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기억 (8)
그동안 신승찬과 나름대로 친해지긴 했다.
가끔 톡으로 안부도 묻고, 좋은 일이 생기면 축하도 해준다.
‘악의 링’ 때와 비교하면 정말이지 장족의 발전, 천지개벽이지.
함께 연기를 할 때보다 그 이후에 훨씬 더 가까워지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신승찬이 갑자기 이강현(—前 종갓집 막내딸 남주, 現 동네 주민)처럼 발랄해지거나, 김주철처럼 사나운 곰에서 갑자기 댕댕이처럼 될 순 없었다.
격투기로 따지면, 적당히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달까.
그렇다고 날 견제한다는 건 아니고, 애초에 신승찬의 성격이 그런 것 같다.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 고독한··· 존잘남.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흉내자들’ 연기에 대해서 조언을 구하려나요.
안 감독의 추론은 꽤나 합리적였다.
이미 ‘이태원 찻집’때 이런 식으로 연기에 대해 조언을 구한 경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닐걸요.”
이유는 간단했다.
“제가 그렇게 안 썼거든요.”
그 대본은 내가 썼고, 나는 신승찬에게 완벽하게 맞는 옷을 주었으니까.
약간의 수선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그가 나에게 연기에 대해 조언을 얻기 위해 온다는 건 아닐 것 같았다.
김주철처럼 어떤 작품이 잘 될 것 같냐고 점을 보러온다면 모를까.
—맞네요. 요즘 정신이 없어 잊고 있었어요. 신승찬에게 간 배역은 사실상 캐릭터 이름을 신승찬이라고 지어도 무방할 정도로 그와 맞닿아있다는 걸.
내 말에 동조한 안 감독이 이어서 작게 감탄한다.
—확실히 배우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그 배우를 떠올리며 작품을 쓰는 건 굉장히 편리하네요. 물론 그만큼 배우를 연구하고 극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게 어렵겠지만요. 제작 여건상 이게 캐스팅까지 완벽하게 이뤄지는 경우도 많지 않고요.
“저는 운이 좋았네요.”
—능력이 좋았던 거죠.
“하하.”
—제가.
“아?”
—그러니 도서관에서 책 보시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 막히실 때 저한테 오시면 됩니다. 제가 이 연극부터 다져진 스킬과 노하우들을 모두 알려드릴게요.
물 흐르듯 이어지는 유혹.
확실히 저건 배울 만하겠다.
그 뒤로도 5분 정도를 더 통화하다가, 곧 배우들과 함께 만나자는 기약을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그 사이,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모 기업의 재단 건물.
그 안에 딸린 카페가 신승찬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였다.
“와, 이런 데가 있었어?”
로비에 들어서며 입을 벌렸다.
넓다 못해 광활하다는 생각이 드는 로비.
그곳엔 박물관을 연상케 할 정도로 수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부분이 악기들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고풍스러운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한쪽 벽에는 아주 오래된 것 같은 낡은 악보도 걸려 있었다.
‘일페르소의 악보?’
악보에 대한 설명과 일화들을 읽어보니 나름 재밌었다.
읽다 보면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벌컥벌컥 난입을 한달까.
What if(이랬더라면?) 같은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이 헌정곡을 만든 집사는 음악가도 아닌데 왜 갑자기 작곡을 했을까?’
‘그의 주인이었던 백작이 만약 몸이 불편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음악가가 되었을까?’
‘만약 두 사람 다시 태어났는데, 집사가 몸이 불편하고, 백작이 건강하다면? 에이, 이건 아닌 것 같다. 설정을 이렇게 짜면 작가가 아니라 악마지······.’
약속 시각도 아직 남았겠다, 그 안을 쭉 둘러보다가 조금 일찍 신승찬과 만나기로 한 카페로 향했다.
유럽의 정원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뒷마당(?).
건너편에 최근 지어진 듯한 별관으로 향하자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는 신승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청 일찍 왔네.’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썼지만 숨길 수 없는 아우라. 결정적으로 영화화 되면서 조금 더 두툼해진 흉내자들 대본을 넘기고 있으니 확실할 수밖에.
다가가며 인기척을 내자 신승찬이 고개를 든다.
“왔어?”
“어, 대본 보는 중이었어?”
자리에 앉으며 묻자 그가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내리며 웃는다.
“이거?”
