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파코스 (3)
아빠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고, 평소와는 조금 다른 미소가 떠올랐다.
순간,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러나 미소는 성큼 더 가까워졌다.
“왔어? 가자. 감독님 기다리신다.”
아빠가 내 손을 덥석 붙들었다.
내 앞을 가로막은 아빠의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 밥이라도 먹이고······.”
“늦었다고 몇 번을 말하냐. 그러다 감독한테 밉보이기라도 해서 이 영화 캐스팅 못 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이 영화 제작비가 얼마인 줄 알아? 자그마치 200억이야, 200억. 우 팀장이 이거 성사시키려고 술값으로 쓴 돈도 수 백이라고.”
살짝 뒤를 돌아보며 낮게 으르렁거린 아빠가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차 막힐 수도 있으니까 얼른 가자.”
나는 그대로 아빠의 우악스러운 손에 끌려 나갔다. 넘어질세라 그를 꽉 잡은 나의 손은 그에게 너무나 가벼웠다.
“그, 승결아! 잘 다녀···.”
배웅하는 엄마의 뒤늦은 목소리가.
쿵—.
현관문이 닫히며 잘려나갔다.
그대로 아빠의 손에 이끌려 앉게 된 새 차의 조수석.
핸들 가죽을 스윽 쓸며 흐뭇해하는 그의 미소를 기억한다.
“의자 어때. 편하지? 아빠가 우리 승결이 스케줄 다니기 편하라고 차도 바꿨어. 가면서 대본 읽기 전혀 문제 없겠지?”
“······.”
“왜 말이 없어. 너 배고파서 그래? 일 끝나고 햄버거 사줄게. 어때. 좋지? 그러니까 승결인······.”
데구르르 눈알을 굴렸다.
무서웠다. 지금 아빠의 얼굴은.
그리고 그 얼굴을 결코 잊지 못할 나는.
“해별이네 때처럼만 하면 돼. 그러면 햄버거 두 개. 아니 사달라는 대로 다 사줄게.”
“······.”
“왜 대답이 없어. 잘할 수 있지? 네가 잘해야. 다음 영화, 그 다음 영화도 또 찍지.”
연기는 내게 즐거운 일이었는데.
친구들과 공을 차거나, 게임을 하는 것보다도 더 행복한 일이었는데.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다음··· 그다음?
나는 불안해졌다. 그리고 그 불안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변해가는 아빠를 보며 결심했다.
그래서 그랬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너 잘 했잖아! 승결아? 승결아··· 제발 좀! 너 아빠 죽는 꼴 보려고 그래?”
나는 그냥······.
#
⌜지키고 싶었다.⌟
촤르륵—.
파코스가 별장에 기름을 뿌리며 말했다.
⌜그래서 쫓았고, 그랬는데 쫓을수록 더 망가졌다.⌟
흉터가 아릿한 것처럼 입가를 파르르 떤다.
그에 따른 톤 변화부터 미세한 표정까지.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내가 해야 하는 건 정작 따로 있었던 거지. 진짜 재앙을 죽이는 거.⌟
⌜재앙은 네가 아닌가.⌟
⌜아니야, 아니야······ 이 땅을 이렇게 만든 네놈들이 할 이야긴.⌟
⌜무슨 영웅이라도 되고 싶은 건가? 자네가 무슨 자격으로?⌟
⌜자격? 없지. 그딴 게 있을 리 없잖아, 누구든.⌟
그런 건 애초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듯 파코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손에 들린 기름통이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나도, 세상도······ 누군가를 죽이려고 그 난리를 쳤는데.⌟
퉁—.
빈 통을 떨어트린 파코스가 의원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그의 손엔 네모반듯한 라이터가 쥐어져 있었다.
⌜너희들에게도 그런 존재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그렇게 당신이 죽는 이유를 말하고 나서려던 파코스.
라이터에서 불이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위층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온 것은.
⌜···뭐가 있지?⌟
라이터를 끈 파코스가 의원을 내려다보았다.
