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불씨 (9)
미쳤다. 재밌다. 최고다.
인터넷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감탄사들로 오디오를 채우던 그들의 수다는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즐겁게 영화를 본 관객으로서의 수다를 모두 털어낸 뒤.
그제야 유사업계(?) 종사자로서의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파코스는 옳았을까?”
믹스 커피를 휘휘 저으며 회의 테이블에 앉은 단장, 김진태.
그가 던진 화두에 다른 단원이 흥미롭다는 듯 답한다.
“그걸 정할 수는 없죠. 파코스라는 존재 자체가 뭐랄까, 운명 같은 거니까. 모 그룹 회장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잖아요. 운명이란 종이 위에 떨어진 물 같아서, 어떤 모양으로 번질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고.”
“그것처럼 그저 운명처럼 일어난 일일 뿐이다? 그렇다기엔 파코스는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캐릭터 아닌가?”
“그조차도 파코스의 영웅 서사를 위한 설계일지도 모르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큰 의미가 없는 세계관이기도 하고요.”
“분명한 건··· 적어도 관객들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는 엔딩이었다는 거예요. 재앙과 재앙이 만났을 때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해피엔딩.”
“솔직히 그 와중에 살짝 3편이 나올 수도 있다는 뉘앙스도 있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진정한 구원자가 된 파코스. 반란군 총사령관 같은 느낌으로 나오면 재밌긴 하겠다.”
“1편은 다크한 로드무비, 2편은 액션, 3편은 전쟁? 와, 그건 진짜 미치겠는데요?”
들뜬 얼굴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단원들 사이에서 안 감독이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나저나, 크리스 감독이 이렇게 희망찬 이야길 쓸 줄이야. 의외네.”
그동안 크리스 감독의 모든 작품을 열 번도 더 본 안 감독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2’에서만 그의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게 아쉬운 점은 아니었다.
원래의 느낌도 좋았지만, 이번도 좋았다.
아니, 오히려 액션 영화를 주 장르로 본다면 적어도 2편에선 색을 바꾼 게 더 나은 느낌이다.
“아마 백승결 때문 아닐까요? 인터뷰들 보니까 각본에 준 영향이 엄청났다는 것 같던데요.”
“근데 뭐 그거··· 홍보라는 얘기도 많던데요.”
“하긴, 그냥 간단한 아이디어만 주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백승결은 배우인데 갑자기 각본을 썼다는 게 좀 그렇잖아요. 뇌절이란 얘기도 많이 듣던데.”
단원들의 말을 듣던 안 감독이 입꼬릴 씰룩거리며 웃음을 참다가 대화를 정리했다.
“어쨌든, 재밌었다. 희망차고. 이제 일하자.”
회의 테이블을 탕탕 치며 분위기를 만드는 안 감독.
단원 중 하나가 마지막 점검 중인 후반부 콘티를 제 앞으로 끌어당기며 중얼거렸다.
“에휴, 우린 끝도 씁쓰름하니~.”
“왜 위로받았다며.”
“쓴 위로였지.”
“그건 인정.”
끄덕거리는 단원들을 보며 김진태가 말했다.
“사실 결말만 놓고 보면 ‘흉내자들’도 ‘당죽막’ 못지않지. 감동이 있잖아, 감동이. 막 이렇게 사람을 울리는.”
“그게 좋긴 했는데, 그래도 좀 더 희망차게 끝났으면 어땠을까 싶어서요. 그러고 보면 우리 작가님은 진짜 사람이 좀 변태 같은 면이 있어요?”
“왜?”
“설정도 좀 딥하고, 읽는 사람 감정을 막 조물딱 거리는데, 결국 해피엔딩이라기엔 살짝 애매한 결말로 여운을 길게 남겨버리고, 뭔가 가학적이잖아요. 게다가 부끄러움 많으시다면서 신비주의 컨셉에 또 몰래 와서 연기는 보고 가시고······ 아무리 봐도 여고생 느낌이 난다니까? 진짜 아녜요?”
이상한 길로 빠지는 단원의 말에 김진태가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거리던 안 감독에게 옆에 있던 단원이 말한다.
“그나저나 양기전 배우가 리허설을 거듭할수록 아주 날아다니던데요? 지난주보다 더 연기가 나아졌어요.”
