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기억 (3)
조금씩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파코스의 악명은 그의 세계에서 퍼지는데 꼬박 보름이 걸렸지만.
‘흉내자들’이란 연극이 재밌다는 글이 인터넷에 퍼지는 데는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안 감독이 생각한 성공에는 아직 한참 부족했다.
그래봤자 한 회차 공연을 본 백여 명의 외침.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주제로 고래고래 떠들어대는 가상의 공간에서 유의미한 힘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연극 꽤 괜찮다던데?
관련 커뮤니티에서조차 이런 글이 올라와도, 조용히 조회 수만 올라갈 뿐, 큰 파급력은 없었다.
새로운 작품보다는 여러 번을 보았어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배우의 연극이 더 중요한 곳이니까.
그래도 며칠이 지나며 회차가 차곡차곡 쌓였다.
관람객이 많아질수록, 목소리도 조금씩 커졌다.
그 커진 목소리를 듣고, 진짜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들 중에서도 진또배기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하나둘 가내수공업 극장을 방문했다.
그것은 가내수공업 입장에서 양날의 검이었다.
연극 덕후라는 말이 너무나 어울리는 그들인 만큼, 관련 커뮤니티 활동이 누구보다 활발했고.
단순히 연극을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연극을 완전히 해체해 세세한 감상평을 남기는 것으로 유명했으니 말이다.
가뜩이나 보는 사람들만 보는, 관객 풀이 좁은 연극판에서 네임드(?)들의 감상평은 대세에 영향을 줄 수밖에.
그러니 단원들은 살인예고라도 받은 것처럼 바짝 긴장했다.
올 것이 왔다는 듯 매시간 커뮤니티를 뒤적이는 단원도 있었다.
오로지 안 감독만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하람의 홍보? 유명세? 영화화?
그것보다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증명의 시간이었다.
“오라. 정면승부다.”
수성전은 취향이 아니지만, 그게 자신 없다는 뜻은 아니다.
방비는 모두 되었다.
완벽한 무대와 연출.
그리고 배우들까지.
결국.
[연극을 좋아한다면 꼭 봐야하는 작품. 연극을 싫어하면 더더욱 봐야 하는 작품 -kf***le-] [연극을 수없이 보았지만, 연기자들에 대해 이토록 잔인하게 보여주는 작품은 없었다 -v***n-] [작품 뒤에 숨은 배우들의 진짜 이야기 -yd***b-]‘흉내자들’은 깔끔하게 방어에 성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엣햄, 어디 얼마나 재밌는지 볼까?’ 같은 스텐스로 온 그들을 확 사로잡았다.
안 좋은 감상평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이는 여러 커뮤니티를 샅샅이 뒤져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따금 비난에 가까운 글이 있기야 했지만······.
[안 봐도 비디오. 내용이 뻔히 보이네. 모두가 다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이런 류의 연극이겠지. 이거 보느니 차라리 이태준 배우님이 하고 있는 ‘결혼 다음 연애’가 훨씬 재밌을 듯]이런 건 감상평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 단원들에게 타격을 줄 순 없었다.
오히려 ‘흉내자들’의 기세에는 도움을 줬지.
—안 봤다는 얘길 하면서 다른 작품을 추천한다?
—이태준 배우님 ㅋㅋㅋㅋ 누가 봐도 극성팬인 거 티나네.
—저거 개연성 엉망에 대사 오글거리기로 유명한 연극 아님?
빠가 까를 만들고, 적의 적은 동료라고.
눈살을 찌푸린 이들이 ‘흉내자들’을 변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연극 고인물들조차도 감탄을 하며 칭찬일색이자 점점 더 많은 이들에게 ‘흉내자들’이라는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연극 관련 커뮤니티에서 벗어나 일반인들에게까지도.
—‘흉내자들’이라고 암?
—그게 뭐임?
—대학로 연극인데, 재밌더라. 보고 엄청 울었다. 완전 추천함.
—난 연극은 아무리 슬픈 거 봐도 별로던데. 뭔가 영화랑 다르게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있다는 게 너무 티 나잖아. 감정 이입 자체가 안 됨.
—그 말도 이해는 가는데, 이건 꼭 한 번 봐봐. 진짜 다름.
