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불씨 (5)
“그러니까······.”
과거 김주철과 처음으로 밥을 먹었던 중국집.
마주 앉은 내가 녀석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야 확인하듯 되물었다.
“하람과 FHN엔터 간의 맺은 계약이 끝나간다?”
“네.”
“그래서 네가 맡은 아이돌··· 유은하 배우가 돌아가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고?”
“그렇죠.”
“하람과 재계약이 어려운 건 유은하 배우가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고 있어서이고?”
김주철이 끄덕거린다.
반 그릇도 못 먹은 짜장면이 녀석이 지금 얼마나 심란한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심각한 상황이라 웃진 않았지만, 속으론 미소가 지어진다.
“너, 진짜 매니저같다. 이제.”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옅게 웃는 김주철.
단무지를 오도독 베어 물며 내가 물었다.
“그래서, 반년 남았다고?”
“네.”
“그래서 나한테 상담하고 싶은 건?”
그러자 김주철이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든다.
둥그런 원형 식탁에 짜장면과 단무지 말고도 종이 세 장이 나란히 놓였다.
“어떤 작품을 하게 해야 할까요? 성과를 내려면······.”
그가 펼친 시놉을 내려다보다가 내가 물었다.
“답안지를 보고 싶은 거야?”
“지금은 급하니까요. 계약 기간상, 이제 한 작품인데 그때까지 성공 못 하면······.”
재계약은 물 건너가겠지.
그의 뒷말을 예상하며 시놉을 쭉 훑었다.
그리고 다시 녀석을 보자 벌컥 묻는다.
“어, 어때요?”
“얘기 안 해줄 거야.”
“네?”
“네가 말했잖아. 너는 내가 아니라고. 언제까지 나한테 물어보러 올 건 아니잖아.”
“그, 그렇죠······.”
“대신 팁은 줄게. 이건 안 감독님께 들은 건데······ 네가 보는 배우의 강점이 있을 거 아냐. 단순히 정 말고. 진짜 배우로서의 강점.”
김주철이 끄덕거리며 눈알을 굴린다. 얼른 유은하의 강점이 뭔지 찾는 눈치였다.
나는 이번엔 시놉을 가리키며 덧붙여 말했다.
“여기서 그걸 찾아. 그건 나보다도 네가 잘 알잖아.”
시놉 위로 시선을 옮긴 김주철이 천천히 곱씹듯 끄덕거린다.
그런 그를 보며 다시 젓가락질을 시작하려는데, 녀석이 물었다.
“저, 하나만 더.”
“뭔데?”
“좋은 매니저는 뭘까요?”
“그건 팀장님께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이미 여쭤봤어요. 근데, 배우의 입장도 들어보고 싶어서요.”
“그래? 팀장님은 뭐라고 하셨는데?”
“배우를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는 매니저.”
참, 팀장님다운 생각이었다.
배우가 자기 손아귀에 있느니 어쩌구 하던 놈과는 다르게.
“뭐··· 작품 잘 물어오는 매니저, 좋겠지. 감독들하고 친한 매니저도 좋겠지. 회사에서 힘센 매니저도 좋겠지. 그냥 이렇게 힘센 매니저도 좋겠고.”
김주철을 가리키며 말하자, 너무 진지한 표정이던 녀석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렇게 분위기를 환기 시키고서 내가 말했다.
“근데. 나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러면 설사 다른 길을 가게 되더라도, 언젠간 만나지 않을까?”
내 말에 씩 웃으며 시놉을 챙기는 김주철.
마음이 좀 놓인 걸까. 그제야 짜장면을 단숨에 비운다.
오늘은 고량주 안 마실 거냐고 물으며 나도 젓가락을 다시 집어 들었다.
슥슥, 남은 짜장면을 비비며 웃었다.
좋다. 심장이 뛴다.
김주철의 성장에 기뻐서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뛸 듯이 좋지만.
보다 평범한 이유였다.
좋은 작품을 보면 심장이 뛰는 나잖아.
김주철이 보여준 작품에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것도, 세 작품 모두에게.
#
—티저 너무 짧은 거 아니냐.
—애초에 티저가 원래 그런 거임.
—사실 제목조차 안 밝히는 게 원래의 티저긴 하지.
