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기억 (4)
“진태야.”
“어, 감독님.”
극장으로 출근을 하던 김진태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며 걸음을 멈췄다.
잰걸음으로 뒤따라 오던 안 감독이 옆으로 붙자, 김진태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못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는데, 아침에 시간이 좀 남아서. 여기서 너희들이랑 커피 한잔하고 넘어가려고.”
가볍게 끄덕인 김진태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영화 준비는 잘 돼 가세요?”
“이태원 찻집? 아니면 흉내자들?”
“당연히 ‘흉내자들’이죠. 헤헤.”
말해 뭐하냐는 듯한 반응에 안 감독이 쯧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이번엔 좀 일찍 시작했잖아. 천천히 진행하긴 했지만, 거의 연극이랑 같이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렇죠. 그러면 훨씬 수월하긴 하겠···.”
“근데 왜 똑같이 빡세냐.”
안 감독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흔든다.
“죽겠다, 죽겠어.”
“너무 힘을 주시는 거 아녜요?”
“뭐, 아니라곤 못 하겠다. 나한테도 이번 영화는 의미가 남다르니까.”
그럴 만도 했다. 자신이 연극을 연출하고 영화까지. 감독으로서 그런 경험이 어디 흔한가.
게다가 이번 시도가 잘 되면 연극계에 커다란 변화가 있으리라 예상되는 만큼, 아직 촬영도 안 들어간 이 영화가 곧 개봉 예정인 ‘이태원 찻집’ 만큼이나 신경 쓰일 수밖에.
“그나저나, 뭘 그렇게 보면서 가고 있었어? 꽤 멀리서부터 네가 보였는데, 아주 핸드폰에 들어가겠더만.”
이에 김진태가 씨익 웃으며 핸드폰 화면을 보여준다.
엄지를 쭉쭉 내리는데, 전부 ‘흉내자들’ 기사다.
“요즘 이거 보는 낙으로 삽니다. 이런 거 너무 오랜만이라··· 아니, 처음이라 미치겠어요. 하루하루가 짜릿해! 만약에요. 진짜 만약에, ‘흉내자들’ 영화판이 막 국제 영화제 같은 곳도 가면 어쩌죠?”
들뜬 김진태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친다.
안 감독이 그 모습을 보며.
“난 이미 갈 생각인데? 가야지, 화성.”
당연하지 않냐는 듯 되묻는다.
안 감독이 말하는 화성이 국제 영화제. 그것도 칸, 아카데미, 베를린. 이 세 개를 뜻한다는 걸 아는 김진태가 헛웃음을 삼킨다.
역시 괜히 유명 감독이 아니다.
상상의 스케일이 달라.
“감독님, 솔직히 말해봐요. 주식 많이 물리셨죠? 지금 그거 한풀이 하는 거죠?”
“아냐, 인마.”
“아니긴요. 지금 종목도 딱 알겠는데. 맞죠, 테슬···.”
“으아아, 그 이름 얘기하지마!”
별거 아닌 표정으로 걷던 안 감독이 발작한다.
그 모습에 김진태가 배를 잡고 웃었다.
“거, 씁쓸한 사람 앞에서 너무 좋아하진 말자.”
“아우, 너무 웃기네. 죄송해요.”
미소가 만개한 김진태와 안색이 급격히 안 좋아진 안 감독이 극장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매표소 구멍에서 좀비물 마냥 사람 손이 쑤욱 나왔다.
“흐업!”
“뭐야!”
이제 좀 표정이 비슷해진 두 사람을 보며 매표소 직원이 꺌꺌 거리며 웃었다.
“깜짝 놀랐잖아요.”
“어우, 오늘 다들 나한테 왜 이래? 괜히 왔네.”
안 감독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억울해하자, 매표소 직원이 답했다.
“티켓 현황 보시면 그 생각, 또 바뀌실걸요?”
“왜? 현황이 어떤데 그래?”
직원이 투명 아크릴 앞에 빨간 글씨가 적인 팻말을 세우며 웃었다.
“매진이에요.”
그 말에 안 감독이 천천히 입꼬릴 올렸다.
김진태도 반색하며 되묻는다.
“아직 오전인데요? 진짜 빠르네요? 오늘 하루 또 든든하겠네요.”
“오늘 하루 아녜요.”
“네?”
안도하는 김진태를 보며 매표소 직원이 씩 웃는다.
둘을 지켜보던 안 감독의 얼굴에 설마, 하는 표정이 스치고.
