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불씨 (1)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2’ 촬영 종료! 개봉까지는 5개월······ 또 한 번 할리우드를 놀라게 할 수 있을까?>영화 촬영이 끝났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제 좀 조용해지나 싶었던 커뮤니티가 또 한 번 들썩였다.
—이제 촬영 끝났다고? 아직 5개월이나 남았다고?
—이래가지고 언제 개봉하냐······.
—얼른 개봉 좀 해줘라. 볼 게 너무 없다.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2를 기다리는 이들이 애초에 많기도 했지만, 1편이 극장에서 내려가자마자 할리우드가 또다시 침체기를 겪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사실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이 극장에서 내려간 지 몇 달 안 되긴 했음.
—그 몇 달이 진짜 암흑기였지. 기대작이라고 불리던 게 뚜껑 열어보니 전부 망작이었잖아.
—사실 그것도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탓이 큰 것 같긴 함. 앞에서 대작의 기준치를 높여버리니 이만하면 되겠지 하고 만든 영화들 전부 줄도산 된 거지.
—어차피 이제 볼 영화도 없고, 개봉 때까지 맥 뮤튜브 채널에 간간히 올라오는 떡밥이나 파면서 기다려야겠네요.
—거기 떡밥 많이 올라옴?
—진행상황이나 촬영장 썰 같은 것들 꽤 올라옵니다. 다른 채널은 너무 불확실한 정보가 많은데, 그래도 맥은 어느 정도 검증된 것들만 올리더라구요.
블록버스터가 연달아 개봉하고 있지만 죄다 이렇다할 성과를 못 내고 폭사하고 있는 상황이니, 사람들도 속편에 대한 떡밥이나 굴리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아무리 흥행했어도 속편은 좀 아니지 않냐며 대차게 까던 사람들도, 이 정도면 차라리 속편이 낫겠다며 돌아서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잠깐의 휴가를 받았다.
곧바로 다음 작품을 들어가기엔 갑자기 추가 촬영이 잡히게 될지 모르니 계약서에 따라 대기해야 했고.
그렇다고 할리우드에 발이 묶여서 언제 날 불러주나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영화사 측에서도 잠깐의 휴가를 권한 것이다.
어디에든 있다가 부르면 와달라.
당연히 나의 행선지는 한국이었다.
그리운 나의 고국이여! 아마 몇 달만 더 미국에 있었으면 진정한 애국자 한 명이 탄생했으리라.
“오랜만이다.”
무려 몇 달 만에 다시 찾은 집.
먼지가 쌓인 티비를 닦아내며 말하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싸게 주고 사서 일 년에 몇 번 보지도 못했겠다. 이참에 그냥 당근······.”
눈에 힘을 빡 주고 돌아보았다.
불경한 소리를 입에 담은 현태 형이 맥주 캔을 까다가 찔끔하며 얼른 올라오는 거품에 입을 가져간다.
“형은 집 안가?”
“후룹. 응. 나도 여기가 오랜만이라.”
저토록 반짝이는 당당함이라니.
“형 집도 오랜만일 거 아냐. 안 가봐? 좀 가 봐.”
“걘 내일 보려고. 이해해줄 거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납득했다.
“하긴, 오기만 하면 자길 더럽히는 주인 따위. 늦게 보는 게 이득일 듯.”
“오! 그거 정말 섭섭하고 맞는 소리다. 내일도 여기 있어야지~.”
내가 둔 수가 자충수였다는 걸 깨닫고 한숨을 내쉬며 티비를 마저 닦았다.
그 사이 맥주 한 캔을 비운 현태 형이 콧노래를 부르며 소파에 늘어진다.
“이게 이름 붙이기 나름이라고, 사실 대기인데 휴가라 하니까 왠지 신나긴 하네.”
“이참에 제대로 쉬어.”
“어디 여행이나 다녀올까?”
“전 어머니랑 제주도 다녀오려고요.”
불쑥 끼어드는 목소리에 놀라며 돌아보았다.
건너방에서 김주철이 나온다.
“주철이 안 갔구나?”
“짐 정리하고 있었어요.”
분명히 내 짐은 내가 정리할 테니 얼른 가서 쉬라고 했는데······.
그러자 현태 형이 쯧쯧거리며 나무란다.
“애가 네 짐 정리하는 동안, 넌 티비를 닦고 있었던 거냐? 너무한다~.”
“형은 정리할 것도 없는데, 좀 가지?”
“주철아, 뭐 남은 거 없어? 도와줄까?”
