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불씨 (4)
문득 궁금했던 적이 있다.
안 감독은 바쁜 사람이다.
왜 안 그렇겠나.
영화 촬영이 시작되면 배우는 배역에 몰입한다. 카메라 감독은 카메라에, 오디오 감독은 오디오에 집중한다.
그런 상황에서 감독은 배우를 보며 카메라를 확인하고, 오디오를 들으며, 자신의 의도가 제대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체크한다.
그뿐인가. 컷을 외치며 ‘이게 최선일까’ 고민하고, 오케이를 외치며 다음 장면을 염두한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면 내일 촬영을 떠올리고, 집에 돌아가 씻으며 어떻게 마케팅을 할지, 추가로 투자를 받을 곳은 없는지, 영화의 흥망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으며 수북이 쌓인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주한다.
그런 위치에 있는 그가, 선뜻 내 작품을 맡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이것에 대해 하선경 대표에게 ‘작품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라고 말했다.
좋은 작품이라서···.
그게 빈말이라고는 생각 않는다. 분명 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보니, 하나의 이유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다른 곳도 아닌 연극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기회라서.’
그에게 연극은 고향이었다.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었던.
그래서 부흥을 위해 기꺼이 움직일 수 있었던.
나는 그것이 연민도, 동정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그건······.
지금 내가 양기전을 비롯한 과거 인연이 있었던 배우들에게 느끼는 감정에 가깝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감독님께 맡길게요.”
결국, 이번에도 나는 최선을 다 하지 않기로 했다.
가장 큰 무기인 유명세를 이용하지 않기로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연기 못 하는 척을 했던 그때와는 달랐다.
나는 그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
“하아. 됐고, 천호 바꿔봐.”
인적이 드문 방송국 복도 모퉁이에서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코너에서 튀어나온다.
아티스 엔터테인먼트의 우경철 본부장.
그가 핸드폰을 던질 듯이 집어 들었다가, 차마 그러지 못하고 다시 귀에 가져간다.
“야이 거지 같은 새끼야. 너한테 내가 얼마를 썼는데 쉴 시간이 없느니 그딴 소릴 해서 논란을 만들어.”
—죄송합니다···.
“쉬고 싶어? 아예 쉬게 해줄까? 나 지금 PD들 만나러 왔어. 내가 얘네들한테 한마디만 하면 넌 이 바닥에서 끝이······.”
목소리를 차근차근 높여가던 우경철이 갑자기 볼륨을 확 줄이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야, 일단 끊어.”
전화를 끝내고서 그가 근처 비상계단이 있는 구석으로 발걸음을 틀었다.
가운데가 ‘ㅁ’자로 뻥 뚫린 건물 구조 상, 꽤나 먼 거리에 있는 건너편 복도.
그곳을 지나는 일단의 무리 중 가장 앞줄에 서 있는 백승결이 도망의 원인이었다.
그가 저 멀리 사라지고, 우경철은 머리를 짚으며 다시 복도로 나왔다.
생각해보니 자존심이 상했다.
“시발 나 왜 숨냐. 저 새끼가 뭐라고······.”
와락 얼굴을 구긴 그가 다시 걸음을 옮긴다.
“거지 같구만.”
숨은 것도 숨은 거지만, 백승결을 마주쳤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분이 상하는 그였다.
놈 때문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가.
빚투로 담그려고 했던 건에 대외적으론 자신의 이름이 끼어있지 않았지만.
박 기자 그 새끼가 뒤에서 저 혼자는 안 죽는다며 아주 지랄을 했었지.
자신은 그저 정보를 제공한 것밖에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 새끼 진정시키는데도 존나 힘들었어.’
놈에게 적당히 쥐어주고, 적당히 접대하고, 괜찮은 일자리도 꽂아줬다.
그리고 네가 그렇게 된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라 백승결과 하람 대표 때문이라고 얘기해줬지.
사실상 도박장 사진을 가지고 언론사를 협박한 건 하선경 대표였기에 일이 수월했다.
그렇게 슬쩍 타켓을 바꿔주자 저 혼자 복수를 하겠다며 칼을 가는 중이다.
‘멍청한 새끼.’
근데 지켜보니 놈은 칼이 아니다. 뭘 베고 그럴 예리함이 없지.
대신 피아식별도 제대로 못 하는 그 무지함은 주변까지 함께 날릴 폭탄은 될 것 같았다.
