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6)
폭탄 (4)
평소보다 훨씬 일찍 귀가한 굿픽쳐스 박 대표는 양말부터 벗어 던졌다.
편하다. 비로소 몸이 풀어진다.
물론 던진 양말은 다시 주워 빨래통에 가져다 놔야겠지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양말을 주워 거실로 나서니 티비 앞에 앉아 있는 아내가 보인다.
괜스레 그쪽을 힐끔거리며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어 따르는데, 작은 방에서 딸내미가 배를 문지르며 나왔다.
저저, 또 저렇게 짧은 바지를 입고···.
“엄마, 종갓집 막내딸 시작했어?”
“아직. 지금 광고 중.”
···뭐? 우리 집도 그거 보나?
최근엔 투자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오늘처럼 집에 일찍 들어온 날이 없던 그였다.
한 손에 컵을 들고서,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거실로 향했다.
“종갓집 막내딸, 그거 재밌냐?”
“응, 재밌어. 엄마가 백승결 나온다고 보길래 나도 옆에서 한번 봤는데 재밌더라고? 그래서 챙겨 보는 중.”
“당신이 백승결 나와서 보는 거라고?”
아내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그녀가 끄덕였다.
“해별이 나온다길래 한번 봤는데, 꽤 재밌더라고. 막 미역으로 사람 때리고 그런 장면도 없고.”
“맞아. 막장 아니라서 재밌어.”
그래? 라고 되물으며 빈 소파 자리에 슬쩍 앉았다.
바닥에 앉아 소파를 등받이로 쓰던 아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웬일이래? 일일연속극은 드라마 취급도 안 하던 양반이.”
“내가 언제 드라마 취급도 안 했나.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했지.”
“그러니까. 퀄리티 구리다고, 이런 거 왜 보냐면서 구시렁댔었잖아.”
목덜미를 긁으며 딴청을 피웠다.
이윽고 드라마가 시작된다.
앞 내용을 모르니 솔직히 집중은 안 된다. 뭐가 뭔지 아직 파악이 안 될 수밖에.
“백승결은, 안 나오나?”
본 목적인 그를 찾자 딸도 맞장구를 친다.
“그러게. 아 안주연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죽겠는데.”
“뭐가 궁금한데?”
“또 오디션 보러 갔거든. 근데 아직 결과가 안 나왔어.”
“비중이 좀 있긴 한가 보네?”
“요즘 계속 늘고 있어. 그래서 더 재밌는 듯?”
그렇단 말이지···.
박 대표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간다.
“시청자 입장에서 백승결은 어때?”
“짠해. 안타까워.”
“잘생겼어.”
각자 다른 의견에 그는 아예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을 택했다.
“신승찬하고 비교하면 어떤 거 같아?”
질문을 던져놓고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비교가 되나 싶어서.
“신승찬이 누구지?”
“엄마 알잖아. ‘기억운’에 나왔던 남주.”
“아, 걔? 난 걔 귀엽더라.”
“존나 잘생겼지. 게다가 존나 바른 이미지잖아.”
“넌 바른 이미지 어쩌구 하면서 말끝마다 존나가 뭐니, 존나가.”
아내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딸이 물었다.
“그래서. 뭐로 비교하는데? 외모? 인지도? 연기?”
“전부.”
“외모는 막상막하라 취향 차이. 내 취향은······.”
“네 취향은 상관없고, 나머진.”
“치. 딸 취향에 관심 없는 아빠라니. 암튼, 다음이 뭐였지? 아, 인지도. 그건 요즘 애들한텐 그래도 신승찬이 압살이지. 백승결은 우리 삼촌 세대는 돼야 알지. 이 드라마가 우리 또래한테도 재밌는 거로 소문나서 조금 알려지기야 했겠지만, 그래도 쨉이 되나.”
박 대표가 주억거린다. 예상했던 대답에 가까워서.
“그리고 연기는 신승찬도 잘하지.”
이것까지도.
사실 백승결은 이제 다시 시작하는 중고 신인에 가깝다.
복귀 후 첫 작품이 잘 맞아떨어져 좋은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업계에선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시선이 훨씬 많은.
