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흉내자들 (5)
—진짜 충격적인 엔딩이었죠.
어깨를 으쓱거리며 안 감독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의외였죠. 해피엔딩도 아닌데, 분명 모든 등장인물의 노력이 쓰레기통에 처박혔는데······.
나를 보며 놀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작품 속을 들여다보며, 그것을 만든 나에게 말했다.
—아름답달까요.
그의 말에 나는 옅게 웃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내 작품을, 내 세계를, 다른 사람이 푹 빠져 탐독하는 건.
심지어 이 작품을 무대 위로, 스크린 위로 올릴 감독이 저렇게 말해주니 앞으로가 든든하기까지 하다.
내가 그를 바라보며 주억였다.
“열심히 찍었다면······ 꼭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완성되지 못하더라도 괜찮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썼어요.”
—그랬던 기억이 있는 건가요? 최선을 다했지만 괜찮았던.
“오히려 반대였죠. 성공이든 완성이든 상관 없으니 정말 마음껏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잘할 수 있는 것을, 심지어 좋아하는 일을 억지로 못 하는 건 정말이지 못 할 짓이더라고.
솔직히 돌이켜보면 그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모르겠다. 난 그때 고작 10대였는데.
—그래서 글 속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미친 사람들이군요. 몸이 아프기에 마지막 연기를 준비하는 사람, 인성이 파탄 났는데도 연기에만큼은 진지한 사람, 사생활이 문란해도 연기에만큼은 진심인 사람, 가정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대본만큼은 꼭 외우는 사람, 연골이 아예 없어졌는데도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스턴트를 하는 배우······ 진짜 하나 같이 미친 사람들이었어요. 제 주변에 있는 인간들처럼요.
“주변 그분들을 볼 때 어떠세요?”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들 같죠.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 안 감독이 덧붙였다.
—그래서 아름답고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끄덕였다.
내가 이 글을 쓸 때 바랐던 바였다.
멍청하다 못해 나쁘고.
치열하다 못해, 지독하게 무모하더라도.
어쩐지 그런 그들의 모습이 숭고하게 느껴지길.
부러워지기를.
그것을 느꼈는지, 안 감독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주억거렸다. 그리고 이어서 묻는다.
—······주인공들이 모두 배우인 건 역시, 본인이 배우라서였나요?
마치 인터뷰처럼 미팅이 이어졌다.
“맞아요. 그래서 그게 가장 쉬울 것 같았어요. 결과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지만.”
—그렇죠. 원래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곳 이야기가 더 어려워요. 너무 그 안에 있으니 큰 그림을 못 그리죠.
“맞아요. 몰입과 매몰은 정말 한 끗 차이인 것 같더라고요.”
—그 말 좋네요. 몰입과 매몰······.
그리고 때론 작품을 만드는 동료의 그것처럼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처음엔 함께 하는 배우들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주연을 맡은 배우들의 갈등과 성장에 대해 그리려고 했어요. 그러다 조연들의 이야기도 넣고 싶어졌고, 어쩌다 보니 단역이나 스턴트 배우들까지도··· 결국 배우들 전체에 관한 이야길 쓰게 되었죠.”
—부제도 특이하더라고요.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사람들. 정말 배우라는 직업에 딱 맞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맞아요. 그게 배우의 본질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잠깐 해봤어요. 물론 저만의 생각이지만요.”
—그 생각에 저희 모두가 동조했습니다. 극단 팀은 물론이고, 영화 기획팀까지도요.
그의 말에 내가 살짝 감탄했다.
“와, 이거 생각보다 더 좋네요.”
—어떤 게요?
“내가 쓴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거요. 지금까진 감독님이나 작가님들이 쓴 대본을 읽고 이야길 나눴었잖아요. 그래서 궁금했거든요. 내 작품을 이야기하면 어떤 기분일까. 연극이 시작되고 관객들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를 떠올리며, 내가 웃었다.
“너무 즐겁겠어요.”
연기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마치 크리스 감독과 그랬던 것처럼 나의 작품이 연극이라는 무대 위에서 조형되고 있었다.
‘이럴 때, 크리스 감독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함께 작품을 활자 밖으로 끄집어내길 몇 시간.