어기적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나는 현태 형.
피식 웃으며 고갤 내젓는데, 김주철이 내게 물었다.
“형은요? 형은 뭐하실건데요?”
“나? 나야 뭐······.”
머릴 긁적이며
사실 한국행을 결정할 때부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나 티비도 티비지만, 이게 가장 중요했다.
“‘흉내자들’이 마침 다음 주부터 리허설 시작한대서. 거기에 가볼까 봐.”
“아, 그러니까···.”
현태 형이 학을 떼며 말했다.
“일하겠단 소리네?”
#
“······어?”
최태주 역에 낙점되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에 설레하며 도착한 양기전.
그의 의아한 목소리가 극장에 울렸다.
다시 찾은 가내수공업 극장엔 익숙한 얼굴들이 지난번보다 많았다.
다만 의아한 것은 그들의 면면이 익숙한 것을 넘어 반갑기까지 하다는 것이었다.
왜냐면 지난번처럼 단순히 대학로에서 유명한 배우들이 아닌, 함께 일을 했던 동료들이었으니까.
특히나 ‘덩굴 속 가시’ 멤버들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얼마 만이냐, 이게······.”
“그러게요. 잘 지내셨죠?”
“당연하지! 어, 경수도 있잖아? 이야, 이 정도면 ‘덩굴 속 가시’ 동문회 아니냐. 어떻게 이렇게 모았지? 웬만한 대학로 스타들 모으는 것보다 이게 더 어려웠겠는데?”
그의 말대로였다.
과거 연극계나 독립영화계에서 활약했던 현직 배우들.
그리고 이제는 스크린과 티비, 그리고 무대에서 더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전직 배우들까지.
반가움 속에 약간의 슬픔이 맺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술 한잔하면서 연기 얘기로 밤을 지새우던 이들이, 풍파에 밀려 각자의 삶을 살다가 이제야 다시 만나서.
“어떻게 지내세요?”
그렇기에 이 질문은 꽤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야 뭐, 여전히 재밌게 지내지. 예전처럼 골뱅이에 소주 마시면서 사는 얘기 하고, 연기 얘기하고. 완전 이 작품 속 주인공들 그대로야. 너흰?”
“전 배달 타다가 잡혀 왔어요.”
“전 마트에서 고기 팔다가.”
“목청이 좋으니 잘하긴 했겠네.”
양기전이 키득거리며 오랜만에 보는 이들과 회포를 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배우들 사이에 궁금증이 고갤 들었다.
“오디션에 합격한 거야 그렇다 쳐도, 이렇게 오디션 명단에 넣었다는 게 신기하네요. 후보 누가 정했던 거지? 안 감독님이신가?”
“그건 아닌가 봐요. 들어보니 작가님이신 것 같던데···.”
“작가님? 작가님이 누군데?”
“그러게. 나 이거 누가 썼는지도 몰라.”
“저도요. 여쭤봐도 말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거 참, 신기하네.”
그때 낡은 극장 바닥을 퉁퉁거리며 누군가 내려왔다.
조명이 객석 뒤에서 쏘아져 오는 탓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얼굴이 어느 순간 확 하고 드러났다.
“어, 기전이 형? 형도 있었네?”
지난번 최태주 역 오디션 때 만났던, 이규진이었다.
“형도 다른 역할로 캐스팅 됐구나? 그나저나, 반가운 얼굴들이 많네. 어어, 다들 잘 지내지?”
여기저기서 인사를 받는 이규진.
그가 옆에 앉자 눈치껏 양기전이 물었다.
“다른 역할로 캐스팅 된 거야?”
“응. 배윤탁 역이야. 극 중에 최태주랑 경쟁하는 배우. 형은?”
“나? 나야 뭐······.”
“왜 역할이 마음에 안 들어? 비중이 너무 작나?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어. 나도 최태주 역이 아니라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는데, 어쩌겠어. 하람인데, 해야지. 그나저나 최태주는 누가 하는 거야? 성지환? 이태준? 그때 또 누구 와있었더라.”
그렇게 자신이 찾는 이가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섀도복싱을 하는 사이, 가내수공업 단장인 김진태가 극장에 도착했다.
그는 가장 먼저 양기전에게 다가가 축하 인사부터 건넸다.
“형, 축하드려요. 최태주 역할 맡으신 거.”
“그래, 고맙다. 뭔가 얼떨떨하네.”
양기전의 멋쩍은 웃음에 함께 웃어 보인 김진태가 그제야 옆에서 벙쪄 있는 이규진을 발견했다.