하지만 신승찬은 아니지.
벌써 여러 작품을 성공시켰기에 회당 출연료가 억 단위를 바라보고 있지만, 지금이 가장 싼 배우로 불리고 있다.
문제는 연락이 안 온다는 거지.
안원상, 그 녀석은 모레까지 연락이 없으면 백승결로 픽스하겠다는데 말이지.
내일 연락을 해봐?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고민을 이어가는데, 잠시 뜸을 들이던 딸이 툭 던지듯 말했다.
“근데 솔직히 임팩트는 백승결이 더 있는 듯.”
“나도 그래. 기억운을 재밌게 보긴 했는데 거기 남주는 귀여운 거 말고는 딱히. 안주연이 더 인상 깊지.”
거기에 덧붙이는 아내까지.
예상 밖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린 박 대표가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아니, 대체 드라마에서 어떻게 나오길래···.
마침 백승결이 화면에 나왔다.
어쩐지 초조한 표정이었다. 아까 오디션 결과 어쩌구 하더니, 그것 때문인가?
자연스레 그의 연기에 집중하는 박 대표.
앞부분에 대한 이해 없이 드라마를 중간부터 보면, 배우의 현재 감정 상태가 어색할 만도 한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것 같긴 한데.’
오디션의 결과는 낙방이었다.
옆에서 안타까워하는 아내와 딸에 잠시 집중력을 빼앗겼지만, 이내 백승결의 표정 변화를 보며 낮게 감탄한다.
표정에 작게 일렁이던 희망이 촛불처럼 훅 꺼지고, 아쉬움이 연기처럼 피어난다.
저 얼굴이 박 대표에겐 퍽 익숙했다.
제작사 대표로서, 숱하게 봐온 얼굴이니까.
그리고 배우들의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
웃긴 것은 지금 그때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거다.
“허, 참.”
짧은 탄식과 함께 박 대표는 점차 빠져들었다.
드라마가 아닌, 백승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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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읽다가 시곌 보니 촬영장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더라고. 얼른 나가면서 굿픽쳐스 직원한테 전화했지.”
별일 아닌 듯 말하고서 남은 마들렌 하나를 입에 넣는다.
앞에 앉은 현태 형이 피식거리며 커피를 들이켰다.
“너도 참 너다. 단역이라면서 대본을 전부 읽냐.”
“20분짜리 클래식 곡에 딱 한 번 연주하는 팀파니 연주자도 악보를 전부 머릿속에 넣는다더라고. 그래야 그 지점에서 어떤 연주를 할지 결정할 수 있으니까.”
“그건 또 어디서 들었대.”
“뮤튜브.”
“잘 안 본다더니?”
“그랬는데, 요즘은 틈틈이 보고 있어. 여러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현장감 있게 볼 수 있어서. 연기 공부하는데 이만한 게 없는 것 같더라.”
“남들은 시간 죽이는데 사용하는 뮤튜브조차 너한텐 연기 교구재구나?”
“활용할 수 있는 건 해야지. 내가 남들보다 경험이 적잖아.”
“무슨 경험? 연애 경험?”
“그거 말고··· 아니, 그것도 맞긴 한데.”
말문이 막혀서 어버버 거리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싸울까.
그때 갑자기 현태 형이 주변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왜?”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거 같아서.”
확실히 내가 현태 형이 편하긴 한가 보네.
그제야 주변 시선이 느껴졌다. 한번 인식이 되니 팍팍 꽂힌다.
“흠흠. 그래서 승결아. 백승결! 우리 백, 승, 결!”
현태 형이 갑자기 볼륨을 높여 날 불러댄다.
어째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지.
덕분에 긴가민가하던 표정들이 확신으로 물들었다.
급기야 몇몇 사람들은 다가와 사인이나 사진을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진짜 팬이에요!”
“아, 네. 감사합니다.”
“종갓집 막내딸 보고 너무 잘생기셔서 역으로 해별이네까지 봤어요!”
“그것도 감사하네요.”
“너무 좋아서 그다음 영화도 봤는데···.”