매표소 직원이 말했다.
“그제 열린 이번 달 티켓, 전부 매진됐어요.”
“맙소사······.”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참을 멈춰있던 김진태.
그가 무언가 생각난 듯, 퍼뜩 고갤 돌린다.
기분 좋게 웃고 있던 안 감독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안 감독이 으쓱거리자, 그가 말했다.
“이제 만나게 해주시죠. 작가님.”
티켓 전량 매진.
아무리 빨라도 족히 2, 3개월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수준의 성공이 그의 생각보다 심하게 빨리 와버렸다.
이제는 약속을 지키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작가님께··· 여쭤볼게.”
#
“하하핫! 호호호!”
호탕하게 웃다가, 호방하게 웃다가.
이젠 입을 가리고 또다시 웃는 하선경 대표를 보며 천광윤이 볼을 긁적였다.
“자네, 지금 꼭 그거 같은데.”
“뭐요?”
“흑막.”
“호호호!”
좋단다.
그래, 좋겠지.
흉내자들의 연극은 어디까지나 백승결의 요청이자 영화화를 위한 빌드업일 뿐이었는데, 그 과정에서마저 펑펑 터지고 있으니, 어떻게 안 좋겠나.
꽃길을 넘어 빛길만 걷는 중인 하람과 백승결, 그리고 하선경 대표였다.
“흐음, 건물을 너무 작게 세웠나.”
창밖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그녀를 보며 천광윤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네, 그런 스타일이었나?”
사치의 사짜도 관심 없던 그녀가 건물 욕심을 드러내니 흥미로운 그였다.
그러자 하선경 대표가 뭘 모르신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흔들었다.
“배우들은 자기 명성에 자부심을 느끼잖아요. 매니저들은 자기 배우에게서 자부심을 느끼고. 근데 회사에 그들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나머지 직원들은 어디서 자부심을 느끼겠어요? 크~고 좋은 회사. 그게 그들의 자부심이죠.”
“그건··· 이해가 좀 가는군. 진짜 대표 다 됐어.”
씩 웃은 하선경 대표가 ‘증축도 가능한가···.’ 중얼거리며 창밖을 살핀다.
“그나저나, 연극은 보고 왔어?”
홱 돌아오는 시선.
“당연하죠. 크흐, 그 마지막 장면에서 최태주가······.”
“난 아직 안 봤으니까 스포는 하지 말고.”
천광윤이 얼른 그녀의 말을 막았다.
하선경 대표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대체 언제 보시려고 그래요?”
“나도 보고 싶어. 맘 같아선 초연 때 보러 갔지. 근데 같이 보기로 한 녀석이 안 들어오는 걸 어쩌나.”
“얼른 들어오시라고 해요. 이것도 완성 됐으니까.”
하선경 대표가 대본 하나를 건넸다. 온통 알파벳이 가득한, 영문 대본이었다.
“정말 만들었네?”
“승결이도 마침 필요하다고 그래서요.”
“승결이가? 왜?”
“그쪽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 봐요.”
딱히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하선경 대표의 반응에 천광윤이 주억거리며 덧붙였다.
“아무튼, 데이먼 그 친구는 당장 오기는 좀 힘들어졌어.”
“왜요?”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는 듯한 천광윤의 표정에 하선경 대표가 대충 상황을 짐작하고 헤벌쭉 웃는다.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2가 북미 역대 흥행수익 TOP3에 들면서 미국이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그러니 USA 투데이 연예부 편집장이 자리를 비울 수 있을 리가.
“회사에 계속 좋은 일만 생기네요.”
그녀의 말에 천광윤도 미소를 띠며 끄덕였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벌어지는 입.
하지만 이내 달싹거리던 입술을 굳게 닫는 천광윤이었다.
‘굳이 이런 말은 할 필요 없겠지.’
물론, 그런 표정 변화를 눈치 못 챌 하선경 대표가 아니었다.
그녀는 하람의 대표이기 이전에 천광윤의 매니저로 십수 년을 보낸 천광윤 전문가였다.
“왜요?”
“뭐가.”
“무슨 얘기 하시려고 했잖아요. 저한텐 못 숨기시죠.”
확정적으로 말하는 그녀에 천광윤도 결국 포기하고 입안에 맴돌던 말을 꺼냈다.
“그냥 뭐, 고루한 얘기야. 이럴 때일수록 항상 신중하라고.”
