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불씨 (13)
매니지먼트 하람의 대표실.
하선경 대표의 주도하에 이번 주 마지막 회의가 시작되었다.
장장 2시간에 걸친 팀장급 회의.
항상 그 마지막엔 가장 해야 할 논의가 많은 주제를 미뤄두는데, 최근 몇 년간은 늘 백승결에 대한 이야기가 그 자리를 항상 차지했다.
매번 화제성이 끊이지 않고, 점점 더 몸집이 커지며, 이제는 일개 한 명의 배우가 하람이란 회사의 상장마저 부추기고 있으니 당연한 순서일 수밖에.
“흐음······.”
그 사실이 단 한 번도 마음에 든 적 없는 최영기 실장(—2팀장 대행)이었지만.
그래서 이따금 딴지를 걸기도 했던 그였지만.
이젠 포기하고 입을 닫아버렸다.
예전에야 ‘은근슬쩍 깎아내리기’를 통해 마음의 위안이라도 삼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깎아봐야 흠집이 나긴커녕, 자칫 자신과 승찬이에게까지 피해가 돌아올 판이었다.
그만큼 백승결이라는 이름 석 자가 하람에서··· 아니, 업계를 넘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것마냥 국가적으로 대단해져 버렸다.
그러니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쩌겠나.
그저 백승결의 할리우드 강점기가 끝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승결인 형 칭찬을 하던데요.’
문득, 신승찬이 했던 말이 떠올라 콧방귀를 뀌었다.
참내, 누가 그렇게 말하면 이제 와서 좋아할 줄 아나.
그 대단한 할리우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배우가 김성운도 아니고 날 더러 좋은 매니저라고 한 게 기분 좋을 줄 아냐고···!
아그작—.
새침하게 콧방귀를 뀌며 앞에 있는 과자를 까먹는 최영기 실장.
그 사이, 하선경 대표가 긴 이야기 끝에 말을 맺는다.
“자, 이제 승결이 얘긴 이쯤에서 마치고.”
이렇게, 오늘 회의도 이제 끝인가···.
그런 생각으로 최영기 실장이 슬쩍 핸드폰을 챙기는데.
“연극 얘길 좀 해보죠.”
실로 오랜만이었다.
백승결의 이야기로 회의가 끝나지 않는 건.
물론 그렇다고 승찬이 얘기로 끝나는 것도 아니니 기쁠 것까지야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하선경 대표의 관심에 백승결이 아주 조금은 멀어졌다는 것 아닌가!
‘······하긴, 나 같아도 거금을 들여 투자했으면 그쪽에 신경이 더 쓰이겠지.’
‘흉내자들’이란 연극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선경 대표가 어디서 대본을 구해와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지.
심지어 굿픽처스와 합심하여 영화화까지 염두하고 있다니 퍽 중요한 사안이긴 했다.
‘물론 그 작품도 딱히 마음에 안 들기는 한데······.’
하람이 연극과 영화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는 거야, 별 관심이 없다.
마음에 안 드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흉내자들’의 영화 버전 대본이 승찬이에게 들어왔다는 것.
대박이 나서 난리인 연극이어도 영화화를 한다고 하면 퍽 고민이 될 텐데, 아직 반응조차 알 수 없는 작품의 대본을 승찬이에게 주다니! 심지어 배역도 조연으로!
‘이태원 찻집’에서 승찬이의 연기에 극찬을 했던 안 감독이 왜 고작 조연에 승찬이를 넣으려 하는지 통 이해가 안 가는 그였다.
생각하니 또 자존심이 상하는 최영기 실장.
그가 푹 한숨을 내쉬는데, 연극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던 홍보팀장이 그를 불렀다.
“최 실장님은 뭐 얘기할 거 없어요?”
“어··· 그게···.”
하선경 대표보다 그녀가 더 무서운 최영기 실장이었다.
현 하람에서 그의 가장 강력한 천적인 홍보팀장.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홍보팀 뒷담 사건을 수시로 소환해 추억하는 그녀에 최영기 실장은 이발한 삼손, 크립토나이트 앞의 슈퍼맨이었다.
“승찬이가 대본을 아직 다 읽지 못해서 별다른 얘기는······.”
“하긴, 승찬 배우가 워낙 최근에 바빴으니까.”
“하하··· 그렇죠.”
사실은 다 읽었다. 받은 자리에서 냉큼 읽어버리더라.
