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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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화 극 (10)
일주일. 그 사이에 크리스 감독과 영화 관련 스케줄을 제외하고도 세 번을 만났고, 다섯 번을 통화했다.
사람이 냉소적인 것 치고는 말이 은근 많다는 건 계속 느끼고 있었지만, 작품 얘기로 깊게 들어가니 끝도 없었다.
‘너무 좋은데?’
덕분에 나는 공짜 수업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의 생각, 그가 머릿속에 그리는 상상과 현실화를 위한 구상 등.
뛰어난 감독의 노하우가 내 눈과 귀 앞에서 수없이 쏟아졌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담아 내 기억 속에 넣었다.
여전히 차 있는 공간보다 빈 공간이 더 많은 기억의 저장소.
나의 도서관에 ‘크리스 감독의 영화 제작법’이라는 책 한 권이 완성되어 꽂혔다.
‘내가 연기를 할 때의 즐거움을, 크리스 감독은 지금 느끼고 있구나.’
이렇게 보니 감독은, 어쩌면 아주 넓은 의미의 배우 같다고 느껴졌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같은 세상. 그곳에 ‘신’으로서의 역할을 맡아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누구보다 자신의 배역에 충실한 배우.
파코스를 연구하며 그의 세계에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역시 만든 양반은 또 달랐다.
크리스 감독은 내 앞에서 연기와 연출, 그리고 글쓰기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이쯤되니 궁금해진다.
‘어디까지가 매듭일까?’
나는 연기에서 해소되지 않는 감정들로 글을 썼다.
이것은 ‘매듭’이라 부르기로 했지.
그런데 크리스 감독의 모습을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뀐다.
매듭.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감독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요?”
“그건 감독 나름 아닌가. 내가 거기까지 하기로 결정했으면, 거기까지가 내 역할이지.”
확실히 크리스 감독다운 대답이 이어진다.
“다만 내가 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다른 이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채워 넣어야만 해. 감독의 유일한 역할은 ‘완성된 영화를 관객들에게 넘겨주는 것’ 까지니까.”
그가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을 만들며 보여준 태도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관객에게 넘겨줬으니, 자신의 역할은 완벽히 끝난 것이었다.
영화사가 있고, 투자자가 있으니 여러 인터뷰를 나가고, 무대 인사도 하지만.
그곳에서 오히려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에 대한 이야기보다 영화 자체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풀어놓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자신의 역할은 끝났으니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자네를 찾아오는 거고. 감독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저한테 오시는 게 왜 감독의 역할인 거죠?”
“내 차기작이 자네의 생각으로 시작되었고, 여전히 자네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으니까. 이쯤되면 공동 각본에 이름을 넣어야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야.”
“에이, 그냥 전 그때그때 재밌을 것 같은 생각을 말하는 것 뿐인데요 뭘.”
“그래. 그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 거기서 특별함이 나오니 하는 말이야.”
살짝 입꼬릴 올린(—우리끼린 활짝이라고 부르는) 크리스 감독이 덧붙여 말한다.
“전에 한 말 진심이었어. 자네 꼭 글 한 번 써봐.”
그렇게 툭 과제를 던져주고는 다시 자신의 노트북에 집중하는 크리스 감독.
나도 빙그레 웃으며 우유가 담긴 컵을 들었다.
‘······이거 되게 기분 이상하네.’
입이 근질거린다. 손도 근질거렸다.
대뜸 내 방에 있는 대본을 가져와 그에게 말없이 건네고 싶었다.
그리고 이야길 듣고 싶었다.
그때의 감정이 어떨지 상상이 안 간다.
타인의 세계에 내 작은 생각을 얹는 것도 이렇게나 즐거운데, 내가 만든 세계를 펼쳐 보여주는 건 얼마나 더 즐거울지.
심지어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이란 거대한 세계를 성공적으로 조형한 크리스 감독에게 말이다.
아마 오랫동안 준비한 연기를 관객들에게 공개하는 기분일 터.
