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불씨 (3)
내가 아역 배우로 데뷔하기 전.
그러니까 8살쯤 되었을 때, 미술 치료가 한창 유행이었다.
왜 그런 거 있잖나.
나무 그리고 집 그리고, 그렇게 평소에 어떤 감정 상태인지 검사하는 그거.
그땐 내가 기억력이 남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는 걸 알아채기 전이라, 나의 엉뚱함을 부모님은 IQ 검사가 아닌 상담을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
그렇게 나는 미술 치료를 하는 상담소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선생님이 말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당연히 거기서 내 기억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다만, 또 다른 사실 하나는 확실히 드러났다.
“승결이는 가족이 가장 소중하구나.”
선생님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내 그림에 그런 게 보인다는 게 신기했고, 그 정확함이 신통했다.
“네. 엄마, 아빠가 너무 좋아요!”
“아빠도 우리 가족이 가장 소중해.”
“엄마도 그래, 승결아.”
그리고 행복했다.
‘우리’가 모두 같은 마음이라.
그렇기에 나는.
그 끝이 당연히 해피엔딩일 거라 생각했다.
그냥······.
어린 마음이었다.
#
“여기 앉아계시면 돼요. 아~무도 신경 안 쓸 겁니다.”
가내수공업 단장, 김진태가 나를 극장의 구석진 곳으로 안내했다.
그가 얼른 의자를 탁탁 털며 자리를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내가 멋쩍어하며 그곳에 앉자 그가 미행이 없는지 경계하는 스파이처럼 주변을 홱홱 훑더니 사라졌다.
과하다, 과해. 저 정도면 내가 누군지 아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호들갑이었다.
‘안 감독님이 엄청 주의를 줬나 보네.’
픽 하고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작은 극장에 사람이 은근 붐볐다. 이쪽에 관심을 줄 틈이 없을 정도로.
연극팀부터 영화팀까지 모두 온 것이다.
덕분에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떨리네.’
이미 내가 쓴 대본을 모두 읽어본 이들이겠지만, 그럼에도 긴장이 된다.
다를 수밖에 없잖아.
일부긴 하지만, 아직 소품조차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작품이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펼쳐지는 순간이라니!
그걸 모두가 함께 본다니!
내 정체보다 기대감을 감추는 게 더 어려운 순간이었다.
이윽고 은은한 간접조명에 의지하고 있던 객석이 완전히 암전되고, 무대에 불이 들어왔다.
동시에 배우가 무대 위로 올라선다.
오랜만에 보는 양기전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이런 구도로 양기전을 봤었지.’
나는 객석에서, 그는 무대에서.
심지어 극장도 동일하다.
‘천추’라는 연극에서 그는 ‘한(恨)’이라는 개념의 실체화를 연기했었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누구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내가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2’에서 ‘재앙’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웠다. 많이 배우기도 했고.
아무튼, 그때 그 양기전이 이번엔 내 작품 속 최태주가 되어 연기를 시작한다.
“휴···.”
손에 들린 진단서를 내려다보며 그의 깊은 한숨이 흘러나오고.
뒤이어 젊은 배우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얼굴을 보니 김주철 나이 정도 될 것 같았다. 물론 김주철이 저 배우 나이처럼 보이진 않겠지만···.
‘저 역할은 나이가 너무 어려서 내가 함께 했던 배우들 중에서 찾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온전히 안 감독과 그의 팀에게 맡겼다.
그 후, 오디션에서 연기한 것을 영상으로 봤는데, 정말 찰떡이었지.
그때, 양기전만을 쬐던 조명이 확 넓어지며 무대 전체를 고루 비춘다.
젊은 배우는 그제야 양기전을 발견하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갔다.
“형님, 몸은 괜찮으세요? 병원 다녀오셨었다면서요. 어디가 안 좋으신 건데요?”
그러자 양기전··· 아니, 최태주가 시선을 돌려 젊은 배우가 연기하는 임성철을 보았다.
