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대중의 관심을 모으려면 (2)
일주일 전, 최기석 실장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그때 막 신승찬을 통해 아티스가 하람의 배우들을 빼낸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그를 어느 정도 경계했다.
우경철이 보낸 파발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는 우경철의 말을 전하는 대신 자신의 이야길 이어갔다.
—이번에 모두 알게 됐습니다. 우경철 본부장이 배우님에게 어떻게 했었는지, 전부요.
“······.”
—솔직히 예전에 배우님 만난 뒤로 묵은 사연이 있을 거라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빚투 사건 터트렸던 박 기자가 다 말해주더군요. 심지어 그것까지도 우경철 본부장이 사주한 거라고요.
“······.”
—그런 상황에서 우경철 본부장의 패악질이 너무 심해져서··· 도저히 못 참겠어서 나오게 됐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략적인 상황은 이러했다.
그가 내 과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 우경철의 행동들은 도를 넘었고,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아티스 엔터를 그만뒀다.
‘그래서 우경철이 신승찬을 영입하기 위해 직접 최영기 실장을 만났던 거구나.’
머릿속에서 퍼즐이 어느 정도 맞춰졌을 때.
—미안합니다. 그땐··· 아무것도 모르면서 너무 쉽게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나에게 사과했다.
“실장님이 미안하실 게 뭐가 있나요. 모르고 그러신 건데.”
내가 덤덤하게 답하자, 그가 말을 이어간다.
—모르고 그랬다.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만··· 정말 몰랐었는지 이젠 모르겠습니다. 배우를 자신의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를 보며 내심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모두에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던 겁니다.
···모두에게?
나는 그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다른 문제들이 끼어 있다는 걸.
아무래도 앞서 말한 우경철의 패악질에 내 빚투나 하람에서 배우를 빼간 일들 말고도 다른 게 있는 듯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내 예상은 적중했다.
—전 가능성이 보이는 친구들을 스카웃 했습니다. 스스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원석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주었다는.
“······.”
—내가 뻗은 손이 정말 그들을 위한 거였는지 같은 건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티스는 큰 회사니까. 내가 본 그들의 재능을 끄집어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회사니까. 그러니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그게 그들의 족쇄가 되었어요. 우경철 본부장은 매니지먼트를 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상품을 팔고 있습니다. 소속 연예인들을 철저하게 이용만 하고 있어요.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KNS 시상식. 그 곳에서 신인상 수상 후 잠시 마주쳤던 우경철과 그의 옆에서 걷고 있던, 아역 배우.
차도영.
내 기억 속에 있는 그 아이의 얼굴이, 조금 더 먼 과거의 기억 속 내 어릴 적으로 변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곳으로, 제가 밀어 넣은 겁니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호흡을 고른 그가 자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은.
—바쁘신 거 압니다. 잊고 싶은 기억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이게 또다시 배우님께 무례하게 구는 거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와주세요.
그 옛날.
내가 필요로 했던 어른이었다.
—제가, 제 손으로 밀어 넣은 배우들을··· 다시 꺼내올 수 있도록.
#
그리고 현재.
나는 자리에 앉아 그가 구한 도움을 꺼냈다.
그의 도움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내가 우경철 본부장에게 당했던 것들을 기억 나는 대로 적어 달라는 것.
일종의 진술서였다.
“양이··· 상당하네요.”
두툼한 종이 뭉치를 보며 최기석 실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과거에 했던 말을 돌려주었다.
“제가 기억력이 좀 좋거든요.”
허허 웃으며 종이 뭉치를 받아드는 그.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내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잊고 싶은 기억이셨을 텐데···.”
“어차피 못 잊어요.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생해서.”
대수롭지 않게 답하고서, 툭 던지듯 물었다.
“차도영.”
“···?”
“그 친구도 작품 활동이 뜸하던데요.”