복귀하고 처음으로 ‘안주연’ 연기를 하기 위해 복도를 걷던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신승찬에게 조언해주었듯, 자연스레 내 감정에서 그것과 비슷한 감정을 찾아낸다.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하람이 내 작품을 연극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 중일 텐데, 함부로 타인에게 보여줄 순 없으니.
뭐, 보여준다고 해서 그가 내 대본을 유출할 일은 없을 거고, 욕심을 낼 일은 더더욱 없을 테니 크게 문제야 없겠지만······.
‘굳이 내가 글을 쓴다는 걸 아는 사람이 늘 필요는 없지.’
백승결이란 이름을 떼고 평가받고 싶은 마음도 컸기에.
나는 컵으로 손을 잡고, 우유로 입을 닫았다.
“그런데 말이야, 파코스가······.”
노트북을 두드리던 크리스 감독이 다시 고개를 든다.
그리고 내가 우유를 마시는 사이 미친 듯이 써 내려간 내용을 공유했다.
그것에 대해 나누고 또다시 집필.
그 과정을 십수 번 반복하다가, 그가 노트북을 덮었다.
“오늘은 이쯤 해야겠군.”
칼같이 일어나 라운지를 나서는 그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본을 쓰는 게 끝난 것일 뿐.
저러고 작업실로 가서 조감독 코리 황과 디깅(—일종의 자료조사)을 이어나갈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내겐 ‘크리스 감독의 영화 제작법’이란 책이 머릿속에 있으니까.
즐거웠다는 인사로 그를 배웅하고 호텔 방으로 향한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져 핸드폰을 확인했다.
내심 하선경 대표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과 어제, 연출을 맡아줄 연극 감독을 알아보는 중이라는 하선경 대표의 연락이 있었기에 벌써 진척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을 물가에 내놓은 마냥, 이렇게 수시로 확인하게 된다.
‘한이연 감독이 이런 마음이었나.’
작품을 내 새끼라고 표현하는 그녀의 마음까지 엿보고서.
계속 궁금증을 키워나갔다.
누가 맡게 될까? 어떤 감독일까?
사실 연극 감독은 아는 사람도 없지만.
그럼에도 빨리 정해졌으면 했다.
내가 누구한테 내 새끼를 맡기는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괜찮은 감독이어야 할 텐데.’
물론, 하선경 대표가 얼마나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재촉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 배우가 대뜸 건넨 대본을 이렇게 추진해주는 것만으로도 내겐 행운이지.
설령 작품이 대표 자신에게 퍽 마음에 들었다 해도 말이다.
······핸드폰을 다시 품에 넣었다.
그리고 내 방이 있는 17층에서 내리는데, 마침 전화가 울린다. 데이브다.
—승결, 어디야?
근데 전화를 받은 건 세이디였다.
이것만으로 미래가 예상되었다.
“호텔.”
—우리 지금 갈게.
이럴 줄 알았지.
잠시 진정되었던 가슴께가 다시 부푼다.
빙그레 웃으며 다시 라운지로 올라간다.
이제 2차전.
배우들과 연기 얘기로 가득 채울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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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은?”
“아직.”
“지금 얼마나 됐지?”
“한··· 30분?”
“오, 꽤 됐네?”
하람을 다녀온 안 감독이 직원들과 회의를 마치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하람 대표가 준 대본을 읽겠다며.
이에 대해 직원들이 안 감독의 방을 힐끗거리며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어떤 대본일지, 직원들 입장에서도 궁금했던 것이다.
“대본이 꽤 괜찮나 본데?”
직원들 중 한 명이 흥미로워하며 말했고, 다른 이들도 이에 동조하며 끄덕거렸다.
안 감독은 대본에 엄격한 사람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떤 대본이든 10분을 못 넘기는 편이다.
그대로 덮고서 의자를 박차고 방을 나와버린다.
그리고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담배를 피러 나가지.
반면 마음에 드는 대본을 읽게 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한다. 가끔 화장실만 후다닥 다녀올 뿐이다.
오죽하면 다음 사무실을 구하게 되면 방에 화장실이 있어야겠다는 얘길 직원들이 먼저 할까.