안 감독이 흐뭇한 미소로 으쓱거렸다.
“내가 말했잖아. 조금만 욕심이 생기면 또렷해질 배우라고.”
“그러고 보면 작가님이 대단하긴 해요. 캐스팅까지. 대부분 작가님이 원하는 대로 한 거잖아요. 근데 어떻게 이렇게 딱딱. 미국에서 어디까지 내다보신 거지.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분인 건 확실한 것 같은데. 그쵸?”
“그렇겠네요. 작가님이 원하신 배우 라인업만 봐도······ 작가님, 못해도 3, 40대는 되실 거 같은데요?”
그때 이 대화를 듣고 있던 김진태가 끼어들었다.
“······이상하다. 훨씬 젊은 느낌이었는데. 20대 정도?”
흠칫 놀라며 안 감독이 물었다.
“얼굴은 제대로 못 봤다며.”
“못 봤죠. 감독님이 신신당부하셔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무슨 죄지은 거마냥. 근데 그래도 사람이 아우라라는 게 있잖아요. 딱 봐도 젊고 잘생겼을 쉐입이었는데. 그런 건 또 우리가 정확하잖아요.”
하도 배우들을 많이 본 그들이라, 이런 건 척하면 척이었다.
자칭 잘생김 판독기인 김진태가 낄낄 웃으며 콘티를 넘긴다.
“아, 어쨌든 진짜 간만에 너무 좋은 영화 봤네요. 이걸 동기 삼아서 연극 성공시키고, 영화까지 흥행해 보죠!”
“그나저나, 좀 걱정이네요. 우리나라 극장 상황이 별로 안 좋잖아요.”
“뭐, 우리나라만 그런가.”
“그래도 이번에 ‘당죽막 2’ 때문에 예매율이 역대급이라는 것 같던데요?”
“하긴, 오늘 극장에 사람 많더라. 애매한 시간인데도 못 볼뻔했잖아.”
단원들의 말에 안 감독이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꼭 지금 영화판 같네.”
“네?”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말이야. 같이 개봉한 이들한텐 관객 뺏어가는 재앙인데, 거시적으로 보면 위태로운 영화계의 영웅이 될지도 모르겠어서”
“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오늘만 해도 영화관에 사람이 바글바글했잖아요.”
단원들이 그의 말에 호응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약간의 가능성을 논한 것이었다.
아무리 영화관이 흉년이라 해도, 기대작이 개봉한 날엔 사람이 많은 게 당연했으니까.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었음을 모두가 깨닫게 된 건 영화가 개봉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전 세계 극장이 갑작스러운 호황을 겪게 되었다.
극장이 부족했고, 직원이 모자랐다.
과장이 아니었다. 직전 영화계의 불황에 전 세계가 사업을 서서히 줄여나갔기 때문에 닥친 기현상이었다.
그야말로, 하나의 영화가 전 세계 극장 전체를 먹여 살리는 유례없는 상황.
자연스레 영화의 간판, 주인공을 맡은 백승결의 위상이 또 한 번 급격히 치솟았다.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을 1편 때부터 싫어하던 한 평론가가 이 사태에 대해 일침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확실히 그런 면이 있었다.
그래서 세상이 백승결만 기억하기 시작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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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들이 간혹 티비쇼에 나와서 이런 얘길 하곤 한다.
‘그땐 연예인 병에 걸렸었어요.’
마치 ‘철이 없었죠’ 같은 말투로 슬며시 미소를 짓는 그들을 나는 너무나 잘 이해한다.
갈릴레이가 법정을 나서며 중얼거렸던 것처럼.
그래도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데.
분명 그건 섭리인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 순간 느껴지는 고양감과 부담감은 집채만 한 파도 같아서, 순식간에 나를 삼킨다.
물론 그 정도는 각각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 말고도 몇 번이나 그랬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파도에 삼켜지지 않았다.
결국, 나를 한번 휩쓸고 빠져나갈 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나는 그것을 굉장히 일찍 경험했다.
고양감도, 부담감도 느낄 새 없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불안감을 먼저 맞닥뜨렸지.
