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기억 (11)
“신 기자, 어디가?”
지상파 방송국 KNS의 연예부.
커다란 가방을 들쳐멘 신혜원 기자가 복도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선배들을 마주쳤다.
그들의 시선이 그녀 옆구리에 매달려있는 가방으로 향한다.
보스턴백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큼직한 가방.
기자들에겐 군장이나 마찬가지인 카메라 가방이었다.
“취재가?”
“넵, 대학로 갑니다~.”
지금 연예부 기자가 대학로로 향할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아, 흉내자들 하는 극장 가려나 보네.”
“그거 요즘 캐스팅 얘기로 난리던데.”
선배들의 반응에 신 기자가 끄덕거렸다.
“가서 극장 분위기도 보고, 나오는 사람들한테 영화화에 대한 반응도 따려고요.”
“오, 그거 좋네. 매번 캐스팅이 어떻고 복사 붙여넣기 한 것 같은 기사만 주구장창 올리는 것보단 그게 훨 낫지.”
“그, 간 김에 하람 관계자는 없나 좀 잘 찾아봐. 하람 쪽에 아무리 연락해도 묵묵부답이다.”
선배들의 부탁에 신 기자가 웃으며 말한다.
“그럴만하죠. 지금 거기 아주 잔칫집하고 초상집을 같이 하고 있을 텐데.”
지금 언론사들의 관심사는 ‘흉내자들’의 파격 캐스팅만이 아니었다.
보다 더 자극적인 찌라시가 은은하게 돌고 있다.
하람의 배우들이 대거 이탈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이탈한 배우들을 아티스에서 흡수한다는 것.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사람들은 이쪽에 더 관심을 가질 게 분명했다.
현시점에서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가장 잘나가고 있는 하람에 큰 구멍이 생긴 셈이니까.
큰 회사인 아티스의 횡포냐, 하람의 능력 부족이냐.
뭐 그런 얘기가 오가며 화제성을 부추기겠지.
‘흉내자들’ 관련 기사를 맡게 된 그녀 입장에선 아쉬운 상황이었다.
자신의 기사보다 더 센 기사가 머지않아 줄줄이 나올 예정이니까.
어쨌든, 그쪽은 선배들의 몫.
“흣짜. 다녀올게요!”
신 기자는 가방을 추켜올리며 극장으로 향한다.
그녀는 정확히 연극이 끝날 무렵에 가내수공업 극장에 도착했다.
“어디 보자~.”
이제 곧 나올 사람들 틈에서 신 기자의 목표물은 눈시울이 붉은 사람들이었다.
이 연극이 슬프기로 유명하지 않나.
일단 운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재밌는 그림을 담아보려는데···.
“으어, 너무 울었다.”
“그러게. 근데 뭐 우리만 운 게 아니니까.”
“그래서 좀 덜 창피하긴 하다. 그치?”
어라······.
우르르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울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확 넓어진 기준에 당황한 신 기자.
그때 그녀의 시야에 조금 독특한 남녀가 들어왔다.
나이로 보아 부녀지간인 것 같은데, 그게 독특하다는 건 아니고.
‘대학로 극장에······.’
웬 외국인?
#
목표를 포착했다.
신혜원 기자의 발이 거침없이 두 외국인에게로 향한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는 외국인 부녀라······.
매우 슬픈 연극을 보고 당연하게 눈물을 흘린 관객보다, 이쪽이 더 괜찮은 그림이 될 거라 예감한 거다.
“안녕하세요.”
패기있게 한국말로 포문을 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여긴 브로드웨이가 아니라 대학로 연극이다.
자막은커녕 맨 뒤에 앉으면 한국인조차 대사가 잘 안 들릴 때가 있는.
그런 연극을 본 외국인이 한국어를 못 할 리가—.
“인터뷰 좀 요청해도 될까요?”
“······.”
있었다.
남자는 발음을 울리며 아 돈 스픽··· 어쩌구라고 하더니, 고개를 돌려 여자랑 무언가를 말한다.
···아니, 연극을 어떻게 본 거야?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를 못하는데 연극을 본 외국인?
이건 더 그림이 좋잖아!
어쩔 수 없이 토익 920점, 토플 44점의 책상머리 영어 실력을 보여주려던 그때.
“아빠는 한국말을 잘 못 해요. 전 조금 해요.”
옆에 여자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제가 좋아해요. KPOP. 그래서··· 아빠가···.”
KPOP을 좋아하는 예쁘장한 소녀.
그리고 그녀에게 한국을 구경시켜주기 위해 한국에 온 아버지.
