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기억 (7)
원작이 있는 영화의 제작이 확정되면, 그때부턴 비로소 팬들의 시간이다.
가상 캐스팅을 만들어 그걸로 갑론을박을 벌이고, 설전을 이어가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대감을 배출하며 영화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 시기가 바로, 영화 제작사 입장에선 가장 고민이 많아지는 시기였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홍보가 용이하다는 강점이 있지만, 그만큼 단점도 명확하니까.
배우들의 싱크로율에 따라 작품이 흥하기도 하고 처참히 외면받기도 하기에, 성공적인 캐스팅을 위해 제작사는 만전을 기해야만 했다.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본다.
캐스팅에 있어서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하지만, 그러니 더더욱 다수의 선택을 받아야만 한다.
틈틈이 팬들의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팬메이드인척 가상 캐스팅을 만들어 간을 보기도 한다.
동시에 미리 물밑작업을 해둔 배우들에게도 연락을 돌려 조건을 조율한다.
그런 전략적인 움직임이 동반되어야 할 이 중요한 시기에.
“가보자고.”
굿픽처스는 이번에도 다시 한번 폭탄을 터트릴 준비 중이었다.
영화화 발표 때 그랬던 것처럼, 벌써 캐스팅 명단을 완성한 것이다.
“진짜 보냅니다?”
“아니, 잠깐만. 하아······ 잠깐만 기다려 봐.”
벌써 몇 번째 폭탄을 쥐고 던질까 말까 고민하는 박 대표.
지켜보는 직원들도 그의 심정이 백번 이해가 갔다.
저 명단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패기였다.
캐스팅 소식을 벌써, 그것도 한꺼번에 전부 발표하는 것도 의외지만.
주연 명단과 조연 명단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은 업계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충격적일 테니까.
간혹 할리우드 감독들이 인지도 낮은 배우를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해 그 주변을 유명 배우들로 채우는 경우는 있지만.
한국에선 드문 경우일 뿐더러, ‘흉내자들’은 한 술··· 아니, 서너 술은 더 뜬 상황이잖나.
인지도 낮은 연극 배우들을 전부 그대로 캐스팅하고, 조연에 말도 안 되는 이름들을 넣다니!
그러니 자신들이 제작하는 영화임에도 낯선 직원들이었다.
“대표님, 오후에 기사 내려면 이젠 보내주셔야 해요.”
“이게 맞나? 이걸 사람들이 받아들일까?”
박 대표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 시도해 보는 방식의 결과를 누가 알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저흰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상황이니······.”
다만, 한가지는 알았다.
결국, 이 캐스팅대로 기사를 내야 한다는 것.
이미 계약서 도장까지 찍고. 촬영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 뭐가 달라질 수 있겠나.
어차피 부모님에게 성적표를 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최대한 늦게 주려고 하는 학생처럼.
지지부진 시간을 끌던 박 대표가 비로소 끄덕거렸다.
“진짜 보내. 진짜 보내냐고 묻지 말고 보내. 보냈는지도 말하지 마.”
“······.”
“···보냈어?”
#
한편, 영화 ‘흉내자들’의 캐스팅 명단을 미리 소스로 전달받은 언론사 ‘스타컷’의 기자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명단을 훑고 있었다.
첫 장엔 간단한 시놉시스와 극 중 주연들의 이름, 그리고 그 배역을 누가 맡았는지가 표로 만들어져 있었다.
“뭔가···.”
“이상하죠?”
“이상한 정도가 아닌데? 잘못 보낸 거 아냐?”
명단을 출력해온 후배 기자에게 가장 고참인 선배 기자가 되물었고.
후배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확인해봤어요. 아니더라고요.”
다시 한번 명단을 들여다본 고참 기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종이를 내려놓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기자들의 시선도 하나둘 그곳으로 몰려든다.
“아니, 그럴 리가. 이 봐봐. 주연에 연극배우들 명단이 들어가 있잖아.”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굿픽처스 직원이 아니래요. 그냥 보시는 대로라고 하네요. 모든 배역에 연극 배우들을 그대로 캐스팅했고, 영화화하면서 추가된 조연 캐릭터들만 새로 캐스팅한······ 확정 명단이라고 합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기자가 손을 뻗어 명단을 잡았다.
