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극 (8)
“이걸 가져왔을 때, 솔직히 좀 불안했어요.”
하선경 대표가 대본을 가리켜 말했다.
그녀의 불안은 매니지먼트 대표로서 합당한 것이었다.
“배우들 중에 분명 잘하고 있는데, 갑자기 매너리즘에 빠져서 다른 거 해보고 싶다는 친구들 많으니까.”
“그게 배우들의 성향이지.”
배우들은 대게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한 사람으로 사는 게 무료해서 타인으로 사는 것을 즐기는 이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들은 쉴 때도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낸다.
때론 화가로, 때론 여행가로, 때론 이렇게 작가로.
그러다 너무 심취해버리면, 오히려 본업에 소홀해지기도 하지.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내심 불안해하면서 대본을 읽었죠. 그리고 알게 되었어요. 백승결은 다른 걸 해보고 싶었던 게 아니구나. 같은 걸 했구나. 자신이 가장 잘하는 거. 글이라는 또 다른 언어로 연기했구나.”
“······그렇게나 대단한가?”
자연스레 손을 뻗는 천광윤.
하지만 하람 대표로서의 하선경은 단호했다.
“보시면 안 돼요. 작가님 허락을 아직 못 맡았어요.”
“쩝. 내가 따로 연락해봐야겠군.”
“그땐 기꺼이 보여드릴게요.”
씩 웃어 보이는 하선경 대표.
그녀가 대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잔뜩 호기심이 부푼 얼굴의 천광윤에게 묻는다.
“제 아쉬움이 ‘백록’ 때 같다고 하셨죠?”
자신은 촉이 뛰어난 사람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들을 활자 속에서 발견해내는데 남다른 능력이 있다.
그렇기에 답할 수 있었다.
“아뇨. ‘백록’과 비교할 수 없어요. 이 작품은 지금까지 제가 봐온 그 어떤 작품보다도 촉이 강하게 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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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윤의 눈에 비친 하선경 대표는 퍽 새로웠다.
발견과 희열.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아쉬움이 뒤섞여 있달까.
만약 성별을 떠나 그녀를 연기하라고 한다면, 분명 잘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자신감이 과했다고 느끼는 그였다.
‘저런 표정을 지을 생각은 전혀 못 했을 테니까.’
분석이란 과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었던 건가······.
사람은 변한다.
어쩌면 연기는 그것까지 예측해내는 예언자의 영역을 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깨달음을 곱씹던 천광윤이 물었다.
“그 말은··· 성공할 확률인가? 아니면 좋은 작품일 확률?”
“양쪽 다요. 근데 확률이라기보단, 확신이라고 해둘게요. 100%는 더 이상 확률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까요.”
“그런가. 하긴, 내일 해가 뜨는 것을 100%의 확률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군. 그 정도로 확신한다는 건가. 이 대본에.”
“네······.”
뚝. 확신을 말하는 사람치고는 음울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지금 이 좋은 대본으로 연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속상해하고 있었다.
연극을 무시하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사업가로서, 대표로서 당연한 안타까움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좋은 아이템을 시장이 작은 곳에 팔고 싶겠나.
심지어 자신이 평생 봐온 것들 중 가장 좋은, 대박 아이템인데!
그렇기에 천광윤은 하선경 대표를 이해했고, 곰곰이 생각을 이어나갔다.
대본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분명히 좋은 작품일 터.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
“그 정도로 감이 좋은 작품이라면 연극으로 시작해서 영화화로 넘어갈 수도 있지 않겠어?”
이미 생각해봤다는 듯 하선경 대표가 어깨를 내리며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거··· 아시잖아요.”
작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연극과 영화는 얼핏 비슷하게 보여질 수 있지만, 엄밀히 다른 분야다.
같은 언어라고 해서 한국어와 일본어가 다르듯, 연극을 영화로 옮겨 올 땐 양쪽을 모두 이해하고 관통해야만 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투자문제도 끼어있지.
그러니 하선경 대표의 저런 반응을 천광윤도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는 지금 조금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보고 있었다.
“만약, 그 반대라면?”
“네?”
“영화화가 이미 확정된 상태에서 연극이 제작된다면?”
“어······ 어!?”
“영화 감독부터 정해도 무방하지. 그건 그냥, 순서의 문제니까. 그러면 연극 쪽에서도 두 손을 들고 환영할걸?”