—뭐지, 얘 바이럴인가···.
—근데 요즘 그거 얘기 많이 나오더라? 영화 감독이 만든 거라 너무 연극스럽지 않다던데.
—와, 연극 추천 하는 사람 진짜 오랜만. 궁금하긴 하네.
—진짜, 연극에 대해 얘기 하는 것 자체가 엄청 오랜만임. 대학로··· 첫사랑과 함께 참 자주 갔었지. 연극 보고 민들레영토에서 김광석 노래도 듣고. 그게 벌써 20년 전이네.
—아재요···.
—오랜만에 대학로나 가볼까.
—추억에 젖으셨네. 젖었어.
자연스레 꽤 많은 기사들이 포털사이트에 걸렸다.
물론 메인은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2’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 엄두도 못 냈다.
설령 당죽막이 개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리였겠지만.
아무튼, 산들바람도 안 될 것 같던 ‘흉내자들’이 계속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이렇게 되니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연극 관련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연극 애호가들.
처음엔 그냥 좋은 연극이 나왔다는 생각에 흡족해할 뿐이었는데, 자기들 외에 평소 연극을 자주 보지 않던 이들마저 관심을 보이니 묘한 기분을 느낀 것이다.
혼자 알고 싶은 무언가를 뺏긴 기분은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그반대였다.
‘흉내자들? 무슨 연극이야. 그거 보느니 당죽막 두 번 보는 게 더 이득이지.’
이런 소릴 들을 게 뻔하기에 굳이 추천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거다.
‘이건 못 참지.’
마치 빼앗긴 도시를 탈환하기 위해 거인을 앞세워 돌진하는 조사병단(—진격의 거인)처럼.
커뮤니티 일원들이 연극 ‘흉내자들’을 앞세워 움직였다.
뮤튜브, SNS, 기사 등을 돌아다니며 일명 ‘츄라이 츄라이’를 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추천에도 상급 노하우가 필요했다.
엉뚱한 곳에서 요상한 타이밍에 연극을 추천하는 건, 마치 기사 댓글에 선정적인 말들로 사이트를 홍보하는 바이럴과 다를 게 없어 보일테니까.
다년간 거절을 당해온 그들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츄라이 츄라이를 시전해야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첫 데이트인데, 여자친구가 연극을 좋아합니다.]최대한 추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대학로에 맛집도 다 찾아놨는데 정작 뭘 봐야 할지를 모르겠네요.]이쪽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듯이.
[연극 검색하니 ‘흉내자들’이랑 ‘결혼 다음 연애’라는 연극이 나오던데]적절한 연막을 활용해서.
[어떤 게 괜찮을까요?]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왜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냐고?
그것이 뉴비가 고픈 고인물이니까.
#
오랜만에 집에서 맞이하는 오후였다.
한국에 들어온 지는 며칠 됐지만, 귀국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하루가 멀다하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던 통에 눈코 뜰 새가 없었지.
“휴······.”
결국, 좀이 쑤셔 밖으로 나온다.
택시를 잡아타고 향한 곳은 ‘악의 링’ 때부터 꾸준히 듬성듬성(?) 다니고 있는 격투기 체육관.
‘비시즌에 많이 해둬야지.’
격한 운동. 특히나 스파링은 비시즌에만 할 수 있었다.
‘악의 링’ 때야 격투기 영화이니 얼굴에 멍이 들거나 상처 정도 나는 건 상관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지.
오늘은 김주철이 아닌 코치와 격한 몸의 대화로 땀을 쭉 빼고서 씻고 나왔다.
그제야 김주철이 다른 매니저 업무를 마치고 체육관에 도착한다.
오늘 유은하의 대본 리딩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어? 형.”
“왔어?”
“오늘 오시는 거였어요?”
“원래는 예정에 없었는데, 집에만 있으려니 심심해서.”
어깨를 으쓱거리자 김주철이 주억거리며 준비 운동을 시작한다.
가방을 살포시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슬쩍 물었다.
“어때. 매니저로 살아남기는 잘 돼 가?”
“매니저로 살아남기. 하하, 딱 저네요.”
투레질하듯 웃은 김주철이 몸을 쭉쭉 비틀며 답한다.
