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극 (6)
“뭘 그렇게 오글거려해. 헤리티지가 있는 별명인데. 이미 해별이네 때 천재 아역으로 유명했잖아?”
내가 나라 잃은 표정으로 앉아 있자 김성운이 웃으며 말했다.
헤리티지라. 그래 내 헤리티지는 대한민국이지. 돌아가자. 내 캐리어가 어디에······.
두리번거리다 이내 포기하고 고갤 흔들었다.
“어렸을 때 별명이 ‘봉천동 불주먹’인 거랑 성인이 돼서도 그렇게 불리는 건 좀 다르지 않을까요.”
내 나름대로의 반박에 현태 형이 키득거렸다.
내가 아닌, 김주철을 보며.
“주철이 움찔거리는데? 너도 별명 있었지?”
“없었을 리가 없지.”
김성운까지 그렇게 말하자 김주철이 우물거렸다.
“한때는··· 있었죠.”
“한때? 언제까지?”
“20대···.”
“지금 20대잖아?”
“···중반까지.”
“지금 중반이고.”
꼬치꼬치 캐묻는 현태 형에 김주철이 곤란해하자 김성운도 입꼬릴 올리며 물었다.
“뭐였는데?”
“까, 까먹었어요.”
“얘 봐라. 배우 매니저라고 이제 연기도 하네. 지금 너무 기억나는 얼굴인데? 말해 봐. 뭔데, 뭔데.”
“핵주먹? 불주먹?”
“돌······.”
“돌주먹!”
그걸 또 맞추려는 현태 형.
결국, 제대로 대답하기 전엔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는지, 김주철이 결국 고갤 푹 떨구며 말했다.
“돌쇠.”
그리고 모두가 납득했다.
190이 넘는 키에 그 높이가 전혀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 굵직한 풍채.
그리고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위축되기 만드는 인상까지.
“차라리 저런 착 붙는 별명이면 좋잖아요. G.A는 너무 오글거린다고요.”
내가 내심 부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김성운이 킬킬거렸다.
“가만 보면 네가 제일 나빠. 그나저나, 앤디 서키스 트위터 봤어? 승결이 너에 대해서 글 남겼던데? 영화도 너무 잘 봤는데, 메이킹필름은 정말 어메이징했다고.”
“봤어요. 너무 고맙지만··· 태그에 G.A는 빼줬으면 좋겠는데.”
내 바람과는 달리 G.A라는 태그는 점점 불어났다.
그러다 보니 나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내 이미지란······.
“G.A! G.A! 반가워요! 영화 너무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근데 제 이름은 백승결이에요.”
“알고 있어요, G.A!”
“······.”
거리에서 새로운 팬을 만났을 때의 흔한 반응들이었다.
결국 다들 내 이름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냥 별명을 부르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그때부턴 제 소개를 그만두었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라지.
어쨌든, ‘악의 링’으로 LA를 찾았을 때와 칸 영화제 이후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촬영을 위해 왔을 때와는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나와 신승찬을 알아보는 몇 명 때문에 거리가 소란스러워졌다거나, 저들끼리 수군거리며 회의를 거쳐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다가오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단번에 알아보고 망설임 없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인이나 사진은 물론이고.
“정말 다 기억해요? 지금 제 얼굴도요?”
“우리나라 언어도 배워주시면 안 돼요? 쉬워서 일주일이면 될 것 같은데.”
이런 황당한 질문까지 던지며.
결국, 유명세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람이 너무 많고 길이 좁은 도심을 거니는 건 조금 어려워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크고, 개인주의가 강하다 보니 외곽이나 큰길은 나름 괜찮다는 것.
적당히 팬들을 만나는 것도 내겐 즐거운 일이었다.
팬들을 따로 보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무대 인사를 제외하곤 많지 않았거든.
그렇게 계속 시간이 흘렀다.
영화 관련 단체 인터뷰나 개인 인터뷰가 끝도 없이 잡혔고, 심지어 티비 쇼까지 출연하게 되면서 정말 일정에 쫓기듯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댐까지 열려버렸다.
