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기억 (12)
이윽고 도착한 안 감독이 배우들을 향해 서론을 띄웠다.
영화 캐스팅에 모두 응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열심히 해보겠다는 포부까지.
그다음은 당부였다.
“우선 홍보팀에서 전해달라는 이야길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흉내자들’은 작가가 누군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고 있죠. 제가 쓴 건 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요.”
“······.”
“그래서 우린 이걸 이용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작가의 정체에 대해 쭉 숨기는 거죠. 사람들이 충분히 궁금해할 때까지요.”
이쯤 되니 배우들은 의아해졌다.
‘흉내자들’의 작가가 너무나 궁금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배우인 자신들의 경우일 뿐, 대중들은 입장이 다르다.
연극에서 연출가와 작가는 아주 중요한 존재이지만, 영광을 함께 누리지는 못한다.
연극은 배우가 조명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띠고 있으니까.
그러면 영화는 어떨까.
영화는 연출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향한다.
괜히 영화를 연출가의 예술이라고 할까.
물론 작가가 따로 있다면 그쪽에도 관심이 퍼지긴 할 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잔불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그런데 지금 ‘흉내자들’이 취하는 방식은 기존의 상식과는 많이 벗어나 있었다.
애초에 캐스팅부터 이상하긴 했다만···.
굳이 작가의 정체를 왜 숨기지?
마치 작가의 정체를 밝히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처럼 말하는데, 대체 작가가 누구길래?
그런 의문들이 곳곳에서 솟아나는 사이, 안 감독이 결론을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부터 작가님의 정체는 극비입니다.”
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김상억이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연다.
“누군지를 알아야 극비죠.”
“그게 제일 극비긴 하죠.”
이준혁의 반박에 그가 끄덕였다.
“아, 것도 그러네.”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짓던 안 감독이 손목을 확인했다.
“이제 오실 때가 됐는데······.”
그의 중얼거림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리는 문.
작가님이신가? 모두의 시선이 홱 돌아갔다.
하지만 회의 테이블 쪽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김진태였다.
“···그, 감독님.”
“어, 작가님 오셨어?”
“지금 작가님이 아니라 밖에··· 밖에···.”
그런데 말을 더듬으며 우왕좌왕하는 김진태.
그의 표정을 보며 안 감독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긴. 작가님 맞으니까 얼른 모셔와.”
“아니, 작가님일 리가 없는 분······.”
“······.”
“어? 뭐지. 몰래 카메라인가? 아니 이게 말이······.”
안 감독의 만개한 입꼬리를 보며 김진태가 눈알을 굴렸다.
카메라가 어딨나 찾는 모양새였다.
한편, 그 모습을 보며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리는 천광윤과 신승찬.
나머지는 도통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대체 작가의 정체가 뭐길래 단장이 저렇게까지 놀라는 걸까?
작가의 정체가 영화 마케팅에 이용할 정도인가? 그런 의구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던 배우들의 눈빛이 어느새 궁금증으로 가득해졌다.
벙찐 김진태가 다시 밖으로 나가고.
멀찍이 앉아 상황을 관망하던 천광윤이 젊잖게 손을 들어 올린다.
안 감독이 그를 보며 주억였다.
“네, 선배님. 말씀하세요.”
“영화가 흥행할 때까지 작가를 숨긴다면, 만약 개봉 전에 영화제를 가거나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떡합니까? 시기를 보니 딱 그 시즌인데.”
“하하, 그것 참 생각만으로 좋네요.”
영화제. 그건 안 감독이 영화 감독으로서 성공적으로 발돋움한 뒤, 줄곧 꿈꿔온 무대였다.
특히 3대 국제 영화제는 ‘화성’이라고까지 부르며 염원했지.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고민하는 미간과는 다르게 씰룩거리는 입꼬리.
행복한 상상 속에서 안 감독이 말했다.
“그건 그거대로 염두에 둔 게 있긴 합니다.”
“그렇군.”
이에 천광윤은 느릿하게 주억거렸다.
딱히 이유는 물어보지 않고서, 대화를 맺는다.
“······.”
잠시 둘의 대화에 신경이 쏠렸던 배우들.
그들이 다시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복귀했을 때 즈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김진태가 다시 기둥 너머로 등장했다.