안 감독은 다음 촬영이 있다며 미팅의 끝을 알렸다.
나도 슬슬 세이디와 데이브를 만나기로 한 시간이라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그가 작품 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며 운을 뗐다.
—배우님인 걸 알게 되니, 더더욱 이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네요.
“말씀하세요.”
—배우님은 왜 글을 쓰시게 된 건가요?
그의 질문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려운 질문이라는 걸 본인도 아는지, 안 감독이 덧붙인다.
—작품을 쓴 이유는 들었지만, 글을 쓴 이유가 궁금해서요. 보통 글을 쓴다는 건 굉장히 자기 표현적인 일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연기와는 차이가 크죠. 어쨌든 연기는 내가 아닌 타인을 흉내 내는 거니까요. 설령 타인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고 해도 말이에요. 뭐, 갑자기 좋은 소재가 떠올라서일 수도 있고, 새로운 재능을 깨달아서일 수도 있겠죠. 아무튼, 전 배우님이 왜 갑자기 글을 쓰시게 된 건지···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하네요. 오늘 얘길 나눠보니 더더욱요.
질문의 이유를 밝히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게. 나 왜 글을 쓰게 되었을까······.
그냥 김미옥 작가가 도움이 될 테니 해보라고 해서?
아니면 내 안의 창조 욕구가 거기에 동해서?
막상 해보니 하나의 작품을 떠나보내며 남은 어떤 공허함 같은 감정들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어서?
모두 맞는 말이지만.
“연기를 하고 남은 것들에 집중하기 위해서요.”
···이게 가장 맞는 말 같았다.
안 감독이 흥미로운 눈으로 날 본다.
—연기하고 어떤 게 남았죠?
나도 그를 보았다. 이어서 살짝 시선을 옮긴다. 그의 얼굴 옆에 보이는, 작은 창.
그곳에 떠올라 있는 건, 바로 나였다.
“저요.”
배우는 타인을 연기하며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타인의 연기에 몰입해서 한껏 불태우고, 남는 것은······.
“나 자신.”
배역이라는 피난처에서 되돌아와 나라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때 비로소 보이는 진짜 나.
나는 그것들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
[영화 각본에 백승결 들어가 있는 거 봄? 이제 하다 하다 각본까지 쓰는 거?]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가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커다란 떡밥으로 떠올랐다.
포털사이트에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2’의 간략한 정보가 개시되었는데, 각본에 크리스 감독만 있는 게 아니라 백승결의 이름까지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바보냐. 그냥 이름만 올리는 거지. 요즘 음원 시장도 그렇잖아. 작곡가가 막 대여섯 명 이러기도 하고.
—에이, 그래도 이건 너무 마케팅 과한 거 아니냐. 배넌 쇼에서 센스있게 연기한 정도가 딱인 거 같은데.
—그러게. 소속사에서 백승결 천재 이미지 띄우려고 너무 과하게 구는 것 같네.
당연히 사람들은 그 떡밥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마치 닥터피쉬가 가득한 대야에 발을 담근 것처럼, 순식간에 모여들어 베어 물기 시작한다.
—근데 크리스 감독 말로는 영감을 엄청 줬다는데?
—어디서?
—오늘 올라온 인터뷰에서.
—뭐,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단서를 준 건 인정. 근데 솔직히 옆에서 막말하는 거야 누가 못하나. 진짜는 그걸 대본으로 쓴 크리스 감독이지. 그것만으로 각본에 이름을 올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오바했어.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거 묘수일 수도 있겠다.
—왜?
—2편의 리스크를 분담하려는 생각일지도? 2편 망해봐. 그러면 크리스 감독한테 화살이 쏟아질 텐데, 어라? 과녁이 두 개네? 심지어 작가도 아니고 배우? 이쪽에 쏘자!
—오··· 그건 일리가 좀 있는데?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반사적인 거부감이 있다.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여론이었다.
크리스 감독에게 백승결이 어떤 도움을 줬는지, 고작 그의 인터뷰로 접한 이들에겐.
백승결의 각본 참여 소식은 그저 마케팅의 일환이며 홍보팀의 헛발질 정도로 보일 뿐이었다.