이 얼마나 좋은 소재란 말인가!
신 기자는 신나게 인터뷰를 했다.
이따금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엔 번역기를 돌려가며.
그렇게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다음 타켓을 찾으려던 그때.
아직 극장을 뜨지 못하고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는 또 다른 외국인을 발견한다.
“뭐야··· 대학로 연극이 언제 이렇게 글로벌해졌는데?”
오늘 뭔가 좀 신기한 날이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중년의 외국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익스큐즈미.”
조심스레 말을 걸자 그가 고개를 들며 신 기자를 확인한다.
그런 외국인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가 물었다.
“혹시 한국어······.”
“쏘리.”
“아, 댓츠 오케이. 댓츠 오케이!”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이제 인터뷰 요청을 하고, 차례대로 질문을······.
그때 안쪽에서 또 다른 중년인이 걸어 나온다. 이 외국인의 일행인 듯한.
“데이먼, 크리스 감독은 만났······ 어, 무슨 문제 있나요?”
다행이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수염이 나 있어서 긴가민가했는데, 한국분이시구—.
“······.”
“자넬 알아봤나 본데?”
“그럴 리가. 나 지금 안경도 끼고 모자까지 썼구만.”
“천광······.”
“어허, 눈썰미가 좋은 기자님이시네.”
맙소사.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보다.
#
[요즘 대학로 연극 수준···>연극 관련 커뮤니티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연극 팬이라면 눌러보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제목으로.
물론 대다수의 커뮤니티 어그로 글이 그렇듯, 정작 내용은 딴판이었다.
[수준 미쳐버림. 당죽막 찍은 크리스 감독이랑 천광윤 옴]—이게 무슨······.
—천광윤이야 그렇다 치고 크리스 감독은 뭐지? 닮은 사람 아니고?
—방금 기사도 올라왔음ㅋㅋ
—크리스 감독 SNS에도 올라옴. 확실한 듯.
—아니, 크리스 감독이 왜 왔지?
—크리스 감독 딸이 KPOP 좋아한다는 기사를 본 것 같아. 여행 왔나 본데.
—개신기하네 진짜.
—해외에도 기사 떴네ㅋㅋㅋ 대박, 천광윤 옆에 있던 외국인도 유명한 사람인가 봐.
—USA 투데이 편집장이라네. 옛날에 배우도 하고 감독도 하고 평론가도 했었대.
—그런 사람들이 왜 갑자기 대학로 극장에······.
—아니, 그보다 저분들이 연극을 알아들을 수나 있음?
—그러게. 무슨 뮤지컬도 아니고 자막도 없을 텐데.
—그거 관련해서 저 편집장이라는 사람이 SNS에 글 썼네. 대략적인 내용을 다 알고 갔고, 자긴 가끔씩 해외 영화를 자막 없이 보곤 한다고. 대사가 아닌 표정에 집중할 수 있어서.
—뭐, 연기가 미치긴 했지. 벌써 다섯 번째 관람이라 중요 대사는 거의 다 외울 수준인데, 그래도 엉엉 울다가 나옴.
—명작은 결말을 알고 봐도 명작이지.
—‘흉내자들’ 뭔가 흐름이 좋네. 영화도 잘되려나 보다.
—영화가 나옴?
—영화화 소식 모르는 거 보니 늅 중에 늅인가 보네ㅋㅋ
—이제 곧 크랭크인이라고 함.
—아니, 연극이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미 사전 계획이 다 되어있었던 거지.
—와, 자신감 미쳤네······.
—이러다 해외에서도 대박치는 거 아님?
—일단 한국에서부터 흥행해야지.
—한국 흥행하고 해외 수출은 엄청 큰 영향은 없음. 차라리 국제 영화제 초청받아서 좋은 반응을 이끌면 모를까.
—이제 우리끼리 하는 이런 내뇌망상도 충분히 가능하려나 싶긴 함. 그걸 백승결이 보여줬잖아.
—하긴, 백승결이 개연성이긴 하지.
드르륵—.
마우스 휠을 내리며 커뮤니티 반응을 쭉 훑던 신혜원 기자가 멈칫한다.
“하하하···.”
양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작게 웃음을 흘렸다.
어느새 그녀 곁으로 모여들어 모니터를 확인하는 선배들.
“하람 배우들 대거 이탈 기사가 순위권으로 올라가질 못하길래 이상하다 했더니······.”
“여기서 반응 터져버리네.”
“아니, 외국인이 연극 본 게 이 정도로 주목받을 일인가?”