그래서 설득했다. 지금이 커리어상 정말 중요한 시점이니 딱 세 번만 더 읽고 결정하자고.
그러니 아직 다 못 읽었다는 얘기는 반 정도는 맞는 얘기였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최영기 실장.
다행히 홍보팀장은 별다른 의문 없이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하선경 대표를 돌아보며 묻는다.
“대표님은 긴장 안 되세요?”
“무지 되죠. 어떻게 안 되겠어요.”
하선경 대표가 명랑하게 웃으며 답하자, 잠자코 지켜보던 1팀장이 말했다.
“그래도 좋은 신호탄이 될 겁니다. 하람이 본격적으로 영화, 연극 산업에 투자도 하겠다는 거니까요.”
“본부장님도 그 얘기 하시더라고요. 저도 거기에 의의를 두려고 하고 있고요.”
“언젠간 저희가 제작한 영화에 저희 배우들을 넣는 거죠! 팀원들이랑 얘기해봤는데, 영화 홍보도 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은근 신나 보이는 홍보팀장을 보며 최영기 실장이 뭐라도 말해야겠다 싶었는지 슬쩍 물었다.
“근데, 이거 작가가 대체 누굽니까? 어디에도 안 쓰여 있더라고요.”
그러자 홍보팀장이 쿡쿡 웃으며 말한다.
“이봐요, 존 스노우.”
“네? 존… 뭐요?”
“왕좌의 게임 안 봤어요?”
“존 스노우? 그게 누군데요?”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
멍청한 표정의 최영기 실장을 보며 홍보팀장이 얄밉게 웃는 순간,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온 직원이 손님의 방문을 알렸다.
“대표님, 안 감독님 오셨습니다.”
“아, 벌써 시간이··· 알겠어요. 잠시만요.”
하선경 대표가 끄덕이며 얼른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다들 긴 시간 고생했어요.”
잠시 뒤, 1팀장과 홍보팀장, 그리고 최영기 실장이 대표실을 나섰다.
그리고 문 앞 복도에 서있는 안 감독과 마주쳤다.
1팀장이 지나가며 가볍게 인사했고, 뒤이어 홍보팀장이 붙임성 좋게 활짝 웃으며 응원한다.
“저희 팀도 주말에 보러갈게요.”
“하하. 네, 감사합니다. 아, 최 실장님. 오전에 승찬이랑 통화했어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려던 최영기 실장이 안 감독의 레이더망에 딱 걸렸다.
그가 우뚝 멈춰선 채로 어색하게 웃었다.
“아······.”
“받자마자 대본 다 읽어봤다고, 엄청 좋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가던 길을 멈추고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홍보팀장이 최영기 실장을 빤히 바라본다.
‘망했다······.’
악수를 마친 안 감독이 대표실로 들어간다.
악수를 둔 최영기 실장이 얼른 자리를 피하려던 그때.
담당 일진의 서슬퍼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호. 이건 또 무슨 소리람?”
#
“오늘이네요.”
“그러게요.”
타닥—.
거의 동시에 찻잔이 내려놓아 졌다.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들이쉬며 차향을 느끼는 하선경 대표에게 안 감독이 물었다.
“어떠세요. 걱정되시나요?”
“방금 직원들에게도 말했지만,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죠.”
과거 자신의 배우였던 천광윤과 백승결, 그리고 몇몇 지인들 정도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녀는 성공할 작품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흉내자들’은 그런 그녀의 감각을 가장 심하게 뒤흔든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껏 감별해온 건 어디까지나 영화와 드라마 같은 매체들.
연극과는 닮은 듯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하는.
언제나 베스트 컨디션을 보여줄 수 있는 가공된 작품들이었다.
그렇기에 변수가 너무나 많은 연극의 성공까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도 이번 프로젝트는 엄청난 도전인 거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제가 영화 감독이기 이전에 12년동안 연극 감독이었어요.”
안 감독은 그 반대였다.
그는 연극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며칠 전, 단장인 김진태가 거리 사람들의 리액션에 울적해 할 때도 휩쓸리긴 커녕 오히려 그를 나무랐다.
배우들의 완벽한 리허설을 보고도 단장이라는 놈이 의심이나 하냐며.
“분명 연극이 먼저 불씨를 붙여줄 겁니다. ”
대학로, 그 후미진 골목길에서부터 말이다.