명단을 훑으며 고참 기자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그.
“아니, 말이 안 되잖아? 이 배우들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아무리 저예산이라지만 하람이랑 굿픽처스가 붙었는데? 이거 뭐 한중일 합작처럼 실험적인 영화, 뭐 그런 거야?”
“그래도 원작 팬들은 좋아하겠네요.”
“문제는 원작 팬들만 좋아할 거라는 거지. 원작 팬들만 보게 할 거면 굳이 영화화를 왜 했어.”
명단을 보러 몰려든 기자들의 말에, 명단을 출력해온 기자가 으쓱거리며 덧붙인다.
“근데 놀랄만한 게 그것뿐이 아녜요. 조연에 추가된 새로운 캐릭터들을 누가 맡았는지 봐보세요.”
“맞아. 새로운 캐릭터가 있다고 그랬지? 근데 주연이 이래서야 누가 맡는다 한들 무슨 기대감이—.”
첫 장이 넘어갔다.
명단을 손에 쥔 기자의 목소리가 멈췄다. 양옆에 붙어 있던 기자들도 한 명은 입을 틀어막았고, 다른 한 명은 헤에엑? 숨넘어가는 소릴 내며 동공을 흔든다.
그곳은 조연들을 소개하는 페이지였으나.
그 페이지에 보이는 이름들은······.
“이게 뭔······ 여기 조연 라인이 왜 이래? 이거 주연 조연 바뀐 거 아녜요?”
“어디 봐봐. 누가 있길래 그래?”
고참 기자가 명단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조금 전 후배들이 지었던 표정을 그대로 답습한다.
[천광윤] [신승찬] [고하윤] [김상억] [이준현]“뭐, 뭐야 이 고꾸라진 순서는. 왜 이 배우들이 여기서 나와?”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
낸들 아냐는 듯 으쓱거리는 기자들을 보며 초점 없이 눈알을 굴리던 고참 기자가 뭔가 떠올랐는지 턱을 마구 문질렀다.
그렇게 한참 동안 상황을 파악하다가.
“아니, 근데 이게··· 이게 말이야.”
이내 작게 감탄한다.
“이거 생각보다 묘수네.”
“네?”
“아니, 그렇잖아. 원작 팬들은 무대 위에서 봤던 배우들을 스크린에서 보게 되어 좋고, 일반 관객들은 유명 배우들도 나오니 보는데 거부감 없고, 게다가 조연 라인업이 주연보다 좋은 영화로 화제성 몰이까지······.”
말끝을 늘리던 그가 황당한 웃음을 흘리며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도 대단하지만, 캐스팅을 성사시킨 건 더 대단하네. 어떻게 한 거냐 진짜. 조연에 움직일 이름들이 아닌데.”
“이 영화 공동제작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천광윤 배우하고 고하윤 배우 말고는 전부 하람이긴 하네.”
“게다가 천광윤 배우는 하람 대표하고 연이 있죠. 고하윤은 백승결하고 두 작품 같이 했었고.”
“그랬지.”
주억거리는 고참 기자에게 기자들 중 한 명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거 너무 인맥 캐스팅 아녜요? 저희야 하람이랑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문제 삼지 않겠지만 다른 곳에선 이거 걸고넘어질 수도 있겠는데요?”
“하람이 제작에 참여해서 하람 배우 많이 넣었다는데 문제 될 거야 없지. 심지어 자기네 배우들을 주연도 아니고 조연에 몰빵했는데.”
거기까지 말한 고참 기자가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리고 그쪽 편집장이 병신이 아닌 이상에야 그딴 기사 들고 오면 바로 찢어버릴걸.”
“왜요?”
“백승결 때문에 지금 하람 위상이 좀 높냐. 인터뷰 한번 하고 싶어서 지금 편집장들 애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데.”
갑자기 하람에서 백승결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며 인터뷰를 끊은 통해 다들 난리였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난번에 그 백승결 빚투로 묻으려고 하다가 지가 묻힌 놈. 그것도 하선경 대표가 나서서 해결한 거라는 얘기가 있어서 언론사들 은근 하람 눈치 본다니까?”
사실 하선경 대표가 아닌 백승결의 팀(—김성운, 임현태, 김주철)이 사건을 해결했지만.