“갓댐······.”
현태 형이 날 보며 탄식했다.
정확히는 내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대본.
“앙코르와트인 줄. 이게 대체 몇 개예요?”
“나도 세다가 포기했어. 읽는 건 이제 곧 포기할 예정.”
김성운이 어깨를 으쓱거리자 현태 형이 대본 더미 중 하나를 집어 들며 눈을 찡그린다.
“음. 꼬부랑 글씨들······.”
그의 포기는 더욱 빨랐다.
금세 대본을 다시 원위치에 내려놓고는 소파에 앉아 내 쪽을 보며 갸웃거린다.
“근데 승결이 너 표정이 안 좋다? 의외네. 대본을 고기보다 좋아하는 애가. 하긴,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너무 많긴 하지?”
“그건 아니고···.”
확실히 아니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어떤 작품일지 무지 설렜으니까.
바쁜 일정 속에서 틈틈이 읽으며 리프레시 할 자양강장제가 되어줄 거라 생각했지.
그랬는데······.
내가 울적해 하자 김성운이 낄낄 웃으며 대신 말했다.
“승결이가 받은 역할이 대부분 천재 캐릭터거든. 지금 얘 그거에 학을 떼는 중이다.”
“허, 이젠 미국에서도 천재 전문 배우가 되어가네요.”
“흔치 않은 기회긴 하지. 천재 연기를 하는 천재 배우라니.”
하하···.
근데 어쩌지. 난 그 기회를 받고 싶지 않은 걸.
‘그래도 대본이라도 재밌으면 천재 역할이든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할 텐데 말이지······.’
고개를 흔들며 읽고 있던 대본을 또 한 장 넘겼다.
끌리긴커녕, 솔직히 별로였다.
캐릭터는 붕 떠 있고, 스토리는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라고 외치며 산을 넘어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그래도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건 그나마 좀 낫지 않아?”
때마침 들려오는 김성운의 물음에 내가 그를 돌아보았다.
‘진심인가?’
농담하는 줄 알고 봤는데, 장난기 한 점 없는 표정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곤 다시 한번 대본을 훑었다.
‘진짜 별로인가?’
변하는 건 없었다. 진짜다. 별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불과 작년의 나였더라면 이 정도로 별로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서 김성운도 저렇게 얘기하는 것 같은데······.
내가 예민해진 건가? 깐깐해졌나?
아니면······.
‘감이 더 좋아졌나?’
사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갑자기 왜······.
이 질문에 대해선 짚이는 바가 딱 떠오르긴 한다.
바로, 글.
‘글을 쓰면서부터 대본을 보는 기준도 조금 달라진 것 같긴 해.’
정확히는 달라졌다기보단 더욱 뾰족해진 느낌.
처음 글을 쓸 땐, 평소 대본을 읽을 때 그랬던 것처럼 감으로 문장을 이어나갔는데.
그래도 몇 달을 꾸준히 쓰다 보니 나름대로의 기준이 생겼다.
그 기준이 내 감을 깎고 또 깎아, 조금 더 날카롭게 바꾼 것 같다.
김미옥 작가가 내게 글을 쓰라고 권유했던 이유들과는 또 다른, 새로운 효능이었다.
“이건 좀 신기하네.”
“뭐가? 크리스 감독 전화가?”
“······음?”
내 중얼거림에 대한 현태 형의 이상한 대답에 고갤 돌렸다.
소파 테이블 위에 내 핸드폰이 화면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크리스 감독의 전화였다.
#
“여보세요?”
—이봐, 지니어스.
그의 첫인사에 내가 멈칫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감독님까지 그렇게 부르시는 거예요?”
—뭘? 지니어스? 또 누가 널 이렇게 불러?
의아해하는 목소리에 나도 의아해진다.
“제 별명 보시고 그렇게 부른 거 아니에요?”
—자네 별명이 뭔데?
“G······아녜요. 모르시면 다행이고요. 근데 왜 갑자기 지니어스라고 하신 거예요?”