그리고 여전히 얼떨떨해 보이는 그의 뒤로.
“그, 작가님··· 오셨습니다?”
백승결이 따라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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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들의 미팅에 루시퍼의 등장··· 아니, 이게 아니라.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주, 조연 첫 미팅 겸, 작가를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왔더니.
갑자기 바다 건너 할리우드를 휩쓸고 돌아온 스타가 나타났다.
파코스라는 이름으로 미친 연기와 액션을 보여주었던 그가 갑자기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연극배우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만 살폈다.
가뜩이나 천광윤, 신승찬, 고하윤 등 국내 톱스타들이 조연 자리에 앉은 것도 적응이 안 되는데.
더 말도 안 되는 사람이 등장한 거다.
그것도 배우가 아닌 작가로서.
“······.”
“······.”
“······.”
이윽고 사무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너무 충격을 받아 단체로 실어증에 걸린 건 아니고.
이미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뒤의 반작용 같은 것이었다.
그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대선배, 천광윤.
“이렇게 보니 너무 반갑네요. 작가님.”
그가 씩 웃으며 백승결을 바라본다.
이에 백승결이 빙그레 웃으며 화답했다.
“저도요. 신기하네요.”
“우리만 할까요.”
고하윤이 백승결의 말꼬리에 딱 붙여 말했다.
찌릿한 눈빛을 보며 백승결이 하하 웃는다.
‘눈속임’ 이후로 처음 만나는 그녀였다.
물론 그사이에 연락을 주고받긴 했다.
심지어 ‘흉내자들’에 들어간다며 여러 가지 고민 상담을 해주기도 했지.
네가 들어갈 차기작의 작가가 자신이라는 얘긴 꽁꽁 숨기고서.
그녀의 말에 대부분의 배우들이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다.
안 감독과 천광윤, 신승찬만이 입꼬릴 들어 올리며 상황을 관전했다.
“아니, 대본을 읽고 작가님께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는데.”
“······.”
“감독님은 나중에 물어보라 하시고 답답해 죽는 줄 알았는데······.”
“······.”
죄인은 말이 없다.
고하윤의 시선이 안 감독에게도 튀자, 그가 얼른 양손을 흔들었다.
“그, 오해가 있는데. 내가 먼저 숨기자고 한 게 아닙니다? 작가님이 하셨어요.”
“어엇, 감독님? 연극 개봉 직전부터는 감독님이 그렇게 하셔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게 연극을 위한 길이라면서요.”
“어쨌든, 작가님이 먼저 제안하셨잖아요.”
안 감독의 빠른 꼬리 자르기에 백승결이 황당해하며 고하윤을 본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아니, 심지어 우리 지난주에 통화했잖아요? 나 캐스팅된 거야 작가님이시니 모를 리가 없었을 거고?”
“그치. 모르지 않았지.”
옆에서 재빠르게 주억거리는 안 감독.
한편, 김상억과 이준혁도 살짝 서운한 눈빛으로 백승결을 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과는 며칠 전에 만나기도 했던 백승결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길래 차기작 고를 준비를 한다고 했었지.
그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변명이 안 먹힐 것 같네.’
결국, 이 충격적인 사건의 결말은 사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그 과정 덕분에 배우들은 웃음을 머금으며 자연스레 긴장을 덜어낼 수 있었다.
아무리 여기 있는 대부분이 백승결과 촬영을 했던 경험이 있다지만.
몇몇을 제외하고는 10년도 더 지난 인연.
아니. 사실, 인연이라 치기에도 뭐하지.
백승결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봤다는 경험은 어디서든 환영받는 술안주였지만, 정작 본인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날의 사소한 만남이었을 테니까.
그러니 이제 와 아는 척을 하기에도 뭐하다.
이는 언젠가 하람에 놀러 갔다가 마주쳐 잠깐이나마 대화를 나눴던 양기전도 마찬가지.
그때도 물론 대단한 배우였지만, 지금은 또 달라졌다. 무려 할리우드의 블루칩이지 않나.
아무튼, 그렇게 모두가 조금씩 눈치를 보던 상황에서 하람의 배우들이 백승결을 몰아붙이자 분위기가 풀어졌다.
한결 가벼워진 분위기.