—진짜 한 장면만 더, 한 장면만 더 하는데 매정하게 끝나버리더라.
—아니, 그래도 파코스 얼굴 한 번 안 보여주고 마지막에 실루엣만 보여주면서 끝나는 건 너무하는 거 아니오.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2’의 티저 예고편이 공개되자마자 포털사이트는 불 위에 올려진 듯 달궈졌다.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모두 마찬가지였다.
뮤튜브에는 해당 예고편을 보며 감탄 또는 탄식하는 리액션 영상이 넘쳐났고.
크고 작은 채널들이 앞다투어 예고편 분석 영상을 만들었으며.
해외 유명 감독이나 배우들이 SNS에 예고편 영상 링크를 공유하며 잔뜩 기대감을 표했다.
—예고편 또 떴다···!
—1차 예고편은 확실히 다르긴 하네. 그나저나 파코스 얼굴 소름. 1편에 비해 흉터가 조금 옅어진 거 말고는 전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다르지?
—예언가 죽이고 나서 완전히 각성한 느낌. 1편으로부터 3년 지난 시점이라던데 대체 어떤 스토리일지 너무 기대됨.
—일단 1차 예고편만 봐서는 파코스가 핵전쟁의 원흉들을 찾아가서 단죄하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그후로 예고편이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인터넷이 들썩거렸다.
최고의 화제성을 가진 개봉 예정 영화다운 화력이었다.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꽁꽁 숨긴다고?
하지만 막상 알맹이가 없는 예고편들이 반복되자 사람들은 점점 지쳐갔다.
—사람이 언제 분노한다고 생각하나. 맞았을 때? 욕먹었을 때? 아니, 말을 하다가 말았을 때. 예고편이 뭔 예고를 하다가 마냐!
—이 정도면 아직 CG 작업이 안 되고 있다 찌라시에 신뢰가 가는데······.
—확실히 1편에 비해 액션씬도 많고 스케일도 커졌다던데, 그걸 감당 못 하고 있는 듯.
—이제 정말 개봉까지 얼마 안남았는데, 어쩌려고 그러냐.
걱정과 비난이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2’를 덮쳤다.
적어도 영화와 연관된 커뮤니티, 채널에선 한동안 이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들의 노파심과 앙심을 비웃듯, 파이널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판이 뒤집혔다.
#
⌜지키고 싶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파코스의 낮은 목소리가 사막 위 모래처럼 흩뿌려지며 예고편이 시작된다.
⌜그래서 쫓았고, 그랬는데 쫓을 수록 더 망가졌다.⌟
다음 장면에선 갑자기 거대한 설산이 비춰지며 눈길에 턱 하고 발자국이 찍힌다.
그리고 다시 사막.
그래픽 카드를 닮은 빌딩들이 옛 뉴욕의 마천루들을 흉내 내며 우뚝 솟아있는, 일명 ‘콘크리트 오아시스’가 스쳐 지나가고.
건축물이라기보단 천막에 가까운 수많은 이들의 보금자리를 보여준다.
⌜내가 해야 하는 건 정작 따로 있었던 거지. 진짜 재앙을 죽이는 거.⌟
다음 장면에선 1편의 주인공 랜시의 얼굴이 나타나고.
그녀의 묘한 표정이 연기처럼 사라지며 향초를 꽂는 예언가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 모든 곳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던 파코스는.
⌜자격? 없지.⌟
마침내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아늑한 집 안에 기름을 뿌려대며 말한다.
⌜근데 말이야. 나도, 세상도······ 누군가를 죽이려고 그 난리를 쳤는데.⌟
드르르륵—.
의자를 끌어 누군가에게 다가간 파코스가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낮게 속삭인다.
⌜너희들에게도 그런 존재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그리고 암전.
치익—.
라이터에 불이 붙으며 설산 아래에 불길이 치솓는 장면으로 연결되고.
음악의 호흡이 가빠지며 화려한 선율들이 묵직한 리듬 위에서 내달린다.
수많은 장면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폐허가 된 맨하튼을 내려다보는 파코스.
그가 누군가에게 불쏘시개를 내리찍는 순간.
라이플을 들고 달려나가는 장면과.