그가 대본을 덮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벗으며 입꼬릴 올렸다.
“흉내자들이라고 알지?”
“······.”
“바빠서 아직 모르나? 요즘 화제인 연극인데 이번에 영화화되거든.”
“알아.”
“그래? 한 번 볼래?”
“아니, 괜찮아.”
내가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물었다.
“대신 너한테 듣고 싶네. 어때, 대본?”
“마음에 들어. 이런저런 이유를 대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모든 게.”
“극찬이네.”
“특히 내 배역을 보자마자 느낌이 오더라고. 이건 내가 잘할 수 있겠다. 누구보다도.”
그러면서 신승찬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솔직히 그런 생각도 했어. 이 역할은 내가 승결이보다 잘할 수 있겠다고. 뭐, 자격지심이지.”
“글쎄. 내가 아는 너라면 자격지심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분명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거겠지.”
내 말에 슬그머니 올라가는 신승찬의 입꼬리.
“그런가···.”
“확실히 그 역할은 나보다 너한테 어울려. 난 절대 너처럼 못 할걸.”
“···?”
신승찬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그가 고갤 기울이며 물었다.
“내가 무슨 배역인 줄 알고.”
“알아.”
짧게 대답하며 내가 웃었다.
“왜 모르겠어. 내가 부탁한 배역인데.”
“그게 무슨···?”
쭉 시선을 내려갔다.
보는 것만으로 흐뭇해지는 내 새끼가 보인다.
“내가 썼어, 이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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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신승찬이 욕하는 건 처음 본 것 같다.
저게 욕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신승찬이 내뱉는 단어들 중에선(—대사 제외) 가장 거친 말이었던 건 확실하다.
그만큼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날 보고 있다.
“그래서 안 감독님이 그러셨구나···.”
“안 감독님?”
“이 작품 작가님이 누구냐고 여쭤본 적 있거든. 글도 재밌고, 대본 속 캐릭터가 너무 나인 것도 신기해서. 그때까지만 해도 안 감독님이 직접 쓰신 거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라고 하시더라고. 본인보다 신승찬이라는 배우의 연기를 더 잘 알고 있는 분이라고 하시더라.”
피식 웃은 신승찬이 빨대로 커피를 휘휘 저으며 말을 잇는다.
“그러면서 이 작가님이 내 스승이래.”
“스승은 좀······.”
“틀린 말은 아니지. 내 연기가 그때 이후로 꽤 많이 달라졌다고 나조차도 느끼고 있거든.”
난감한 표정을 짓자 가볍게 웃은 신승찬이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그렇게 얘기하신 거였네. 그분이, 너라서.”
“속일 생각이 있던 건 아니야.”
“속이지도 않았지. 굳이 밝히지 않았을 뿐. 덕분에 오랜만에 정말 크게 놀랐다.”
신승찬이 또다시 작게 감탄하며 대본을 만지작거린다.
“안 그래도 감독님 만나면 물어볼 게 진짜 많았는데. 거기가 아니라 여기다 해야 하는 질문들이었네.”
“오, 흥미로운데. 얼마든지 물어봐.”
내가 얼른 끄덕이자 신승찬이 휘리릭 표지를 넘겨 자신이 적어둔 메모를 찾았다.
“먼저 원작과는 다르게 새로 투입된 캐릭터들. 이거 정말 인지도 높은 배우가 필요해서 끼워 넣은 배역들이야?”
“넌 어떤 것 같았는데?”
“아닌 거 같아서. 인위적으로 넣었으면 뭔가 원작에 비해 작위적으로 느껴져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게 없더라고. 오히려 개인적으론 원작보다 더 매끄러웠어.”
신승찬의 분석에 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애초에 처음 구상했던 글은 연극판보다 지금의 영화판에 더 가까워. 그런데 연극으로 만들려고 결심하고 보니, 연극의 특성상 주인공을 여러 명 조명하는 게 어렵더라고. 영화와는 다르게 연극은 장면이 많아질수록 산만해져서 관객들을 집중시키기 어렵잖아. 대신 영화는 그게 가능하지. 그래서 원래 하려던 걸 이제야 한 것뿐이야.”
“역시···.”
“나도 이런 걸 배우님이 알아주니 기분 좋네. 또?”
이거 생각보다 더 재밌다.
연극을 준비하면서는 연출자인 안 감독과만 소통을 했었잖아.
