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대중의 관심을 모으려면 (1)
한 달 전.
아티스 엔터테인먼트 스카웃 담당자인 최기석 실장은 우경철 본부장의 부름을 받고 그의 방으로 향했다.
자신을 부른 이유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몇 주 전부터 계속 하람 배우들을 빼 오자는 얘길 하고 있으니, 아마 그 용무일터.
스카우터로서 하람의 배우들은 군침이 돌만큼 좋은 인재들인 건 맞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우경철 본부장이 계획하는 것들은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아티스를 위한 일도, 그 배우들을 위한 일도 아닌.
그 스스로를 위한 복수극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
낮게 한숨을 내쉬며 본부장실 앞으로 다가서자, 안쪽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 꺼져?!”
문고리로 향하던 손을 멈추고 우두커니 문 앞에 섰다.
쩌렁쩌렁, 우경철 본부장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언제는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며. 왜 밥줄 끊기니까 실언했다 싶어? 내가 말했지. 너 같은 새끼 대체재는 넘쳐나니까 까불지 말라고.”
“본부장님, 전 그런 뜻이 아니었고···!”
“이미 피디들하고 다 얘기 끝났어. 어디 싸가지 없는 새끼가 덤빌 곳 안 덤빌 곳 구분 못 하고 감히 내 뒤통수를 쳐. 넌 나가리야. 남은 계약 기간 동안 손가락이나 빨면서 있어. 그러면 네 팬들도 점점 널 잊을 거야. 빨아 재낄 새끼들은 널렸거든.”
“죄송해요, 본부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꺼져. 안 꺼져? 한 대 더 맞을래?”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겁에 질린 채 본부장실을 나서는 아티스 엔터 소속 솔로 가수, 천호.
“······.”
“······.”
녀석의 볼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눈은 더더욱 빨갛게.
순간 최기석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머릿속이 어지러웠고, 속이 매스꺼워진다.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치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본부장실로 들어섰다.
“어, 최 실장. 왔어?”
“······때리신 겁니까.”
그러자 와락 구겨지는 우경철 본부장의 미간.
“선빵은 저 새끼가 쳤지. 그것도 거하게.”
“그냥 힘들다고 얘기한 것뿐이었잖아요. 일이 너무 많긴 했어요. 조금 쉬고 싶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일 거 같아? 하는 일이 스카웃만 하면 끝이라 그런가 보기보다 순수하네, 최 실장? 저 새낀 쉬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정산 비율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그래서 팬들 등에 업고 되도 않는 역모 한 번 꾸몄던 거고.”
“······.”
“최 실장. 너 왜 나 그런 눈으로 보냐? 뭐 대신 신고라도 해주게?”
“······.”
“하아, 너까지 열 받게 하지 마라. 안 그래도 저놈 지랄이지, 방송국에서 꼴도 보기 싫은 새끼도 마주쳤지, 피디라는 놈들은 그 새끼 무서워서 벌벌 떨고 앉아 있지. 지금 기분이 무지 안 좋거든. 됐고. 일 얘기 하자.”
손을 휘적거리며 화제를 전환하려는 우경철 본부장에 최기석 실장이 말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최 실장. 나 기분 안 좋다니까?”
“······.”
“하, 시발 그래. 말 해봐, 뭔데.”
“백승결 빚투. 그거 본부장님이 하신 일이었습니까?”
최기석 실장의 물음에 우경철 본부장이 이마를 문질러댔다.
손등 너머로 사납게 구겨진 그의 얼굴이 드러난다.
“하아, 진짜 오늘 왜 이러냐. 박 기자가 그러디? 맞네. 그 새낀 입이 아주······ 그러니까 약점 잡혀서 찍소리도 못하고 회사에서 쫓겨났지.”
“정말 그러신 거예요? 있지도 않은 일을?”
“있지도 않긴 개뿔. 그 새끼 애비가 돈 빌리고 지랄 쇼 한 건 팩트야!”
“그걸 갚지 않아도 될 사람이 다 갚았는데, 무책임하게 기사를 터트리신 거잖아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네?”
“아니, 어쩌라는 거냐고. 최 실장아, 그 새끼가 먼저 때렸어.”
그러면서 ‘눈도 못 마주치던 새끼가 감히 눈 부릅뜨고서 날 겁박하잖아.’라고 중얼거리는 우경철 본부장.