—그야, 자넨 지니어스가 맞으니까.
무슨 점지 하듯 단호하게 말하는 크리스 감독에 고개가 기울었다.
그때 뮤튜버 맥과의 인터뷰 때 결말에 대해 이야기했던 걸 말하는 건가?
굳이, 이제 와서?
그때 크리스 감독이 툭 내뱉었다.
여전히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냉소적인 목소리였지만.
—신작 시놉을 써버렸어.
듣는 입장에선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산더미 같은 대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받은 스트레스가 단숨에 연소되어 날아가는 듯했다.
“쉬신다면서요?”
“그게 잘 안 됐어.”
어느 정도 이럴 거라 예상은 했지.
지금까지 다섯 작품 정도를 연달아 만들어낸 감독.
심지어 작품 간에 겹치는 기간이 꽤 될 정도로 쉴 새 없이 만든 그가 쉰다고 하는 걸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으니까.
그래도 생각보단 빠르게 차기작을 구상했네. 역시 할리우드 스타 감독은 다르긴 다르구···.
“자네 때문이야.”
······나?
#
그날 오후.
할리우드 중심에 위치한 크리스 감독의 작업실로 찾아갔다.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나를 반겼다.
“어서 와.”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뭐··· 그럭저럭.”
그런데 코리 황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시무룩한 그를 보며 내가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그걸 모르는 넌 정말 감독님과 비슷한 부류구나.”
“···?”
잠시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그가 저렇게 말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아, 하하.”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뭔가.
신작 때문이다. 크리스 감독의 차기작!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의 프로모션을 이어가고 있지.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팀원들 입장에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로 다음 프로젝트를 이어가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 사실상 크리스 감독의 팀에서 가장 많은 일을 맡고 있는 코리 황에겐 슬픈 소식일 수밖에.
한달음에 달려와 좋다고 히죽거리는 나를 보며 그가 혀를 차는 것도 일견 이해가 갔다.
“그래도 아직 시놉 단계인 것 같던데요.”
“네가 감독님을 몰라서 그래. 대본 쓰는 거 금방이다. 순식간이야.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아니다. 이건 스포일러네. 일단 들어가 봐.”
피시식 웃으며 손을 휘적거리는 코리 황.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크리스 감독의 방.
문을 두드리고 살짝 열자, 책상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무언가를 고민하던 크리스 감독이 나를 바라본다.
“어서 와. 소파에서 잠깐만 기다려줘.”
그의 인사에 화답하며 안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책상보다도 큰 전지(全紙)를 펼쳐놓고 그 위에 무언가를 휘갈겨놓은 크리스 감독.
그가 한참 동안 전지 위를 훑어보다가 이내 A4용지 하나를 들고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뭐가 잘 안 풀리세요?”
“어떻게 알았어?”
“표정이···.”
“심각해 보였나?”
“그 정도였으면 몰랐죠. 원래 심각해 보이는 표정이 디폴트인데.”
내가 씩 웃으며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지자 그가 잔뜩 구겨져 있던 미간을 펴며 소파에 푹 몸을 기댔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있던 종이를 내게 건넨다.
“이거군요. 저 때문에 쓰셨다는 시놉이.”
“읽어보면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거야. 난 정말 이번엔 쉬려고 했다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듯, 양손을 펼쳐 보이는 그.
궁금한 마음에 곧장 종이 위로 시선을 옮겼다.
한 장짜리 짧은 시놉.
나는 보자마자 코리 황이 왜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는지 알았다.
그의 입장에서 새로운 작품이란··· 새 콘티, 새 캐스팅, 새 배경, 새 소품을 모두 준비해야 하는 대장정이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이건 확실히 다행일 만했다.
모두 새로 구할 필요는 없을 테니.
“이거······.”
드넓은 사막.
그래픽카드를 닮은 빌딩.
그리고 얼굴에 화상을 입어 후드를 푹 눌러쓰고 한 손엔 권총, 다른 한 손엔 토끼 모양 목각인형을 들고 그곳을 걷고 있는 주인공.
“후속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