심각했던 표정을 지우며 피식 웃는 최태주.
“네가 그렇게 물으니까 웃긴다. 깁스는 네가 하고 있는데.”
그의 말대로 임성철은 무릎에 허연 깁스를 둘렀다.
임성철이 웃으며 자신의 무릎을 툭툭 두드렸다.
“저야 뭐. 이게 일상이죠. 전 형님이 더 중요합니다. 형님이 있어야 제가 있죠. 제가 또 형님의 수호천사 아닙니까.”
“수호천사는 무슨.”
“대역이 수호천사지 뭐예요.”
으쓱거리는 임성철을 보며 최태주가 푸슬푸슬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 감독님 좀 설득해주세요. 저 충분히 할 수 있거든요. 형님 대역.”
“너··· 그 몸으로 스턴트를 하려고?”
“에이, 제가 뭐 아마추어인가요. 이 정도는 거뜬합니다.”
“······.”
“형님. 저 진짜 할 수 있어요.”
최태주의 표정이 다시 심각해졌다.
동시에 임성철의 얼굴에 불안감이 번진다.
“성철아, 너무 위험하다. 하지 말자.”
“아잇, 할 수 있다니까요?”
“하지마.”
“제발요.”
“······.”
“아, 형!”
버럭, 목소릴 높인 임성철이 호흡을 고르며 덧붙였다.
“형··· 저 진짜 간절해요.”
“그러니까. 간절한 새끼가 왜 그래!”
이번엔 최태주도 상기된 얼굴로 목소릴 높인다.
그렇다고 물러날 임성철이 아니었다.
“간절하니까 그렇죠! 하고 싶으니까! 이번 작품이 저같은 스턴트한테 얼마나 큰 기회인지 잘 아시잖아요! 형이 이러시면 안 되는 거 아녜요? 기회가 오면 꼭 잡으라면서요!”
“넌······.”
미간을 찌푸리며 최태주가 답했다.
“넌 기회가 많잖아.”
“제가 무슨 기회가 많아요! 저 같은 놈들은 기회도 주어져야 비로소 생기는 거예요. 제 안에 있는 게 아니라고요!”
“······.”
대답은 없었다. 너무 버릇없이 굴었나. 아차하며 임성철이 돌아본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최태주의 표정을 보며 당황한다.
“······형?”
최태주는 화를 내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대역을 맡은 친한 동생의 고집에 서운해하지도, 괘씸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괜찮···.”
“하지 말라면 좀 하지마.”
머리가 아프다.
이렇게 아플 때마다 기억이 하나씩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지려나.
대사도, 동선도, 장면도.
못 외우게 되는 건가.
더는 연기를 못하게 되는 걸까.
이번 작품이 그에겐 정말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멈출 줄을 알아야 돼. 아니, 멈춰야 돼. 너한텐 아직 기회가 많으니까.”
걱정과 부러움.
그리고 자기연민을 담아······.
최태주는 당부한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연료를 불태워 이곳에 종착할 테니.
너는 그저 잠시 정차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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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전에게 최태주는 역시나 맞는 옷이었다.
게다가 안 감독의 충격 요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안정적인 그의 연기에 그것을 뚫고 나오는 존재감도 느껴졌다.
순식간에 관객을 잡아끄는 바로 그 힘 말이다.
그리 길지 않은 리허설이 진행되는 내내, 나는 길게 감탄했다.
그리고 여러 감정이 뒤덤벅된 상태로 얼른 극장을 나왔다.
근처에서 기다리던 김성운의 차에 올라타자 그가 묻는다.
“어땠어?”
“신기하더라고요. 제 작품이 무대 위에서 현실화 되는 게.”
“표정을 보니 즐거웠나 보네. 연기랑은 확실히 다른 느낌인 것 같고.”
“맞아요.”
김성운의 말에 격하게 끄덕였다.
확실히, 연기랑은 많이 달랐다. 아니, 정반대에 가까웠다.