충분히 아이스브레이킹이 되었다 판단한 안 감독이 손뼉을 치며 주의를 끌었다.
“자자, 이제 작가님 그만 괴롭히고 작품 얘기합시다, 작품 얘기. 다들 작가님한테 궁금한 거 많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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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로 남은 피구 선수처럼 수개월 치의 밀린 질문 세례를 연달아 받아내야 했다.
어떤 질문은 가볍게 답할 수 있을 만큼 간단했고.
또 어떤 질문은 이야기의 창조자인 나조차도 멈칫할 만큼 묵직했다.
그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나름 디테일을 챙긴다고 챙겼는데도···.
“영화판 대본을 보면서 자연스레 연극 대본이랑 비교를 하게 되는데, 대체로 영화판이 더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연극판이 더 좋다고 느낀 장면이 몇 개 있었어요.”
“제가 맡은 역할은 영화판에서 성격이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이 대사가 입에 잘 안 붙더라고요. 왜이고 하니······.”
새로운 관점들이 끼어드니 또 다른 것들이 보인다.
그렇게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확장된다.
나는 배우들에게 답하며, 도리어 답을 얻는다.
그렇게 서로가 답을 찾는 긴 이야기가 끝나고······.
“작가님 오시기 전에 여기 온 분들한테 모두 비밀 유지에 신경 써달라고 얘기 했어요.”
어수선해진 틈을 타 안 감독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저도 몇몇 지인들한테 이 사실을 밝히면서 비밀에 붙여달라고 부탁하긴 했는데, 사실 그게 어느 정도까지 지켜질지는 모르겠네요.”
“이 바닥에 완전한 비밀이란 게 없죠. 찌라시 정도로는 퍼져나갈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전 제가 퍼트렸다고 생가하려고요 비밀이 퍼진다고 해도 누가 얘기했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요. 사실 입이 근지러워 열어버린 제 잘못이죠.”
“비밀을 남에게 얘기하는 것부터가 퍼트리는 행위인 셈이긴 하죠. 그리고 설사 찌라시가 돈다고 하더라도 대중에게까지 퍼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 답한 안 감독이 어깨를 으쓱거린다.
“좀 허무맹랑해야죠. 할리우드 스타의 이중생활이라니.”
“그거 말이 좀 이상한데요?”
굉장히 구설수에 휘말릴 것 같은데.
낄낄 웃는 안 감독과 첫 촬영 날짜에 대한 얘길 하다가 이어서 천광윤과 하람 식구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고하윤이 정색하고 날 보다가.
더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웃는다.
“확실히, 시간의 밀도가 다르네요.”
“네?”
“함께 미술품을 숨기던 진기원이 사막의 무법자인 파코스로 변했을 때, 엄청 놀랐거든요. 배역이 바뀌었을 뿐인데, 사람이 저렇게까지 확 달라지는구나. 특히 2편에선 더더욱 그랬죠. 대체 얼마나 이 작품에 집중한 걸까? 분명 모든 시간과 감정을 쏟아부어 연기했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고하윤의 시선이 대본으로 내려앉았다.
“그사이에 이런 대본까지 썼다는 거잖아요. 보자마자 이거 누가 썼는지부터 궁금해질 정도로 재밌었는데, 그게 감탄을 금치 못했던 당죽막2의 파코스였다니.”
쏟아지는 칭찬에 나도 칭찬 하나를 얹었다.
“저도 ‘굿타임’ 잘 봤어요. 너무 재밌던데요.”
“동료 모니터링까지? 이봐, 밀도가 다르다니까.”
빙그레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아직 인사를 나누지 않은 이들은 연극 배우들 뿐이었다.
“······.”
서로 떠들던 그들이 내 시선을 느꼈는지 말을 멈춘다.
무슨 공포영화에서 귀신이라도 등장한 듯, 천천히 고갤 돌려 날 보는 그들.
‘해별이네 보고 진짜 놀랐다~.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해? 이번 작품도 잘 해보자?’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다음에 또 잘하면 되는 거야. 나도 연극 무대에 처음 올라갔을 때 얼마나 실수가 많았냐면······’
‘아저씨라니. 승결아. 선배라 불러, 선배.’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그들의 젊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오랜만이에요.”
선배들에게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