백발이 무성한 노인의 주름이 흉측하게 휘어진다.
⌜내 저승길 시종?⌟
께름칙한 느낌이 등에 앉은 벌레처럼 기어 올라왔다.
미간을 찌푸리며 위로 올라간다.
방으로 다가갈수록 가까워지는 흐느낌.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가둬놓은 것처럼.
벌레가 목 뒤까지 기어올라온 듯 소름이 쫙 끼쳤다.
콰직—.
망설임 없이 문을 부수고 방문을 열었다.
그곳엔 7, 8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훌쩍······브에?⌟
심지어 말을 못 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놈이 폐허에서 찾았던 물건들이 떠오른다.
그릇, 꼬냑, 골프채, 그리고···.
기억이 난 것만으로 불쾌해지는, 어린 여자아이들에 대한 고약한 취미가 담긴 영상.
심장이 꿀렁거렸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분노였다.
⌜이 개새끼가······.⌟
그대로 계단을 내려와 의원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놈을 질질 끌고 별장밖으로 나와 눈밭에 내동댕이쳤다.
⌜후아, 흐으 크큭큭······ 역시 넌 영웅 놀이를 하는 게 맞았—.⌟
함께 챙긴 불쏘시개를 힘껏 놈의 다리에 박아넣었다.
얼어붙은 바닥까지 관통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끄아아아아아악!!⌟
피가 푸슉! 하고 사방으로 튀었다. 파코스는 자신의 얼굴에 붙은 핏물을 손수건으로 닦아 놈의 입에 물려주었다.
⌜어디서 보니까, 비명이 고통을 줄여준다더라고.⌟
⌜읍읍읍···!⌟
⌜죽기 직전까지 온전히 고통스러워해라.⌟
허리를 펴고 어둠이 내려앉은 숲을 훑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개코가 괜히 개코가 아니지.
파코스는 절망에 물들어가는 의원을 두 눈을 충분히 감상하다가 별장 안으로 돌아왔다.
⌜흐으으으읍! 으으으읍!!⌟
이윽고 문밖에서 비명이 되지 못한 신음과 살점 뜯기는 소리가 번갈아 넘어온다.
파코스는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계단을 올랐다.
그곳엔 활짝 열린 방 안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못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나와.⌟
⌜에베···.⌟
망설이던 아이가 몸을 일으켰다.
지켜보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왔다.
아이도 그를 쫓아 내려온다.
파코스가 소파를 덮고 있던 두툼한 모피를 집어 들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움찔하는 아이.
⌜······.⌟
그 반응에 다시 한 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더 잔인하게 죽였어야 했나?
이를 악 문 파코스가 이내 표정을 풀며 허리춤에서 토끼 모양 목각인형을 꺼냈다.
두려움으로 물들어있던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인형을 건네자 아이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렇게 아이가 정신이 팔린 사이, 모피를 둘러주는데···.
파지직—.
⌜···?⌟
시야 끄트머리에서 터져 나오는 스파크.
⌜하, 젠장. 금보다 더 구하기 힘들다는 전기가 뭐 이리 넘치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은 파코스가 아이를 덥석 안아 들고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쨍그랑!
때마침 전선에 불이 붙으며 아까 뿌려둔 기름에 옮겨붙었다.
콰아아앙—!
큰 폭발과 함께 별장은 거대한 화마에 휩싸였다.
의원을 몸을 뜯어먹던 늑대들이 화들짝 놀라 흩어진다.
그리고.
⌜끄으으윽······.⌟
파코스가 신음소릴 내며 시선을 내렸다.
그의 품에서, 아이는 놀란 두 눈으로 파코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괜찮나.⌟
⌜베···!⌟
불길에 밝아진 주변.
아이가 손을 뻗는다. 그 새하얀 손끝이 흉터에 닿았다.
파코스는 그 손길에서 다양한 감정을 떠올렸다.
개중엔 자신의 죽은 딸과 관련된 것들도 있었고, 와락 얼굴을 구기며 아이를 감싸던 팔을 풀었다.