“그건 안 감사한데요.”
“푸하핫!”
적당히 농담도 하면서 다가오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옆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던 현태 형은 매니저냐는 물음에 딱히 부정을 안 한다.
“소속사 어디냐고 물어볼 때 HT 엔터테인먼트라고 할걸.”
“설마 현태 스펠링 딴 건 아니지?”
“그거지.”
“어휴.”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정리했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관심 없는 손님들이나 가게에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회사 들렀다 갈래? 사장님도 안 계시고, 직원들도 좋아할 것 같은데.”
그렇게 다음 행선지가 결정되었다.
카페에 진열된 마들렌을 넉넉히 사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컴퓨터와 씨름 중이던 직원들이 날 보곤 자리에서 솟구친다.
“어서 와요!”
“배우님 오셨습니까!”
“오랜만이에요! 드라마 진짜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예상보다 더 큰 환대에
근황 마라톤 촬영 때도 느꼈지만, 다들 붙임성이 본드급이다.
이미 열 번은 더 본 사이처럼 친근한 표정과 말투로 다가온다.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마들렌! 여기 거 진짜 맛있는데.”
“뭐 이런 걸 다 사 오셨어요. 아, 나 다이어트해야하는데.”
이미 포장을 다 뜯고 입에 집어넣는 직원들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감사해서요. 제가 다시 연기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셨으니까요.”
“이야, 본인한테 인정받았다!”
“그런 거 인정해주지마. 안 그래도 오작교 어쩌구 하는 애들인데, 이제 다른 술자리 가서 백승결 자기가 키웠다고 으스댄다니까?”
“그래요?”
돌아보며 되묻자 직원 중 한 명이 손을 내젓는다.
“아니, 근데 어차피 아무도 안 믿어요.”
“안 믿으면 전화 주세요. 제가 엄마, 하고 받을게요.”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현태 형도 웃으며 직원들에게 말꼬릴 올린다.
“봤지? 은근 얘가 나보다 더 또라이라니까?”
졸지에 또라이가 됐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이렇게 변태가 되어가는 건가···.
“참, 사인 하나만 해두고 가. 대표님이 받아달라는 거 계속 까먹네.”
“어, 그럼 저두요.”
“저도 두 장만 받겠습니다. 저희 아내랑 장모님도 좋아하셔서···. 아, 그럼 세 장인가.”
“야야, 너네 진짜.”
나도 소리 없이 웃었다.
요즘 들어 옛날과는 다른 풍경이 계속 그려지는 것 같아서.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어린 내가 그토록 바랐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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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잘 들어갔냐. 사장님이 자기 없을 때 왔다고 아쉬워 죽을라고 하신다.
종각역에서 빠져나오며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다음엔 계실 때 간다고 전해줘.”
—어휴, 오지마. 오지마.
다급하게 말리는 현태 형.
어쩐지 장난스러움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이제 큰 배우 되실 건데, 이리저리 불려가면 안 되지. 어제 보니까 장난 아니더만. 이제 쉬운 이미지 그만하자.
역시나.
“매니저냐. 그리고 장난 아니긴 무슨.”
—어제 카페에서 사인에 사진에··· 그 정도는 장난이다? 앞으로 더 유명해질 거다 뭐 그런 건가?
“형 기자 해볼 생각 없어? 루머, 억측, 이런 거 잘 만들 거 같은데.”
—그래서 안 하는 거야. 너무 잘할 거 같아서.
능청스러운 현태 형에 웃음을 흘렸다.
한참 동안 자기가 기자가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주절대던 그가 물어왔다.
—언제쯤 도착해?
“도착했어. 방금.”
대답하고서 시선을 올렸다.
깔끔한 외관의 건물 2층에 붙어있는 ‘굿픽쳐스’라는 회사명.
한껏 응원받은 현태 형의 전화를 끊고서, 숨을 몰아쉬었다.
대본을 안 봤으면 모를까. 너무 재밌게 대본을 읽은 터라 마음이 조금 간절하다.
하고 싶은데. 해야겠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건물 안쪽으로 발걸음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