“이거 어떡하죠? 반응이 생각보다 안 좋은데요?”
조감독, 코리 황이 레딧과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쏟아지는 날 것 그대로의 반응들을 살피며 걱정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리스 감독은 스토리보드를 보며 장면을 구상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제 보니 얜 여기까지 생각했던 건가······.”
“예?”
“아니, 이 장면 말이야. 이것도 승결이랑 만든 건데, 아주 흥미로워서. 얜 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었던 거지?”
팔짱을 끼며 감탄하는 크리스 감독.
그 모습을 보며 코리 황이 걱정을 부풀렸다.
“아니, 승결 배우 진짜 대단한 거 저도 알죠. 그래도 여론이 이러니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명을 왜 하나. 잘 못 한 것도, 틀린 것도 없는데.”
그는 걱정 따위 없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오히려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걸린 게······.
“증명을 해야지.”
기뻐하고 있었다.
백승결에게 글을 써보라고 꼬실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음에.
#
「무슨 찻집에서 술을 이렇게 종류별로 팔아요?」
「찻집에서 술을 종류별로 팔면 안되는 이유는 뭐죠? 미국 서부시대땐 이 위스키를 이렇게 물에 타서, 차처럼 마셨대요. 자요. 드셔보세요.」
「지금은 서부시대가 아닌······오!」
「어때요? 괜찮죠?」
「흠흠, 장사 잘하시네. 한 잔 주세요.」
······씬이 끝났다.
필드 모니터 속 신승찬과 여배우의 연기를 바라보던 안 감독이 마음속으로 셋을 세고 소리쳤다.
—컷! 오케이!
그의 외침에 쥐죽은 듯 조용하던 분위기가 탁 하고 풀리며 어수선해진다.
이윽고 모니터링을 위해 안 감독에게로 다가오는 신승찬과 여배우.
“이번 장면 너무 좋은데?”
“정말요?”
기분 좋은 얼굴로 되묻는 여배우를 보며 안 감독이 끄덕였다.
정말이었다. 특히나 놀라운 건, 신승찬의 연기가 매 촬영마다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
이 역할에 외형만큼은 찰떡이라 생각했던 배우가, 그냥 이 역할 그 자체가 되어가는 건.
감독으로서 엄청난 희열을 느끼게 했다.
‘······자기가 한 한마디로 이렇게까지 변할 걸 알았을까?’
자연스레 이 변화를 이끈 백승결이 떠오른다.
어느덧 그와 세 번 정도 화상 전화로 미팅을 했다.
그러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느꼈지만, 그중 가장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그가 괴물이라는 거다.
이건 그냥 단순한 감탄이 아니었다.
경악에 가깝지.
천재 연기자가 연출가의 재능까지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다시 연극판으로 이끈 작품의 작가였다니!
‘자네 혹시 감독 해볼 생각은 없나?’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매번 삼켰다.
할리우드 스타만 아니었어도 꼬셔볼 텐데···
그랬다간 하람 대표가 노발대발할 게 뻔했다.
글이야 연기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쓸 수 있지만, 감독의 일은 또 다르니까.
‘뭐, 본인 영화에 본인이 출연하면 모를까.’
······오, 그거 좀 멋지겠는데?
펜과 메가폰, 그리고 주인공까지 맡은 백승결의 모습을 떠올리며 낮게 감탄하는데, 여배우가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백승결 배우 기사 난 거 보셨어요? 각본에 이름 올린 거로 할리우드에서 논란이라던데요. 신 배우님도 보셨죠?”
“네, 봤어요.”
“아니, 뭐 그런 거로 욕을 그렇게 하나 모르겠어요. 도움을 줬으면 이름 올릴 수도 있는 거지. 아주 사소한 도움이더라도 엔딩크레딧에 이름 넣잖아요. 꼭 뭐, 글을 써본 이력이 있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게요. 괜찮은지 한 번 연락 해봐야겠···.”
“푸흡.”
“···?”
대화를 듣고 있던 안 감독이 얼른 표정을 관리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웃음을 들은 두 사람이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자신을 바라본다.
“아, 미안.”
안 감독이 얼른 손을 휘적거렸다.
“그냥 갑자기 좀 웃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