그러자 최기석 실장이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도영이 나이가 지금 열여섯입니다. 배우로서는 굉장히 애매한 나이죠. 작품에서 많이 등장하지 않는 연령대일 뿐더라 설사 등장한다 하더라도 안정적인 연기를 위해서 대부분 20대 초반 배우들을 데려다 교복을 입히니까요. 여러모로, 괜찮은 배역이 들어오기 어려운 시기죠. 아예 어리던가, 아예 스무 살이 넘던가. 그래야 하는데······.”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물론 그것만은 아닐 겁니다. 저도 전해 들은 얘기지만, 도영이가 우경철 본부장의 기대에 못 미쳐서 자연스레 관심 밖에 났다는 말도 들려왔었으니까요.”
“그건 좀 이상하네요. 그 아이 정도면 충분히······.”
말을 이어가다가 날 보는 최기석 실장의 눈빛에 끝을 흐렸다.
이윽고 그가 말한다.
“비교 대상이 해별이었으니까요.”
망각은 신의 배려라고 했나.
나는 신의 배려를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연이은 실패로 싸늘하게 굳어지던 우경철의 눈빛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 눈이 차도영, 그 아이에게도 향했을까.
“······.”
과거를 잊을 수도 없고.
회귀 같은 걸 해서 과거를 바꿀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앞으로를 바꾸는 것.
또 다른 내가 만들어지는 것을 막는 것.
그리고 최기석 실장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그는 싸우려고 하고 있었다.
자신의 밀어 넣은 이들을 그곳에서 꺼내기 위해.
그러니 나는, 그 싸움에 힘을 얹어볼까 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이거, 이길 가능성 있는 싸움인가요?”
내 솔직한 질문에 최기석 실장이 잠시 당황하다가 털어놓는다.
“글쎄요. 배우들의 계약 문제라는 게, 계약서에 명시가 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 어려운 싸움이겠죠. 사람들은 그다지 관심 없는 실패한 배우들의 싸움이잖아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가만있자, 퇴고는 거의 다 끝났고···.
박 대표도 투자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준비에 3개월. 촬영에 4개월. 개봉까진······.
“아주 긴 싸움이 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열심히 준비해 봐야죠.”
“다행이네요.”
“네?”
뭐가 다행이냐는 듯한 최기석 실장의 표정에 내가 옅게 웃었다.
“저도 조금 걸릴 것 같거든요.”
대중의 관심을 모으려면.
#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올해. 아니, 최근 몇 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게 피웠던 꽃,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2’도 결국 극장에서 내려가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길었던 강점기가 끝난 것이다.
이미 10일을 훌쩍 넘게 핀 불로초와도 같았던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2’였기에 영화사 측은 조금의 아쉬움도 없었다.
다만,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2의 향후 거취를 맡게된 OTT 플랫폼, 멀티온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볼사람은 다 본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
하지만 그 예상을 완벽히 깨트리고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2’은 OTT에서 다시 피었다.
전례없이 가파른 속도의 흥행 질주.
오픈한지 며칠 만에 ‘명예의 전당’, 멀티온 본사 로비에 걸리게 되는 기염을 토해냈다.
총 시청시간이 드라마에 비해 몇 배나 작을 수밖에 없는 영화의 특성상, 말도 안 되는 성과였다.
자연스레 인터넷에서 뜨거웠던 떡밥 하나가 다시 굴러갔다.
거진 일주일에 한 번꼴로 끓어오르는 소재.
—분명 할리우드겠지.
—그건 당연하지. 세계 최고 무대에서 초대박을 냈는데, 다시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아.
—아마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엄청 오긴 할 텐데.
백승결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나저나 작품 고르느라 머리 터지긴 하겠다. 다들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으로 기대치가 엄청 올라가 있는데, 무서워서 작품 쉽게 고르겠어?
—확실히 높아진 역치를 만족시켜주기 쉽진 않을 듯.
—쉽지 않은 게 아니라 불가능하지.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은 무려 흥행수익 10위 안에 1, 2편이 모두 들어간 대작이라고.
물론 아직 차기작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백승결이 언제 어떤 작품으로 돌아올까 하는 궁금증에 가까웠다.