최기석 실장이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가 오히려 더욱 역정을 낸다.
“그 새끼가 해별이네 타이틀 단 게 다 누구때문인데! 은혜를 원수로 갚는 새끼한텐 그래도 싸지!”
“은혜였던 건 맞습니까?”
“뭐야?”
“빚투 사건, 사장님은 아세요?”
나름대로 회심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우경철 본부장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의기양양해진다.
“내가 박 기자 그 새끼도 아니고 독단으로 움직일까?”
그러더니 씨익 웃는 우경철 본부장.
결국, 그의 패악질을 아티스 전체가 묵인해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야, 하람 그 눈곱만한 회사가 우리 같이 큰 회사랑 경쟁할 때부터 사장님은 마음에 안 들어 하셨어. 근데, 지금은 어때? 백승결 하나로 우릴 확, 앞질러버렸잖아. 그러면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겠어? 백승결엔 오물을 뿌리고, 우린 제2의 백승결을 키워야지. ······이게 내가 한 말 같냐?”
“그래서입니까? 제2의 백승결을 만들려고, 나머지 소속 배우들은 다 뒷전인 거예요?”
최기석 실장이 그동안 꾹 눌러왔던 것을 물었다.
현재 아티스 엔터에는 무수히 많은 연예인들이 있었다.
그중엔 회사의 관심 밖에 나 벼랑 끝으로 몰린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엔······.
자신의 손을 잡았던 녀석들도 있었다.
“천호, 제가 스카웃 했습니다. 재경이도, 선재도 전부 다요.”
“그래서?”
“걔네들 제 말 믿고 여기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세요. 일조차 없어요.”
“지들 능력이 안 돼서 그러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회사는 뭐 땅 파서 장사해?”
“애들,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력만으론 안 돼.”
“회사는 지금 노력조차 안 하고 있잖아요.”
짙은 눈썹을 벅벅 긁은 우경철 본부장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한다.
“답답한 소리 하네. 꽝인 복권을 당첨시키려고 노력하는 게 이치에 맞아? 매니지먼트에게 배우는 복권 같은 거야. 긁어서 꽝이면 구겨 버리고, 당첨되면 얼른 뽑아먹어야 하는.”
“그게 무슨······.”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거지. 우리한테 필요한 건 꽝이나 4등이 아니라 1등이라고. 백승결이 저렇게 잘나가고 있는데, 아티스엔 누가 있는데? 안 되는 애들 데리고 백승결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백승결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그러시는 거예요? 배우들 다 내팽겨치고?”
“하아, 닥치고 가서 하람 배우들이나 데려와. 그러면 네가 데려온 새끼들한테도 일감 나눠 주는 거 고려해 볼 테니까.”
우경철 본부장이 지친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최기석 실장이 결단했다.
“본부장님이 데려오시죠.”
“뭐?”
“저, 더는 못 하겠습니다.”
#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사표를 오늘 꺼내게 될 거라고는.
핸드폰이 바르르 떠는 통에 퇴근길이 요란스럽다.
전원을 꺼버렸다.
퇴사길이 고요해졌다.
“······.”
그다음은 귀향길이었다.
최기석 실장은 자신의 집에 들러 간단하게 짐을 챙겼다.
그리고 곧장 고향으로 내려간다.
서울에 있어 봐야 속만 쓰리지, 해야 할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자유가 된 도비는······.
“기석아, 저기서 물 좀 길어와라.”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집요정이 되었다.
어머니가 일군 기백 평짜리 텃밭도 가꾸고, 아버지의 철물점 일을 도왔다.
“야야, 그거 아직 덜 여물었는데 지금 뜯으면 어떡해. 아이고······.”
“이건 여물었는지 어떻게 구분하는데?”
“여기 봐봐, 이 꽁다리. 여기가 지금 연두색이지? 이게 아예 요렇게 녹색으로 넘어와야 익은 거야.”
머릴 긁적이며 최기석 실장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똑같은 밭에서 똑같이 빛을 받고 있는데······ 여무는 크기도, 시기도 다르네.”
“당연하지. 세상에 같은 크기로 똑같은 시기에 열리는 열매가 어딨겠어.”
무슨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냐며 코웃음친 그의 어머니가 바구니에 과실 하나를 또 채워 넣으며 덧붙였다.