연기는 타인이란 가면을 쓰고 무대 위에 올라서는 것이니까. 그 안에서 결국 나를 발견하지만, 어디까지나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은 가면이었다.
하지만 내가 쓴 작품을 선보이는 건 오히려 가면을 벗는 행위였다.
작품에서 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의 가치관이 스며들어있고, 욕망이 묻어 있으며, 트라우마와 선호하는 것들이 뒤섞여 있다.
그러니 ‘흉내자들’은 나였다.
과정이 행복하면 결말도 좋을 거라 생각했던 과거에 대한 후회이자, 헌사였다.
내용뿐만이 아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최태주도, 상한 무릎을 혹사시키길 서슴치 않는 임성철도··· 결국 모두 나인 것이다.
시트에 몸을 기대고, 차창밖에 스치는 대학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곳에서 내 작품이 시작된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연기를 했던 촬영지만큼이나 내 인생에서 중요한 장소로 기억되겠지.
언젠가는 내가 저곳에서 첫 작품을 시작했다고, 아들이나 딸에게 말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거 참··· 좋겠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며 샘솟는 여운을 즐긴다.
이를 눈치챘는지 김성운은 조용히 운전에 집중한다.
그렇게 한참을 사색에 잠겨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안 감독이었다.
—먼저 가셨더라고요.
“네. 얼른 나왔습니다.”
—작가님 왔다 가셨다니까 다들 뒤집어졌습니다. 어떻게 작가님 오시는 걸 숨길 수 있냐면서 연극팀이건 영화팀이건 원망을 퍼붓는데······. 소고기 사준다고 진정시키고 이제야 연락드렸네요.
“저 때문에 죄송해요. 혹시 소고기는 제가 사도 될까요? 안 그래도 리허설 보고 모두에게 너무 감사해서 뭐라도 하려고 했는데.”
—아 물론이죠. 얼마든지요. 작가님이 쐈다고 하면 다들 엄청 좋아할 겁니다.
사양하지 않겠다며 껄껄 웃던 안 감독이 목소릴 살짝 낮추며 묻는다.
—그나저나, 배우들도 작가님을 궁금해하네요. 작가님 정체는 계속 숨기실 생각이에요?
계속이라······.
작가로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한,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다음 작품을 하게 되면 그땐 들통날지도 모르지. 혹은, 그전에 내가 밝힐 수도 있고.
그래도 첫 작품만큼은 온전히 작품만으로 평가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었는데······.
“그게,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어떻게요?
오늘 리허설을 보며 바뀐 생각이었다.
무대 위에서 치열하게 연기하는 배우들.
그리고 그 배우들을 보며 더 나은 완성도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연극팀과 영화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든 작품이라곤 하지만 그게 날 끌어당겼던 다른 작품들처럼 반드시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는데.
이 많은 이들의 노력을 내 욕심만으로 어려운 길 위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을까.
내 이름을 팔면 흥행이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쉬울지도 모르는데?
“도움이 된다면 도와야겠다 싶어요.”
무대에 올라선 배우들은 대부분 나와 함께 영화를 찍었던 이들이다.
그들은 어설픈 내 연기를 보며 꿋꿋이 몰입해야 했지.
그런데 이렇게 내가 모아놓고 또다시 내 욕심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그때처럼 이들의 노력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안 감독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이번엔 제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적어도 연극만큼은 작가님의 도움 없이 가고 싶어서요.
“···?”
의외의 대답에 갸우뚱하자, 그가 말했다.
—이번 작품, 영화는 물론이고 연극으로서의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작가님이 훌륭한 작품을 써주신 덕분이죠. 그러니 작가님의 역할은 그것으로 족합니다.
“······도움 없이 가시려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내 물음에 안 감독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한다.
—죽어가는 연극계의 불씨를 살리는 건 외부요인이어선 곤란합니다. 바람이 불어도, 저들 안에서 불어야죠.
작품 얘길 할 때만큼이나 진지해진 그의 목소리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다름 아닌 애정이었다.
—그래야 진짜 되살아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