‘뭐, 이런 건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인생에 교훈 비스름한 것을 주입해 준(?) 아버지를 떠올리며 차분하게 일정을 소화해 나간다.
영화가 말도 안 되는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는 만큼, 곳곳에서 함성이 터지고, 축포가 쏘아진다.
나는 충분히 즐기되, 긴장을 놓진 않았다.
언제, 무슨 문제가 터질까.
뭐 그런 불안감이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이미 나는 아역 때도, 그리고 복귀하고 나서도 아버지에게 발목을 잡힌 기억이 있었다.
더 이상 내가 진 빚은 없었지만, 뭐가 터질지는 아무도 모르지.
여긴 그런 곳이고, 그래서 아무도 끌어내리지 못할 높이까지 올라가겠다 목표를 정한 거니까.
다만, 그런 불안함만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나에겐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2’의 흥행만큼이나 중요한 국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흉내자들.’
내가 만든 글이 이제 곧 연극 무대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과는 아주 다른, 작고 조용한 반응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쓴 내 글이라서일까.
어느 때보다 가슴이 울렁이고 있었다.
“어후······.”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앓는 소리.
김주철이 슬그머니 창밖을 보더니 뒷걸음질친다.
뉴욕 행사가 있어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에 머물게 되었는데, 여기 뷰가 상당했다.
그리고 김주철은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190이 넘는 애가 그냥 서 있는 건 안 무서워?”
“아니, 그게 무슨······.”
현태 형의 밑도 끝도 없는 놀림에 황당해하는 김주철.
그리고 한쪽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김성운을 구경하다가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크리스 감독님이네.”
집중해서 업무를 보던 김성운이 홱 고개를 들며 나를 본다.
갑자기 저 양반이 왜 저렇게 보나 싶었는데.
“설마 3편?”
2편 시놉을 줄 때,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했던 거다.
피식 웃으며 고갤 저었다.
“그건 아닐 거예요. 이번엔 정말로 쉬신다고 하셨거든요.”
“뭐 언젠 아니었나.”
“그렇긴 한데···.”
이번엔 아마 진짜일 거다. 들은 게 있거든.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 말할 수 없었다.
“일단 통화하고 올게요.”
잠시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통화를 끊자마자 옷을 챙겨입고 거실로 나왔다.
다시 정신없이 노트북을 두들기던 김성운이 고개를 든다.
“뭐야, 어디 가는데?”
“차 한잔 하자시네요.”
“보아하니 그것만이 아닌데?”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 김성운.
“네 표정이 아주 잔뜩 들떠있는데?”
“그게 보여요?”
하하 웃으며 내가 말했다.
“소개해줄 분들이 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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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까?”
백승결이 나가고 임현태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꼬릴 올렸다.
옆에 김주철이 앉으려고 다가오자 임현태가 그를 막았다.
“넌 저쪽에 앉아.”
“왜요?”
창가 쪽 소파에 앉으라는 임현태에 김주철이 억울해하자 그가 고갤 흔들었다.
“여긴 뷰가 너무 좋아. 통유리라 시선이 낮아져도 여전하네. 저쪽에 앉아서 내 쪽을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뒤를 돌아본 김주철이 얼른 백스텝으로 돌아가 건너편 소파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낄낄 웃은 임현태가 다음 추리를 이어간다.
“여소?”
“형, 그건 좀······.”
“영 아닌가?”
“승결이 형이 그렇게 의리가 없진 않아요. 가실 거면 같이 갔겠죠. 그쪽도 세 명 맞춰서.”
“아, 그런 핀트였어? 얘도 저만큼 정상은 아녜요. 그죠?”
임현태가 김성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픽 하고 웃은 김성운이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아, 하고 입을 벌리며 읊조린다.
“대충 어떤 사람들인지 알 것 같긴 하네.”
“누군데요?”
호기심 어린 눈 두 쌍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바라보며 김성운이 으쓱거렸다.
“여기가 어디냐.”
“뉴욕이요.”
“뉴욕에 뭐가 있어?”
잠시 고민하던 김주철이 답했다. 자신 없는 목소리로.
“파이브 가이즈···?”
이에 헛웃음을 흘리는 임현태.
넌 좀 알겠냐는 듯한 김성운의 표정에 그가 씩 웃으며 물었다.
“브로드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