“땅 탓도 아니고, 햇볕 탓도 아니야. 성급하게 따서 가지고 있는 당도를 모두 못 내거나, 아니면 방치해서 바닥에 떨어져 썩어 문드러지거나. 결국, 그걸 좌우하는 건 수확하는 농부의 관심이지.”
“······.”
“자, 여긴 이만하면 됐고. 네 아버지한테 가봐라. 오늘 오랜만에 물건이 많이 들어와서 손이 오래, 많이 필요하시댄다.”
인력사무소장(?)의 지시에 터털터털 철물점으로 향했다.
이런 시골엔 물건이 수시로 들어오지 않는데, 그래서 이렇게 한 번에 들어오는 날이면 그 양이 엄청났다.
두 시간을 꼬박 정리했는데도 아직도 절반.
최기석 실장의 얼굴을 본 그의 아버지가 마대 자루를 갈고리에 걸고 가죽이 넝마가 된 의자에 앉았다.
“잠깐 쉬자.”
“네.”
끄덕이며 바닥에 주저앉은 최기석 실장.
멍하니 철물점 밖을 내다보는 그에게 아버지가 툭 던지듯 물었다.
“다시 올라가려고?”
“······귀신 같으시네요.”
“귀신 같긴. 엉덩이가 그렇게 들썩들썩하는데.”
“그랬나?”
일이 고돼서 그럴 힘도 없었는데 말이지.
피식 웃으며 최기석 실장이 아버지가 던진 생수병을 받았다.
뚜껑을 돌려 까며 그가 말했다.
“아버지······ 제가 두고 온 게 너무 많나 봐요.”
“서울에 있는 동안 많이 채우고 살았나 보네.”
“그랬는데 버려두고 도망쳐 왔어요. 무책임하게.”
씁쓸하게 웃으며 생수병을 입에 가져가자, 아버지가 말한다.
“근데 돌아갈 거잖아. 우린 너 다시 돌아갈 줄 알았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아버지를 돌아보는 최기석 실장.
“그러니 이건, 전략적 후퇴라고 하는 거다.”
아버지의 짤막한 위로에 최기석 실장이 작게 웃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시선은 시골길에 둔 채로 고민하던 그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아버지, 저 다녀올게요.”
“동작 그만.”
“···?”
“옮기던 건 다 옮겨놓고 가야지.”
#
짐을 챙기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
무언가 결심을 한 듯 비장하게 나온 그였지만, 막상 핸들을 잡고 몇 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리며 떠오른 생각은 ‘막막하다’였다.
어찌할 방법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결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애들 계약 기간이······.’
적게는 1년, 많게는 수년이 남은 상황.
아티스는 결코 그들을 놔주지 않을 거다.
평범한 방법으로 그들을 꺼내올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해당 소속사가 매니지먼트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계약을 해지시키는 방법 뿐일 텐데······.”
변호사의 자문도 그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약하다.’
우경철 본부장이 한 짓들이 약하다는 게 아니다.
그는 이미 충분히 소속 연예인들에게 피해를 끼쳤다.
하지만 그동안의 억울함까지 풀어주기엔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
결국, 한참 동안 고민하던 번호로 전화를 건다.
하루에 몇 번이고 고민했던 번호.
그리고, 그 번호의 주인.
‘해별이. 오래되긴 했지만, 아직도 사람들 머리에 각인된 이름이 있으시잖아요.’
‘그때의 좋은 기억을 아티스와 함께 만드셨던 것처럼, 다시 한번 저희와 함께 해보시는 거 어떨까요?’
‘본부장님이 평소에도 그때 얘길 자주 하셨거든요. 승결 씨를 정말 예뻐했다고. 가족분들과도 가깝게 지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조금 전에도 전화하셔서, 꼭 모셔오라고 성화셨어요.’
자신이 했던 말들과···.
‘죄송하지만 저는 아티스와 계약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티스 엔터테인먼트와는 계약할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기억력이 좀 좋은 편이라서요.’
그가 답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눈을 감는다.
이윽고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안녕하세요, 배우님. 저 최기석 실장입니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기억해요. 아티스 엔터, 최기석 실장님.
“아, 네. 맞습니다. 그, 저··· 혹시 통화 잠깐 가능하실까요?”
—······.
잠깐의 침묵이 부담스러워 얼른 말꼬릴 이었다.
“저, 아티스 나왔습니다. 그만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