언젠가 때가 오겠지. 백승결에게 놈을 던져 자폭시킬 기회.
“으휴.”
그 미래가 쉽게 오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릴 절레절레 흔들며 휴게실에 도착했다.
“어, 우 본부장 왔어요?”
“안녕하셨어요, 피디님들.”
“아니, 요즘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거야. 천호, 걔 때문에 머리 아프지?”
“에휴, 쉴 궁리부터 하는 은혜도 모르는 놈 때문에 우 본부장이 고생이 많네.”
한껏 불편해진 우경철의 표정을 본 피디들이 한 마디씩 건넨다.
아티스 엔터의 솔로 가수, 천호의 인터뷰 논란 때문에 저러는 줄 안 것이다.
뭐, 그것 때문에 열받는 것도 있는지라 우경철이 풀풀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 지들 잘되라고 그러는데, 왜들 그 난리인지.”
“그러게 말이야.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하는데.”
“우 본부장 입장이 참 난처하겠어. 다들 일 많이 줘서 몸집 키워줬더니 대가리가 커져서 뻗대고 말이야.”
“하하, 제 인생이 그렇습니다. 백승결, 그 놈도 그렇고. 아무것도 아닌 애새끼 이름값 다 올려놨더니 뒤통수를 치지 않나.”
“······.”
“······.”
양옆에서 우쭈쭈를 해주자 자연스레 분노의 근원을 내비친 우경철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고개를 연신 주억거리던 양반들이 갑자기 멈칫거린다.
무슨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몸을 배배 꼬며, 들은 사람은 없나 이리저리 훑는다.
그러더니 헛기침을 하고 괜스레 빈 종이컵을 입에 가져간다.
흡사 예능 프로 감축을 논하는 국장 앞에 선 것마냥······.
“크흠, 자네 마음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그런 얘긴 좀 조심해.”
“그래요. 지금 이쪽 업계에서 백승결 씹어서 좋을 게 없어요. 백승결이 우리나라 배우들 중에 이거 잖아.”
“심지어 방송국에서 예능 PD들이 씹었다? 보도국, 드라마국 국장님들이 찾아와서 난리 날 걸? 가뜩이나 백승결 한국 들어왔다고 어떻게 한 번이라도 얼굴 비추게 하려고 혈안인 양반들인데. 일말의 가능성도 날리는 거잖아.”
“할리우드에서 그 정도 성과를 냈으면 당분간은 신성불가침이야. 게다가 이번엔 주인공으로 나서잖아. 2편이 진짜 폭망하지 않는 이상 위상이 더 오를 걸?”
자신을 말리는 PD들의 반응에 우경철은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
배우 하나에, 그것도 자신의 손아귀에 있었던 배우에 쩔쩔매는 모습도 화가 났지만.
그들의 말이 모두 맞는 말이라 더욱 참기 힘들었다.
“아니, 뭐···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제가 피해자잖아요. 다 키워놨더니 개판 치고 도망가고, 다시 복귀해선 하람에 뺏긴 게 저라고요.”
“알지. 알지. 우 본부장이 그 친구한테 서운한 거 누가 모르나? 근데 어쨌든, 지금은 때가 안 좋다 이거야.”
“그래, 우 본부장이 항상 얘기하는 게 뭐야. 때려도 되는 놈이 따로 있다는 거잖아. 지금 백승결은 때리면 안 되는 친구야. 잘 알잖아?”
안다. 알아서 열 받는 거다.
언제든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놈이 정신 차리고 보니 까마득한 높이에 올라 있어서.
아무리 끌어내리려고 해도 도무지 닿지 않을 것 같아서.
우경철이 백승결의 트라우마였듯, 어느새 백승결도 그의 트라우마가 되어 있었다.
얼마 후, 우경철이 PD들과 헤어져 방송국을 나섰다.
기분이 잡친 상태로 일 얘기를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이러다간 PD들과도 불편해지겠다 싶어 대충 정리하고 나온 것이다.
“젠장.”
우경철이 자신의 차에 올라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한참을 그러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든다.
“어, 최 실장아. 그 하람에 재계약 준비 중인 배우들 명단 좀 뽑아봐. 왜긴 왜야. 일 안 해? FA에 나오는 배우들 파악 안 할 거야?”