“네. 은하 오늘 대본 리딩 했어요.”
“그건 팀장님께 얘기 들었어.”
“근데, 아무래도··· 전소속사로 돌아가는 건 불가피할 것 같아요. 팀장님이 그쪽 소속사에 슬쩍 얘기 꺼내 봤는데, 재계약 의사는 없어 보였다고 하시네요.”
“그렇구나.”
씁쓸하게 웃는 김주철을 보며 나는 살짝 조심스러워졌다.
지난 몇 년간, 아이돌 유은하는 FHN 소속이었지만, 배우 유은하는 하람의 소속이었다.
동시에 매니저 김주철의 첫 배우이기도 했다.
사실 시기상으로 따지면 내가 첫 배우이긴 하지만, 그건 얘기가 좀 다르지.
난 이미 담당 매니저인 김성운이 붙어 있었으니까.
김주철이 온전히 맡고 있는 배우는 유은하가 맞았다.
그렇기에 아쉬운 거다. 큰 결과를 내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게.
물론 윤 감독의 범죄인도자처럼 이상한 짓만 안 하면, 내 감각은 유은하의 차기작이 성공할 거라 말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김주철의 속상함은 조금 덜어지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
생각이 많아 보이는 김주철을 빤히 보는데, 그가 다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체구답지 않게 깃털처럼 퉁퉁 점프한다.
저러니 관장님이 아쉬워 죽지.
“근데 형이 그랬잖아요. 같은 곳을 보면 언젠가 또 마주친다고. 그래서 그땐···.”
지면에 발을 붙인 녀석의 표정이 한결 나아져 있었다.
“제가 좀 더 힘 있는 매니저가 되어 있으려고요.”
양반다리를 하고서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픽 하고 웃었다.
“힘은 이미 충분하지 않나?”
“흐흐흐.”
녀석도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 앉는다.
저 봐, 유연하기까지.
혀를 내두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주철아.”
“네?”
그리고 가방에서 꺼낸 선물을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이거 챙겨가.”
“이게 뭔데요?”
“어머니 선물.”
“형···.”
“별거 아니야. 그냥 화장품. 어머니가 나 때문에 너랑 너무 떨어져 계시잖아. 그게 죄송스러워서.”
고양이 자세로 몸을 풀다가 그 상태로 고개만 치켜든 김주철이 울컥하는 표정을 짓는다.
“지금 뭐랄까··· 굉장히 보기 흉하거든? 나 간다~.”
“형! 감사합니다!”
체육관이 쩌렁쩌렁 울린다.
육중한 곰 한 마리가 고양이 자세로 울먹이는 모양새를 차마 다시 볼 수는 없어, 돌아보지 않고 손을 휘저으며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왔지만, 거리는 그대로다. 날은 엄청 맑지도, 그렇다고 흐리지도 않다.
퍽 평범한 오늘이 조금 특별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걸음을 재촉했다.
귀가.
올해는 정말 호텔보다 머문 기억이 적은 내 집에 도착해 땀에 젖은 운동복부터 빨래통에 넣었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서 설거지를 했다.
뉘엿뉘엿 해가 진다.
빨래를 돌려놓고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아 티비를 틀었다.
역시 크다. 호텔 티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그 사실에 또 한참을 흐뭇해하고, 밀린 영화를 내리 보다가 티비를 껐다.
어느새 날이 껌껌했다.
얼른 잘 준비를 하고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보자, 내일은···.’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하람 측에서 나를 배려해 준 일종의 휴가.
천장을 보고 누워서 생각한다.
하루하루 특별하게 살다가 돌아와서 그런가.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평범한 오늘이 퍽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내일은 뭐 하지?’
입꼬릴 올리며 눈을 감았다.
세상이 암전되는 것도 잠시, 누군가 떠오른다.
그 형상은 점프스케어마냥 갑작스럽지도 않았고.
불쑥 솟아오르지도 않았으며.
늘 그곳에 있던 이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듯 자연스러웠다.
그녀를 보며 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보고 싶다.”
뛰어난 기억력 덕분에 이렇게나 선명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이곳에 없음을 안다.
“내일 보러 갈게,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