어쨌든, 그 일화는 하람이 자신의 소속 배우를 건들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였다.
기자들 입장에서도 잘못 건드렸다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생긴 거다.
고참 기자의 설명에 모두가 충분히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그 모습을 보던 그가 혼잣말처럼 말을 이어간다.
시선이 어느새 하람에서 보내준 캐스팅 명단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나저나, 연극에 영화까지 손을 뻗을 줄이야. 하선경 대표가 그동안 못 했던 사업들 다 진행할 생각인가 보네. 하긴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고, 백승결이 승승장구하고 있을 지금이 적기긴 하지.”
“그렇긴 한데, 이거 배가 너무 큰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이거 자칫 잘 못 하면······.”
“물 빠질 때까지 못 나갈지도 모른다?”
후배 기자의 말에 그가 말을 덧붙이며 끄덕였다.
확실히 리스크가 있다.
과거 작품 보는 눈이 대단했던 하선경 대표지만 만들어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것과 밥상을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니까.
특히나 영화 제작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관여해 대박을 터트린 매니지먼트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거기에 연극의 영화화? 냉정하게 단 한 번도 성공사례를 본 적이 없었다.
“여기에 백승결 이름까지 있었으면 대박이긴 했을 텐데.”
물론 저러면 얘기가 달라지기야 하지.
“그랬으면 물이 빠지건 가뭄이 오건 출항은 거뜬하지. 지금의 백승결은 물 그 자체인데.”
“근데 애초에 백승결이 이 명단에 낄 리가 없었죠. 여기 이름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백승결은 또 다른 레벨이잖아요.”
그렇게 잠깐의 농담 같은 상상을 마치고서, 고참 기자는 현실로 돌아왔다.
“일단 기사 쓰자. 우리야말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사람들 난리 나겠네.”
팔짱을 끼고서 캐스팅 명단을 내려다보는 그.
그가 갑자기 갸우뚱하더니 명단을 집어 들었다.
“근데 왜 여긴 작가가 없냐? 이거 감독이 각본도 겸했어?”
#
이른 아침.
간밤에 공개된 ‘흉내자들’ 캐스팅에 대한 반응을 보며 집 밖으로 나왔다.
택시가 올 때까지 한참 동안 핸드폰을 뒤적거리다가···.
[작가님, 반응 보고 계십니까?]안 감독의 문자에 전화를 걸었다.
—네, 작가님.
“마침 기사들 보고 있었어요.”
—하하, 기사 엄청 많이 올라왔죠? 직원들이 쭉 확인하는데, 이건 뭐 읽는 속도보다 올라오는 속도가 훨씬 빠르니 끝이 없다네요.
“반응이 뜨겁긴 하더라고요.”
—아직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시도니까요.
자부심마저 느껴지는 안 감독의 대답에 내가 작게 웃었다.
찐득한 설렘이 심장에 붙어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비단 캐스팅 명단 발표가 아니더라도, 요즘 내 기분이 항상 이렇다.
한이연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내 새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하나의 작품가 이럴 진데, 진짜 자식을 키우는 건 어떤 느낌일까.
문득 떠오른 생각은 아마도 크리스 감독 때문일 터.
곧 딸과 함께 한국으로 온다던 그의 설렘 가득한 눈빛을 떠올리며 내가 물었다.
“배우분들은 어때요?”
—갑작스러운 관심에 얼떨떨해해요. 적응하는데 좀 걸릴 겁니다. 아, 그리고 그때 말한 거요. 배우들하고 작가님 만나는 거.
“네.”
—그거 일정 한 번 잡아볼게요.
“좋아요. 기대되네요.”
—이 와중에 어떻게 만나면 배우들이 가장 놀랄까, 요즘 그거 생각하고 있어요.
“실생활에서까지 연출 욕심이 있으신 거예요?”
—직업병인가 봅니다.
푸우,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은 안 감독이 화제를 바꿔 내게 물었다.
—근데, 이른 아침에 어디 가세요? 도서관 가시는 거예요?
“아, 아뇨. 승찬이 만나러 가고 있어요.”
—승찬이요?
안 감독의 물음에 나조차도 의외라는 듯 주억거렸다.
“네. 할 얘기가 있다면서 갑자기 보자고 하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