“선배님······!”
하선경 대표의 얼굴이 확 폈다.
“돈키호테도 쓸모가 있지? 풍차랑 싸우다 보면 이런 것도 늘거든.”
천광윤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새 하선경 대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영화화··· 영화화··· 투자 쪽은 굿픽처스에 맡기면 될 것 같은데, 감독은 누가 좋을까요. 한이연 감독의 색깔은 이 대본하고는 뭔가 좀 안 맞고···.”
“내 얘긴 들리지도 않지?”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고갤 흔든 천광윤이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익숙한 감독을 찾는 게 능사는 아닐 거야. 연극 연출 쪽으로 해박하면서, 그걸 영화만의 언어로 탈바꿈하는데도 능통한 감독이 필요하다고 봐.”
천광윤의 말에 하선경 대표가 귀를 쫑긋 세웠다. 선택적 경청이었다.
“연극 연출 쪽으로도 경험이 아주 길고, 영화계에서도 성공을 거둔 감독······.”
그녀의 입꼬리가 선명한 호를 그렸다.
“마침 저희랑 커넥션이 있는 감독 중에 그걸로 유명한 감독이 있죠.”
#
“감독님.”
직원의 부름에 안 감독의 고개가 돌아갔다.
“응?”
“오늘 하람 가시죠?”
퀭한 눈의 안 감독이 코를 훌쩍이며 답했다.
“가지. 가야지.”
“몇 시쯤 돌아오세요. 저희도 회의 시간 잡아야 하는데.”
“음······ 3시? 아니다, 4시? 그 안에 내가 못 돌아오면 경찰에 신고 좀 해줘.”
“엥, 경찰에요? 어디 납치당하세요?”
“납치는 아닐 것 같고··· 아마도 독살?”
장단에 맞추던 직원의 표정이 더욱 요상해졌다.
“독살이요?”
“신승찬 배우 미팅하고 대표실 좀 들렀다 와야 되거든. 하 대표님이 차 한잔 어떠냐는데, 난 거기에 독이 들어있을 거라고 본다. 갑자기 왜 날 부르겠어. 이거 딱 모양새가 자기 동생 괴롭히는 놈 불러다가 혼내는 형 같지 않아?”
자초지종을 들은 직원이 피식 웃으며 끄덕인다.
“혼나실만 하죠. 벌써 네 번째인데.”
“연극 쪽에서도 다 이렇게 해. 마음에 들 때까지 본다고.”
“연극 배우들은 신승찬이 아니잖아요. 신승찬 몸값이 얼마인데.”
“뭐 걔 피부는 금박이냐. 몸값은 무슨. 배우는 외모, 그리고 연기가 다야.”
“외모는 금박이긴 하죠.”
“그건 인정. 미팅할 때 보다 보면 조물주의 컨디션 난조에 대해 야속해진다.”
툴툴거리는 안 감독에게 직원이 물었다.
“그래서 신승찬 배우 어떡하실 건데요?”
“흐음. 글쎄······.”
안 감독이 네모난 안경테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눈을 벅벅 비빈다.
고민이 많았다.
마스크는 배역에 찰떡이고, 목소리와 분위기도 완벽한데.
묘하게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안 감독은 그게 몰입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몰입이란 결국 가상의 캐릭터가 가진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오는 것인데, 그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이질감이 들 수밖에.
결국 연기란,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변형하느냐의 문제니까.
“어느 정도 감독님이 그리는 그림에 그림체가 맞아 떨어지면 한 번 믿어보시는 게 어떠세요? 그래도 신승찬이고, 하람인데.”
“지금 나보고 하람을 무서워하라고?”
“이미 무서워하셨으면서. 독살이니 경찰에 신고해달라느니.”
“야, 그건······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관계를 좋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거지. 나중에 또 모르는 거잖아. 누가 알겠어, 나중에 내가 백승결 같은 배우랑도 작업하게 될지.”
“에이, 그건 좀···. 백승결 요즘 할리우드 영화 대박 나고 아예 화성 갔는데.”
콧방귀를 뀌는 직원에 안 감독이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덧붙였다.
“그리고 나 지금 신승찬 믿고 있는 거야. 그래서 기다리는 거고.”
이것도 연극과 영화의 차이라면 차이였다.
