 정답일 수 없다는 걸.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의 해석이 모두 다른 것처럼요.”
“오······예언가의 예언에서 어떤 오류라도 찾아낸 걸까요?”
맥이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크리스 감독도 흥미로운 듯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모두의 해석이 어떤 예언이라고 가정을 해봤을 때, 결국 저희조차도 한가질 놓치고 있는 게 있더라고요.”
“그게 뭐죠?”
“진짜 재앙.”
“진짜 재앙?”
표정이 가장 먼저 변한 것은 크리스 감독이었다.
뒤이어 한동안 미간을 구기던 맥도 무언가를 깨달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핵전쟁······.”
답이 나왔으니, 설명을 이어간다.
“싱크홀, 모래폭풍 그런 것 따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재앙. 정작 지구의 대부분을 사막으로 만든 그 ‘진짜 재앙’에 대해선 대체 누가 책임을 졌는가예요.”
“······.”
“그걸 일으킨 이들은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여전히 그래픽카드 닮은 빌딩 꼭대기에서 핵전쟁 이전에 담근 위스키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죠.”
“······.”
“그 아래에서 디터와 랜시는 결국 죽음을 선택했어요. 책임을 진 거죠. 그 순간, 그들의 선택을 바라보며 파코스는 이런 디터와 랜시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겠어요?”
심각하게 이야기를 듣는 두 사람을 향해, 내가 빙그레 웃었다.
“자 이제, 누가 재앙이지?”
어느새 팽팽해져 있던 분위기가 탁하고 풀리며 맥이 크게 웃었다.
“와······ 진짜 생각지도 못했네요. 그렇죠. 맞네요. 배경이 핵전쟁 이후였죠. 하하······ 감독님, 백승결 배우의 해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참 동안 자신의 팔뚝을 쓸며 감탄하던 맥이 크리스 감독에게 물었다.
그리고.
“인상적이네요. 영화를 다시 찍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내 연기를 볼 때, 늘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