백승결은 당장 못 건드려도, 하람을 한 방 먹일 수는 있지 않을까.
백승결을 건드리는 건 득 될 게 없지만, 하람 배우들을 빼 올 수 있다면 이건 얘기가 다르다. 엄청난 이득이 될 수 있었다.
백승결의 그늘에 가려져서 그렇지, 지금 하람에 있는 톱배우가 대체 몇 명인가.
“야, 거기 배우들 지금까지 하람이랑 쭉 함께 한 거 누가 몰라서 이러는 줄 알아? 그래도 뺏을 수 있으면 뺏어 와야지. 그게 스카웃 아냐? 이 바닥은 언제 누가 어디로 붙을지 모르는 거야.”
답답한 듯 소리친 우경철이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맘에 맞는 새끼가 하나가 없네, 진짜. 가만 있어 봐. 이번에 신승찬도 계약 끝나는 것 같고······ 젠장.”
또 누가 있나 하람의 배우들을 검색하려 포털사이트를 들어갔는데······.
기분만 더 나빠졌다.
오늘 티저 예고편이 나왔는지, 어딜가나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2’ 얘기뿐이다.
결국, 핸드폰이 조수석으로 내팽개쳐졌다.
“망해라. 제발 망해라······.”
#
텅—!
쉴 새 없이 주먹을 퍼부었지만 소용 없었다.
넘어트리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 바닥으로 끌고 가긴 했는데 이내 일어나버린다.
그러다 한 대 맞고 그대로 몇 발자국을 밀려났다.
얼굴이었으면 그대로 주저앉았으리라.
“후아···후아··· 너무 힘들다. 무슨 벽이랑 싸우는 거 같네.”
내가 바닥에 펄썩 앉아 손을 휘적거리자 김주철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앉는다.
링 밖에서 지켜보던 코치가 웃으며 말했다.
“승결아, 진짜 잘 버텼다. 솔직히 쟨 나도 못 이길 듯. 안 그래도 체급이 깡팬데, 주철인 운동신경까지 탑급이야. 저러니 아무 운동 안 해도 골목대장은 그냥 먹었지. 뭐라고 했더라, 돌쇠?”
코치의 말에 김주철이 헛웃음을 흘리며 링 위에 드러누웠다.
“아, 현태 형 진짜······.”
뮤튜브에 올라간 영상 덕분에 이제는 동네가 아니라 백승결 팬들 사이에서도 ‘돌쇠’로 통하게 된 김주철이었다.
녀석의 절규에 코치랑 웃고 있는데,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은 울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체육관 관장님이 김주철처럼 좌절하고 있었다.
“아깝다··· 아까워··· 둘 다 재능 있는데···.”
그의 중얼거림에 코치가 웃으며 말한다.
“관장님, 이제 좀 놔주세요. 주철이야 그렇다 쳐도, 승결이는 전문 선수하긴 어렵죠. 다치면 큰일 나요.”
“알아, 임마. 아니까 아쉬워하지. 모르면 여태 꼬셨지!”
슬리퍼를 던질 기세로 발을 올리는 관장님에 코치 낄낄거리며 도망간다.
그 모습을 보며 웃다가 내가 김주철에게 물었다.
“주철아, 넌 시합 나가지 그러냐. 진짜 잘할 것 같긴 한데.”
그러자 김주철이 멍해진 눈으로 날 본다.
“전 형이 아녜요···.”
“나? 왜?”
“형처럼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할 깜냥이 못 된다구요. 지금도 너무 바쁩니다······.”
“아아.”
나 따라다니느라 해외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하고, 심지어 따로 아이돌 출신 배우도 한 명 맡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격투기까지 해보라고 하니 저렇게 질린 표정인 거다.
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매니저 일은 재밌지 않아? 난 너 그래 보이는데.”
“맞아요. 이 일 좋아요. 바쁘지만 재밌어요. 처음엔 형이 좋아서였는데, 이젠 형보다도 좋아요.”
“그건 좀 서운한데~.”
말과는 다르게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녀석의 어깰 두드렸다.
허허, 웃던 김주철이 내 허벅지만한 팔뚝을 긁적이며 입을 연다.
“형. 근데요.”
“응?”
“저 상담할 게 있어요.”
“그래?”
글러브를 벗으며 내가 빙그레 웃었다.
어쩐지 익숙한 장면이었다. 입장만 반대가 된.
“짜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