연극은 배우풀이 넓다. 특히 주연 자리에도 유명하지 않은 배우를 미친 척하고 쓸 수 있다는 게 큰 강점이었다.
최근엔 그곳조차 배우의 유명세로 돌아간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자기 땐 밀어붙이면 가능했지.
그러나 이곳은 선택지가 좁았다.
주연은 반드시 이름 있는 배우여야 했고, 거기서 연기력 없는 친구들 치우고, 캐릭터에 영 안 맞는 애들 떨어트리면, 남는 배우가 몇 없었다.
신승찬도 그렇게 남은 배우였다.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딱 맞지는 않지만.
그나마 지금까지 만나본 배우들 중에서 가장 잘 맞는 배우.
‘타협이 필요한 시점인가······.’
생각을 수습하며 안 감독이 직원에게 말했다.
“일단 오늘 다녀와서 얘기하자. 오늘은 꼭 결정을 내릴 테니까.”
그리고 그날, 오후.
안 감독은 신승찬과의 미팅에서 희열을 느꼈다.
너무 가려워 미치겠는 곳을 계속 못 찾다가, 비로소 긁게 된 것과도 같았다.
‘본인에게 없는 캐릭터를 찾았다? 아니··· 만들어냈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환골탈태라도 한 모양이었다.
······대체 어떻게?
3번 만나는 동안 좀처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의문에 이어, 영화판에 들어와 내내 고민했던 부분이 툭 튀어나왔다.
‘어떻게 배우들을 변화시킬 것인가.’
언제까지 마음에 드는 배우만 고집할 수는 없었다.
필연적으로 덜 마음에 들더라도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업영화니까.
그러면 배우와 캐릭터의 주파수가 맞지 않더라도 연출가로서 그걸 맞춰줄 수 있어야 하는데, 딱 맞는 배우만 골라오던 그에겐 부족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었다.
“그··· 신승찬 배우.”
“네, 감독님.”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키는 신승찬.
그를 보며 안 감독이 물었다.
“하람에서도 연기 트레이닝을 하나요? 연기 선생님이 누구예요?”
“선생님이요? 하람에··· 없는데요.”
“그럼 혼자 깨우쳤어요? 어떻게요?!”
살짝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안 감독.
“아······.”
이에 입을 벌린 채로 당황하던 신승찬이 이내 희끗하게 웃는다.
“사실 연기 조언을 좀 받았어요.”
“방금 하람에 없다고··· 아, 다른 곳에서 배웠군요.”
하긴, 매니지먼트에서 사설 업체를 쓰기도 하니까.
무려 하람 씩이나 되는 곳에서 별도의 연기 지도 시스템 없이 업체를 쓰는 건 의외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안 감독이 벌컥 물었다.
“거기 어디예요? 내가 연극 연출 출신이라 그런 게 아니라, 영화계 들어와서 진짜 얼굴이나 빽 믿고 까부는 애들을 한두 번 보는 게 아니라 그래요. 걔네들 싹 다 거기로 보내버리게. 아니다. 내가 가서 배워야겠다.”
“학원도 아녜요. 일종의 과외인데··· 저는 친분으로 했어요. 제 친구거든요.”
“친구? 그러면 또래라는 건데··· 그 나이에 연기 지도로 그 정도 수준까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보컬 쪽만 해도 젊으면서도 뛰어난 트레이너가 많으니까.
“그런데는 많이 비싼가? 아니,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지.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돼요?”
이쯤 되니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신승찬이었다.
4번씩이나 미팅을 하며 피를 말렸던 것에 대한 복수는 이쯤 할까 싶었다. 뭐, 복수라기엔 딱히 거짓말을 한 것도 없지만.
“이름이요? 백승결이요.”
“백승······.”
핸드폰을 꺼내 이름을 메모해두려던 안 감독이 멈칫했다.
동명이인인가 싶었는데, 옅게 입꼬리를 올리는 신승찬을 보니 뭔가 이상했다.
“설마··· 배우, 백승결은 아니죠?”
“맞아요.”
“그, 지금 할리우드에서 난리인?”
“네, 그 백승결이요.”
순간 전신에 소름이 쫙 돋는 안 감독이었다.
뒤이어, 어떤 선생인진 몰라도, 찾아가서 돈 주고라도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파사삭 모래처럼 부서진다.
“어후, 거긴······ 존나 비싸겠는데.”
시급이 얼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