“어, 규진이 형도 계셨네. 형도 잘 부탁드려요. 배윤탁 역할.”
“어? 어, 어······.”
#
마지막으로 도착한 안 감독의 진두지휘에 따라 배우들이 대본 리딩을 진행했다.
처음으로 모든 배우들이 모인 날인만큼, 가볍게 초반부만 훑고서 다음 주에 있을 리허설을 기약한다.
다만 양기전만큼은 안 감독의 요청으로 따로 남았다.
앞으로 다른 배우들도 한 명씩 만나 이야길 나눌 거라고 하니, 큰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과거 학교 선생님의 끝나고 남으라는 으름장을 들은 것처럼 자꾸만 마른 침을 삼키게 되는 양기전이었다.
······보글보글 끓는 육수 위로 골뱅이가 떠오른다.
양기전은 안 감독의 비워진 소주잔을 얼른 채웠다.
그러자 안 감독도 소주병을 들어올린다. 얼른 잔을 받쳤다.
“최태주 역할, 정말 중요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말에 안 감독이 잔을 단숨에 들이켜며 말했다.
“기회를 드린 적 없습니다. 그런 걸 줄 만큼 여유롭지 않거든요. 우린 바로 잘할 수 있는 배우를 뽑은 겁니다.”
“아······.”
“우리가 양기전 배우님을 왜 뽑았다고 생각하세요?”
“저도 그게 솔직히 궁금했습니다. 그날 오디션을 본 면면들이······ 규진이만 해도 저보다 훨씬 이름이 알려진 배우이니까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고.”
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한 양기전이 이내 특유의 푸근한 미소를 띠며 풀풀 웃는다.
“처음에 진태 전화 받고는 믿기지도 않아서 몇 번이나 진짜냐고 물어봤어요. 그럴 애가 아닌 걸 알면서도 계속 장난치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습니다. 하핫······”
농담처럼 던진 말에 안 감독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양기전이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선 혼자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나름의 결론도 내렸죠.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태주와 저는······.”
“최태주가 본인처럼 느껴지시나요?”
“네,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역시···.
양기전은 알고 있었다.
안 감독은 배우에게 맞는 옷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감독이라는 걸.
최근 제작한 영화에서도 신승찬이라는 배우를 두고 그 문제로 한참을 고민했다는 인터뷰도 했었지.
그러니 자신을 뽑은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오디션 명단을 뽑은 게 안 감독이 아닌 ‘흉내자들’의 작가라는 배우들의 얘기가 걸리긴 하지만··· 어쨌든, 맞다고 하니까···.
“근데 절반만 맞았어요.”
“예?”
양기전이 채워둔 술잔을 툭 털어 넣은 안 감독이 낮게 말했다.
“최태주는 주인공입니다. 최태주가 아무리 극에서 존재감이 없는 배우로 나와도, 적어도 그걸 보는 관객들에겐 존재감이 뚜렷해야 한다는 겁니다. 근데 본인도 그렇습니까? 배우님도 본인 이야기의 주인공이에요?”
“어······.”
“전 배우님 연기를 보며 그걸 못 느끼겠습니다.”
“제가 존재감이 조금 없긴 하죠. 그래도 최선을 다하면···.”
“최선을 다 하면 해결됩니까? 매번 그런 식으로 합리화만 하면서 배우 활동 해왔어요?”
“······.”
입을 열지도 못한 채 당혹스러워하는 양기전에게 안 감독은 가차 없이 말했다.
“존재감은 그냥 열심히 하는 거로 해결되지 않아요. 나는 그냥 단순히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아니라, 본인 연기에 자신감으로 가득 찬 배우가 필요합니다.”
허허실실 사람 좋은 거 좋다. 잘 익은 벼 마냥 겸손한 것도 좋다.
안 감독도 사람인지라 그런 배우들이 좋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작은 배우는 필요 없다.
오늘 리딩에서 그 심각성을 엿본 안 감독이었다.
“설사 이게 대학로의 작은 연극일 뿐이더라도, 칸이나 할리우드 작품들을 씹어먹을 작품을 만들겠다. 그런 배우가 필요하다고요. 난 그렇게 이 연극을 만들 생각이니까.”
“그, 그게······.”
갑자기 훅 들어온 뾰족한 말들에 양기전이 정신을 못 차린다.
그 모습을 보며 안 감독은 단호하게 묻는다.
“양기전 배우님. 작가님은 당신을 엄청 신뢰하던데, 난 당신을 얼마나 믿어도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