그렇게 식지도 않은 떡밥이 데워지다 못해 팔팔 끓기를 여러 번.
그 사이, 국내에선.
많은 원작 팬들의 기대를 끌어모은 영화 ‘흉내자들’이 크랭크인 이후 3개월 만에 촬영을 마쳤다.
그리고 며칠 후.
띠리리리——.
띠리리리——.
“아빠.”
“드르렁···.”
“아빠!”
굿픽처스 박 대표의 딸이자, 백승결 팬카페에서 서울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닉네임 백승결혼.
박혜진이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않는 자신의 부를 깨웠다.
“···어후. 왜?”
숙취가 몸을 지배한 자의 가냘픈 목소리.
박혜진이 소파에 굴러다니던 핸드폰을 주워와 옆으로 왔다.
“전화가 계속 온다니까?”
“흐음··· 누군데?”
“이정고 팀장님.”
“걘 주말 아침에 왜······.”
귀찮은 듯 찡그리며 답하는 박 대표에게 박혜진이 눈을 흘겼다.
“그러니까. 이거 이정고 팀장님인 척 저장된 내연녀 아니야?”
“너······.”
“뭐, 왜?”
“······내가 너 드라마 적당히 보랬지.”
“영화는?”
“영화는··· 봐. 봐야지 영화는. 아빠가 영화 만드는 사람인데.”
“그치만 티켓값이 너무 올랐는걸. 용돈도 오른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러면서 승결이 나오는 영화면 다섯 번씩 보잖아.”
“그건 아깝지가 않거든.”
당연한 얘길 한다며 으쓱거리는 박혜진.
박 대표가 피식 웃으며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자 박혜진이 고양이처럼 침대 프레임을 붙잡고 슬쩍 물었다.
“그나저나 울 오빠 차기작 소식은 없어?”
“나와 네 엄마는 아들을 나은 적이 없는데?”
“아잇, 그 말이 아니잖아.”
“참 내, 몰라. SNS로 물어봐라. 네 오빠한테.”
“아, 이제 할리우드 톱스타급이라 아빠는 알 수가 없나?”
“이게,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 다시 고개를 들었던 박 대표가 눈을 끔뻑였다.
‘가만 그럼 ‘흉내자들’이 백 배우 차기작인 셈인가? 배우로서는 아니지만 어쨌든 백승결로서는 맞잖아?’
이미 백승결의 차기작을 자신도 모르게 잡았고, 차차기작 또한 어제 물어왔다는(—백승결이 알아서 굴러들어오긴 했지만) 생각에 입이 쭉 찢어지는 박 대표였다.
그때, 박혜진이 가져온 핸드폰이 또다시 요란을 떨었다.
또다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웬수 같은 딸내미를 가볍게 무시하며 핸드폰을 받았다.
“어, 왜.”
—바, 받았다!
“받았다?”
—아, 아니. 이건 대표님께 한 말이 아니라··· 아무튼, 왜 이제야 받으세요. 지금 몇 통을 걸었는데.
“대표한테 주말 아침에 전화를 해놓고 왜 이제 받냐고 뭐라 하는 직원이라니··· 이게 맞아?”
—전화한 이유를 들어보시면 어? 맞네? 맞구나! 하실 거예요.
“뭔데. ‘흉내자들’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어, 어떻게 아셨어요?
마침 백승결과 ‘흉내자들’, 그리고 차차기작인 ‘조선유랑극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아무 생각 없이 날아간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것 때문이 맞다고 하니 박 대표 얼굴에 남아 있던 잠이 싹 달아나버렸다.
“무, 뭔데? 무슨 일인데?”
—그게 문제는 아닌데···.
이어지는 이정고 팀장의 보고.
이야길 듣는 박 대표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이를 지켜보던 박혜진은 갸우뚱하며 무슨 일인가 눈치를 봤고.
마침내 전화를 끊은 박 대표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포효했다.
“으라아아아아앗!”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영화 ‘흉내자들’ 초청.