“그냥 외국인이 아니잖아. 한 명은 전 세계 영화 흥행 순위 10위 안에 두 편이나 집어넣은 거장 감독이고, 또 한 명은 전직이 화려한 언론사 편집장이고. 게다가 국민배우 천광윤까지. 이게 대학로 극장 앞에서 마주칠법한 조합이냐고.”
“이래서 이 바닥은 될놈될이라니까. 거기 가서 어떻게 이런 특종을 물어오냐. 한 타임만 놓쳤어도 못 마주치는 거 아냐. 진짜 아무 소스도 없었어?”
의심의 눈초리에 신 기자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진짜 이게 운이라고? 신 기자가 물이 오르긴 했나 보다.”
“계속 그렇게 해 아주.”
“하하, 넵!”
선배들의 격려(?)에 신 기자가 웃으며 명을 받잡았다.
함께 낄낄거리던 선배 중 한 명이 넌지시 묻는다.
“계속 흉내자들 취재할 거지?”
“그러려고요.”
“그래. 또 아냐. 뭐 대단한 게 더 나올지.”
“안 그래도 궁금한 게 있어서, 그쪽으로 취재해 보려고요.”
“뭔데?”
“흉내자들 작가요.”
그녀의 대답에 선배가 갸우뚱한다.
“작가? 안 감독이 각본 쓴 게 아니야?”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
잠시 눈을 깜빡이던 그가 이내 흥미를 잃어버린 눈으로 으쓱거렸다.
“근데 그거 뭐, 드라마도 아니고 누가 궁금해할까?”
#
양기전은 요즘 날아갈 것 같았다.
몸이 가벼워졌달까.
실제로 체중을 조금 줄이긴 했다.
갑자기 여러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받고 있으니 관리를 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바쁘다 보니 자연스레 줄어든 것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날아갈 것 같다 말할 정도로 엄청 유의미한 체중감량은 아니었다.
진짜 유의미한 변화는 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늘 그의 손안에서 시들기만 하던 작품들.
그럼에도, 촬영장에서나마 잠시 생기가 있었음을 추억하고 위안 삼던 순간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조심스레 열어본 손안에선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도 활짝 만개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영화화.
그가 새로 피울 꽃의 이름이었다.
“어, 형님!”
······저들과 함께.
양기전이 웃으며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회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동료들.
불과 어제저녁 연극 무대에서 함께 땀 흘린 이들인데, 이곳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늘은 연극 배우가 아닌, 영화 배우로서 모두가 인사를 나누는 자리 아닌가.
“어어, 다들 와 있었······.”
허허 웃으며 손을 흔들다가 우뚝 멈춰 섰다.
테이블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이들 때문이었다.
“기전아!”
과거, 같은 극단에 있었던 김상억이 큼직한 손을 흔든다.
따라서 손을 올리다가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을 보고 화들짝 놀라 냅다 허리를 접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요. 반가워요.”
가장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백발의 중년인, 천광윤이 가볍게 그의 인사를 받는다.
양기전은 생소한 얼굴들에게도 인사를 이어갔다.
신승찬과 고하윤.
어떤 작품에서든 주인공이 아니면 이상한 그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하며 양기전은 새삼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마주하니 더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이분들이 조연인데, 내가 주인공···?’
세상이 자신을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가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흉내자들의 주인공, 최태주 자리.
가시방석이다. 이게 맞나······.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있자, 마찬가지로 이 자리가 불편한 연극 배우들이 소근거렸다.
“······긴장되죠?”
“긴장도 긴장인데,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아서···.”
“맞아요. 저 오늘 오면서도 안 감독님 문자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니까요?”
“전 오자마자 멈칫했잖아요. 여길 내가 와도 되는 게 맞나. 여길 앉는 게 맞나.”
모두가 별반 다르지 않은 감상들을 내뱉었다.
그러던 중 아직 오지 않은 안 감독 옆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한 양기전이 입을 뗐다.
“저 자린······.”
이에 모두가 그 생각이 맞다는 듯 주억거린다.
“작가님 자리인가 봐요.”
“드디어, 뵙게 되네요.”
오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는 순간이었다.
‘흉내자들’의 작가가 누구인가.
그가 만든 세계에서 그가 만든 역할에 푹 빠져 지냈잖나.
그러니 신의 모습을 궁금해하는 신도처럼 커져가는 궁금증은 당연했다.
그리고 오늘, 그토록 베일에 감춰져 있던 ‘흉내자들’의 작가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
정말이지, 묻고 싶은 게 한가득이었다.
우선은 이것부터.
‘왜······ 나였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