아무튼. 그렇게 대본을 읽고서 무슨 사우나라도 마친 사람처럼 상쾌하게 방을 나온다. 물론 담배를 피러 가는 건 동일하다. 표정이 다를 뿐.
그런 그가 대본을 읽을 테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며 방으로 들어갔고.
30분째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건···.
대본이 평균 이상은 된다는 뜻이었다.
“벌써 차기작이 정해지나요~.”
“벌써? 너무 빡센데.”
“그래도 지난번처럼 1년 동안 못 정하시는 거보단 낫지 않아요?”
“그건 그래. 그땐 진짜 눈치 보여서 죽는 줄.”
참고로, 이번에 들어갈 신승찬 주연의 작품은 장장 3시간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었다.
무려 하람의 대표가 픽해서 줬다는 대본을 안 감독은 어떻게 평가할까.
“근데 신기하긴 하네요. 하람 대표가 대본을 줄 줄이야.”
“그러니까. 난 분명히 신승찬 배우 때문에 부른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도요, 저도. 전 가서 마시는 거 조심하라고 그랬거든요. 분명히 독 탔을 거라······.”
벌컥.
그때였다.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가 이내 시계로 옮겨간다.
40분.
······대본 하나를 읽기에 불가능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대본을 읽고서 이리저리 물고 빨며 연출까지 구상하고 나오는 안 감독의 스타일로 미루어보아.
‘저 대본은 실패다.’
그를 잘 아는 직원들은 모두 그렇게 확신했다.
그런데 안 감독이 갑자기 담배 타임 대신 직원 한 명을 불렀다.
“민재야. 잠깐 보자.”
“네? 아, 네.”
직원이 얼른 안 감독의 방으로 달려갔다.
방 안에 들어가 문을 닫자마자 안 감독이 용건을 꺼냈다.
“너 아직 지태랑 성경이 연락하지?”
갑자기 옛 동료들에 대해 묻는 안 감독에 직원은 당황하면서도 끄덕거렸다.
“가끔 하죠?”
“걔네 요즘 뭐해?”
“아직 대학로에 있어요. 가내수공업 극닥에요. 그런데 왜요?”
“여전히 연극 일 한다는 거잖아? 오케이. 그러면 팀은 문제없을 것 같고.”
“팀이요? 하나 더 만드시게요? C팀까지 돌리는 건가요? 근데 그러면······.”
문제가 있었다.
연극판이 좋다며 남은 옛 동료들이잖나.
그 말인즉, 안 감독이 부른다고 영화판으로 올 사람들이 아니란 거다.
그걸 안 감독도 모르지 않을 텐데······.
“아니, 이건 별개의 팀이야. 영화 촬영하곤 상관없는.”
“별개의 팀이요?”
되묻는 직원에게 안 감독이 손을 뻗어 책상 위에 덮여 있던 대본을 끌어왔다.
하람에 가서 받아온, 바로 그 대본이었다.
그가 대본을 흔들며 입을 쭉 찢었다.
“내가 독이 아니라, 금을 받아왔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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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대본을 다 읽어봤습니다. 혹시 통화 가능하신가요?]하선경 대표는 문자를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그녀에게도 백승결의 작품을 디벨롭하는 건, 현재 우선순위 최상단에 있는 일 중 하나였다.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꿈도 백승결 덕분에 급속도로 이루고 있는데······.’
새로이 가슴 뛰는 일이 덜컥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백승결로부터.
물론 연극 제작이 그녀에게 그토록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 이후에 계획된 영화화가 중요했다.
이미 굿픽처스의 박 대표와도 미팅을 잡아 둔 상태.
안 감독이 이 작품의 영화화를 맡아주느냐에 따라 박 대표와의 미팅 내용도 상이해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그의 연락이 반가웠다.
전화를 걸기 무섭게 안 감독이 받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네, 안녕하세요. 감독님.”
인사로 화답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벌컥 안 감독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이거··· 제가 하겠습니다.
하선경 대표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정말요? 안 감독님이 영화화 해주시면 저희야 너무 좋죠. 아, 그리고 연극 쪽으로 연출가 알아봐 주신다고 한 건······.”
—연극 연출도.
“···?”
—그것도 제가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