“그거 아시죠? 눈에 보이는 곳에서부터 불이 붙으면 금세 발견되어 꺼지지만 가생이부터 야금야금 불이 번지면 그땐 소방차 열 대가 와도 답 없는 거.”
씩 웃으며 덧붙이는 안 감독.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먼저 영화화를 요구하게 될 겁니다.”
하선경 대표가 천천히 입꼬릴 올렸다.
처음, 대본을 건넬 땐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안 감독의 얼굴에 자신보다 더한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 이것이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였다.
어디까지나 작품에 대한 평가만 가능할 뿐, 변수에 대한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걸 보완하는 건······.
현장에 있는 배우와 연출자다.
‘확실히 이 자리에서 모든 걸 컨트롤하기엔 무리가 있지.’
그래서였다.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배우가 있길 바란 건.
그리고 백승결이 나타났지.
이제 하선경 대표는 또 다른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한계를 보완해 줄,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연출자가 있다면···?
그 순간, 눈 앞에 있는 안 감독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백승결, 그 친구가 연출 쪽에도 재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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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경 대표에게 호언장담한 안 감독이 곧장 대학로로 향했다.
비록 금요일이긴 하지만 평일 오후라는 한계에 대학로 거리에는 유동인구가 확연히 적었다.
그러니 상권에서도 멀찍이 벗어난 가내수공업 극장이 있는 골목길은 어떻겠나.
안 감독이 사는 주택가 골목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과장 조금 보태면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달까.
분명, 극장 바로 전 블록까진 그랬었다.
“야 이거 왜 티켓이 지정 좌석이 아니냐.”
“원래 이런 곳은 선착순이야. 모르냐.”
“그래서 이렇게 줄이 길구나······. 우리도 빨리 서자.”
극장 앞, 꽤나 붐비는 사람들.
엄청 많지는 않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가내수공업 극장에선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근처 카페나 슈퍼 사장님들도 무슨 일이 났나 구경나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슬그머니 입꼬릴 올린 안 감독이 매표소 앞에 나온 김진태와 마주쳤다.
며칠 전만해도 걱정 한가득하던 얼굴이 오늘은 웃음 한가득이다.
“감독님, 대박이에요···!”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영화계로 가셔서도 승승장구하신 감독님에겐 이게 별거 아니겠지만, 저희한텐 그 정도예요. 얼마 만에 보는 인파인지 모르겠다구요.”
고작 스무 명 남짓 줄 서 있는 정도를 ‘인파’라고 말하는 김진태.
안 감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더 많아질 거야.”
“하람에서 홍보 쪽으로 더 푸쉬해준대요?”
그가 하람에서 오는 길이라는 걸 알고있던 김진태가 눈을 빛냈다.
“그것보단······ 여기 온 관객들이 해줄 거야. 가장 좋은 홍보는 입소문이잖아.”
“아아···.”
살짝 실망한 얼굴로 끄덕거리는 김진태.
8회차부턴 대대적인 홍보가 약속되어 있다는 건 잠시 비밀로 해둔 채, 그가 건물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옆을 스쳐 지나가는 남자에 우뚝 멈춰 섰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서 줄을 서려는 것 같은데······.
“······.”
갑자기 멈춰서서 멍하니 있자 김진태가 의아한 표정으로 갸우뚱한다.
“왜요?”
“아, 아냐. 가자.”
뒤를 돌아보는 대신 핸드폰을 꺼내 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안 감독이었다.
그가 무언가를 검색한다.
이윽고 화면에 떠오르는 기사들.
[할리우드가 열광한 배우, 백승결··· 오늘 새벽, 깜짝 입국> [금의환향, 백승결. 갑작스러운 입국에 소속사로 모여든 기자들> [전설이 된 파코스, 전설을 쓰고 있는 백승결의 깜짝 입국 소식>역시나였다.
다시 멈칫하며 씩 웃은 안 감독이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언제 보러 올 거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이미 왔구나.”
“누가요?”
“응? 아··· 관객들 말이야. 입질이 왔다고.”
안 감독의 변명을 철석같이 믿은 김진태가 잔뜩 들뜬 얼굴로 말한다.
“제대로 왔죠! 이제 낚기만 하면 돼요.”
낚싯대 릴을 감는 포즈를 취하며 웃는 김진태에 안 감독이 뭘 모른다며 덧붙였다.
“아예 뜰채로 건져버려야지.”
그리고 김진태의 등을 가볍게 치며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내려가자. 곧 공연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