다소 초치는 듯한 말 같았지만, 하선경 대표는 그를 이해했다.
“네, 알아요.”
그럴 수밖에.
천광윤이 국민배우로 등극하면서 자신과 그가 속했던 회사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지켜보지 않았나.
사람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회사는 회사일 뿐, 무협에 나오는 문파나 가문이 아니다.
모두가 개인의 이득으로 움직이고, 자신이 가장 좋은 대우를 받길 원한다.
“조심할게요.”
잠시 침묵하던 천광윤이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분위기를 바꿔 물었다.
“승결이는 만나봤나?”
“며칠 전에요. 연락 안 해보셨어요?”
“문자가 오긴 했는데, 바쁠 것 같아 그 이상의 연락은 안 했지. 그래서, 요즘 뭐해? 바쁘지?”
“바빴죠. 행사에 인터뷰에 줄줄이. 그래서 다 쳐냈어요. 좀 쉴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서. 물론 쉬긴커녕 공부를 하고 있어서 황당하지만.”
주억거리며 하선경 대표의 말을 듣던 천광윤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가만, 공부? 무슨 공부?”
#
탁상공론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책상에 둘러앉아 허황된 해결책을 제시하는 행동을 말한다.
그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면 당연히 반쪽짜리 해결책이 되어 문제가 줄줄이 터질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어느 업계든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고들 강조하는 거다.
내가 택배일을 할 때도, 함께 충무로를 도는 동료들이 센터 직원들을 그렇게 욕했었지.
여기 돌아가는 상황도 모르면서 시간표를 짜니 쉽게 돌 것도 어렵게 돈다며.
자, 그러면 이제 난 배우다.
내 촬영이 아닌 시간에도 촬영장에 남아 틈틈이 현장 돌아가는 것들을 관심 있게 지켜봐 왔고.
심지어 자의는 아니었지만, 각본에 이름도 올렸다.
화상통화로 연극 연출에까지 일정 부분 관여했지.
그렇기에 나는 현장에 대해 꽤 빠삭하게 알고 있다 자부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에 내가 연출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답은 간단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된다.
‘이제 탁상공론을 하면 되겠네?’
그래서였다.
과거 이태관 배우가 교수로 역임했던 대학에 찾아온 것은.
익숙한 동네에 붙어 있는 대학 캠퍼스.
택배 일을 하며 충무로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여길 들어와 본 적은 처음이다.
아니, 아예 대학이란 곳 자체에 발을 디뎌본 게 처음이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 전선에 뛰어들었으니까.
그래서 이 분위기가 낯설고.
······퍽 신기했다.
“여기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항상 밖에서만 봤었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서 이리저리 숨어다녀야 했기에 자유롭게 둘러보긴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구경할 건 다 구경하며 천천히 도서관으로 향한다.
외부 방문객 명단에 이름을 적고서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책장이 나를 반겼다.
멍하니 둘러보다가 사서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 책을 좀 찾고 싶은데요.”
“······?”
어쩌라는 거냐는 듯 눈을 끔뻑이는 사서.
그가 손을 뻗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컴퓨터에서 찾으셔야죠.”
“아, 예. 감사합니다.”
서점이랑 시스템은 같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컴퓨터로 다가가 책 위치를 찾았다.
여기서 어떤 책을 볼지는 나름대로 조사를 해왔지.
모토키 토모카즈의 ‘다른연출’이랑, 마츠모토 신이치의 ‘영화로 가는 계단’이랑, 제임스 커틀러의 ‘서사의 나이테’···.
다행히 누군가 빌려 간 몇몇 책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책들을 챙겨 책상에 앉을 수 있었다.
옆에 책들을 잔뜩 쌓아놓고 괜스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서로에게 관심 없는 이 공간에서 나만 이것저것 다 신기했다.
가만 지켜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보기보단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시험 기간인가? 가만, 대학생은 시험 기간이 언제지···?
배우로 복귀하며 꽤나 버라이어티한 인생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남들에겐 평범한 이런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게, 묘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이것만으로 오길 잘했다 싶네.’
조용한 도서관. 사락, 사락 책 넘기는 소리.
간접적으로나마 대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경험해본 적도 없지만)을 느껴본다.
언젠가, 대학생 연기를 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상상해보는 것도 꽤 재밌겠다.
“······.”
그러다 문득, 소름 끼치는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이제 곧 내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뀐다는 것.
쩝.
상상해볼 필요 없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