머리 위로 드리우는 황홀할 정도로 커다란 오로라.
그리고.
파코스의 손을 잡는 작은 손.
⌜넌 확실히, 랜시와 같구나. 그리고 어쩌면······.⌟
작은 손의 주인인 여자 아이의 얼굴이 공개되며.
⌜내가 정말 재앙이었을지도 모르겠군. 나는 놈을 죽이기 위해 그 별장을 찾아갔지만, 결과적으로 널 죽일 재앙이었던 거다. 내가 널 죽이지 않으니 이렇게 계속 다른 재앙들이 찾아오는 거고.⌟
⌜붸에?⌟
⌜또 시작된 거다. 농간이.⌟
아이의 환한 미소가 화면 가득 담겼다.
⌜에베~배애!⌟
파코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난 재앙이다. 내가 널 떠나면, 또 다음 재앙이 찾아오겠지. 아니, 이런 세상이라면 재앙이 오기도 전에 죽을 테지. 마치 그들처럼.⌟
그 순간 파코스가 떠올린 건 랜시와 디터였다.
거대한 사막 한가운데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언젠가 디터와 나눴던 대화가 파고든다.
—나는 랜시를 살릴 겁니다. 당신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그 끝이 네가 바라는 대로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하나.
—분명히.
······아름다웠나. 디터.
작게 중얼거린 파코스가 아이에게 말했다.
⌜궁금해졌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올려다보는 아이에게.
자신의 손을 꼭 쥔 아이에게.
그가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춘다.
⌜너를 죽이라고 세상이 보낸 재앙이, 세상에 엿을 먹이면 어떻게 되는지.⌟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알 리 없는, 그것을 물을 언어조차 구사하지 못하는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베?⌟
그러거나 말거나. 파코스는 말한다.
⌜재앙을 막아주마.⌟
⌜···?⌟
⌜그러면 넌 살 거다.⌟
그리고 강렬한 파코스의 눈빛과.
⌜난 디터 그 놈보다 유능할 거거든.⌟
확언에 가까운 장담과 함께.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2’ 타이틀이 뜨며, 파이널 예고편이 끝났다.
탁—.
뮤튜버 맥이 스페이스바를 눌렀다.
“······.”
작업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실 한참 전부터 그랬다.
작은 공간에 컴퓨터 열기를 식히는 팬 돌아가는 소리만 백색소음처럼 이어진다.
이곳의 주인인 맥이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며 손을 뻗어 리액션 영상을 찍겠다고 켜둔 카메라부터 껐다.
“이건······ 못 쓰겠네.”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맥이 아쉬워한다.
자고로 리액션 영상이라면 뭔가 다채로운 반응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이건 아니지.
‘보는 내내 멍청한 표정으로 입 벌리고만 있었으니······.’
하하하···.
작은 웃음으로 안타까움을 덮은 그가 타이틀을 띄운 채로 멈춘 화면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그리고 이번엔 입을 쭉 찢었다.
그동안의 빈약한 예고편이 무색하게, 낮아졌던 기대감을 멱살 잡고 끌어올리며 말하고 있었다.
어때. 이래도 우리가 걱정 돼?
“다시··· 다시 봐야겠다.”
솔직히 예고편에 몰입하느라 CG가 어땠는지, 내용이 어떨 것 같은지 같은 분석은 하나도 못 했다.
그만큼 정신 없이 봤다.
“미쳤어, 이건 진짜.”
앉은 자리에서 예고편을 세 번 더 관람하는 맥이었다.
관람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예고편 하니만으로 작품 같았다.
‘쇼츠에 올릴 리액션 영상은 개뿔.’
맥이 얼른 본 영상을 만들기 시작한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이번에도 영상 길이가 20분을 가뿐히 넘겨버렸다.
“아씨, 뮤튜브 이렇게 하는 거 아닌데······.”
하지만 지난 번에도 어땠나.
에라 모르겠다 올린 영상들이 평균 2천만 뷰를 넘겼다.
구독자도 150만이 늘었다.
그러니 맥은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기로 했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완성한 영상을 올리기 직전.
맥은 어그로 대신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제목에 적었다.
[딱 전작만큼만 하길 바랐다. 그런데 이건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