배우와 작품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건 또 다른 종류의 느낌이 있었다.
마치, 내가 만든 존재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달까.
그런 면에서 신승찬의 질문들은 마치 진리를 탐구하는 성직자의 기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것도 작품 소재로 나쁘지 않겠는데.
한 성직자가 기도를 하다가 신의 응답을 받게 되는 거지. 그 신은 알고 보니 다른 세상의 작가였고······.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들어오다가 악보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귀족과 집사 얘기로 소재를 떠올리질 않나.
이젠 정말 작가 백승결이라는 자아가 따로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여하튼, 지금은 신승찬 신도의 기도에 응답할 시간이었다.
“극 중 내가 맡은 장유준 캐릭터는 최태주의 병을 알고도 그를 배제하지 않는 감독과 마찰이 생겨.”
“맞아, 그랬지.”
그건 장유준이라는 캐릭터가 없는 연극판에선 없던 장면이었다.
즉, 영화판에서만 추가된 장면.
“아마, 진짜 나였어도 이런 상황이라면 장유준처럼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해.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영화는 영화니까. 내 작품은 지켜야 하니까.”
분명 신승찬이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는 ‘악의 링’에서 몰입을 위해 나와 일부러 거리를 둘만큼 작품에 진심인 배우였잖아.
“그럼에도 결국 장유준은 최태주를 받아들이지.”
“그랬지.”
주억거리다가 불쑥 드는 불안감에 신승찬에게 물었다.
“혹시 장유준이 납득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아?”
장유준 그 자체라고 생각한 신승찬이 개연성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그건 좀 큰 문제였다.
그러나 신승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납득할만해. 그럼에도 뭔가 하나 더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서.”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관객들에겐 충분해. 근데 장유준이 나를 떠올리며 만든 캐릭터라면, 이것만으로 그가 변하기엔 부족하다는 거지.”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신승찬이 옅게 웃으며 으쓱거렸고.
“네 말대로 이 역할은 내가 더 잘 알잖아.”
그 말에 나는 고민을 시작했다.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자, 잠시 기다리던 신승찬이 다시 입을 뗀다.
“근데, 개연성의 문제가 아닌 그냥 내 개인적인 감상이라 굳이 고치진 않아도······.”
“그럼 이건 어때.”
“음?”
“장유준은 작품을 사랑하잖아. 그러니 최태주를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거지. 그러면······.”
신승찬의 눈이 커졌다.
그 상태로 나를 바라보며 전에 본 적 없는 표정을 짓는다.
희열이었다.
“그거야! 그러면 최태주도 못 버리지!”
이 정도 텐션인 신승찬은 처음 보는 것 같지.
“이제 알겠네.”
“뭐를?”
“크리스 감독님이 매일 같이 나한테 찾아와 파코스에 대해서 물어본 이유를.”
‘흉내자들’은 여러 이유로 온전히 나 혼자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도 안 했다.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정작 이 대본을 구현해줄 이들의 생각을 듣지 못했네.’
연기를 하면 할수록, 글을 쓰면 쓸수록.
그리고 연출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작가와 배우, 연출자의 경계가 내 안에서 흐릿해지는 것을 느낀다.
역할은 모호해지고, 각자의 선은 결국 한 곳으로 모여든다.
작품이라는 꼭지점으로.
“오늘은 네가 내 스승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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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가 찾아오기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한참을 즐겁게 떠들다가 문득 이상해졌다.
정작 신승찬이 날 이곳에 부른 이유를 못 들은 것 같아서.
“그나저나,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야?”
“아. 와서 들은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 깜빡했네.”
자신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흘린 신승찬이 이내 조심스레 이야길 꺼낸다.
“그······ 다른 매니지먼트에서 최 실장님한테 접근했더라고. 날 하람에서 빼내고 싶어서. 근데, 나뿐만이 아니었나 봐. 하람을 지탱하다시피 하는 배우들한테 차례대로 컨택을 했나 봐. 마치 하람을 저격하려는 것처럼.”
거미줄에 무언가 걸렸다는 걸 감지한 거미가 이런 느낌일까.
어쩐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어려운, 찌르르한 진동.
짚이는 게 있었고,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확인했다.
“그 매니지먼트가, 어딘데?”
“아티스 엔터.”
“······.”
“거기 우경철 본부장이라는 사람이, 네 매니저였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