눈을 털고 일어나며 그가 툭 던지듯 말했다.
⌜운이 좋네. 너 오늘 몇 번이나 죽을 뻔······.⌟
그러다 문득 엄습하는 기시감에 말을 멈추고 아이를 돌아본다.
⌜설마, 너도냐?⌟
⌜···?⌟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
그리고 그녀의 손에 아직도 쥐어져 있는 목각인형.
파코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이가 랜시와 같은 ‘재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볼 필요가 있겠군.⌟
확실하지도 않은데, 아이를 이곳에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이런 환경이라면 하룻밤이 끝나기도 전에 분명 죽을 테니까.
하지만······.
정말 재앙이 맞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랜시와 디터의 죽음 이후로 선명한 목표 하나가 지금껏 그를 이끌었다.
그렇기에 ‘고민’이란 걸 하는 게 너무 오랜만인 파코스였다.
⌜난 머리가 이렇게 아픈데, 참 속 편한 표정이네.⌟
아이는 목각인형을 손에 꼭 쥐고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대체 어딜 보는······.⌟
아이의 눈을 따라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곳엔 이 눈밭에서의 비극적인 이야긴 관심도 없다는 듯,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수백, 수천 마리의 뱀이 구름 사이를 기어가고 있는 듯한 광경.
형형색색의 오로라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이윽고, 그 빛무리 사이를 두 사람이 걷는다.
동행이 시작되었다.
#
컷 사인과 함께 촬영장이 고요해졌다.
의자에 앉아 필드 모니터와 이쪽을 번갈아 보던 크리스 감독은 오케이를 외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스태프들이 그의 사인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저 나와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우릴 향한 감탄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에 대한 찬사였다.
자신들이 찍고, 녹음하고, 만든 장면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들은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나조차도 그랬다.
연기를 하면서도 ‘미쳤다’는 감탄이 계속 맴돌았다.
대자연이 만든 절경 속에서.
나와 아이, 의원을 연기한 배우와 크리스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스태프들이 만든 장면은 그야말로 보석 같았다.
연기라는 게 매번 부족한 점이 보이고 아쉬워지는 게 당연하다지만.
이 순간만큼은 전혀 그런 게 없었다.
‘다시 찍는다고 이 장면보다 더 나은 장면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그러니 오케이 사인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모두가 마음 속에서 오케이를 매겼으니.
‘모두가 한 명처럼 연기하고, 촬영하며, 감독했다.’
그 사실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며, 옆을 돌아보았다.
“재밌었어?”
“너무요!”
“그래서 그런지, 진짜 잘했어.”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베시시 웃는 아이를 보며 더욱 대단하다고 느낀다.
7살짜리 어린 아이와 합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 줄이야.
아니, 오히려 배울 점들까지도 보였지.
‘이런 느낌이셨으려나······.’
과거, 천광윤이 해별이네의 촬영에서 내게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입꼬릴 올렸다.
그래, 이런 애가 갑자기 연기를 그만두면 나도 무지 아쉬울 것 같긴 하다.
그만큼 빛나는 재능이었다.
“얼른 옷 입으러 가자. 춥겠다. 감기 걸려.”
“잠깐만요.”
아이가 양손을 쫙 벌리며 나를 멈췄다.
그리고 커다란 눈망울로 하늘을 바라본다.
“······너무 예뻐요.”
피식 웃으며 아이를 따라 시선을 올렸다.
파코스를 연기해야 했던 촬영 때와는 달리 헤벌쭉 미소가 그려졌다.
하나둘 조명들이 꺼지자 하늘은 더욱 밝아졌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선명해진 오로라가 눈에 가득 담긴다.
‘진짜 멋지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이의 앙증맞은 손가락들이 꼼지락거리더니 나를 더욱 꽉 움켜쥔다.
“······.”
묘한 기분이었다.
종잇장 같은 손이 무쇠보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이렇게나 가벼운데······ 무겁다니.’
이어서 어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덮친다.
대관절 나를 관통하는 이 기분이 대체 무엇인지.
내가 그것에 대해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